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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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릇, 소설에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실려있는 경우가 많다. 부코스키도 그랬고. 솔제니친도 그랬고. 황석영, 현기영의 소설도 그랬다. 그 외 무수히 많은 이들의 소설에서 자전적 요소와 그를 통한 삶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서 조각배 한 에 의지하여 거대한 청새치. 그리고 상어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 산티아고와 헤밍웨이를 같은 사람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헌데. 아널드 새뮤얼슨이 만난 시기의 헤밍웨이는 가난한 노인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그는 매우 성공한 작가였고, 그로 인하여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헤밍웨이의 지인 로페스 멘데스의 말처럼 그는 의리와 열정이 넘치는 사나이었다.


166. "무얼 하든 절대 두뇌노동자는 되지 말게. 사나이가 되어야 해! 항상 그걸 명심하게. 그게 내가 어니스트를 좋아하는 이유고, 어니스트가 날 좋아하는 이유라네, 항상 그걸 명심하게, 절대 두뇌 노동자가 돼서는 안 돼. 그건 자네한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야. 사나이가 되어야 해!"

 

 

 

열정적인 사나이 헤밍웨이는 매년 여름이 찾아오면 글작업을 하던 키웨스트를 떠나 쿠바의 이바나로 향했다. 자신의 보트 필라호를 타고, 몇 명의 사람을 고용하거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몇 달 동안 청새치 사냥에 나섰다.

낚싯대와 보트에 의지하여 청새치와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청새치의 피맛을 보고 달려드는 상어를 가차없이 쓰러트리는 모습. 손가락이 베여 손이 퉁퉁 부어도 붕대를 감고 매일같이 낚시를 나가는 모습. 이 모든 것이 헤밍웨이를 사나이로 묘사하는 서사처럼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노인과 바다>의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의 문장에 담긴 의미가 헤밍웨이가 이바나에서 낚시를 하는 시간 동안 주의를 둘러 보고, 실제로 겪었고, 성찰했던 삶의 교훈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2.

사나이 헤밍웨이가 필라호를 타고 청새치를 낚으러 나섰던 시간 가운데 1년 동안을 아널드 새뮤얼슨은 함께했다. 그는 헤밍웨이가 쓴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를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키웨스트로 향했던다고 고백한다. 의리가 넘치는 헤밍웨이는 그런 아널드를 매정하게 돌려보내지 않았고,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중 일부를 옮겨본다.


30.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 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쓸 말이 바닥 날 때까지 버티지 않도록 하게. 글이 술술 풀려 얘기가 재미있는 지점에 이르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면 바로 그때 멈춰야 하네, 그러고는 원고를 그냥 놔두고 생각을 끄게나. 나머지는 자네의 잠재의식한테 맡겨둬. 다음날 아침 잠을 푹 자서 기분이 상쾌해지거든 그 전날 쓰던 것을 다시 쓰도록 하게. 그럼 그 재미있는 지점에 다다를 거고 또 다음 장면이 예측되겠지. 그 지점에서 계속 전진해. 그러다가 또다른 재미의 정점에서 멈추는 거야. 그런 식으로 써나가면 탈고했을 때 자네의 글은 재미있는 부분들로 가득할 것이고, 장편을 쓸 때도 절대 막히는 일 없이 얘기를 재미있게 꾸려갈 수 있다네."


32. "글을 쓰는 데에 기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낙담하지 말게. 원래 그런 거야.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시작 부분을 적어도 쉰 번은 다시 썼다네. 철저하게 손을 보아야 해.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자네는 온통 흥분되겠지만 독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해.


32. "모르는 건 쓸 수 없어. 순전히 상상에 의존하는 건 시야. 공간과 인물들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얘기가 진공 속에서 벌어지게 되지. 창작은 써가면서 하는 걸세. 그 날의 글쓰기를 끝낼 즈음에는 그다음 이야기가 어찌 펼쳐질지 알겠지만 그 이야기 다음에 벌어질 일까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네."


33.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83.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신문 잡지의 취향에 맞게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제대로 쓰고 싶다면 어떤 잡지에 보내건 간에 이야기를 거기 입맛에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해. 난 이야기를 탈고할 때까지 출판에 대해선 일절 생각하지 않아..이야기는 정확히 자기가 마땅히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쓰는 거지 출판사 편집자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게 아니야.


87.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러고는 매일 연습하는 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 거야.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자네들이 매일같이 글쓰기 연습을 하겠다면 쓴 걸 훑어보고 잘못된 걸 말해 주지."


314. 최상의 글쓰기는 절대 바뀌지 않아.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에서 들은 말 중에서 필요한 어휘를 고르게. 그것들은 수세기의 검증을 거친 말들이야.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  (중략) 글이 나아질수록 더 힘겨워져. 자네에게 필요한 건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거야.


만약,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헤밍웨이의 삶의 정수가 담긴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 없을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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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 평범에서 비범으로
게리 클라인 지음, 김창준 옮김 / 알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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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이도 : ★


1. 통찰


언제 어느 때라도 붙잡고 싶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항상 내 곁에 존재할 것만 같은 것이다. 1등 당첨된 로또를 기다리는 것 같은 느낌이고,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며, 노아의 방주가 나를 구해주러 올 것 같은 기대감이다. 그것이 바로 통찰이라는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 될 수도 있고, 모르는 것이 약이 될 수도 있는 완벽한 아이러니. 두 극단 사이에서 통찰의 발견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 또한 자신이 발견한 통찰이 진정한 통찰인지. 아니면 자신을 안심시키게 하는 거짓 통찰인지를 판가름하는 것도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2. 통찰보다는 몰입


기다림과 지루함을 견디면서 내린 결론은 게리 클라인이 설명하는 통찰을 높이는 방법. (실수를 줄이면서, 통찰이 발견되는 조건인 정상적인 상황에서 모순을 발견하거나, 자신이 아는 지식 범위 내에서 연결고리를 찾거나, 혹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을 이루어내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법을 통해 자신을 해결하고 싶은 시스템 속에 완전히 동화시킨 다음 그 안에서 해결책을 발견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난이도의 임무를 수행하거나. 경험을 넓히는 것이 훨씬 더 보람 있고, 행복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3. 이 책은


이 책을 읽었다고 통찰이 저절로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손에 잡힐 것 같은 통찰을 수확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저 통찰이 발동한 사건을 정리해서 통찰이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어떤 공식을 만들기 위한 목적을 둔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통찰이 발견되는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진 상황(공식이 있더라도)에서도, 그것이 실제로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통찰의 현실화를 가로막는 것은 실수를 줄이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는 조직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고정 관념을 신봉하는 정상 과학자들이 될 수도 있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하는 자기검열의 늪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모르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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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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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못 본 척 지나칠 수 없는 제목


샤를 단치라는 프랑스 비평가가 펴낸 책의 제목은 두 번에 걸쳐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지난 해 이맘때 읽은 책이 <왜 책을 읽는가?>, 그리고 이번에 읽게 된 책의 제목은 무려 <걸작에 관하여>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이 형님의 글은 친절한 편은 아니다. 뭐랄까. 발췌해서 옮겨두고 싶은 구절은 꽤 있지만, 그 구절이 오래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 그것보다 더 문제는 어떤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접어들었을 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그냥 휙 하고 지나가는 점(아마 해당 책을 직접 읽었다면 언급하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만)은 이 형님의 생각은 책이라는 공간에 완전히 옮겨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차라리 TV강연에서 만났으면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을 기대할 수 있으러냐? 싶은 생각도 들고...


224. 걸작 : 남성명사. 문학에서 걸작은 고유의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에 따라 평가할 수 있는 예외적인 책이다. 인물을 가장 대담하게 표현한 걸작은 모두 독창적이다. 걸작이 되는 주제, 걸작이 되는 형식은 없다. 걸작은 인류를 더욱 열정적이게 하는 창작물이다. 이 단어는 '위대한 작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


이 책은 224페이지에 적힌 이 사전적 정의를 빙자한 단치 형님의 정의로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2. 부유하는 생각들..


사실 썩 만족스럽지 못한 독서에 흥미를 잃어감과 동시에 책이라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세상에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부작용을 2015년에 읽은 어려운 책들이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럼에도 인생의 핵심이 될만한 무언가를 낚기 위해서 끊임없이 낚싯대를 던지고 허탕을 치고 그렇게 반복하는 재미가 '책'이라는 것에 있는 듯 하다. 특히, 소화하기 버거운 책들에...


너무 어려운 작품을 걸작이라는 소리만 듣고 덤비지는 않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다. <걸작에 관하여>에서도 살짝 언급하는 바대로 <율리시스>나 <피네간의 경야>와 같이 그저 읽는 것에 도전하는 작품이 있는데, 이러한 작품이 걸작의 요소는 아니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읽는 것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3. 결론, 걸작은 당신의 판단에 맡긴다.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는 문장에 녹아있는 실존적인 가치관처럼 우리가 만나게 되는 작품이 걸작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되는 가장 합리적인 기준은 개인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읽기 전부터 미리 걸작을 저정해놓고 왜 걸작인지 따지며 읽는 행위, 그리고 어떤 작품에 대하여 철학적, 비평적 기준을 끌어와서 분석하는 행위를 하지 말고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읽고 느꼈으면 하는 것이 <걸작에 관하여>가 말하고자 하는 큰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4. 꼼꼼히 정리해가면서 파악해야 할 책!

너무 늘어지기 전에 다음 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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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탄생 - 소설이 끝내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
이재은 지음 / 강단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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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하고 싶은 이야기 Vs 듣고 싶은 이야기


<명작의 탄생>의 인터뷰에 응한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가 분명히 있었다. 작가라는 직업군에 몸담고 있는 사람 뿐일까? 모든 이들이 쓰는 글에는 분명 어떤 의도가 담겨 있다. 단지 보통 사람은 그 의도가 매우 직접적이라는 것 정도랄까? 그러고보면 소설이라는 것은 어쩌면 나의 생각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포장하기 위한 기술일지도 모를 일이다.


가령 <은교>의 작가 박범신 형님178. 죽음으로 내몰리는 노시인이 그것에 얼마나 통렬하게 반역하는가라는 메시지가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작가 이문열 형님133.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던 사람이 다른 집단에 편입해 들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 134. 권력과 지식인의 문제를 아이들의 교실을 통해서 다루고 있는 알레고리 소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대중은 <은교>의 이적요 노인을 보면서 늙어서도 시들지 않는 남성의 성대한 욕망을 읽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면서 왕따 문제의 심각성를 읽는다. 이러한 작가와 독자 간의 간극은 개인적으로는 통일되지 않아도 된다(작가의 손을 떠난 책이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생각을 제약할 수 없다. 돈 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그 시절에 범람했던 기사문학을 풍자하려고 썼는데, 사람들을 오히려 그 우스꽝스러운 인물에 매료되었듯이) 생각하는 입장이지만,  최소한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알게 된다면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독서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터뷰집 <명작의 탄생>은 지금까지는 텍스트와 독자와의 아주 좁은 면적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그들의 세계를 읽어왔던 보통의 상황과는 달리. 작품을 읽기 전에 열아홉 작품을 쓴 사람을 먼저 만나게되었고, 그것을 통하여 텍스트의 해석이 아니라 인간의 의도에 귀를 기울여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이재은 누님이 주목한 특정한 작품에 관련한 이야기와 더불어 작가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읽은 사람으로서의 궁금증과 쓴 사람으로서의 대답이 공존한다. 더 나아가서 작가마다 소설이라는 것은 무엇이다. 라는 부분까지 같이 고민해보고,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어떠한 소설을 쓸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도 들어본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의 인터뷰는 앞으로 읽게 될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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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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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중요한 것. 내면의 눈이 가리키는 현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꼬르따사르 형님의 작품은 다름을 말하는 작품이라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는 순간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한 단계 진보한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세상의 모순과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그려낸다. 그런데 꼬르따사르 형님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근원적인 차원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꼬르따사르의 세계에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개개인의 현실감각만이 강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마치 잔향이 긴 향수같다고나 할까? 


163,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침대 정리는 그저 침대 정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악수는 언제나 같은 악수라고 생각하며, 정어리 통조림 한개를 따는 것은 그와 동일한 정어리 통조림을 무수히 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꼬르따사르 형님이 제기한 163페이지의 의문은 작가가 품은 세계에 대한 의문이다. 단편집 <드러누운 밤>은 그것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담은 작품이다. 해결하는 방식은 시를 쓰는 방식과 유사하다. 


예를 들면, 그의 단편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의 22. 어떤 여자가 자기 아파트에 세심한 질서를 수립해놓았는데,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어질럽히기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라는 어려움에 직면하여 주인공이 받는 부담감을 토끼를 토해내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이 그러했다. 남과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빚어지는 흔적들의 당위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개인의 내면속의 다양한 얼굴로 자리하고 있는 현실감각. 이 감각은 내 주변을 둘러싼 의식이 나를 변형시켜 또 다른 현실을 만들어내는. 인식론적인 측면에서의 추상적인 현실이다. 이 현실에 들어서면 우리는 그의 말처럼 모든 행위에 의미가 부여됨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자의적인 의도이건 무의식적인 의도건 간에 어떤 행위. 그리고 물체에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쉽게 말해서, 각각의 사람들의 의식에는 물체 A는 A와 같은 A (A=A)가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물체 A는 A에 묻은 어마어마하게 함축된 경험과 지식을 포함한  각기 다른 A를 말하는 것이다. (A = (개인의 기억과 경험을 품은A))


145. 미첼은 사진사의 작업이란 주관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사진기가 은근히 요구하는 방법으로 세상을 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146. 보는 것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무작정 내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냄새라든가...(미쳇은 걸핏하면 옆길로 빠지므로 마음대로 말하게 해서는 안된다.) 아무튼 거짓이라는 예감이 들면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마도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중에서 잘 선택해서 사물의 외피를 벗기면 충분할 것이다. 


151. 사진기를 들고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는 척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드러내는 몸짓을 포착할 것이라고 믿었다. 연속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시간을 분절하면 고착된 이지미로 나타나는 삶을 포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처럼 개인적인 A는 우리의 눈을 거쳐가는 모든 것들. 예를 들면 단편 <악마의 침>에서 사진사의 눈이 되는 사진기를 통해서도 매우 주관적으로 표현되고 해석된다. 그것은 아주 커다란 틀에서 보면 거짓일지도 모르나 한 개인이 느끼기에는 진실로 느낄만한 감정들. 그것으로부터 진실과 거짓 중에 무엇이 우리와 가까운지 생각해보기를 위의 세 단락으로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중단편 <추적자>의 창작자 조니와 평론가 브루노가 내면에서 몸부림치는 것은 새로운 창조와 그것을 해석하는 작업. 그리고 대중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포함된 예술작품에게 숙명적으로 부여되는 모든 현상을 함축한 이야기였다.


265. 나(조니)는 무엇을 생각해본 적이 없어. 전에 생각한 것을 문득 의식할 뿐이야. 신기한 일은 아니야, 그렇지? 자기가 생각한 것을 의식하게 됐다고 신기하게 여길 사람이 있겠어? 자네나 혹은 다른 사람이 생각한 거나 다를 바 없으니까 말이야. 나는 내가 아니야. 단지 내가 생각한 것에서 쓸만한 것을 끄집어낼 뿐이지. 그것도 항상 때늦게 말이야. 이제 내가 견딜 수 없는 일이야. 그래, 어려워, 아주 어려운 거야... 벌써 바닥났어? 


276. 나(브루노)는 재즈 비평가이며, 과민하다 싶을 정도로 나 자신의 한계를 잘 아는 사람이다. 내 사고는 저 불쌍한 조니가 밑도 끝도 없는 말과 한숨을 느닷없는 분노와 흐느낌으로 뛰어넘고자 하는 것보다 한 차원 아래다. 


그가 선두에 서서 쎅소폰을 연주하면, 나는 마지막에 가서 뒷북이나 쳐주며 살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그가 입이라면 나는 귀다. 그가 입이고 내가 뭣이라는 표현보다는 낫기에 하는 말이지만... 그래, 비평은 그가 씹는 쾌락을 느끼며 맛있게 먹은 것의 서글픈 종장이다.  


297. 빵은 고체야. 부정할 수 없지. 색깔도 예쁘고 냄새도 좋아, 그 빵은 내가 아닌 무엇, 다른 무엇, 내 외부에 있는 무엇이야. 그런데 내가 빵을 만지면, 손을 뻗어 빵을 쥐면 그때는 무언가가 변해, 그렇지 않아? 빵은 내 외부에 있지만 손가락으로 만지면 느껴져. 세계라는 것이 느껴져. 그런데 내가 빵을 만지고 느낄 수 있다면, 빵이 다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 자네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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