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광처럼 내리꽂히는 통찰력 - 결정적 순간, 최고의 선택을 이끄는 직관의 기술
게랄드 트라우페터 지음, 노선정 옮김 / 살림Biz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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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모처럼 일요일이고 해서 밖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를 집안에 들여 놓았다. 그런데 이 녀석이 아침식사를 하려고 하니까 계속 옆에 붙어서 안 떨어지려고 하는 것이었다. 밥 먹는데는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오히려 개가 사람을 건드리고 있으니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놈의 강아지가 나를 귀찮게 하다니...

그러다가 강아지를 쫒아낼 좋은 생각이 반짝하고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짐볼을 개한테 굴리는 것이었다. 평소에 강아지가 자기보다 커다란 몸집을 가진 짐볼을 두려워한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기 때문에 나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강아지를 저 멀리 떼어놓고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직관은 무엇보다도 감각의 흐름속에서 어떤 패턴이나 모범 사례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그 감각들은 우리에게 작용해서 결정을 내리도록 강요한다. 그러한 패턴은 텔레파시나 혹은 다른 영적인 방법을 통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패턴의 대부분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습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얻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지식들이다. -162p-

그러고 보니 바로 이것이 어제 하루 종일 읽었던 <통찰력>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직관의 일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얻은 따끈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또한 바로 직관에 의한 행동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통찰력>의 저자인 게랄드 트라우페터는 우리가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게 되면서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것이므로 순간적인 판단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승패의 순간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역시 순간적인 판단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와 같은 순간적인 판단력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들은 항상 무의식적인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어떤 것을 표면적으로 학습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뇌가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것들이 위험한 순간이나 아니면 순간적인 판단을 요하는 순간에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의 말을 듣고 보니 아침에 내가 개한테 짐볼을 굴렸던 행동이 개가 그것을 무서워했던 과거의 경험을 무의식적으로 내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고, 그와 같은 행위가 벌어지는 메커니즘을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 직관의 힘을 믿으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서 2부까지의 내용들이 모두 뇌 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의 매커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매커니즘에 따르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우리들이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모든 것들이 뉴런의 돌기들을 통해서 전달되며, 끝부분의 시냅스들이 서로 이동하는 전기적인 현상을 통해서 전달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들이 직관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단순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정보의 결과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지막 3부가 이 책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었는데, 3부에서는 우리들이 학습한 직관들을 어떻게 하면 유용한 형태로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자는 창의성이라고 부르는 말을 직관력과의 동일선상에 놓고서는 직관력을 키우는 것이 곧,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낸 직관(창의력)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도록 하는 이성과의 조화를 이룰 수는 단계에 까지 올라설 수 있다면, 그는 성공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후회할 수 없는 가장 뛰어난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적인 주장을 한다. 

나는 이 책의 요청대로 직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지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어떤 이들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판단하는 것 같은 결과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것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축적된 지식으로 얻어졌다는 것을 인식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있는 책속의 말을 기억해야겠다.

"우리는 자신의 직관을 믿어도 좋은가?"
"어떤 상황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돈에 관련된 사항일 때는." -239p-
인상깊은 구절

매일 아침 나는 잠에서 깨어 직관이 내 안에서 창조해 내는 것들에 대해 감탄하곤 한다. 나는 직관과 함께 일하고, 직관을 확신한다. 직관은 나의 동반자다.

우리는 우리가 내린 선택들의 합이다. 다양한 섡택은 타인이나 직장, 그리고 국가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상황들과 함께 맞물려 우리의 이력을 만들어 낸다.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라는 조언은 우리를 완전한 오류로 인도할 수 있다. 두뇌 안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결정이라도 감정의 동요 없이는 내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선택결정이란 고도의 정신적 능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뇌 안의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시스템이 총체적으로 이용되어야만 한다. 

감정과p;가증한 경우들이 성공을 가져올지, 혹은 실패를 가져올지 그 결과를 미리 가늠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성없는 직관은 불행이다.

다른 사람이 얼마나 선한가 혹은 악한가, 아니면 그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를 알려면, 상대편의 표정을 가능한 한 똑같이 따라 하려고 노력하라. 그런 다음 그 표정과 조화를 이루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들이 내 사고나 마음에서 솟아날 때까지 기다려라.

창조적 발견은 세가지 요소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첫째, 기호와 규칙을 포함하는 문화가 있어야만 한다. 
둘째, 그 분야에 대해서라면 지구를 통틀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셋째, 혁신을 인정하고 검증해 줄 수 있는 전문가 집단이 있어야 한다. 

인간은 그의 무의식이 문제를 받아들이는 경우에 특히 더 창의적이 된다. 

우리는 각 분야의 선배로부터 한 회사의 흐름, 해당 분야의 규칙, 혹은 동료들의 사고방식에 관해 얻게되는 견해는 나중에 직관이 사용할 수 있는 기초 지식이 된다.

경험의 감소, 잦은 이직, 부족한 교육, 빠른 변화와 규정과 공식에 대한 고집스러운 믿은.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직관에 대한 격렬한 공격을 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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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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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힌 채 여드레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치욕스런 죽음을 당했다.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인물은 영조.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도대체 사도세자는 왜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서 죽임을 당해야 했는가? 도대체 세자가 무슨 잘못 저질렀기에 조선의 전성기를 마련했던 임금 중의 하나인 영조가 자기의 자식을 그렇게 잔혹하게 대해야만 했는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해 그의 아내였던 세자비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서는 어린 시절 완벽한 왕재로 만들어지고자 벌어진 영조의 엄격한 훈육방식 때문에 사도세자가 정신이상이 생겼다고 기술하고 있었다.


도교경전인 '옥추경' 을 읽은 후에, 갑자기 겁이 많아지기 시작하고 천둥과 번개를 매우 무서워해서,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여색을 탐하기 시작해서, 궁궐 안에 궁녀를 건드리기 시작해서 임신까지 시키기 시작했다. 비구니를 범하고, 비구니의 머리를 기르게 해서 궁 안까지 데려와 살게 했다. 정신착란 증세 때문에 내시를 죽이고, 자신이 사랑한 궁녀를 죽여서 모두 무서워 피했다. 아무도 몰래 평안도로 가니, 역적모의 의심까지 받게 된다.  -한중록 인용-


이와 같은 세자의 무수한 악행들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조선왕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아들을 해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서술하고 있었고, 오랜 시간동안 <한중록>은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해서 가장 유력한 정설로서 인정되어 왔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고백>을 저술한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의 이덕일 소장은 혜경궁 홍씨가의<한중록>이 그녀의 말년에 저술되어진 회고록 형식이었고, 당시의 승정원의 기록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을 뿐 아니라 왜곡된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면서 <한중록>이 그녀의 가문인 풍산 홍씨를 보호하기 위해서 작성된 지극히 변론적인 성격을 띤 글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진실을 파헤치는 작업으로 당시의 여러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사도세자의 죽음이 정신이상 때문이 아니라 정쟁의 결과였다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즉, 영조가 지지했던 정파와 사도세자가 지지했던 정파가 각기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는 것이 그의 죽음의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정치적 대립은 숙종이 계획적으로 환국(정권 물갈이식 교체)을 반복하게 된 결과, 신하들이 자신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한 방식으로 택군을 시작하게 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고, 경종에서 영조로 왕위전달 과정에서 일어난 강압적인 노론의 정치 압력 때문에 상처에서 고름이 맺혔으며, 그 결과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곪아 터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리고 부자간의 갈등이 망나니 아들 때문이라는 혜경궁 홍씨의 주장에 저자는 어린 시절의  세자의 언행들은 물론 그의 일생의 묘사를 통해 사실이 아니었음을 주장한다. 사도세자는 어린 시절부터 엄격한 훈육으로 인해 꾸중을 들었다는 내용과는 달리 상당히 비상한 인물이었고, 아버지의 물음에 막힘없이 대답하면서 영조를 기쁘게 했었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소학은 원량이 일찍이 읽은 것이니 나는 배운 것이 어떠한지 살펴보고 싶을 뿐이다. ‘입교’가 왜 먼저이며 ‘명륜’이 왜 다음이냐?”
“가르침을 받은[입교]후에 윤리를 밝힐 수 있으므로 입교를 먼저 배우는 것입니다.”


“‘가언’과 ‘선행’이 ‘계고’보다 뒤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동은 반드시 옛 것을 상고해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의 8조목 중 ‘격치’를 먼저 삼는 것은 무슨 까닭이냐?”
“사물의 이치를 밝히는 지식에 도달한 귀에야 세상을 다스리는 정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올바른 도덕적 견해를 펼치던 사도세자는 강경파 소론이 일으킨 ‘나주벽사사건’ 이후에 탕평책이 무너지고 그로 인한 노론의 득세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레 노론을 배척하는 경향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보이면서 노론에 위화감을 조성한다. 그 때문에 노론의 중심에 있던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 그러니까 사도세자의 장인이 되는 홍봉한을 위시한 노론 전체가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대비도 노론이었으며, 중전도 노론이었고, 최근에 영조가 얻게 된 첩도 노론이었으며, 그의 아내 혜경궁 홍씨 역시 가문을 중시하던 노론이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부자간의 이간질을 자행했으며, 그들의 행동은 점차 부자간의 단절을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나주벽사사건’ 이후 약해진 소론의 입지 위에서 세자는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없게 되자, 그는 정권 교체 이후 생겨날지도 모를 노론의 반발에 대비하기 위해서 관서지방으로 미행을 다니면서 세력들을 모집하고, 집안에 몰래 땅굴을 파고 무기고를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혜경궁 홍씨에 의해 홍봉한이 알게 되었고, 이것은 노론에게는 세자가 반란을 일으킨다는 구실을 삼기에 매우 적절한 먹잇감들이 되고야 말았다.

마침내, 장인 홍봉한을 위시한 노론은 나경언이라는 인물을 매수하여 그를 통해 세자의 비행을 알리는 ‘허물10조’를 왕에게 바치게 된다. 그곳에 적혀있는 내용은 불에 타서 현재는 알 수 없게 되었다고 했지만, 핵심은 세자가 정변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은 결국 나경언의 자백으로 세자의 무고함이 밝혀지게 되나, 영조가 세자를 포기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친모의 역모고변이 이어지자 영조는 부자간의 정치적 갈등 때문에 나라의 혼란이 지속되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세자를 내쳐버린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권력의 유지를 위해서 아들을 희생해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하였지만 세자가 듣지 않자 마침내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버린다.

영조는 가끔씩 세자를 옹호하는 발언을 일삼는 이들이 나오면 모조리 파옥시켰고, 결국 그를 살려달라고 비는 사람은 훗날 정조가 되는 사도세자의 아들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사도세자의 제거를 통해서 완승을 거둔 노론은 세자가 의지했던 조재호까지 제거하는데 성공. 마침내 노론 천하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또 하나의 마지막 장애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손 즉, 정조였다. 정조는 아버지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결코 섣불리 행동하지 않았고, 폐세자의 위험을 비롯한 수많은 위험이 있었으나 그의 어미니 혜경궁 홍씨가 그를 지지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여든이 훌쩍 넘어서 약해진 영조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면서 결국 정조는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정조는 즉위 당일 이렇게 선포한다.

“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말을 시작으로 대대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의 죽음에 관여했던 인물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의 아버지였던 즉, 외할아버지 홍봉한과 자신의 외가의 처벌에 대해서는 심한 갈등을 느낀다. 왜냐하면 처벌하자니 어머니를 울게 되고, 처벌안하자니 아버지가 울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차마 외할아버지를 살해할 수 없었던 정조는 그를 유배 보내는 선에서 마무리 짓고, 도처에 깔린 노론의 세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새로운 인재를 찾기 시작한다. 체제공을 시작으로 홍국영, 정약용등 오랜 시간동안 관직에서 벗어나있던 남인의 세력들을 그의 측근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규장각을 건립하여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재양성의 기틀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는 노론 명문가의 가옥이 즐비한 서울을 버리고 수원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지 위해서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고 정약용에게 화성건축을 명하지만, 정조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병을 얻어 생을 마무리하게 된다. 정조가 죽은 원인에 대해서 독살설까지 나돌고 있지만 확실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이 책에서는 경종, 영조, 사도세자, 정조에 이르기까지의 정치적인 싸움을 자세하게 기록해놓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권력이 부자간의 정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고, 또 다른 쪽에서는 권력이 가문의 권력유지를 위해서 부부간의 정을 버릴 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그리고 혜경궁 홍씨는 죽을 날이 가까워진 여든 나이에 이르러서도 끝까지 그녀의 가문의 허물을 보호하기 위해 그녀의 손자들에게 거짓을 알린다.

권력은 이렇게 천륜보다 우위에 있을 정도로 막강한 것이라는 사실을 사도세자의 죽음을 통한 역사에서 알 수 있게 되었다. 사도세자가 어린 시절 대답한 대로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동은 반드시 옛 것을 상고해야 알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지금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를 돌아 봤을 때, 오늘날에 벌어지는 당파간의 물고 물리는 싸움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밥그릇은 정해져있고 먹고 싶은 사람은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싸우고, 요즘은 그것을 뛰어넘어 밥그릇 하나만으로 부족해서 밥그릇 여러 그릇을 챙기기 위해서 매일매일 국회라는 전투장에서 결투를 치른다. 나는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러하리라 생각하게 만드는 씁쓸함을 안으면서 이 책의 마지막을 쓰다듬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분명 사도세자와 같은 답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우리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묵묵히 시민들을 위해서 자신의 한 인생을 바친 인물이 있었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끝까지 불의에 맞서고 인물이 있다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덧붙임. 다만 이 책에서 아쉬웠던 점은 어디까지가 인용한 자료이고 어디까지가 저자가 상상으로 만들어냈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고, 또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참고문헌이 존재하지 않아서 이것을 사견으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정설에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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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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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큰일 났어! 배가 무지막지하게 아파’


오! 이런. 이것은 우리의 주인공 오가와 준에게 갑자기 들려온 임신 중인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그가 아내 몰래 불륜을 저지르고 있던 상황에서 벌어졌고, 불륜을 끝낼 준비도 하지 못한 그에게 일종의 패닉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그는 지금 내연녀와 같이 있는 상태.


하지만 오가와는 대개의 못난 남편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부리나케 아내에게 달려갔고, 그가 내연녀보다 사랑하는 것은 아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고 있지만, 저자는 불륜을 저지르는 오가와를 곱게 놔주지 않았다.


그래서 오가와에게 닥친 고난은 생의 마지막과 같이 잔혹하다.


아내에게 가던 중 정신을 잃어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진 오가와, 그가 눈을 떴을 땐 비호감 3인방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 비호감 3인방은 갇혀있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혀 나갈 생각이 없는지 장난질만 치고 있고, 심심하다며 진실게임을 하면서 자기네들이 방화, 유괴, 강간을 했다고 스스럼없이 말해버린다.


그리고는 전혀 밝히고 싶지 않은 오가와의 이야기가 무엇이냐며 닦달한다. 그리고 오가와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불륜사실을 털어놓게 되는데……. 그리고 아내에게 용서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사라졌던 손목시계의 알람소리.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느낀 오가와. 과연 그 이후에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런 추리물의 서평을 쓰기는 참 어렵기만 하다. 자칫 잘못하면 스포일러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포일러는 이쯤에서!!! 마치고 서평을 보시는 분들이 직접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시길 바란다.


나는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프롤로그를 다시 펼쳐드는 순간 묘한 연관성에 다시 한 번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 책은 한마디로 주도면밀했다. 작가가 인물의 묘사로 사용된 각종 도구와 방법들이 전부다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니……. 비호감 3인방은 가끔씩 키킥 거리기도 했고, 호모 같은 웃음소리를 내기도 했는데, 나는 처음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독자들에게 그들의 비호감을 더 실감나게 묘사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그것 말고도 또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니…….


나는 책 전체에 걸쳐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불륜을 저지르게 되면 불행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권선징악적 요소도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대사와 행동이 주를 이루고 있는 인물묘사와 사건전개가 훨씬 더 맛이 있었다. 과연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이 책을 맛볼지 궁금하다.


당신에게 이 책은 무슨 맛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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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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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이라는 책과 그것을 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라는 인물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법정스님의 책을 통해서였다. 법정 스님의 저서 중에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스님께서는 소로우의 <월든>을 소개시켜주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 우리들에게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말고, 자신만의 삶을 살라고 충고해주셨다.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중의 한권이었던 무소유. 그 무소유 정신을 나에게 전수해 주신 분의 추천을 받은 책이라 나는 덮어놓고 먼저 구매버튼을 클릭했지만, 집에 도착한 책의 띠지를 벗기면 더욱 부각되는 고리타분한 느낌의 표지와 빽빽하게 담겨있는 글씨들은 나의 손에서 책을 뿌리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다.


그랬던 <월든>을 요즘 MB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을 지켜보면서 그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창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다. MB정부가 4대강 정비사업의 효과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나는 정부의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회복할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과 '4대강을 인간의 식수부족의 해결로 이용하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그는 정말로 인간에 의해서 개발되어, 인간의 의해서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들(강의 곳곳에 관문을 설치하고, 강의 주변에 콘크리트로 인간의 편의시설들을 만드는 것)로서 인간 생활의 편의만을 도모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월든을 집어 들었다.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바램과 동시에 이 책에 담긴 자연의 정취를 잔뜩 느끼기 위해서…….  


그런데 이 책……. 이상했다. 그는 분명히 자기가 살던 생활을 그대로를 그려냈을 터인데, 그것을 바라보는 나로서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신비로운 모습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그가 이야기하는 나무들의 이름, 물고기들의 이름, 식물들의 이름, 동물들의 이름들에서 나는 그 어떤 이미지도 생산해 낼 수 없었다. 나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내가 태어나고 자라왔던 도시. 그곳에세의 생활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 나에게 <월든>은 몽환적인 자연ㆍ사상 에세이에서 신기하고 독특한 SF에세이로 변해버렸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설악산이나 더 나아가서 백두산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정취를 맡아보고자 했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월든 호수와 그 주변의 정취는 현존하는 그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탄성을 자아내게 할 만한 것들이 되고야 말았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사각상자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밖을 나서게 될 때마다 시꺼먼 아스팔트와 인사를 나누는 우리네들의 모습. 그 모습에 익숙함을 느끼고 평생을 살아왔던 나에게는 이 책의 아름다움이 낯설게 느껴졌으며, 책장을 넘기기가 어려웠으며, 이런 나를 바라보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그 시대에 유행하고 있는 물리적인 개척정신의 끝을 예감하고, 스스로 자연의 한낱 미물이 되는 것이 오히려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것을 인지했으며, 그는 자연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그것에 대한 고뇌 섞인 성찰로서 자아의 개척과 완성을 이룰 수 있었다고 자랑섞인 말투로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무 외적인 것에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가? 겉을 꾸미면 전부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래서 자연 따위는 손보면 볼수록 인간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를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연을 통해서 인간도 역시 그것들과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그는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이 반복되는 일상. 그것에서 만물들이 꿈틀거리면서 자라나는 것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성장도 그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인간은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머리를 하고,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것에 부족해서 아예 얼굴을 고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월든>을 통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서 4대강 정비 사업이라는 것이 인간의 얼굴 뜯어고치기와 같은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연보호와 식수부족의 문제는 그것들을 새로 고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가 개발을 멈추고 동ㆍ식물들을 보살피고, 인간에게 주어진 과분한 것들을 절약하는 생활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월든>을 통해서 MB정부가 내세우는 정책인 갖다 붙이기로 만들어낸 단어라고 하는 ‘녹색 뉴딜정책’을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인상깊은 구절

여론, 즉 대중의 평가는 우리 자신에 의한 자체 평가에 비교해보면 대단한 폭군이 되지 못한다. 자기가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가 곧 그의 생애를 결정하든지, 아니면 최소한 그것에 대한 지표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철저하게 현재의 생활을 신봉하고 살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어."하고 우리는 말한다. 그러나 원의 중심에서 몇 개라도 반경을 그을 수 있듯이 길은 얼마든지 있다. 생각해보면 모든 변화는 기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기적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집을 마련하고 나서 농부는 그 집 때문에 더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실은 더 가난하게 되었는지 모르며, 그가 집을 소유한 것이 아니라 깁이 그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육체노동을 할 만큼은 깨어 있다. 하지만 백만 명 중 한 사람만이 효과적인 지적 활동을 할 만큼 깨어 있으며, 1억 명중 한 사람만이 시적인 또는 신적인 삶을 살 수 있을 만큼 깨어 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각자는 육체라고 불리는 신전의 건축가이다. 이 신전은 자기 나름대로의 양식에 의거해 건축되며 자기가 숭배하는 신에게 바쳐진다. 이 육체 대신 대리석 신전을 지음으로써 빠져나갈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이며, 우리 자신은 피와 살과 뼈를 작품의 재료로 쓴다. 어떤 사람의 내적 고귀성은 즉각적으로 그의 겉모습을 정교하게 만들기 시작하며, 비열함이나 관능은 그를 짐승처럼 추하게 보이도록 한다. 

자연은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으며 우리 인간이 묻는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자연은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던 것이다. 

인간이란 것이 얼었다가 녹고 있는 진흙의 덩어리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항상 현재에서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 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의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 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의 발에 의해 표가 나도록 되어 있다. 마음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어떤 사물에 부여하는 어떠한 표면도 진신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오직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 

샐비어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 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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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
마비쉬 룩사나 칸 지음, 이원 옮김 / 바오밥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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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1년 벌어진 9ㆍ11테러 이후 미국의 조지 W.부시 대통령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 그를 비호하던 반미 이슬람세력들에게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그 결과 부시정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세력을 축출하는데 성공. 그들에게 민주주의 정권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미군은 전쟁 후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테러조직들을 색출해서 잡아들였는데, 이때 테러리스트들을 가두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관타나모 수용소였다.




그러나 이 관타나모 수용소는 테러리스트의 감옥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용하여, 쿠바의 외딴 곳에 위치시킨 후, 미국 내의 범죄자들도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법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했다. 그 때문에 관타나모에 수용된 수많은 포로들에게 인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한 가혹행위들이 저질러졌고 이러한 부시정부의 반인권적 행위는 국제 사회에서 많은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법률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 수용소 내의 비인권적인 처우를 알게 된 아프가니스칸 이민 2세인 <나의 관타나모 다이어리>의 저자 마비쉬 룩사나 칸은 그들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인권단체인 <합법적 권리 센터>에 가입하여 관타나모 수감자들을 위해 자원봉사에 나서게 된다.




그녀는 오랜기간 동안 이어진 미국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여 마침내 테러리스트 수감자와의 면회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가 만난 테러리스트는 그녀의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으며, 그와의 대화를 통해 그가 아무런 혐의가 없는 소아과의사가 직업인 알리 샤 무소비라는 이름을 가진 평범한 아프가니스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소비는 어느 날 갑자기 붙잡혀왔고, 오랜 시간 동안 억류당했으며, 탈레반 정권에 가담했다는 누명을 덮어쓴 채 수많은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미국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했다.




“우리의 친구들도 우리의 적들도 저에게 벌을 주는군요. 총알이, 러시아제 총알이 아직도 제 목에 박혀있습니다. 그건 러시아인들이 준 선물이고 저는 러시아를 우리의 적이라고 간주합니다. 이 수갑과 죄수복은 우리의 친구인 당신네들이 준 것이구요.” -30p-




그녀는 자원봉사를 통해 많은 수감자들을 만났다. 두 번째 그녀가 만난 하지 누스랏 칸은  테러리스트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그 역시 탈레반의 무기를 숨겨두었다는 누명을 안고 관타나모 감옥 생활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가씨, 내 흰 수염을 보시오. 수염이 허연 노인네를 여기로 데려왔단 말이외다. 나는 아무 짓도 한 적이 없는데 말이오. 내 평생 미국인들에 대해 단 한 마디도 나쁘게 말한 적이 없는데 말이오.” -55p-




세 번째 만난 염소치기 타즈도 마찬가지였고, 네 번째 만난 사업가 왈리 모하메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만난 수감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그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던 여러 변호사들의 이야기들 통해 그녀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진실을 알게 된다.




“괴물이나 도깨비처럼 생긴 사람들만 악행을 저지른다고 여기는 건 순진한 생각입니다. 관타나모는 악 그 자체입니다. 관타나모는 기소도 하지 않고, 어떤 재판절차도 없이 단지 어렴풋한 혐의만으로 사람을 5년 이상이나 가둬두는 곳입니다.” 47p-




그리고 그녀는 죄없는 자들이 갇히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뿌린 현상금의 존재를 알게 된다.




“9ㆍ11 이후 벌어진 전쟁 와중에,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수천 장의 전단을 살포했다. 누구라도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조직원을 신고하면 5,000달러에서 25,000달러를 준다는 내용이었다. 2006년 아프가니스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00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그것은 로또 당첨이나 다름없었다.” -71p-




돈에 눈이 먼 아프가니스탄인 들은 자신의 이웃을 신고했다. 뿐만 아니라 이웃의 파키스탄 정부는 계획적으로 아프가니스탄 접경지대에 주둔. 이주하는 수많은 아프가니스탄인 들을 미국에 팔아넘긴다.




아무런 죄 없는 자신의 동족들이 처한 위험을 알게 된 그녀는 큰 결심을 한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 그들의 결백을 증명할 증거를 수집하기로 한 것이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향한 그곳에서 그녀는 미국에서 자라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자신의 뿌리를 발견하게 되지만, 그와 동시에 전쟁이 남기고간 잔혹한 모습과 아프가니스탄인 들의 미국에 대한 뼈저린 분노를 경험한다.




“평균적인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비참한 빈곤 속에 살고 있다. 그들에겐 놀이터고 보육시설도 깨끗한 옷도 없었다. 어린아이들이 내가 탄 차로 달려와 잔돈을 달라고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어떤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창문에 손이 닿지도 않았다.” -164p-




“미국인들은 더 이상 무엇을 원하는 겁니까? 그들은 우리를 죽였고 우리 아이들에게 끔찍한 기형을 안겨줬으며, 우리의 농장을 묘지로 바꿔놓고 우리의 가정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비행기가 날아와서 우리에게 총탄을 퍼부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잃을게 없습니다. 우리는 예전의 소련과 싸웠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과 싸울 겁니다.” -166p-




한편, 관타나모에 갇혀있던 수감자들의 저항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고, 그에 따라서 그들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미군의 행위는 더욱 잔혹해져만 갔다. 미군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수감자들을 선동하던 이들을 자살로 위장시킨 후, 수감자들의 부검에서 나타날만한 증거물들을 제거한 뒤 본국으로 시체를 송환시켰다.




관타나모의 처우에 저항했던 이들 중에는 탈레반과 우호적인 방송국의 기자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붙잡혀오게 된 알 하즈라는 인물도 있었다. 알 하즈는 자신이 수용소에서 단식투쟁으로 그들에게 저항했음을 알렸고, 단식을 막기 위해 관타나모의 미군들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세계에 폭로했다.




“단식 투쟁자들은 가장 악독한 가혹행위를 당했다. 그곳에서는 에어컨을 최대로 켠 채 아무런 경고도 없이 수감자들에게 고춧가루를 뿌렸고, 숨 돌릴 틈도 없이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경비병들이 훤하게 보는 가운데 타월로도 은밀한 부위를 못 가린 채 샤워를 해야 했다. 많은 수감자들이, 손가락을 자신들의 항문 속으로 반복해서 집어넣는 군인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 -210p-




결국 그녀가 아프가니스탄까지 달려가서 행한 열정적인 노력은 죄 없는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석방에 기여했다.그리고 전 세계인들에게 관타나모의 진실을 알리고 인권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변호사들과 알 하즈와 같은 투쟁자들의 노력은 마침내 부시정권을 밀어내는데 기여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관타나모 수용소의 잔혹한 행위를 인정하고 폐쇄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시정부. 그의 강경책 때문에 벌어진 9ㆍ11테러로 희생당한 수많은 미국인들과  ‘테러와의 전쟁’의 구호로 인해 평생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당한 관타나모의 갇혔던 죄 없는 수감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전쟁의 피해로 인해 가난에 허덕이는 많은 어린이들. 그리고 온전한 모습으로 태어나지 못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맛보지도 못하고 사라져간 수많은 영아들에게 부시정부의 어떤 사죄의 말도 그들에게 위로가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이 책을 보면서 인권을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이 얼마나 잔혹하며 많은 피해를 안겨주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이명박 정부는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돌진하던 미국의 극우보수가 관타나모를 통해서 세계시민에 어떤 피해를 끼쳤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국민을 상처 입히는, 올바른 소리를 한다고 붙잡아가는 만행을 지금이라도 사죄하고 즉각 멈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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