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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 - 2013년 제44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이승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아마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느끼겠지만, 이 작가의 문체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그의 문체에서는 모호함을 느낄 수 있다. 안 좋게 말하면 우유부단하다고 할까. 이걸 한다고 해서 꼭 이것 때문에 그것을 하는 게 아니라는 식의 어투. 한 번 정도는 거부감이 생길 법한 문장들이었다.
어떤 문장이냐면 대표적으로 129페이지의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얼굴이 아무렇지 않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지은 표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아도 짓는 표정이지만 아무렇지 않지 않아도 지을 수밖에 없는 표정이었다.” 와 같은 문장이다.
문제는 이런 형태의 문장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장들을 읽으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썼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 보았고, ‘그래. 모든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없겠지.’ 라고 순응해버렸다. 어쨌든 나는 이 문장을 <일상에서 철학하기>의 불규칙한 규칙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2. 혹자는 이 책을 두고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과 유사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좁은문>과 비슷한 점은 기독교를 다루었다는 것과 좁은문의 상징이 고행을 뜻한다는 정도였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달랐던 것 같다.
<좁은문>이 좁은문을 통과하기 위한. 순수한 형태를 가진. 종교에 필연적으로 수반된 엄격함이 불러오는 모순에 대해서 말한다면, <지상의 노래>는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종교의 좁은문 앞으로 갈 수밖에 없는. 다시 말해 최후의 안식처라는 개념으로 종교를 다룬다.
조금 더 덧붙여 말하자면 종교는 갖은 불행을 떠안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불행이 초월자의 의지. 도저히 우리가 읽어낼 수 없는 존재가 우리에게 부여한 성질이라는 허무맹랑한 소리처럼 개인의 고통을 망각하기 위해 더 높은 차원의 세계를 제시한다.
3. 현실의 부조리 때문에 주인공들이 좁은문으로 향할 수밖에 없고, 그곳의 고행이 현실에서 겪는 아픔보다 차라리 낫다. 왜냐하면, 이 고통은 성경의 이야기와 동일시함으로써 절대자와 같은 길을 걷는 존재라는 감정을 맛볼 수 있고, 그 말씀을 암송하고 옮겨적음으로써 위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씨. 그리고 전씨의 독재 권력이 초래한 부패한 현실은 수도원의 형제들을 좁은 방에 몰아넣고 단단히 입구를 봉쇄해버림으로써 가장 적나라하고 강렬하게 그 모습을 드러난다.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사랑을 서술했을 때도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취했다가 그 다음 날 바로 버렸고, 모든 것이 그들을 배신했다.
이러한 부패와 배신이 주인공에게 끼친 영향은 지워지지 않는 꿈속의 피묻은 손바닥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났고. 이것은 90페이지에 나왔고 315페이지에 다시금 나왔다. 이러한 순환 어법은 그의 말마따나 혼란과 위급함을 강조했고, 설득력을 부여했다.
4. 따라서 <지상의 노래>를 의미하는 천산수도원의 벽서는 교회사 강사가 내놓은 처음의 해석(권위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들어진 예술작품) 따위가 아니라 현실의 부패가 초래한. 그 탓에 주인공들이 마지막으로 발걸음을 옮긴 그곳.
현세의 기준으로는 막다른 공간인 그곳에서 다른 세계에서의 탈출로를 가슴에 품고 형제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새긴 망자의 노래였다. 권위와 아름다움과는 전혀 상관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