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론 - 백산신서 52
V.I.레닌 지음, 남상일 옮김 / 백산서당 / 198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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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요즘 비정규직법 개정에 따른 진통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나라당은 4년이라는 기간 동안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묶어 두려하고 했다가 2년 근무에 더하여 얼마간의 유예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고, 민주당은 2년이던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더 이상의 유예안을 두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민노당과 진보신당 쪽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원천적으로 철폐하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 법안이 끝나는 2009년 7월 1일.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개정 기습상정뉴스가 들려오는 한편, 오늘은 보수당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의 연합으로 유예안을 1년6개월로 잡고 그 후에 다시 논의한다는 법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체 이 쟁점을 왜 서평에 늘어놓는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이 법안과 레닌이 쓴 제국주의론 사이의 관계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한번 앞서 이야기해보았다.

레닌이 쓴 <제국주의론>의 원제목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이며,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면 더 이상 공정한 자유무역이 이루어 지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는지를 궁리하는 제국주의로 변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레닌은 <제국주의론>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 도달한 1900년대의 제국주의 국가(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들의 현상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로부터 제국주의가 점차적으로 독점이라는 한 점을 향해서 움직이며, 그 나라의 은행세력이 더 많은 이득을 위한 잉여자본수출활동을 벌이게 되며, 자본 수출로 벌어들인 이득으로 은행의 과두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며, 마침내 제국주의가 된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노동력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큰 자본을 만들 수 있을지를 읽는 능력이라는 그 사회의 특성에 관련한 의견을 주장했다.

돈의 위력과 함께 광활한 전 세계의 미개척지 앞에서 사람의 노동력은 제국을 만들기 위한 하찮은 것으로 전락해버린다는 레닌의 주장은 현재의 비정규직법이 인간의 노동력을 어떻게 하면 더 적은 지출로 착취해낼 수 있을지 골몰하여 나온 결과물인 동시에 매일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구호를 외치고 세계의 기업들과 경쟁을 펼쳐서 이기려고 하는 제국주의적 기업의 면모를 볼 수 있다.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발표하고 전 세계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우리들 자본주의 국가는 그들의 의견을 공산주의자의 헛소리라고 무시해왔다. 그 결과 레닌이 우려했던 제국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적인 결말을 일으켰으며, 그 후에 전쟁에 대한 금지조약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전 세계 기업 간의 전쟁을 통해 되살아났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불어 닥친 글로벌화에 대한 압력은 레닌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갈수록 관세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 자본의 공격에 대비해왔던 방어막은 무너지고 있으며, 도리어 그 자본과 힘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우리도 힘을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생산비를 절감해야만 하고, 생산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건비를 낮춰야만 한다는 기업의 결론. 즉,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생산비 절감이라는 압박에 직면한 기업들은 비정규직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각종 언론들도 이대로 비정규직법의 해결이 나지 않으면, 대량 실업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며 정치인들의 쟁점에 대한 봉합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의 바람대로 1년 6개월의 유예안을 통과시켰다고 치자. 하지만 그때가 되면 또 다시 이러한 악순환이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1년 6개월의 시간동안 이 법안은 해결된 것으로 간주되어 저 멀리 밀려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우리들은 미래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노동자와 기업과 정부 간의 싸움을 보게 될 것 같다. 그리고 이 싸움이 일어나게 된 가장 큰 원인에 대해 나는 레닌이 주장한 자본주의의 독점화에 따른 전 세계적인 ‘쩐의 전쟁’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광활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고통을 가장 먼저 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 기업을 이끌고 있는 대표자가 아니라 그들 밑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라는 인식이 계속될수록 그 싸움은 절대로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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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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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이요, 고사의 인용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서 구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는 진을 치는 것과 같다.


운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앞뒤의 조응이란 봉화요, 비유란 유격이요, 억양반복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228쪽. 소단적치인 1권에서 인용)


연암 박지원은 글을 병법에 비유했다. 글과 군대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소재를 가지고 그 둘 사이의 유사점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능력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글 솜씨는 우리의 선조였던 연암 박지원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그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을 보유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대문장가인 박지원에게 글쓰기를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면 어떤 것이 가문의 영광일까? 흥미롭게도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가문의 영광이 될 자격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 우리가 그러한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지문’이라는 한 남자와 우리를 동일시하여 우리가 ‘지문’이 되어 연암에게 직접 글쓰기를 배우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사실 이 책은 책의 서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인문실용소설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어떤 글쓰기 책들보다 가독성부분에서 상당히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허접스럽지 않는 소설구성과 사물의 묘사력은 제목에서 연암선생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거론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흐드러진 봄날이었다. 겨우내 집 안에만 갇혀 지냈던 더벅머리 아이들이 따스한 기운을 참지 못하고 골목으로 뛰어나왔다. 마을 뒤편으로 봉긋하게 솟은 언덕에서는 희고 검은 나비들이 새로 피어난 꽃들을 마음껏 희롱하는 중이었다. 개울에 둘러앉은 아낙네들은 수다를 방망이 삼아 빨래를 두드려댔으며, 제비들은 그 소란 속에서도 둥지를 만들 가지들을 쉴 새 없이 우듬지로 나르고 있었다.” (7쪽)

이렇듯 섬세한 문장력으로 가진 글쓴이에 의해 태어난 제자 ‘지문’과 스승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 에 대한 문답식 구성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리고 찬조출연 하신 박제가 선생의 말씀까지 듣고 있으면, 이 책에서 내가 과연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하여 크게 애쓰지 않고도 쉽게 체득할 수 있었다.

글쓰기 법칙 : 1. 푹 젖는 것이 귀하다.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70쪽)

연암선생은 지문에게 <논어>를 천천히 읽으라. 지시하면서, 외우려 들지 말고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읽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독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의미가 있는 독서법인지에 관한 의문이 제일 먼저 들었다. 연암은 우리에게 빨리 읽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볼 때마다 푹 젖는 것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암을 속독보다는 숙독이 훨씬 더 유용한 독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고 얻어야 할 정보가 많더라도 말이다.

글쓰기 법칙 : 2. 천지만물이 모두 책이다.

지문에게 주어진 두 번째 과제는 붉은 까마귀에 대해서 글을 지어보라는 과제였다. 붉은 까마귀가 어디에 있다고 우리더러 붉은 까마귀에 대한 글을 지어라고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문의 생각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고심했고 우연한 깨달음으로 인해서 글을 써냈다. 그는 고심을 통해서 지문은 약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깨달음을 얻고 글을 써내었으므로 오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연암은 이야기한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네가 이리저리 걸으며 까마귀를 본 것이 그 방법이었다. 그럴 때 비로소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 할 수 있다. 그것을 일컬어 약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나면 언젠가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는 통찰의 순간이 오는 법. 네가 갑자기 깨달았다고 한 그 순간이니라.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이 파헤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일컬어 오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110쪽)

글쓰기 법칙 : 3.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라 의중을 정확히 전달하라.

지문에게 주어진 세 번째 과제는 대문장가 한신에 관한 글을 짓는 것이었다. 한나라 때의 무장이 대문장가라니? 지문은 이해가 되지 않는 스승의 문제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었고 그는 다시 글로 표현했다.

병법에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배수진은 나와 있지 않다. 여러 장수들은 불복할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회음후는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나와 있는 데 단지 그대들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병법에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 고 나와 있지 않던가.” (143쪽)

한신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에서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 라는 원칙을 갖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었으므로 과연 대문장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책이며 글쓰기라고 연암은 이야기했다. 이미 있는 원칙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 비록 쉽진 않은 일이지만 수긍할 수 있었다.

글쓰기 법칙 : 4. 사이의 묘를 깨닫다.

지문은 박제가에게서 이는 살에서 생기는가, 옷에서 생기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를 기특히 여겨 붓 끝을 도씨 삼아 거짓된 것들을 찍어버릴 각오로 글을 쓰라는 당부를 보탠다. 지문은 박제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연암은 이야기한다.

“내 말을 그저 양쪽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라는 역지사지 정도로 들어서는 안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양쪽의 입장을 고려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양쪽을 고려하되 반드시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창출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84쪽)

사이를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연암이 이야기하는 글쓰기의 가르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암이 앞서 말한 생각하는 독서와 관찰과 통찰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주관이 없는 상태에서 상황을 고찰하지 않고 쓰는 글은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 법칙: 5.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하다.

사실 지문이 연암의 물음에 답하고자 썼던 모든 글은 지문의 글이 아니라 박지원의 글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실용소설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박지원의 글을 가상의 인물인 지문에게 덮어씌워 우리에게 학습효과를 고취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한 서문의 인용구도 박지원의 글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지문이 앞서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지문이 써낸 병법에 비유한 글을 보고서 연암은 지문에게 글쓰기의 기술은 완벽하나 딱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이야기 했는데, 연암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고 글을 지어보라는 마지막 과제를 남겼다.

글쓰기 법칙 : 6. 사마천의 분발심을 잊지 마라.

사마천이 후대에 글을 남기기 위해 자신에게 가해진 모진 고문을 견뎌내고 마침내 그 위대한 저작을 완성시켰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가? 지문은 비로소 마지막 퍼즐이었던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문은 자신의 입신양명에 연연하였던 글쓰기에 반성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 중요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 바로 그것이 진정한 글쓰기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는 사마천의 분발심을 나비를 잡고자 하는 어린 소년에게 대비시켰다.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서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마천이 글쓰기 그 한 가지에 모든 것을 불어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소년도 꽃에 앉아 있는 나비를 잡기위해 숨을 죽이고 동작을 최소화하여 정신을 집중하여 그 나비에게 손을 뻗는 것이었다.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 ‘치열한 잉걸이 좋다.’라는 제목을 가진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속으로 ‘에이~ 아무래도 잉걸보다는 버금이 좋고 오름이 좋지요.’ 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 기자 분은 스스로 원하는 글을 썼고, 그리고 그것이 아주 못 볼 정도는 아닌 것에 만족했던 것이었다. 그분이 이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암이 제일 강조하는 분발심을 가진 문장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님! 당신은 연암이 인정한 사람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이 말을 그에게 전하는 동시에 나의 글도 연암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앞으로 글을 써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혹시 잘 보이고 싶은 글을 쓰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글을 쓰기 전에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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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소 인사이드
오카와 시게루 지음, 유주현 옮김 / 이콘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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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덴소라는 회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그 다큐멘터리에서는 보쉬와 같은 해외의 유명한 부품소재 기업들의 경영방법을 소개하면서 그들과 우리의 기업들의 상황을 비교하고, 부품소재 스스로 브랜드를 갖추라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사실 우리는 덴소는 모르지만 일본 자동차는 잘 알고 있다. 알고만 있을 뿐인가? 일본의 도요타, 혼다, 닛산. 이 세 브랜드는 전 세계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일본인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질 만큼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그런데 이 자동차들에 우리가 모르는 덴소라는 회사의 부품이 들어가지 않는 차가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현대모비스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덴소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세계 최고의 부품회사 가운데 하나인 덴소. 하지만 책을 통해서 본 덴소는 어쩌면 행운아 인지도 몰랐다. 도요타에 뿌리를 두고 있던 덴소는 1949년에 회사의 분리를 단행한다.

그리고 때마침 전쟁으로 인해서 기술의 소멸을 우려한 보쉬가 덴소에게 접근하여, 파격적으로 그들의 기술을 이전시켜주었다. 그들은 A부터 Z까지 덴소에 관여하여 빠른 시간에 덴소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덴소의 사원들은 습자지처럼 기술을 흡수했다.

세계 최고의 기술로 통하던 보쉬의 기술력을 이어받은 그들은 대기업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품질로서 승부했다. 그리고 보쉬의 디젤엔진을 뛰어넘는 '커먼레일'을 개발해내기까지 했다. 그들의 발전의 원동력에는  시기적절했던 기술이전도 있었지만 또 한 가지의 요인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사회의 평평한 기업관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덴소를 보면서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우리의 상ㆍ하청구조의 폐단이라고 생각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본 대기업의 횡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잔혹했다. 대기업들은 하청에게 터무니없는 단가를 요구했고, 그 가격에 맞추기 위해 내구성이 확연히 떨어진 구색 갖추기에 급급한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의 부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부품 업체는 빡빡한 단가로 인해 연구개발비는 꿈에서나 바라볼 수 있을 정도였다. 대기업들이 "너희 부품 안사도 중국제나 다른 단가 맞는 기업들 찾아서 사용하면 된다."며 협력업체를 자신의 발밑에 두는 횡포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한국 자동차는 "어차피 몇 년 타다가 버리는 차량"이라는 인식 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덴소가 기술이전과 평평한 기업관계로만 이루어진 회사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끊임없이 진화해나갔으며, 그 중심에는 '사람'이 존재했다. 나는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덴소 내의 기능인 육성정책이라든지, 꾸준한 사내대회를 통한 기능 장려정책을 보면서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뭐랄까 마치 프로구단이 유망주를 스카우트해서 팜에서 키우는 것과 같이 그들은 일찌감치 가능성이 보이는 찾아내서 그들을 스스로의 입맛에 맞게 키워냈다.

그러나 덴소는 그들에게 무조건 기술, 그것 하나만을 강요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들의 인재 육성의 기본은 바로 '심ㆍ기ㆍ체를 주루 갖춘 인재' 그것이었다. 덴소가 길러낸 심ㆍ기ㆍ체를 주루 갖춘 인재들은 스스로 전문가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두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맡은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는 동시에 회사의 힘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회사의 부속품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체의 라인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담당하는 부분의 중요성에 대해서 확실하게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덴소의 20세 말단 여직원의 의문을 제기하는 한마디로 회사의 생산라인을 멈추게 할 수 있었으며,  고성능의 디젤엔진 분사방법을 상용화시킬 수 있었고, 기능올림픽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덴소와 우리 사회의 기업들을 비교하면서, 나는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이 사원들을 벨트가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부속품 따위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흔히 우리 기업들은 그들이 오랜 시간 일을 하면서 얻은 경험들을 새로운 직원의 몇 달간의 교육을 통하면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경험을 중시하는 덴소의 회사정신이 만들어내는 성과들을 바라보면서 이것은 큰 오산이라는 생각을 했다.

<통찰력>이라는 책에서 우리의 생활 그 자체가 학습하고 있는 중이며, 무의식중에서 가장 최적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 계속적으로 탐구해나간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사원의 무분별한 정리 해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회사의 자산을 제 스스로 깎아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회사의 사정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섭섭하고 아쉽고 분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 일까? 조금 더 노사의 양방향에서 더 나은 해결책은 없단 말인가? 자기들이 살았다고 노노간의 싸움은 불가피한 것일까? 아직은 해답을 잘 모르겠다. 조금 더 덴소를 보면서 노사가 전부 만족할 수 있는 바람직한 회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다.

인상깊은 구절

"기술자는 더 공부해서 두뇌를 훈련하고 싶어하고 기능인은 아직 기능이 부족하다면 실력을 더 연마하고 싶어한다. 이것이 바로 덴소인이다." 

'좋아지고 싶다'는 욕망을 기업 인사에 적용시켜본다면 거기에서는 직원의 '좋은'을 발견하고 그것을 키워 인재를 발탁하는 '등용의 인사 사상'이 싹트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행해지고 있는 인사의 기본은 흔들어 떨어뜨리는 '배제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 아닌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총력이란 제조설계 능력, 기초 개발 능력, 재료기술, 정밀가공기술, 고도의 생산기술, 미세정밀부품의 정밀한 해석기술, 품질관리의 계측기술은 물론, 고도의 전자제어기술이 전체적으로 합쳐진 힘을 말한다.

이해시키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이 성립하지 않는다. 납득시켰을 때 비로소 커뮤니케이션을 꾀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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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원하는 강한 남자 되기
엘리엇 카츠 지음, 엄홍준.이혜진 옮김 / GenBook(젠북)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노란 글씨의 강한 남자에서 이 책에 대한 관심이 무럭무럭 자라났지만, 여자가 원하는 이라는 문구에서 그 관심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흐르는 시간을 내 자신에게 전력투구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강한 남자로 발전해 나가고 싶었지 타인이 원하는 그것도 여자가 원하는 강한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한 페이지씩 넘기고, 행복한 삶을 가꿔 나갔던 조셉 할아버지와 사라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것은 미래에 다가올 나의 아내와의 생활에 꼭 필요한 덕목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 이 책은 지금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아니면 결혼생활에 약간의 균열이 있는 분들이 읽었을 때 효과가 극대화 될 수 있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현재의 나에게는 큰 울림이 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책장에 꽂아두면 큰 울림이 되는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좋은 표현에 밑줄을 긋고 별표를 쳤지만, 그것을 올바로 깨닫게 되는 날은 미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중에 더 좋은 깨달음을 가지고 이 책에 대한 추천의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그 대신에 여자들에게 강한 남자로 생각하기 쉬운 나쁜 남자에 대한 경계의 글을 하나만 남기고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에게 한없이 나쁜 남자라면 그 남자는 당신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

희한하게도 여자들은 ‘나쁜 남자’ 에게 끌린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는 솔직히 그런 말을 하는 여자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여자들에게 묻고 싶다. 대체 왜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지...

남자인 나의 경험에 따르면 나는 나쁜 남자이기도 하고 착한 남자이기도 했다. 내가 착한 남자였을 때는, 상대 이성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나머지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착한 남자가 되었다. 너무 마음에 들는 여자를 만났을 때는, 밀고 당기기가 전혀 불가능 해질 정도로 빠져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나쁜 남자가 되어서 상대의 친구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을 때는, 상대 이성이 그렇게 싫지도 좋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귀어도 그만 안 사귀어도 그만인 상태였다. 그런데 남자는 없으면 일단 사귀고 보는 것이 남자의 본능이다. 그래서 진짜 아니다 싶지 않으면 왠만하면 사귀고 보는 것이 심리다.

아마도 지금쯤 이 글을 보고 있는 여자들은 나의 양면성과 본능에 대한 혐오감을 품는 동시에 착한 남자와 나쁜 남자의 결말이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대들이 나에게 혐오감을 품겠다면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싶다. 그들이 혐오감을 품는다고 내가 변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마음에 드는 이성 앞에서는 나쁜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에, 그대들이 기다리는 결말은 내가 나쁜 남자가 되었을 때, 나의 기준만 놓고 봤을 때는 확실히 더 나았다는 것이다. 나쁜 남자일 때의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해도 정말 쓰레기였다. 전화가 오면 꺼버리거나, 약속시간에 늦는 건 기본이요. 귀찮다면서 집 근처로 오라고 시켰다. 나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던 간에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여자를 모질게 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들은 끝까지 먼저 떠난 경우는 많지 않았다. 그들이 전화나 문자로 섭섭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마음에도 없는 미안하다는 한마디만 보내주면 금새 마음이 풀려버리는 그녀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나도 그렇게 착한 여자는 싫었는가보다. 그래서 결국에 내가 먼저 그들에게 이별을 통보해버렸다.

그런데 여자들은 그런 나쁜 남자를 강한 남자로 오해하고, 나를 이끌어 주는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나쁜 남자는 그저 나쁜 호로 새끼일 뿐이다. 당신에게 호감이 있는 남자라면 절대로 당신을 가볍게 취급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을 명심하길 바란다. 조금은 참고가 되었나 모르겠다. 그런데 걱정이다. 망가진 내 이미지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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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그들의 이야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박미낭 옮김 / GenBook(젠북)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이 성묘를 떠났을 때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예년처럼 성묘를 무사히 마치고 내려왔지만, 그 해는 유난히도 크게 벌어진 주변의 공사 때문에 돌아오는 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었고, 우리들은 저 멀리 걷고 있는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걷는 것에 지쳐 서로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 놓았고, 이야기 하는데 정신이 팔린 우리들은 그만 아버지의 뒤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길이 엇갈린 우리 형제와 아버지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서로 전화로 만나기로 했지만, 이미 엇갈려 버린 길에서 다시 만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우리는 공사장의 소음 때문에 대화가 쉽지 않던 그 상황에서 각자 산을 벗어나서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때부터 걷고 또 걷고, 그리고 강 건너 멀리 보이는 도로에 도달하기 위해서 바지를 걷어붙이고 그곳을 건너가는 '생쑈'를 벌인 결과 무사히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가 도착하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타나셨다. 

 
아버지는 우리들을 찾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가 결국 포기하고 나왔던 것이었다. 나는 이 사건을 되새기면서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성격과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이렇게 물과 기름처럼 융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씁쓸했지만 그때의 기억을 되돌아보면서 웃음이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이처럼 나의 아버지와 같은 가부장적 성향을 가진 남성들에 대하여 <남자, 그들의 이야기>의 저자인 스티브 비덜프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남자들은 보통 침묵이라는 전통적으로 남자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요구에 순응해서 서로서로 고립된 채 개인적인 삶을 살아간다. 각자의 우리에 갇혀서 죽자 사자 일만 하는 노예가 되어 경제적, 문화적 요구에 발목이 잡힌 채 살아가고 있다. 설령 남자들이 자기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 할지라도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자기들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나누지 않는다. 남자들은 고통을 혼자서 감내한다."

 
우리의 아버지의 모습이 그의 말속에 다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아버지와 우리들의 대화는 잘 통하지 않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지만, 끝내 우리들을 걱정해서 끝까지 우리들을 찾아 되돌아갔던 그의 모습에서 가족을 사랑하지만 표현하는데 인색한 과거의 남성상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들의 문제를 안타깝게 여긴 저자는 우리에게 새로운 남성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오랜 가정상담을 통해서 가족 간의 문제점을 찾아나갔던 저자 스티브 비덜프는 21세기에 들어와서의 올바른 남성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 내렸다. 

 
"훌륭한 남자가 되는 자질들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게 믿음직함, 사랑을 추구하는 불굴의 능력, 공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인 행동, 고난의 때를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관대한 마음을 요구하는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자질들은 시대를 초월한 가치이며, 과거에도 그랬지만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한 남자가 평생 동안의 기나긴 여정 가운데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것들이다. "

 
저자는 위의 정의를 통해서 바람직한 남성상의 자질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21세기의 남성들은 가부장적이고 고립된 남성상을 벗어나서 가족들에게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남성이 되는것이 더 낫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책의 여러 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바람직한 남성상이란 무엇인지에 관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책 속에는 다양한 남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지각에 대한 두려움보다 딸의 미소를 더 보고 싶어서 과감히 지각하기로 결정한 남성도 있으며, 남학교의 더럽고, 폭력적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마음의 문을 연 교사도 있었으며, 진정한 스포츠는 승리의 집착이 아닌 구성원들의 모든 참여로 이루어지는 것을 깨달은 남성도 있었다.

 
그리고 비록 젊은 날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이었고 그런 아버지에게서 정을 느끼지 못했던 아들이지만, 치매에 걸려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함께 생활해나가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한 남성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들은 변하고 있는 남성다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남성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 책을 보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비록 그가 우리 형제들에게 표현하지 않고 있지만, 과거의 사건을 기억케 하여 그가 우리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나중의 나의 아이들에게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가슴 속에 아로새겨 실천할 것임을 약속한다.

 
나는 오늘부터 아버지가 좋아하는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해야겠다. 예전부터 장종훈 선수를 보면서 한화를 응원해 왔지만 아버지와의 대화를 조금 더 해나가기 위해서 롯데를 응원해야겠다. 이제껏 항상 한화와 롯데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 찾아오면 우리는 서로의 응원팀을 위해서 대립의 칼날을 세웠지만 이제부터 나는 롯데를 응원할 것이다.

 
오늘 한화 Vs. 롯데의 경기가 벌어진다. 한화의 8연패가 걸려있는 중요한 경기이고, 한화의 에이스 류현진이 등판하는 경기이지만, 오늘은 아버지와 같이 롯데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아버지와 내가 서로 가까워지는 길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인상깊은 구절

누구나 자신의 인생과 거래를 하면서 살아간다. 경우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게 무의식적으로, 때로는 집단적인 흥정이라는 혜택을 거부한 채 혼자 힘으로 그 거래를 마무리 짓기도 한다. 마침내 거래가 성사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결과는 그때그때 다 다르다. 거래를 마무리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많고 더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버티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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