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공간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사진은 아주 매혹적인 푸른 빛을 발하고 있다. 칠흑같은 배경에 새겨져있는 듯 동그랗게 떠있는 그 푸른 혹성은 마치 대리석처럼 오묘한 빛을 머금은 하얀 무늬를 두르고 있다.
그 시점에서 줌인으로 렌즈를 당겨보자. 비행기를 타고 지상 1만5천미터 상공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끝도 없는 구름바다였다가 문득 그 사이로 비치는 코발트색 하늘과 바다가 눈부시다. 여과없이 쏘아대는 햇빛은 태고의 카오스를 연상하게 만든다. 1만미터쯤으로 내려오면 대륙은 마치 함성을 지르며 내닫는 몽골기병대처럼 거대한 연봉들이 줄지어 산맥을 이루며 달리는 것을 보게 된다.
비행기에서 즐길 수 있는 지구의 모습은 대체로 여기까지다. 그 다음은 창문을 닫게 하거나 이미 지겨운 도시의 영공 안으로 들어오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진과 영상을 보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남극의 빙산을 찍어도, 히말라야 고봉들을 보여줘도, 아프리카의 풍물을 보아도 다 그밥에 그 나물이겠거니 생각했다. 시점과 시야와 시각이 달라지지 않으면 신비감은 절대로 생기지 않는다.
<발견 366 하늘에서 본 지구- Reflections on our Earth>-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란 사진집을 보면서 처음으로 <지구는 백미터 미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세계적인 항공사진 전문가인 얀은 케냐에서 열기구를 타고 3년 동안 사자 가족을 추적하면서 <하늘에서 본 지구>연작을 시작해 <하늘에서 본 ...>시리즈로 70여 권이 넘는 책을 발간했다. 10년동안의 작업끝에 1999년에 출간된 <하늘에서 본 지구>(20개국 언어로 출간)는 250만 부라는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12개월로 나누어 매월마다 주제문을 싣고 366장의 사진과 설명을 담은 이 책은 한마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만들어준다. 헬기로 찍었는지 기구를 타고 찍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일정한 높이에서 Bird's Eye View로 내려다 본 지구는 지독하게 아름다운 땅과 바다를 갖고 있다. 남반구와 북반구,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촬영한 사진들은 이 작은 혹성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지 침묵으로 증언한다. 아프리카의 사막, 파타고니아의 평원, 호주의 산호초 해안, 남북극의 빙해, 그림같은 북유럽의 도시와 원시상태 그대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촌락은 그 안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의 삶을 반추해보게 만든다. 한장 한장 넘기면서 마주치는 풍경만으로도 눈이 아픈데 그 안의 삶에까지 눈길이 미치면 마음이 한결 무거워진다. 요즘은 왜 이렇게 사람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급성 비관주의자를 저자인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은 당당하게 꾸짖는다. <이 프로젝트를 해오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전 어느 때보다 현재와 같은 수준과 방법으로는 더이상 자원을 소비하고 생산하며, 이용하는 것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미래 세대가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토대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결정적인 단계에 들어서 있다>고 일갈한다. 즉 우리는 누구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매일매일 행동할 수 있으며 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구에 붙어사는 현재의 불쌍한 삶의 모습에 거짓 탄식이나 내뱉고 있는데 정작 얀이란 친구는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의 지구를 지금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말을 듣고 보니 모든 사진이 새롭게 다가온다. 일체의 의도성을 배제한 듯한 사진들이 저마다 눅진한 환경 메시지를 하나씩 품고 있었구나.
원래 이 사진집의 판형이 이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50개 도시를 돌며 순회전시회를 했다는데 한번 원형대로 이 사진들을 보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인데 어떤 사진집은 원 사진을 트리밍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너무 무성의하고 안목이 없어 입안이 씁쓸해진다. 그 나마도 안팔리는 사진집을 내보겠다는 의지가 가상해 아무말도 못하겠지만, 이왕이면 원작의 감동을 조금 더 살릴 수 있는 쪽으로 작업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도대체 어느 높이에서 봐야 제대로 보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