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대학시절 문학을 얘기하던 친구들로부터 였다. 기자라면 정권의 꼬붕으로 도매금에 넘기던 시절이었다. 친구들이 김훈을 말하면서 그가 한국일보기자라는 것까지 얘기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기자라는 직업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기자가 돼야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은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기자로 십수년을 보냈던 것은 전적으로 유관영씨가 전자신문에 육군병장으로 곧 제대할 영문학과 졸업생을 소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명한 문학기행의 필자였다. 어깨너머로 읽은 그의 기행문은 미려했다. 학부시절 수업시간을 빼먹고 나는 과사무실에서 소설책을 읽으며 교실에 들어간 친구들을 기다렸다. 그렇게 읽었던 소설과 그것을 쓴 사람들을, 내가 한번도 가본적 없는 땅과 묶어서 그는 신문 한면에 털어 썼다. 스마트하게 잘생긴 얼굴과 벌써 약간 희끗하던 앞머리, 그리고 그의 날카로운 문체를 나는 좋아했다.
신문사를 떠돌면서 가끔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일보에도 일년 있었지만 그때는 시사저널 편집장으로 있던가 그랬다. 성격이 부딪힌다고 했다. 신경질이 심하다고도 했다. 얼마 못갈 거라고 다들 그랬다. 이례적으로 나는 한마디도 코멘트하지 않은 채 그 사람은 그게 맞아라고 단정해 말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그는 웬지 그래야 맞는 것 같았다. 섣부름이여, 경박함이여, 글쓰는 자에 대한 치졸한 단정이여.
얼마전부터 웬만한 그의 책은 줄거리도 챙기지 않고 사들였다. <자전거..><아들아...><밥벌이의...> 등의 잡문 모음은 공연히 샀다 싶었지만 <칼의 노래>는 좋았다. 앞의 책들은 여유롭지 못하고 뭔가 공연히 날이 서있는 느낌이다. 글을 쓰는 자가 항상 날카로우면 글읽는 자들이 힘들어 한다. 글쓰는 자라면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남다르기를 기대하지만, 과유불급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사람들을 내내 피곤하게 만들어선 못쓴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모순투성이요, 어디다 하소연할데도 없고, 누구라 예외일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그런 세상에 몰려가며 살고싶은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제멋에 지친 억지가 , <아들아...>는 어울리지 않는 비분강개(그렇게 하지 않아도 혼자 알아서 하면 그뿐인 것을), <밥벌이...>는 다 아는 짜증이 담겨있다. 두번 들쳐보지 않았다.
<칼의 노래>를 다행히 먼저 샀기에 다른 책들도 사게 되었고, 오늘 <현의 노래>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인간은 복잡하다. 별것도 아닌 두뇌는 끊임없이 뭔가를 생각하고 사고를 유발시킨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주변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간섭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각각의 삶은 서로 비슷하지도 않다. 머리수만큼 다양하다. 한 인간이 있다. 삼척동자도 그 사람이 누구인지, 얼마나 훌륭한지, 어떻게 죽었고, 무슨 말을 유언으로 남겼는지 다 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얼마나 많이 아는 걸까, 과연 정확하게 알고는 있는 것일까?
한 인간을 농축시켜 하나의 오브제로 만든다면? 김훈은 인간을 바짝 말려 미이라로 만드는 실험을 한다. 어디 너의 마지막 남은 게 무엇인가 보자. 누군가는 아홉켤레 구두로 남더라고 했지만, 김훈은 교활하게 이순신이란 최고의 유명인을 골라 <그 사람은 무엇으로 남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메마른 조소를 던진다. 곧이어 그는 이순신의 이름 대신 너를 집어넣고, 나를 집어넣어보자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남을 것인가.
<황산벌> 계백의 처가 남긴 유명한 대사.<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뒈지는 거다> 이순신도 이름때문에 죽었다. 그도 한때는 살고 싶었을 게다. 전쟁도 버리고, 승리도 패배도 다 던져버리고 송장썩는 산골에라도 숨어 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훈은 가장 먼저 이순신으로부터 삶에의 집착을 송두리째 걷어냈다. 매일 베어 죽이고, 물에 넣어 죽여야 하는 장수에게 자기 삶의 집착이란 가당치 않다. 그래서 그는 자기 수발을 들던 젓국내나는 여인이나, 도망친 병졸이나, 잡힌 포로나 똑같이 <오늘 베었다>라는 단어만 일기에 적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베고 나면 똑같은 것. 울고 짜고 고민하고 용서하는 것이 오히려 헛될 뿐이다.
<칼의 노래>에는 칼, 즉 무(武)로만 남은 이순신의 미이라가 있었다. '무'란 곧 죽음의 미학이요, 또 그것은 삶에 대한 추접한 집착을 잘라내는 단(斷)이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생계와 사계를 구분짓는 철학이다. 문처럼 갈래많고 복잡하지 않다. 그 단어 하나로 더 이상 설명할 필요없는, 아주 희귀한 말이다. 이순신은 그렇게 생을 건너뛰어 무로 남았기에 오늘까지 명료하게 기억되고 있다. 숱한 일화와 미담은 그 후에 무지렁이 백성들과, 족제비같은 관변학자들이 붙인 허접스레기일 뿐이다.
<현의 노래>는 악(樂)으로 남은 우륵의 미이라 만들기다. 임진왜란은 재미없었는데 가야는 재미있다. 이순신의 캐릭터를 맡은 이사부의 연기도 괜찮았다. 김훈은 그런 캐릭터가 스스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이순신보다 이사부가 훨씬 잘 마른 미이라다. 악이 무보다 약할 리 없건만, 글로 써놓으니 한없이 유약하고 옹졸하다. 우륵이 칼 든자와 댓거리할 때 정말 내질러야 할 이야기는 속옹알이로 처리된다. 무인들은 악사를 베어봐야 득이 없다 하며 그를 살려둔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힘이 없다. 소리는 살아있을 때 뿐. 몸에서 나는 것도 아니요, 자연에 있는 것도 아닌. 그저 몸을 빌리고, 자연의 바람에 비벼 내는 것. 그자체로 공허하다. 이래놓으니 힘있을 턱이 없다. 애당초 김훈은 악을 이야기하되 악의 힘과 역할을 강조하는 일은 부질없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악을 다른 매체로 표현하기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김훈의 필력으로도 역부족이다.
<현의 노래>에서도 여전히 생과 사의 긴장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여전히 무감각하게 처리된다. 순장 전날 밤 도망친 지밀시녀 아라는 태자가 묻히던 날 등떠밀림으로 따라 묻히고, 그 뒤에서 남편 니문은 금을 뜯는다. 첫날밤의 관능에대한 기억도, 잦은 오줌줄기같은 세찬 삶의 집착도, 이별을 슬퍼하는 눈물도 보이지 않는다. 살아난 자는 그렇게 죽을 뿐이다. 밀통하던 적장에게 목숨을 구하던 야장 여로와 그의 아들 여적도 <병장기는 손에 쥐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이사부에게 베임을 당했다. 왕도 죽고, 태자도 죽고, 그의 못난 아들도 멸(滅)했다. 같은 시간에 일만 이천오백의 포로뒤에 일만 이천오백의 병졸이 서서 군령 하나에 일만이천오백이 사의 경계로 들어갔다. 그들의 송장무더기 밑에는 병장기가 깊이 묻혀졌다. 마치 왕의 시신이 덩어리쇠위에 놓여지듯이. 쇠는 곧 힘이요, 욕망이며, 무기(武)와 연장이었다. 평생을 마음에 품고, 손에 들며 좇았던 그 물건위에 인간들의 시체가 놓여진다는 것은 흥미로운 설정이다.
김훈은 <인간이 무엇으로 남는다>라는 것 자체를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듯하다. 뺄 것 빼고, 날릴 것은 날리고, 말릴 것은 모두 말려 이게 남았는데, 도대체 이것때문에 산다는 것인가. 이런 투로 말한다. 인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죽음을 죽이고 또 죽여, 이젠 죽고 죽인다는 게 더이상 사건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니까 그 나머지도 비슬비슬 힘을 잃는다. 소리도 안남고, 칼도 더이상 날이 서있지 않다. <멸>이다. 생과 사가 아니라 별빛처럼 명하다 멸할 뿐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김훈이나 나나 명멸하는 것은 알바 아니다. 그저 터럭 한끝도 안되는 지금의 시간이 소중할 뿐이다. 아는 것과 그렇게 사는 것의 차이는 이와같다. 고덕과 법사들이 떼를 지어 칼을 두드리고 목탁을 치며 지행일치를 목젖앞에 들이댄다 해도 나는 구분해서 따로 갈 생각이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