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진숙PD와의 코칭타임이다.
"나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긴 하지만, 진전이 없는 느낌이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는 36세이고, 현재 내가 제자리에 있는 것인지 잘 확신이 서질 않는다. 나는 전직장에서 해고당했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사실이다. 나는 일을 잘해서 여러번 승급을 하고 인정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른다. 그곳 사람들은 정말로 남성우월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남성세계의 여성을 껄끄럽게 생각했다. 아마 내가 남성들의 권위에 관련된 문제에 약했던 것 같다. 결국 나는 해고되었다. 다른 직장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이 회사는 내게 계약직을 제안했고 나는 내년 봄까지 일하기로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다. 일 때문에 불만스러워 하면서 인생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나는 어디서나 마음 편하게 지내고 싶다. 나는 우울하지는 않다. 그저 불만스러울 뿐이다."
Q. 전직장에서의 일이 계속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전직장에선 열심히 뛰셨나봅니다. 지금 만일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 지금 직장이 큰 부담도 없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기 때문에 그럭저럭 괜찮지만 뭔가 충분한 의미를 내게 주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도 적극적으로 했고, 경쟁의식도 있었습니다. 보람이 있었지요.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갈등의 골이 깊어져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때는 저도 피가 뜨거웠나봅니다. 공개적으로 사람을 비판한다든가, 조금이라도 부당하다 싶으면 팔을 걷어부치고 따졌으니까요. 좀더 현명하고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아직 어렸던 거죠. 다른 사람들 잘못도 있었지만 솔직히 제 불찰이 없지 않았습니다.
Q. 미안합니다만 가장 문제가 됐던 이슈는 어떤 종류의 것이었는지요?
A. 아무래도 남자들이 많으니까 혹시 내가 여성이라고 불이익을 받는게 아닌가 항상 의식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 회사엔 성차별이 존재했습니다. 비록 다른 회사보다 심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유능한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고 큰 기회를 잡기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PD들이 다만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앞질러갈 때는 정말 화가 났습니다. 물론 강하게 반발해봤지만 사람들은 그런 차별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더군요. 그 후로 애사심도 없어지고, 주위 사람들을 조소적으로 대했습니다. 업무의욕도 떨어지니까 제가 맡은 프로의 시청률도 엉망이 되고 스탭들의 기강도 무너져 잦은 방송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결국 해고가 되고 만거죠.
Q. 만일 지금 직장에서 가까운 여성동료가 이PD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조언하시겠습니까?
A. 그냥 묵묵히 지나간다면 이런 차별은 계속 반복유지될 것이기 때문에 짚어야할 것은 반드시 짚어야 한다고 얘기하겠습니다. 즉 그녀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성과와 주위의 평가에 대해 상급자들에게 정확히 설명하고, 그 분들의 입장을 들어보라고 하겠습니다. 혹시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객관적 평가에 의한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차이를 성의 차별로 대체하는 것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므로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충분히 상호 입장을 피력한 결과, 회사의 결정이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정중하게, 절대로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시정을 요구합니다. 설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해도 회사측에 부당성을 경고해놓는 것이 다음을 위해서나, 다른 여성동료들을 위해서 중요합니다. (혹시 대화를 회피한다면 어떻게 하지요?) 그때가서 그 빌어먹을 회사를 때려치워도 늦지 않겠지요.
Q. 성차별의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하라는 조언인 것 같군요. 좋습니다. 이PD가 앞으로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하고 바라는게 있습니까? 혹시 전직을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A. 아직 젊기 때문에 이 일을 원없이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습니다. 일에 집중하기도 쉽지 않은데 주변에서 신경 거슬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감을 회복한 후에 다른 일을 생각해볼까 합니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Q. 지금 이 직장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A.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지만, 더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다른 직장에 간다해도 일은 비슷할 것이고 정규직으로 간다면 전직장에서 있었던 일과 비슷한 현상들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요. 일단 이 직장에서 시작해서, 차분하게 성과를 낸 후에 심리적으로도 충분히 안정되면, 그때가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Q. 이 직장에서 이PD가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요?
A. 사실은 얼마전부터 몇몇 PD들이 모여서 방송대상을 목표로 좋은 기획을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아직 내키질 않아 생각해보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적극적으로 해보겠습니다. 그동안 혼자 일하는 스타일이었는데 팀워크로 공동작업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테니까요.
Q. 그렇군요. 잘됐습니다. 팀워크 작업의 필요성도 느끼고,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나 현명한 문제해결 방식에 관한 경험도 많으니 그 팀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 과정에 생겨날 수 있는 문제는 또 없을까요?
A. 솔직히 지금은 누그러졌지만 제 괄괄하고 공격적인 성격이 또 언제 튀어나올지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또다시 안좋은 추억이 반복되지 않겠어요. 또 열심히 해도 안되는 일이 얼마든지 있으니 공동제작의 결과가 기대에 못미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열심히 할 수록 실망도 큰 법이니까요.
Q. 자기 성격을 잘 아는 것만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적어질 텐데 혹시 그동안 자신의 성격을 잘 통제했던 경험은 없나요?
A. 대학다닐 때 써클에서 같이 컸던 친구들이 후배 환영식을 할 때 저를 소개하며, 화끈하지만 뒤끝이 없는 여자라고 해서 모두 웃은 적이 있습니다. 간혹 써클활동을 하다보면 제 성격이 튀어나올 때가 있지만 그때 저를 알았던 후배들은 잘 받아주었지요. 저도 그 평판대로 뒤끝이 없도록 먼저 말걸고 사과하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그후론 화도 줄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유지되도록 주의하게 되더군요.
Q. 그렇군요. 이 회사에서도 좋은 평판을 가질 수 있도록 자기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시지요?
A. 그게 좋겠군요. 나를 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리겠습니다. 제가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미리 알려서 주위 사람들과 관계가 나빠질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줄여놓겠습니다. 같은 팀들에게는 혹시 내게 조언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부탁한다고 얘기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조언을 깊이 심사숙고해서 받아들여야겠지요.
Q. 아까 공동작업의 결과가 기대에 못미치면 크게 실망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하셨습니다. 상을 꼭 받아야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지요?
A. 꼭 그런 건 아니겠지요. 상을 타면 더 기쁘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과정의 기쁨, 즉 서로 최선을 다하고 협동하는 경험만 갖게 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우리는 좋은 추억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면 작업하면서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어서 인간적으로 친해져야 하겠군요. 팀워크를 유지하는 근본은 공동목표를 깊이 공유하고, 최선을 다하는 각자의 태도, 그리고 이를 잘 지휘관리하는 리더의 역할 아닐까요? 그것만 잘 지켜지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고, 최소한 상을 못타면 어떻하지라는 걱정은 안할 것입니다.
Q. 자 이제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A. 전직장에서 실패한 후에 지금까지 방황했습니다. 뭘해야 좋을지도 모르겠고, 나의 잘잘못도 객관적으로 정리를 못한 채 그저 마음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내 일에 전념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일을 시작하는데는 지금 회사도 썩 나쁘지 않고 적당한 기회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없다면 좀 기다려보지요. 뭐. ) 팀워크를 이루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볼 생각입니다. 내 경험과 의지가 우리 팀에 도움이 된다면 큰 힘을 얻게 되겠지요. 사람들한테 내 성격과 생각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피드백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서 스스로 지켜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슬슬 움직여볼까요. 코칭을 받고 나니까 머릿속에 안개같은 것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고맙습니다.
Q. 감사합니다. 조만간 좋은 프로를 볼 수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