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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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이곳에는 법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밀림의 법칙이라는 거야. 그러나 이곳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지. 수용소 안에서 죽어가는 놈이 있다면, 그놈은 남의 빈 그릇을 핥는 놈들이고, 맨날 의무실에 갈 궁리나 하는 놈들, 그리고 정보부원들을 찾아다니는 놈들이야. -8p-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수용소는 그들의 말처럼 밀림의 법칙이 존재하는 곳이다. 하지만 수용소 안의 세계는 밀림이 작동하는 법칙보다 훨씬 더 추악하고 추잡스럽다. 왜냐하면, 자연의 밀림이 다른 개체들이 각자 가진 순수한 힘의 크기에 의해서 작동한다면, 수용소의 밀림은 사회주의라는 외적인 체제가 힘의 크기를 조작해서 강제로 정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외적인 힘은 정오를 단 한마디에 오후 한 시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힘이 세다.


“모든 선조들이 그렇게 알고 있었어. 해가 가장 높이 떠 있을 때가 정오라는 것을 말이야.”

“그건 그 사람들의 이야기야! 법령이 있은 다음부터는 오후 한 시가 되었을 때, 해가 가장 높이 떠 있단 말이야.”

“아니, 그따위 법령을 누가 만들었단 말이야?”

“소비에트 정부지!” -80p-


사회주의기 때문에, 사회주의에서만, 이 법칙이 작용한다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회주의건 민주주의건 할 것 없이, 외부적인 요소로 말미암아 힘의 균형이 무너진 밀림 속에 인간이 생존하고 있다면, 어떤 체제 할 것 없이 그들 중 절대 우위에 서 있는 자들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본능적인 결과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수용소를 이러한 본능이 표출되는 공간으로 삼아, ‘어떻게’보다는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답인 사실주의 기법을 토대로, 절대적 힘을 가진 무리(수용소 간부들)에 착취당하는 죄 없는 범죄자들의 이야기로서 그려내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야기 속 등장인물 가운데서는 개인적으로는 반장 추린이 현대사회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역량과 리더십은 물론이거니와 현실을 뒤집을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로비력까지 가지고 있는 모습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용소 생활을 겪었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분신은 슈호프(=이반 데니소비치)인 것처럼 보인다. 소설 속 슈호프는 구속되고 착취당하는 환경 속에서도, 그 제한된 욕구를 채우려고 노력함으로써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영리하면서 정신력이 강한 남자였다. 

 

강한 남자 슈호프는 그와 대조적이었던 금권력과 로비를 상징하는 체자리의 방식에 일찌감치 한계가 찾아올 것이라 예감한다. 그는 자신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체득했고, 그 방법은 책의 시작에서부터 차례대로 공개된다.


그 효율적인 방법이 가장 잘 먹혀들었던 날이 바로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그 하루. 1951년의 어느 겨울날이었고, 가장 운수 좋은 날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 책이 운수 좋은 단 하루를 기록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10년 3일의 기록과도 같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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