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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그가 천연재료를 정성스레 손질하고 맛깔나게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래. 이런 맛이라면 그의 또 다른 철학집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도 읽을만하겠어. 라고 생각하여 검색에 들어갔더니. 웬걸. <철학의 위안>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의 개정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 이 책의 원서제목도 그러하고 철학으로 절망에 빠진 이들을 계몽시키려는 목적이 다분한 책인데, 그런 목적도 목적이지만 그보다는 이 책은 저자 알랭 드 보통의 사상적 뿌리에 대한 고찰로 이뤄진 결과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으며, 따라서 알랭 드 보통을 이해하는데 가장 도움이 될 책인 것 같았다.
3. 철학으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자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던 <철학을 권하다>와 <철학의 위안>을 간단히 비교해봤을 때도. 전자가 수업을 하는 방식을 사용하여 다양한 가르침을 전달하면, 자발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배울 수 있는. 음식점으로 따지면 다소 뷔페식이라면, 후자는 족집게로 소문난 명강사의 강의 같은. 훌륭한 맛으로 정평이 난 곳의 요리사가 만들어낸 김치찌개 같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4. <철학의 위안>에서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가르침은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벌어지는 사건에 자연스럽게 대처하기 위한. 즉, 회복탄력성을 증대시키려는 방편이기도 하다.
5.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 이것은 우리를 위해 준비한 재료들이다. 이 재료들의 껍질을 벗겨 내고, 썩었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고, 잘게 썬 다음 예쁜 그릇에 담아 우리에게 보여준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던 사상의 핵심을 비교적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알려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재료들의 쉽게 섞이지 않는 고유한 물리적 특성 때문에 각각의 모양새를 유지하기에 책 여러 권을 읽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이러한 이질감을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가진 존재들을 위로한다는 컨셉으로 요리를 시작했지만, 읽는 독자가 책과 같이 다양한 문제에 대해 같은 비율로 고민하진 않기 때문에 느껴지는 맛에는 개인차가 있다.
특히, 세네카의 순명과 니체의 초인의 맛을 함께 느낄 수는 있지만 부드러운 맛과 톡 쏘는 맛 중에 어느 맛이 내 입에 착 달라붙는지 판단을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세네카의 맛은 기대치를 아래로 내려서 고통을 덜 받을 수 있는 위안의 방법을 건네지만, 니체의 맛은 내가 기대한 대로, 원하는 대로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그에 수반하는 고통을 필요하고, 당연히 고통스러워야 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6. 책을 읽으면서 여러 생각을 해봤지만, 개인적으로는 니체의 채찍질이 가장 와 닿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기대치를 낮추는 방법들은 예전에 읽은 <행복의 정복>이나 <불안>에서 접했었고, 그런 가르침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니체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지금껏 실행해왔던 점진적 발전모델에서 나태함을 발견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다고 위로했던, 그런 기분에서 야기하는 불안감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애써 담담했었던 그 이유와 맞닥뜨렸다.
그래서 지금껏 니체의 말과 같은 맥락인. 우리 시대의 화두인 "아프니까 청춘",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말에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참 죄송스럽다. 이제 와서 니체니까 와 닿았고, 난도라서 난도질했다고 고백하기가.
나는 초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오직 단 한 분야에서는 초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방향의 재설정에 <철학의 위안>이 상당한 도움을 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