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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작가 수업 - 키웨스트와 아바나에서의 일 년
아널드 새뮤얼슨 지음, 백정국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1.
무릇, 소설에는 자전적인 이야기가 실려있는 경우가 많다. 부코스키도 그랬고. 솔제니친도 그랬고. 황석영, 현기영의 소설도 그랬다. 그 외 무수히 많은 이들의 소설에서 자전적 요소와 그를 통한 삶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망망대해 한 가운데에서 조각배 한 척에 의지하여 거대한 청새치. 그리고 상어와 사투를 벌이던 노인 산티아고와 헤밍웨이를 같은 사람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헌데. 아널드 새뮤얼슨이 만난 시기의 헤밍웨이는 가난한 노인의 이미지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그는 매우 성공한 작가였고, 그로 인하여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헤밍웨이의 지인 로페스 멘데스의 말처럼 그는 의리와 열정이 넘치는 사나이었다.
166. "무얼 하든 절대 두뇌노동자는 되지 말게. 사나이가 되어야 해! 항상 그걸 명심하게. 그게 내가 어니스트를 좋아하는 이유고, 어니스트가 날 좋아하는 이유라네, 항상 그걸 명심하게, 절대 두뇌 노동자가 돼서는 안 돼. 그건 자네한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사태야. 사나이가 되어야 해!"
열정적인 사나이 헤밍웨이는 매년 여름이 찾아오면 글작업을 하던 키웨스트를 떠나 쿠바의 이바나로 향했다. 자신의 보트 필라호를 타고, 몇 명의 사람을 고용하거나,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몇 달 동안 청새치 사냥에 나섰다.
낚싯대와 보트에 의지하여 청새치와 힘겨루기를 하는 장면. 청새치의 피맛을 보고 달려드는 상어를 가차없이 쓰러트리는 모습. 손가락이 베여 손이 퉁퉁 부어도 붕대를 감고 매일같이 낚시를 나가는 모습. 이 모든 것이 헤밍웨이를 사나이로 묘사하는 서사처럼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노인과 바다>의 "사람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사람은 박살이 나서 죽을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를 당하진 않아."의 문장에 담긴 의미가 헤밍웨이가 이바나에서 낚시를 하는 시간 동안 주의를 둘러 보고, 실제로 겪었고, 성찰했던 삶의 교훈과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2.
사나이 헤밍웨이가 필라호를 타고 청새치를 낚으러 나섰던 시간 가운데 1년 동안을 아널드 새뮤얼슨은 함께했다. 그는 헤밍웨이가 쓴 소설을 읽고 감명을 받아 그를 배우고 싶어서 무작정 키웨스트로 향했던다고 고백한다. 의리가 넘치는 헤밍웨이는 그런 아널드를 매정하게 돌려보내지 않았고,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 중 일부를 옮겨본다.
30. "글쓰기에서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걸세. 절대 샘이 마를 때까지 자기를 펌프질 해서는 안 돼. 내일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하네. 멈춰야 하는 시점을 아는 게 핵심이야. 쓸 말이 바닥 날 때까지 버티지 않도록 하게. 글이 술술 풀려 얘기가 재미있는 지점에 이르고 그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이 오면 바로 그때 멈춰야 하네, 그러고는 원고를 그냥 놔두고 생각을 끄게나. 나머지는 자네의 잠재의식한테 맡겨둬. 다음날 아침 잠을 푹 자서 기분이 상쾌해지거든 그 전날 쓰던 것을 다시 쓰도록 하게. 그럼 그 재미있는 지점에 다다를 거고 또 다음 장면이 예측되겠지. 그 지점에서 계속 전진해. 그러다가 또다른 재미의 정점에서 멈추는 거야. 그런 식으로 써나가면 탈고했을 때 자네의 글은 재미있는 부분들로 가득할 것이고, 장편을 쓸 때도 절대 막히는 일 없이 얘기를 재미있게 꾸려갈 수 있다네."
32. "글을 쓰는 데에 기계적인 부분이 많다고 낙담하지 말게. 원래 그런 거야. 누구도 벗어날 수 없어. <무기여 잘 있거라>의 시작 부분을 적어도 쉰 번은 다시 썼다네. 철저하게 손을 보아야 해.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어. 처음 쓰기 시작할 때 자네는 온통 흥분되겠지만 독자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해.
32. "모르는 건 쓸 수 없어. 순전히 상상에 의존하는 건 시야. 공간과 인물들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네, 그러지 않으면 얘기가 진공 속에서 벌어지게 되지. 창작은 써가면서 하는 걸세. 그 날의 글쓰기를 끝낼 즈음에는 그다음 이야기가 어찌 펼쳐질지 알겠지만 그 이야기 다음에 벌어질 일까진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야기가 어찌 끝날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네."
33. "절대로 살아 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게, 그들이 훌륭한 작가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으니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죽은 작가들과 겨루게. 그들을 따돌릴 수 있다면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해.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 자네의 얘깃거리가 누가 이미 다룬 것이라면 그보다 더 잘 쓰지 않는 한 자네의 이야기는 초라할 뿐이야. 어떤 예술에서고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뭐든 훔쳐도 괜찮아. 단, 언제나 아래가 아니라 위를 지향해야 해, 그리고 남을 흉내내지 말게, 문체란 말이야, 작가가 어떤 사실을 진술할 때 드러나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어색함이라네. 자기만의 문체가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남들처럼 쓰려고 한다면 자기만의 어색함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어색함도 아울러 갖게 돼."
83.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신문 잡지의 취향에 맞게 쓸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제대로 쓰고 싶다면 어떤 잡지에 보내건 간에 이야기를 거기 입맛에 맞추는 일은 없어야 해. 난 이야기를 탈고할 때까지 출판에 대해선 일절 생각하지 않아..이야기는 정확히 자기가 마땅히 그렇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쓰는 거지 출판사 편집자가 원하는 대로 쓰는 게 아니야.
87. 어떻게 쓰는지 배우려거든 신문 잡지 쪽 글을 많이 써봐야 해, 머리를 유연하게 하고 언어를 지배하는 힘을 길러주거든. 그러고는 매일 연습하는 거야. 날마다 본 것을 독자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묘사해봐. 그러다보면 그게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일 거야. 플로베르가 모파상한테 그렇게 글쓰기를 가르쳤지. 뭐든 묘사해봐. 선착장에 서 있는 자동차. 만류나 거친 바다에 쏟아지는 스콜도 좋고, 감정을 집중하려고 노력해. 자네들이 매일같이 글쓰기 연습을 하겠다면 쓴 걸 훑어보고 잘못된 걸 말해 주지."
314. 최상의 글쓰기는 절대 바뀌지 않아.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에서 들은 말 중에서 필요한 어휘를 고르게. 그것들은 수세기의 검증을 거친 말들이야. 소박한 낱말이 언제나 최선이라네. (중략) 글이 나아질수록 더 힘겨워져. 자네에게 필요한 건 매일 조금씩 연습하는 거야.
만약,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헤밍웨이의 삶의 정수가 담긴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수 없을 것이다. 이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