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공간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사진은 아주 매혹적인 푸른 빛을 발하고 있다. 칠흑같은 배경에 새겨져있는 듯 동그랗게 떠있는 그 푸른 혹성은 마치 대리석처럼 오묘한 빛을 머금은 하얀 무늬를 두르고 있다. 

그 시점에서 줌인으로 렌즈를 당겨보자. 비행기를 타고 지상 1만5천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끝도 없는 구름바다였다가 문득 그 사이로 비치는 코발트색 하늘과 바다가 눈부시다. 여과없이 쏘아대는 햇빛은 태고의 카오스를 연상하게 만든다. 1만미터쯤으로 내려오면 대륙은 마치 함성을 지르며 내닫는 몽골기병대처럼 거대한 연봉들이 줄지어 산맥을 이루며 달리는 것을 보게 된다.

비행기에서 즐길 수 있는 지구의 모습은 대체로 여기까지다. 그 다음은 창문을 닫게 하거나 이미 지겨운 도시의 영공 안으로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보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남극의 빙산을 찍어도, 히말라야 고봉들을 보여줘도, 아프리카의 풍물을 보아도 다 그밥에 그 나물이겠거니 생각했다. 시점과 시야와 시각이 달라지지 않으면 신비감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발견 366 하늘에서 본 지구- Reflections on our Earth>-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란 사진집을 보면서 처음으로 <지구는 백미터 미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세계적인 항공사진 전문가인 얀은 케냐에서 열기구를 타고 3년 동안 사자 가족을 추적하면서 <하늘에서 본 지구>연작을 시작해 <하늘에서 본 ...>시리즈로 70여 권이 넘는 책을 발간했다. 10년동안의 작업끝에 1999년에 출간된 <하늘에서 본 지구>(20개국 언어로 출간)는 250만 부라는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12개월로 나누어 매월마다 주제문을 싣고 366장의 사진과 설명을 담은 이 책은 한마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만들어준다. 헬기로 찍었는지 기구를 타고 찍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일정한 높이에서 Bird's Eye View로 내려다 본 지구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땅과 바다를 갖고 있다. 남반구와 북반구,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촬영한 사진들은 이 작은 혹성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지 침묵으로 증언한다. 아프리카의 사막, 파타고니아의 평원, 호주의 산호초 해안, 남북극의 빙해, 그림같은 북유럽의 도시와 원시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촌락은 그 안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추해보게 만든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마주치는 풍경만으로도 눈이 아픈데 그 안의 삶에까지 눈길이 미치면 마음이 한결 무거워진다. 요즘은 왜 이렇게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급성 비관주의자를 저자인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은 당당하게 꾸짖는다. <이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전 어느 때보다 현재와 같은 수준과 방법으로는 더이상 자원을 소비하고 생산하며, 이용하는 것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미래 세대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토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결정적인 단계에 들어서 있다>고 일갈한다.  즉 우리는 누구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매일매일 행동할 수 있으며 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구에 붙어사는 현재의 불쌍한 삶의 모습에 거짓 탄식이나 내뱉고 있는데 정작 얀이란 친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의 지구를 지금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말을 듣고 보니 모든 사진이 새롭게 다가온다. 일체의 의도성을 배제한 듯한 사진들이 저마다 눅진한 환경 메시지를 하나씩 품고 있었구나.   

원래 이 사진집의 판형이 이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50개 도시를 돌며 순회전시회를 했다는데 한번 원형대로 이 사진들을 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인데 어떤 사진집은 원 사진을 트리밍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너무 무성의하고 안목이 없어 입안이 씁쓸해진다. 그 나마도 안팔리는 사진집을 내보겠다는 의지가 가상해 아무말도 못하겠지만, 이왕이면 원작의 감동을 조금 더 살릴 수 있는 쪽으로 작업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도대체 어느 높이에서 봐야 제대로 보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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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나는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좀 읽는 사람이다 싶으면 유명 작가들의 소설책 쯤은 빼놓지 않고 보는 것이 상례일 터인데 나는 소설책 읽기를 시간죽이는 일로 치부해왔다. 소설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선입견때문인가. 물론 <허구에 불과하다>는 그 표현이 얼마나 불학무식하고 유치한 단견인지 잘 안다. 하물며 몇권의 위대한 리얼리즘 소설이 내게 주었던 감동과 혜안을 잊지 않고 있는데 소설을 이리 하대(下對)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짜맞추기 삼류 철학과 유행따라 부유하는 경영학은 피식 웃으며 용서한다. 원래 그런 것들이겠거니 하면서 기분 내키면 주머니를 뒤져 잔돈푼을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에 대해서는 손톱만큼의 어설픈 작위성을 감지하는 순간, 표독스럽게 책을 덮어버리고 작가의 이름 석자를 살생부에 적어놓는다. 그도 모자라 만나는 사람마나 그를 직업의식조차 없는 싸구려 매춘부로 경멸에 찬 언사를 늘어놓곤 한다. 천재적 작가의 두뇌 전두엽과 피질에서 창조하는 전형적 인물들과 전형적 상황들이 빛나는 조합으로 빚어내는 스토리.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처럼 작가의 어떠한 고의적 개입과 왜곡도 느껴지지 않는 예술적 완성도. 마치 신춘문예에 소설만 십수를 거듭하다 끝내 한을 품고 죽은 작가 지망생처럼 나는 소설에 대해서만은 이토록 까다롭고 편협한 기준을 갖고 있다.  

그런 나를 황석영은 손가락질하며 배꼽을 잡고 웃는다. 도대체 소설이 무슨 불경이나 코란인줄 아느냐, 늙은 박수무당 신장대 잡고 넋두리하드끼 소설에 뭘 바라는 것이냐, 네 살아가는 꼬라지처럼 소설도 거기서 거기인 줄 여태 모르느냐고, 별 어쭙잖은 놈 다보았다며 깔깔 웃는다. 그리고 나서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이 소리 한번 들어보랴 하며 읊어댄 것이 바로 <심청>이다.

19세기 중반 동북아가 서양의 철선에 의해 폭력적으로 유린당하기 시작할 즈음 황해도땅 복사골의 열다섯살 먹은 계집아이 심청이는 인당수에 빠지는 시늉만 하더니 어찌어찌 국제 매매춘조직의 상품으로 중국에 팔려가는 신세가 됐다. 처음엔 부잣집 노인의 자리보기에서 유곽 지배인으로, 다시 대만으로 끌려가 가장 밑바닥 창녀생활을 하다가 동인도회사 부사장인 영국놈의 현지처로 싱가폴에 가기도 하고, 류큐(오키나와)로 가서 요릿집 사장을 하던 중에 영주의 후처로 들어갔으나 그가 횡사한 후 나가사키에서 다시 유곽을 하다 거기서 키운 양녀를 따라 인천에 와서 쓸쓸히 세상을 떠난다. 50여년에 걸친 한 여인의 거칠고 험한 인생역정이 소설책 두권에 담겨있다. 

중국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 인도와 중국, 동남아를 무대로 한 서양세력의 발호, 일본의 개국과 오키나와의 참혹한 근대사, 한국의 합방 등 스펙타클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청이-렌화-로터스-렌카는 가녀린 몸으로, 그러나 불굴의 집념과 도전으로 겪어낸다. 대만 포구의 참담한 유곽에서 끈적거리는 땀과 더러운 살냄새에 부대끼면서도 그녀는 당당함을 잃지 않았다. 거꾸로 처박히는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감상과 회한은 보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정인과 남편이 떠나거나 죽어도 그녀는 툭툭 털고 일어난다. 세월이 지나면 그들의 인상조차 흐릿해진다는 것을 마치 알고나 있는 듯 그녀는 내일의 아침을 맞기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것이 황석영의  위대함이다. 그의 소설을 하루종일 이방 저방으로 들고 다닐 수 밖에 없게 하는 마력이다. 구라를 풀되 쓸데없이 주접을 떨지 않는 것이 이야기꾼 황석영이다.

그렇게 거침없이 밀고 나가던 황석영은 마지막으로 독자들을 확 녹여버린다. 심청의 최후 멘트를 보라.

'심청은 눈을 감고는 한번 빙긋이 웃었다. 오물조물한 입이 조금 움직였을 뿐, 실컷 울고 난 사람의 웃음처럼 그건 아주 희미했다.'

평생을 잡초처럼 살아온 한 여인이 한 많은 세상을 떠나면서 어찌 한 줌의 잡초처럼 그냥 스러지겠는가. 그건 자신이 창조한 심청이라는 새로운 전형에 대한 황석영의 애정어린 이별가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두권의 책 어디에도 이런 감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그런 구석이 한군데만 있었어도 마지막의 이 장면의 감동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날레를 위해 황석영이 남겨둔 심청의 아주 희미한 웃음은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    

지난 몇년동안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의 손익계산서를 조용하게 따져보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니 정확하게 대학교 2학년 3월까지 나는 산다는 것의 의미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부모님이 염원하던 법대에 못들어갔으니 빨리 서둘러 고시패스를 해야겠다, 그렇잖아도 재수하느라 동기들보다 일년을 까먹지 않았느냐말이다. 뭐 이런 어린애같은(요새는 어린애들도 이런 생각은 안하는가 보더라) 생각만 했다. 그러나 사람은 언젠가는 세상을 알 수 밖에 없다. 세상을 안다는게 철이 든다는 얘기라면, 철들자 망녕이라는 말처럼 늙어서라도 반드시 철은 들게 돼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생활을 하고, 사업을 하다가 마침내 지방 공무원 비슷한 것 까지 겪고나니 긴 한숨이 배어나온다. 나이 마흔 서넛에 먼길을 걸어 온 것 같다. 돌아보면 한나절의 백일몽같은데 흰머리와 얼굴의 잔주름만큼 생각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웬만한 천복이 아니면 아흔을 살기가 힘들터이니 나도 이제 반평생을 넘긴게 분명하다. 임종의 마지막 모습은 어떨 것인가.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가. 아니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울까. 판단하는 자는 누구인가. 세상사람에게 부탁할 것인가, 가족들에게, 아니면 내가 혼자서?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던데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무슨 여한이 남아있을까. 무엇을 남기는게 옳은가, 아니면 아무 말없이 훌쩍 떠나는게 맞나? 이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헛된 것은 아닐까. 무엇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관세음보살의 현신으로서 심청에 대한 계산된 복선이 아니라면 그녀가 버려진 아이들을 한사코 데려다 돌보는 일이야말로 그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미 몸파는 일에 길들여진 그녀가 아귀처럼 돈을 긁어모아 마마상이 되고 예라이샹이 되어 정계를 주무르는 큰 손 노릇을 하다가 말년에 예의 그 희미한 웃음을 짓고 스러졌다면 그것은 황석영 아니라 도스토엡스키가 썼어도 통속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온갖 악행과 모순을 뒤집어쓰고도 저주 한마디 없이 그런 연꽃 한송이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 삶의 아름다움 아닐까. 풍진세상에 뿌리를 내려 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구도와 해탈의 길이라면 그렇게 살아가는게 옳지 않은가. 

스티븐 킹은 작가지망생들에게 충고한다. 독자를 생각하지도 말고, 영합하지도 말라. 그들은 매우 눈치빠른 자들이기 때문에 신사숙녀 여러분들은 네 속셈을 한눈에 간파한다. 그저 네가 잘아는 것을, 네가 쓰고 싶은 것을 계속 쓰면 된다. 세상에 나를 팔지 않을테다. 세상을 위한다고 떠들 것도 없고, 세상을 이용하거나 속이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돈과 명예 어느 것에도 마음을 두지 말고 내가 잘 할만한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정해 묵묵히 수행해야겠다. 다만 스스로 감상에 빠지는 일을 경계할 것이며, 부질없는 외로움과 믿음을 끊어내야 할 것이며,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아름다움을 위해 정진할 일이며, 세상을 따뜻하게 보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심청>을 읽고나니 머리가 한결 가볍다. 약사가 지어준 변비약을 먹고 설사가 멈췄다더니, 허구인줄 뻔히 알면서 생각이 꼬리를 무는 걸 보면 인생도 그저 몇권의 소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누군들 서너시간 늘어놓을 푸념과 사연이 없을까. 따지고 보면 나아닌 남이 살아온 얘기는 죄 소설같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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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만에 만난 젊잖은 후배 홍수가 나를 자지러지게 만들었다. 평생 딱 한번 습작으로 썼던 단편소설, 그것도 대학노트 남은 것들을 묶어 이삼십 페이지쯤 썼던 그 소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홍수는 그걸 자기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대견했던 모양이다.

 "그때 형님이 말이요, 뭐라 했냐면, 자기가 소설을 하나 썼는데 박완서씨 것과 영판 똑같다면서, 그 양반이 언제 내 껄 보고 빼꼈는지 신기하다고 그랬던 거라. 어찌나 우습고 같잖던지. 내 생각엔 형님이 아마 그 양반 소설책을 잠결에 비몽사몽 보다가 고마 다음날 일어나서 퍼뜩 떠올라 쓴 소설 아닌가 싶던데, 지금도 박완서선생이 형님 소설을 베꼈다 생각하요?"  

술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와아 대단하네 라고 한마디씩 허튼 소리들을 하는 바람에 나는 실로 오랜만에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제목도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무풍지대> 그때 생각엔 바람조차 불지 않는 곳, 생존의 기본조건인 공기의 흐름조차 멈춰버린 어느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고 그렇게 붙였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삼류 액션만화의 제목을 턱 붙여놓았으니 그걸 본 몇몇 친구들이 얼마나 웃었을까. 오죽하면 이십년이 지났는데도 그걸 기억하니 말이다. 

박완서씨는 한국전쟁 끝무렵 서울이 수복된 후 미 8군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당시의 정황을 담은 소설을 몇 권 썼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그 양반만 거기 있었던게 아니다. 나의 아버지도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고학생이던 아버지는 하우스보이라는 숙소당번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가끔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려주던 당시 고단한 삶들의 이야기는 정말 소설책 서너권도 모자랄만큼 요지경속이었다. 대학에 들어와 사회과학 서적 몇권 읽고 이땅의 모순이 어쩌구저쩌구하는 와중에 갑자기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써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됐고, 기어코 저지르는 바람에 급기야 뒤늦은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그때 나는 소설을 쓴다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절대 아님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전엔 누가 시나 소설을 쓰겠다 하면 그런거야 선비가 여벌로 하는 일아니냐며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전업으로 삼으려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시건방을 떨었다. 그러나 습작을 한번 해본 후에 나는 전업작가들을 무조건 존경하게 됐다. 나는 지금도 글 잘쓰는 사람을 가장 좋아한다. 신문사 초창기엔 정운영선생의 칼럼들을 드문드문 외우고 다닐 정도로 좋아했고, 그 전엔 리영희선생의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글과 최일남선생의 만연체 글을 두루 좋아했다. 조선일보 시절엔 양상훈선배가 쓰는 글이라면 골프기사까지 탐독했고, 동년배인 정진홍위원에게 아낌없는 우의를 보내는 것도 그가 쓰는 글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오헨리에 대해 쏟는 찬사와 경의도 상기와 같은 나의 젊은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온 내역에 기인하는 것임을 알아주시길.    

한 은행원이 공금횡령으로 죄를 받아 징역살이를 했다. 감옥에서 엉뚱하게 약제사 일을 맡았던 그는 소설이란 걸 쓸 생각을 했다. 변호사출신인 존 그리샴이야 법정야화를 밑천삼아 소설을 쓴다지만 은행원이 무슨 소설이람. 정말 할 일이 없었던가 아니면 나와서 뭘로 먹고살지 호구지책의 일환으로 시작한 일 아닌가 싶다. 그 답답한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뉴욕의 한 골방에서 전직 은행원이자 전과자인 오헨리가 써낸 단편소설은 무려 3백편. 일주일에 한편씩 써도 1904년엔 한해에 무려 70여편의 다작을 낳기도 했다. 

꽁트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긴 여운을 남긴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마지막 잎새>같은 유명한 작품말고도 가슴을 찡하게 울리거나 깔깔 웃음이 튀어나오는 물건들이 한 두개가 아니다.

명색이 영문학을 전공했고, 학창시절에는 밝히기 어려운 이유로 한때 미국문학의 유망주로 운위됐던 터라 오헨리 작품을 제대로 한번 훑어보고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레출판사가 출판한 오헨리 단편선 -김욱동 옮김-을 발견해 손에 쥐게 되었다.

사실 오늘날에도 단편을 잘쓰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들어도 그만 안들어도 그만인 일상잡사가 고작이며, 뭔가 가슴에 남기길 애시당초 포기하고 쓴 것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억지춘향이  아니라는 점을 고마와 해야할 형편이다. 최인호같은 양반이 쓴 단편(꽁트가 맞을지도 모르겠다)을 읽다보면 하품과 짜증으로 책 중간을 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그런데 백년전의 단편들이 선 잠을 확깨게 만들 줄이야. 원고지 백장 정도의 짧은 글에 담긴 서정적 묘사와 유머러스한 서술에 빠져 흐느적거리다 어느새 절묘한 막판 뒤집기를 당해 뒷통수를 긁으며 허허 웃게 된다.  그 웃음은 사랑과 자비에서 나온다. 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무지개처럼 뻗어 나오는 사랑의 시나리오는 온갖 사랑의 범람에 아연실색한 현대인들에게 뭉클한 원초적 감동과 소낙비처럼 시원함을 준다.  

뉴욕이란 도시를 구성하는 귀족과 부랑자,  사업가와 샐러리맨, 빈민가의 사람, 연극하고 그림그리는 사람들... 오헨리의 소설에는 이 모든 뉴요커들이 종횡으로 엮여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그 다양한 직종의 군상들은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알코올중독자였던 아버지와 살아야했던 어린시절, 그 후 고향을 떠나 목동, 우편배달부, 점원, 직공 등 바닥인생들의 삶을 두루 거쳐야했던 젊은 시절의 경험에서 만들어진 전형들이다. 그의 단편들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부룩클린과 웨스트사이드의 뒷골목을 걷는 느낌이 든다. 거기서 옷깃을 스치거나 눈길이 마주치면 웬지 그들을 담은 한편의 소설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뉴욕이 더럽고 위험하고 복잡하고 허탈하다지만 그래도 그 도시 어느 후미진 골목에는 여전히 꿈과 사랑이 피어오를 것 같다는 생각도 오헨리 같은 작가들이 기여한 바 적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서른개의 소설는 모두 빼어난 수작이었지만 그중에 내가 특별히 재미있다고 칭찬해마지 않는 작품은 다음과 같다.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사랑의 묘약, 20년뒤, 녹색문, 하그레이브스의 멋진 연기, 도시의 패배, 채광창이 있는 방, 사랑의 희생, 카페안의 세계주의자.

처음엔 그냥 넘어가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그 페이지를 접어놓은 게 몇 장 있다. 마저 옮겨본다.

(그런데 그 요리는 흑인 신사인형 머리위에 야구공 다섯 개를 던지는 게임만큼이나 빨리 나왔다.- 128쪽)

미스 리슨은 몸집이 아주 작았는데, 눈과 머리카락만은 그녀가 자라기를 멈춘 다음에도 계속 자라서 마치 "어머나! 왜 우리와 함께 더 자라지 않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324쪽)

5월에는 자연이 우리에게 손가락질하면서, 우리는 신이 아니며 자연이라는 거대한 가족 중에서 저 혼자 잘난 척하는 식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준다. 자연은 우리가 클램차우더 수프에 들어갈 조개나 당나귀와 형제라든지, 팬지나 침팬지의 직계 자손이라든지, 그리고 구구거리며 우는 비둘기와 꽥꽥거리는 오리, 식모아이들과 공원을 순찰하는 순경들과 친사촌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338쪽)

도대체 고향이 어디인가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주소로 사람을 판단해버리는 일이 옳습니까? 켄터키 사람이면서 위스키를 싫어하고 버지니아 출신인데도 포카혼타스의 후예가 아니고, 인디애나 사람이면서 소설을 쓰지않고, 멕시코 사람이면서 솔기따라 은화를 꿰어 단 벨벳바지를 입지 않고, 영국사람이면서 경망스럽고, 양키이면서 돈을 흥청망청 쓰고, 남부 사람이면서 냉혈한이고, 서부사람이면서 마음이 편협하고, 뉴욕에 살면서 너무 바쁜 나머지 길거리에서 한시간쯤 걸음을 멈추고 한팔이 불편한 식품점 점원이 덩굴월귤을 종이봉지에 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는 사람을 난 얼마든지 보았으니까요. (4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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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최고의 교육을 정의한다면? 최고의 교사와 충분히 검증된 교과서/커리큘럼, 최적의 환경 등 모든 면에서 최고여야 한다. 우주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이라면 저마다 한번 씩 꿈꿔보았을 것이다. 개중엔 아예 팔 걷어부치고 찾아나선 사람들도 적지않다. 돈이면 해결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불과 백년전만 해도 국가의 모든 지력과 정성을 총동원해 실시한 최고의 교육이 있었다. 조선의 왕세자교육이다.

조선 왕실에서 왕세자를 훌륭하게 키우는 일은 곧 국가의 운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권력의 정점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존인데다 종신직이므로 어떤 인물이 왕이 되느냐에 국가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은 바로 왕세자교육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일본이나 영국 등 지금도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에선 어떤 교육을 시키는지 궁금하다. 영국은 왕손들이 하도 속을 썩여 여왕폐하께서 골치를 앓고 있는 모양이다만. 무엄한 추측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왕께서 너무 연부역강하시어 왕좌에 오래 앉아 계시는 바람에 후손들이 제풀에 지쳐 될대로 되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해 안쓰럽다. 아마 조기교육과 엘리뜨 교육, 리더십 교육에선 예전같진 않아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교육프로그램이 있을 것 같다. 언제 한번 찾아봐야겠다.  

<조선시대 왕세자교육의 특징>

첫째, 환경을 중시하는 교육. 태교부터 유모, 내관, 스승, 동료 들을 고를 때 먼저 후덕하고 건실한 성품을 가진 자인지 확인했다. 즉 왕자주변에 좋은 성품을 가진 사람들만 배치되엇다.

둘째, 덕성교육, 왕세자는 오륜교육 등 기본예절교육부터 받았다. 왕세자 책봉이우헤도 여전히 덕성교육은 강조됐다. 국정최고 책임자로서 다른 사람의 견해를 경청하고, 신하를 공경하며, 백성의 고통을 살필 줄 아는 성품을 키우기 위해서다. 

셋째, 예제를 중시하는 교육. 항상 의례가 동반됐다. 상견례, 개강례, 관례, 책봉례, 가례, 입학례 등 무수한 의식을 잘 익혀 원만히 처신하게 만드는 것이 교육의 주된 영역이었다.

네째, 지식을 중시하는 교육. 전통교육은 덕성교육을 통해 심신을 단련한 후에 지식교육에 집중하는 학습방식. 경전교육과 역사교육이 핵심.

다섯째, 체육과 예술교육. 어린시절에는 체조, 성장후에는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혔다. 세자는 시짓는 법을 배워야 했고 서예, 그림, 음악에도 일정한 소양을 갖추어야 했다.

<공부의 시작>

원자보양청이 설치되고 제일 먼저 하는 행사는 원자와 사부의 상견례였다. 원자가 동쪽에, 사부가 서쪽에 자리하는 것은 원자의 지위가 더 높다는 뜻이다. 그러나 원자가 먼저 인사를 올리는 것은 제자로서 사부에게 예를 갖추는 것이다. 상견례 후 자리를 옮겨 사부가 원자에게 <소학>의 한구절을 가르쳤다. 사부가 읽고 원자가 따라 읽는다. 사부가 뜻을 풀이한 후에 유선이 보충하는 것으로 상견례가 끝났다.

상견례가 끝나면 정식수업이 시작됐다. 첫 수업하는 날 원자가 사부를 맞고 전송하면서 올리는 개강례가 거행됐다. 개강례 이후 원자에게 강의할 과목은 왕과 보양관, 신료들이 토론하여 결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원자는 한문을 낱자부터 배우기 시작한다. 대개는 <천자문>과 <유합>으로 한 글자씩 배우되 항상 배운 글자를 복습하고 난 다음에 새로운 글자를 더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글자를 가르치는 것이 최우선은 아니었고 생활예절을 중시했다. 삼강오륜에 관한 내용을 이야기로 들려주고, 그림을 보여주었다. 늘 붓과 종이를 곁에 두고 글자를 익히게 하였는데, 이를 통해 조심성과 표현력, 집중력을 기르게 하였다. 원자가 여섯살이 되면 보양관이 증원되어 자우빈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고, 더러 성균관 대제학, 직제학이 특강을 맡기도 했다. 대개 수업시간은 45분이었다.

<세자의 영양간식> 

공부하기 전에 원자에게 조청 두 숟갈을 먹였다. 흡수가 빠른 당분을 섭취시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를 맑게 하려는 것이었다. 원자가 크면서 공부의 양이 많아지고 진도가 빨라지면 무정과(무를 썰어 삶아서 조청에 절인 것)를 간식으로 내었고 각종 콩시루떡, 콩 송편, 콩가루 다식 등 콩으로 된 음식을 많이 먹게 하였다. 연근도 단골메뉴였으며 개성인삼과 인삼정과, 인삼차 등도 원자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영양식이었다. 공부가 끝난 후에는 옻칠을 한 목욕통에 따뜻한 소금물을 받아놓고 목욕을 시켜 피로를 풀어주었다.

원자가 글을 읽을 때는 서상봉으로 글씨를 짚어가며 큰소리로 읽고 ,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음률에 맞추도록 했다. 책을 읽을 때 몸을 움직여 박차를 맞추고 소리내어 읽어서 머릿속에 깊이 새기도록 했던 것이다.

원자가 책을 한권 떼면 왕과 왕비를 모시고 스승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배강이라는 발표회를 가졌다. 그자리에서 원자가 책을 다 외고 묻는 말에 답변을 잘하면 왕은 노고를 치하하며 스승들에게 다과상을 차려주었다.  

<교재와 강의>

왕세자의 교재는 모두 유교의 기본정신을 담은 책이었다. 왕도정치는 군주가 인과 덕을 바탕으로 베푸는 선정이었으므로 교육목표는 성군을 자질을 함양하는 것이었고 유아기의 교육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나 교육내용은 지식의 전달보다 효와 예절, 즉 인성교육에 주력했다. 국가 최고교육기관은 성균관이었고 왕세자도 학생이었지만, 왕은 경연, 왕세자는 서연 또는 세자시강원이라는 교육기관이 별도로 있었다.

원자의 학습내용과 성취도는 보양관이 <보양청일기><강학청일기>에 날마다 기록했다. 천자문, 유합, 훈몽자회, 소학, 동몽선습(한국사), 효경, 격몽요결(독서론)등이 원자의 8세이전 교재였다.

세자 책봉후 설립되는 세자시강원의 사부는 영의정과 좌우의정이 담당했지만 실제 교육은 문과출신의 30~~40대 참상관(정3품에서 종6품)으로 당상관 승진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었다. 시강원에 소속된 관리의 수는 20명, 하급관리는 39명이나 되었다. 왕세자 한사람을 교육시키기 위해 무려 6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투입됐던 것이다. 

<학습으로 채워진 왕세자의 하루>

세자의 하루는 아침저녁 문안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전부였다. 일상생활에서 세자에게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효였다. 왕세자는 수라상을 살피는 시선과 약을 먼저 맛보는 시탕을 해야했다. 문안을 다녀오면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조강에 들어간다. 수업을 시작할 때 세자는 스승을 예로써 맞이하였는데 이를 서연진강의라고 한다. 

수업이 시작되면 세자가 전날 배운 것을 발표하여 점검을 받았고, 별 문제없으면 그 다음 진도를 나갔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왕세자가 일어나 섬돌 아래에 서서 스승을 배웅했다. 강의진행방식은 시강관이일과에 다라 본문에 나오는 글자의 음과 뜻을 차례로 풀어주고  그 문장의 의미를 해설하였다. 그 다음 세자가 잘 모르는 사항을 질문하고 시강관이 답을 했다. 질의응답이 끝나면 시강관이 그날 배운 문장을 낭독하고 세자가 따라서 낭독하였다.

 낮에는 주강, 저녁에는 석강이 있었다. 이외에도 낮시간에 수시로 시강관을 불러 공부하는 소대와 밤중에 침실로 불러 공부하는 야대가 있었다. 소대와 ㅇ야대에선  중국과 조선의 역사를 가르쳤다. 세자가 공부할 대는 책을 덮고 외우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경서의 본문은 전부 암기하는 것이 원칙이고, 해석은 책을 보면서 번역해나가는 방식이었다.

<학습평가>

왕세자가 제대로 공부하는지는 매 강의때마다 항상 확인됐다. 이외에 미리 정해진 날에 공식적으로 학생의 성적을 평가하는 것을 고강이라고 한다. 책을 덮고 전날 배운 것을 외우게 하는 것은 수업을 시작할 때 하는 수시평가였고 5일마다 한번씩 성적을 평가해 장부에 기록하는 것이 공식적인 고강이었다. 한달에 두번있는 회강에는 사부이하 서연관들이 모두 모인자리에서 평가를 받기 때문에 무척 부담스러운 자리였다.

고강을 할 때는 <생>이란 경서의 글귀를 기록한 대나무쪽을 통안에 가득 넣어두고 수험생이 그중 하나를 뽑은 다음에 거기 적힌 글귀를 읽고 스승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다. 그 대답을 두고 통, 약, 조, 불의 네단계로 점수를 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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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의 성공은 <학교 공부와 개인 공부를 효과적으로 하는 능력>과 <시간관리를 효과적으로 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1940년대 하버드대학의 낙제생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성적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학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주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1970년대 중반 에모리대학의 낙세생 구제프로그램에서 노트정리 잘하는 법, 시간관리법, 더 빨리 잘 읽는 법, 기억법, 시험준비법 등을 교육한 결과 눈에 띄게 성적이 향상됐음을 확인했다.

학교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학업을 수행하는 학생은 가장 영리한 학생이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학습자인 동시에 지구력있는 시간관리자였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시간과의 전쟁이다. 동일 시간대비 효과가 큰 학생들은 두가지 비결이 있다. 첫째는 동기유발이다. 공부를 잘하겠다는 열망이 없는 학생을 도울 수는 없다. 어린이들에게 동기유발을 어떻게 시킬 것인가. 둘째, 공부란 투입, 과정, 산출의 세가지 범주에 각각 4~8 항목의 주제들이 있는데 각각의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다. 특히 지속성과 집중성을 어떻게 강화하느냐는 최고의 난제이며 <신나는 아이들>이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제1부. 투입기술

효과적인 공부습관을 익히는 첫번째 단계는 투입기술을 개선하는 것이다.학생들은 시험을 준비하고 리포트를 쓰는 것을 매우 중요시하지만, 투입기술에 한층 더 강조를 두어야 한다. 수집하지않은 자료를 공부할 수는 없다. 듣기, 노트정리, 읽기, 수업참여는 공부의 가장 핵심사항이다.

제1장 듣기

시간관리 다음으로 중요한 학습기술은 듣기이다. 수업중에 최선의 노트필기를 할 수 있어야 하지만 먼저 듣기에 집중하라. 공부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의 첫번째 갈림길은 듣기에서 시작된다.

수업중에는 기억하려고 애쓰지마라. 당신은 단지 정보를 수집하고만 있을 뿐 나중에 그것을 학습할 것이다. 듣기가 힘이 드는 것은 두가지 이유. 일상생활에서 듣기연습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우리의 뇌가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하기 때문에 선생님의 말씀보다 훨씬 많은 잡생각이 떠오를 수 있다.

1>설교자의 방법

듣기향상의 열쇠는 능동적으로 듣는 것이다. 유명한 설교자는 감동적인 설교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 비밀은 내가 그들에게 말하려고 하는 바를 그들에게 말하고, 그런다음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 또 그런 다음에는 내가 그들에게 말했던 것을 그들에게 말합니다.> 즉 듣기준비 -능동적으로 듣기-들은 후 기억하기(요약하기)의 세단계를 거치게 하는 것이다.

*듣기 준비하기

수업전에 관련된 텍스트를 대충 훑어보고 오늘 무슨 내용의 강의가 있을 것인지 감을 잡아보라. 그것만으로도 두뇌는 예열되어 수업내용을 머릿속에 잘 정리해 보관하고 범주화시켜 놓는다.

 수업들어가기 5분전에 <듣기 준비시간>을 갖고 연습을 시켜본다. 책을 훑어보게 하고 지난 수업의 노트를 읽어보게 한 후 오늘 수업에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맞춰보라고 한다.  

* 능동적인 듣기

능동적으로, 정력적으로 듣고 친구들과 토론을 통해 제대로 들었는지 확인하고 기억하게 하라. 그렇게 하면 두사람이 학습했던 것을 공유할 수 있다. 함께 공부하며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을 뽑아보라. 함께 공부하는 것은 어떤 자료에 관해 하나 이상의 관점을 갖게 되기 때문에 학습을 재미있게 만든다.

* 요약하기

이론적으로 어떤 의사소통이든 7개의 진술로 충분히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  한 강의 내용을 5~9개의 문장으로 요약해보라.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옮기지 말고 자신의 말로 바꿔 적는 연습을 한다.

2> 훌륭한 청취자가 되기

경청의 방법론이다. 우선 수업시간에 다른 학생들을 한번 둘러본다. 그중에서 잘 듣고 있는 학생을 관찰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빈둥거리나 확인한다. 잘 듣는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선생님을 분명히 보고 있다. 자주 선생님과 눈을 맞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둘째, 들을 준비를 하고 수업에 올 것이다. 선생님으로부터 적당히 가까운 자리에 앉으려 할 것이다. 듣기는 물론 선생님의 표정까지 관찰한다. 세째, 수업이 끝나면 문으로 몰려나가지 않고 잠깐 앉아서 책과 노트를 훑어보며 보완하거나 중요 표시를 한다.

수업시간에 한두학생한테 잘 듣는 사람이 몇인지, 주목하지 않는 사람이 몇인지 관찰하라고 한다. 그리고 경청하는 학생의 특징을 얘기해보라고 한다.

사람들에게 (학교)뉴스를 1분간 듣게 하고 워크북에 몇문장으로 요약해보라고 한다. 몇분후에 다시 한번 들려준다. 그리고 나서 각자 쓴 것을 네 사람씩 모여서 확인해보라고 한다. 가장 많이 정확하게 맞춘 사람에게 박수. 이번에는 다른 뉴스를 1분30초동안 듣게 한다. 같은 방법으로 진행한다. 처음엔 노트하지 말고 말로 대답해보라고 하고, 두번째엔 노트를 해보라고 한다.

학생들에게 몇가지 사진을 보여준다. (듣기준비) 그리고 나서 1분짜리 뉴스나 동화를 읽어주고 학생들에게 준비없이 듣는 것과의 차이를 확인시킨다.

제 2장 노트 정리하기

듣기와 노트필기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듣기가 훨씬 중요하다. 노트에 모든 정보를 기록할 수 는 없지만,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들을 써놓으려고 애써라. 수업의 핵심 아이디어가 무엇인지는 확실히 알아야한다. 자기 나름대로 노트 정리하는 노하우를 개발하는게 좋다. 페이지를 세로로 절반을 나누고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중에 핵심 또는 질문은 왼쪽에, 나머지는 오른쪽에 적는다. 수업이 끝나면 오른쪽에 있는 내용중에서 왼쪽으로 보낼 것들을 바로 정리해 옮긴다. 복습할 때도 계속 다른 정보나 표시를 입력해야하므로 가능한 여백을 많이 갖는게 좋다.

강의 녹음은 가급적 하지 않는게 좋다. 외국어라든가, 전혀 사전지식이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오히려 경청을 방해하게 된다.

노트정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즉각적으로 복습할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이다. 그날 정리한 내용을 수업후 2~3시간내, 당일 저녁에 복습하라. 매일 각과목당 5분씩 복습하라. 한시간 분량의 노트를 1~2분에 복습할 수 있다. 결국 시간이 아니라 습관이다. 5일동안 연속해서 지난 노트를 복습하면 80~85%의 정확도로 내용을 기억할 수 있다. 주말에는 그 주의 노트를 한번씩 일람한다. 이들에게 아주 좋은 예가 된다.

이와같은 복습프로그램을 키즈 플래너에 적게한다. 즉 월요일 저녁 모든 과목 노트 복습하기 (몇분동안 했나) 토요일 저녁 일주일동안 노트 모두 복습하기(몇분). 엄마나 아빠들한테 듣기훈련용 테입(동화상 또는 오디오 파일)을 인터넷에서 구동시켜 아이들이 요약하고 노트하게 한다. 결과에 무관하게 칭찬하도록 할 것.

제3장 공부를 위한 읽기

학생들은 수업에서 듣기를 통해 정보를 얻지만 훨씬 많은 정보를 읽기에 의해 얻는다. 그러나 읽는 것이 반드시 공부는 아니다. 즉 중요한 정의들과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알지 못한다면 시험점수가 좋게 나오진 않을 것이다. 공부를 위한 읽기는 공부하기가 아니라 공부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공부를 위한 읽기를 할 때 교재를 쓴 저저의 말을 듣는다고 생각하는게 좋다.

읽기는 듣기와 방법이 동일하다. 즉 읽으려고 하는 것을 사전검토하고 매우 적극적으로 읽으며 끝마쳤을 때는 그것을 요약하라.

* 사전검토하기

읽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라. 제목과 하위제목들, 굵은 글자체는 모두 읽는다. 서문이나 첫째 단락을 읽는다. 그림이나 도표, 그래프, 사진설명 등 눈에 띄는 것을 읽는다. 그리고 나서 핵심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이런 사전검토를 5분안에 마쳐라. 여기서 10~20%를 감잡는다.

* 훑어보기

페이지마다 30초씩할애해서 첫번째 단락을 주의깊게 읽고, 모든 단락에 있는 첫번째 문장을 읽고, 마지막 단락을 모두 읽어라. 여기까지 하면 50%정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능동적 읽기와 노트정리, 학습카드

주의해서 읽기는 20~30분 단위로 끊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라. 그때마다 지금까지 읽은 것의 중심아이디어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맥락에 끼워넣는다. 읽을 때는 필기도구를 들고 써가면서, 책에 표시하면서 적극적으로 해라.

* 요약하기

책을 읽고 자신의 말로 요약하라. 복잡한 것은 간결하고 명확하게 만들어라. 그 결과를 수업노트에 덧붙여라. 노트복습을 통해 자료의 대부분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효과적인 읽기를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은가.

1. 읽는 습관 들이기 : 학기중에는 매일 최소한 30분, 방학대는 한시간 이상 읽는다.

2. 독서가가 되려면 즐거움을 위해 읽어라 :즐겁고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으면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찾는다.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을 흥미있어 할 때 더 효과적으로 읽는 경향이 있다.

3. 읽기속도를 향상시켜라. 말하는 속도 이상으로 읽어야 한다.

4. 기억하기 위해 읽지 말아라.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검토하고 훑어보고,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며, 표기를 하고, 노트정리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했을 때 당신은 읽은 내용으로 되돌아와서 그것을 기억할 수 있다.

신문읽기를 연습시키자.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박스기사를 구분해서 준비한다. 사전검토 -훑어보고 -정독하기 - 표시- 노트정리의 순서대로 연습을 시키고, 스트레이트기사는 6하원칙을 뽑아내라고 한다. 그것을 노트에 적게 한다. 다른 기사로 한번 더 연습을 시킨다. 원고지 5장짜리 기사를 석장으로, 다시 한장으로 줄이라고 하고 제목, 부제를 뽑게 한다. 박스기사도 순서대로 연습시키고 핵심아이디어 5~7줄을 뽑아보라고 한다.  

책이나 신문기사에 나오는 도표나 그래프, 다이어그램등은 매우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것들의 복합적인 메시지와 정보를 찾아내 읽는 방법, 가장 중요한 핵심정보를 찾아내는 방법 등을 가르친다. 재미있는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것들이 있으면 효과가 높을 것이다.  

<MBC의 서프라이즈>같은(휴지통 뉴스를 프로그램으로 만든)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프로그램을 보여주고 그 내용을 6하원칙으로 노트해보라고 한다. 핵심테마를 3~5줄로 정리하고 프로그램의 제목을 뽑아보라고 한다. 또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명하게 한다. 동영상 읽기가 갈수록 비중이 커지는데 이는 책 읽기와는 여러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만화를 보여주고 동영상읽기 훈련을 하면 무척 좋아할 것이다. <MBC 브레인서바이벌 게임>처럼 화면을 집중해야 풀 수 있는 퀴즈를 통해 훈련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제1부  투입을 위한 최종 정리는 74쪽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돼있다.

 

제2부 과정 기술

제5장 자기관리

*의사결정부터 해야 한다. 즉 주도적이 되라는 것과 똑같다. 여기선 의사결정을 할 때 다음 네가지 원칙이 있다고 한다.

첫째, 당신이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감행하지 말라.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 감정 등에 대해선 당신 밖에 모른다.

둘째, 당신이 갖고 있는 것 이상을 감행하지 말라. 당신의 자원이 제한돼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 당신이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것 이상을 감행하지 말라. 각 결정이 당신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지 기대할 수 있을 때만 움직여라.

네째, 당신의 직관을 따르라. 자신의 결정을 기분좋게 여겨야 한다.

*목표정하기. 목표는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이다. 이루길 원하는 결과다. 최소 1년이상의 장기간의 계획을 요구하고 장기간의 활동을 필요로 한다. 장기간의 목표는 마음속에 정해두고 잊지 않되,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여러개의 단기 목표는 매일의 행동을 규정하기 때문에 잘 기록하고 지켜야 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첫달 동안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하라. 그리고 매주의 목표를 정하고, 그달의 첫주에 매일 해야할 일을 정하라.

*시간이용. 핵심은 모든 과목을 매일 조금씩 공부하라는 규칙이다. 매일 한두시간씩 공부시간을 정해놓아라. 가능한 여러개의 더 짧은 시간들로 나눌 수 있으면 좋다. 공부시간에 해야할 일.

첫째, 그날이나 그 주일의 수업노트를 복습한다. 각각 5~10분 씩 쓴다. 매일 복습하면 항상 준비될 수 있다.

둘째, 다음날 수업을 준비한다. 교과서등을 사전검토하고 가능하면 훑어본다.

세째, 노트, 수업, 읽기에서 뽑은 세부사항과 정의를 담은 학습카드를 만들어 시험에 대비한다.

공부습관들이기 프로그램. 우선 자기한테 맞는 공부시간 고르기. 아침일까 저녁일까. 처음엔 몇분으로 시작할까.  공부시간 1주일마다 10분씩 늘리기. (한달이면 40분, 두달이면 1시간반). 공부시간을 누적해서 월50시간 목표달성 등 개인 목표를 제시하고(어릴 수록 계량된 목표달성에 몰두하게됨) 서로 경쟁시킨다. 하루에 전과목 복습을 시키면서 과목별 스티커를 사용해서 한 과목이 끝날 때마다 플래너에 붙이게 하면 도전의식이 더 강해질 것. 3개월동안 150시간 돌파하면 <공부습관마스터>로,  1년간 6백시간 돌파하면 <공부습관 챔피언>으로.

모든 과목 골고루 공부하기, 그리고. 기본 공부시간준수의 원칙은 절대 흔들려선 안된다. <공부시간 방해요인 해결하기> -숙제하는 시간은 어떻게 해요? 가족여행이나 외식하면요? 아팠을 때는요? 노트 찾느라고 시간 다 보냈어요. 오빠나 형이 방해해요, 새로 나온 게임때문에 공부 못했어요 등등 습관들이기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사전에 충분히 대비시켜두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오면 발표해서 토론을 통해 대책을 공유하도록 한다.   

제6장 시간관리

시간관리를 위해 일정표를 개발하고 이용하는 법, 주간/일간 계획표를 준비하고 이용하는 법, 그리고 계획표를 체크리스트로 이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정표는 너무 많은 일이 몰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과외나 학원 스케줄을 감안하고 발표나 시험예정날짜를 확인한다.

다른 시간관리방법이나 관련교육은 플래너 작성요령으로 돌린다.

 

제7장 집중력.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곧 시관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마치 자동차의 연비를 높이는 것처럼 제한된 시간에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연습을 통해 자신을 더 영리하게 만들어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단계는 간단한다.

적절한 공부장소를 찾아라. 외부 소음을 줄이되 너무 조용해서 시계소리같은 것이 크게 들리지 않도록 한다. 디지털 탁상시계를 앞에 놓는다. 공부를 시작한다. 잡념이 든다고 자각했을 때 바로 시계를 본다. 최초의 분산시점을 기록한다. 잠깐 쉬다가 다시 시작한다. 분산시점에 기록하고 이를 반복한다. 평균 집중시간이 나온다. 초기 30분동안엔 5분, 그후로 3분. 여기서부터 집중 강화연습을 한다. 7분에서 10분으로, 20분으로 차츰 높여간다. 집중시간 도표를 만들어서 매일 비교하고 집중연습을 하면 꾸준히 증가하게 된다.

역시 집중력을 방해하는 요인들에 대한 토론회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놓는다. 퀴즈를 하면 집중력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생방송 퀴즈가 좋다>에서도 한사람당 최소 10분정도는 퀴즈의 답을 맞추기 위해 대단히 높은 집중력을 보인다. 즉 자꾸 정신이 분산될 때는 친구들에게 보낼 퀴즈 문제를 낸다든가, 시간을 정해놓고 퀴즈를 푼다든가 집중으로 돌리는 작업을 하는게 좋다.

제8장 이후로는 특별한 내용이 없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음. 이 책은 절반은 아주 좋고, 뒤 절반은 형편없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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