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집간 누이동생이 친정나들이를 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두 아들을 돌봐야 하는 그녀는 교사일까지 하고 있다. 일년전에 대기업을 퇴직한 남편은 아직도 일자리를 잡지 못해 걱정이다. 몸이 몇달전에 비해 부쩍 불어나 그것도 짜증스런 일이라고 한다.

"정신도 하나 없고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해요. 남편은 되는 일은 없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매일 밤늦게 들어오고, 시부모님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짜증을 부리시고, 학교일은 바빠 죽겠어요. 살은 왜 이렇게 찌는지 원."

Q. 그걸 해결하면 다른 일들이 잘 풀릴 것 같은 가장 큰 불만은 무엇입니까.

A. 남편이 하루빨리 일자리를 잡는것 아니겠어요? 일단 경제적으로 제 부담이 너무 크고, 무엇보다 집안식구들간의 갈등이 자꾸 생겨요. 시어머니도 아이를 봐주면서 생색을 내시고, 저는 그러면 안되는거 아냐하는 오기가 자꾸 들어요. 남편에게 짜증은 기본이구요. 남편도 할 말이 없으니까 자꾸 밖으로 도는 것 같아요. 어떨때는 불쌍하기도 하지요.

Q. 집안이 안정되지 않고 또 언제 안정될 지 감을 잡기 어려운 불안감이 강하군요. 그런데 집안의 안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A. 저는 갈등이 싫습니다. 서로 각자의 역할에 따라 즐겁게 살고 서로 위해주면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제게 너무 많은 부담이 몰려요. 다른 식구들은 정말 무책임하단 생각도 들구요. 어쨌든 저는 제 시간을 좀 가졌으면해요. 새벽에 학교가서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오고 저녁밥해서 치우고나면 애들 봐주랴, 집안 청소하려, 내일 수업준비 좀 하다보면 파김치처럼 녹초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도 하고, 대학원도 다니는데 나는 끝도없이 가사일에만 매달려야 하니까 답답하지요.

Q. 당신에게 매일 한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A.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매일 한시간이 날 수가 있나요? 어림없을 것 같은데.

Q.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만약 당신이 아파서 병원에 매일 다녀야한다면 시간을 낼 거 아닙니까?

A. 그거야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시어머니한테 저녁좀 해달라, 남편한테 애들 봐달라 하기가 심난합니다. 불만도 대단할 것이고, 남편은 들은 척도 안할 것 같은데요.

Q. 글쎄요. 운동을 한다는 것이 우리 가족 전체에 어떤 의미라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해봐야 안통한다는 얘긴가요.

A. 특히 남편하고는 이제까지 제가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해대고, 남편은 못들은척하거나 듣고도 나중에 딴소리를 하는 식이었습니다. 제가 사실 바라는 것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서로 도울 것은 무엇인지 좀 얘기가 통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일만 죽어라 하고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니 힘이 들지요. 제가 운동을 그냥 시작하면 될 일을 왜 걱정하고 있냐면, 어차피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펑크를 내면 내가 뒷감당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렇습니다. 사고 쳐봐야 저만 더 고생인걸요.

Q. 가정의 행복은 공유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한사람이 희생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 아닙니다. 미래를 공유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이 가정아닙니까? 그 사실을 안다면 망서릴 이유가 없겠지요.

A. 그렇다면 어떻게 얘기를 꺼내는게 좋겠습니까? 제가 워낙 말주변도 없고 남편에게 감정이 많아서 정상적으로 대화가 잘 안되거든요.

Q. 이메일로 해보시지요. 오히려 새로운 발견이 될 수도 있을겁니다. 심사숙고해서 올바른 결론을 낼 수 있도록 해봅시다. 가능하면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보시구요. 남편에게 당신의 가사부담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시고 그 중 일부를 분담하는 것이 가장으로서 꼭 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설득해보세요. 향후의 계획에 대해 서로 대략적인 원칙에 합의를 보았다면 훨씬 좋은 분위기에서 만나 대화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A. 그렇게 하겠습니다. 처음엔 모든게 뒤죽박죽이었는데 하나씩 풀어보니까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군요. 남편과의 의사소통문제가 가장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대화만 잘 되면 오해와 갈등도 없어지고 경제적 문제야 제가 당분간 맡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책임감이 더 생기겠지요. 물론 새로운 대화방식도 잘 될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만, 시도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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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대중반의 주부 강씨는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남편때문에 걱정이다. 미국박사인 남편은 환경관련 연구소의 중역을 맡고 있고 주위의 촉망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평생 가치있는 일을 못한다는 거에요. 공부해서 학문적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거죠. 지금처럼 공무원들 정책 보조만하다간 아무것도 안된다면서 초조해하거든요. 이해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게 어디 간단한 문제인가요. 너무 쉽고 단호하게 결정하려드니까 불안해요."

Q. 남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A. 유학이후 십여년동안 정부부처에 파견을 나가 환경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했어요.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장을 맡으신 분이 전혀 행정경험이 없어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써드려야 한데요. 최근에 그분께 자기 생각을 말씀드리고 빠른 시일내에 정리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동안의 행정실무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연구집필작업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지요.

Q. 이해는 하신다고 했는데 남편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저축한 돈이 있고 유산으로 물려받은 건물이 있으니 특별히 경제적인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아무 수입없이 지내기는 무척 불안하지요. 애들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씀씀이가 커질텐데. 그리고 젊은 사람이 아무 직업없이 집안에 있는다는 것도 남들 눈을 의식하게 되구요. 무엇보다 남편의 변덕스런 성격과 유약함때문에 걱정이에요.

Q. 남편께서 그래도 그런 결정을 하셨다면 무슨 결심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A. 그 양반 성격이 워낙 물러놔서 아침에는 펄펄 나르다가 저녁에 무슨 얘기를 들으면 침맞은 지네처럼 푹 쳐져 들어오곤합니다. 제가 옆에서 챙기느라 얼마나 마음고생하나 몰라요. 차라리 단호하게 결심을 했으면 뭔가 결론이 나겠구나 하겠는데 내일이면 후회하고 좌절할까봐 걱정입니다.

Q. 그렇다면 남편과 그런 장래의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결론을 내고 싶은 거군요?

A. 그렇습니다. 남편이 단호한 결심과 구체적 계획이 있다면 누가 말리겠어요?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현실에 충실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좋습니다. 남편은 사모님께서 걱정하시는 문제, 즉 가계운영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판, 향후 직업선택 등에 관해 충분한 계획을 세우셨나요?

A. 글쎄요. 아직은 구체적인 얘길 못들었습니다. 요즘 시간날때 서너번 기회가 있었는데 얘기가 오래 지속되진 않았습니다.

Q. 매우 중요한 얘기일텐데 오래 지속되지 못한 이유라도?

A. 제가 보기엔 논리의 비약이 있거나 허황된 대목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큰 얘기보다 세부적인 각론으로 빠지게 됩니다. 특히 성격에 관한 문제가 나오면 과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와서 남편과 말다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편도 그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 것 같고 혼자 고민만 하고 있는 듯 합니다.

Q. 자세한 얘긴 아직 나누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두분의 가장 큰 이견은 어떤 것입니까?

A. 남편도 오랜 기간동안 고민했던 문제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을 겁니다. 더구나 남들처럼 정리해고를 당하는 것도 아니고 한참 잘나간다는 시점에 내린 생각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분명할 것입니다. 그의 능력도 믿구요. 그렇지만 일이년 뒤가 아닌 십년뒤의 모습을 저는 그려지지가 않아요. 어떤 모습의 삶을 살게 될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그는 자기만 믿으라하는데 마음 턱 놓고 믿기가 어렵거든요.

Q. 불확실한 미래때문이군요. 그게 없으면 아무래도 불안하시겠지요. 남편께 원하는 것도 그런 구체적인 계획이겠네요.

A. 그렇습니다.

Q. 만약 사모님이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어떻게 해주시겠습니까?

A. 아마 아내가 하는 걱정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서 그에 대한 자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미심쩍거나 불확실한 대목이 있으면 함께 상의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내도 남편의 비전과 계획을 공유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겠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족 회의를 열어서 아빠의 뜻과 엄마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앞으로 변화된 상황에서 우리 가족들이 아빠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할 생각입니다.

Q. 정말 민주적인 가정이군요. 부럽습니다. 남편께서도 그렇게 하시면 좋겠는데 그분 입장에선 그게 쉬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남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본인도 생각이 많겠지요. 가족도 가족이지만 우선은 자신의 문제일테니까요.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 단계는 아닌 것 같고, 마땅히 상의할 사람도 없을 거구요. 집에서는 걱정만하니까 심난할 겁니다. 뭔가 돌파구는 필요한데 답답하겠지요. 아마 아내인 제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고 격려해주길 바라고 있을 거에요.

Q. 남편에게 자기 생각과 구상, 그리고 아내가 걱정하는 것들에 대한 의견등을 쭉 정리해서 함께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십시오. 물론 절대 과거 얘기나 남편을 주눅들게 만드는 얘기는 안한다, 그리고 남편의 설명 중간에 끼어드는 것도 하지 않는다. 충분히 듣고 협의하는 자세로 이야기 한다 등의 원칙을 세워보시지요.

A. 일단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끄집어놓고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걱정과 고민도 미리 충분히 전달해서 남편에게 대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군요. 무엇보다 남편과 아내가 뜻이 같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러자면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알고나서 시작해야 하겠지요.

Q. 이 건이 물론 남편의 문제에서 출발한 것은 분명하지만,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묻고, 남편은 그 질문에 대답만 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공감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모님께선 어떤 꿈을 갖고 계셨습니까? 이번 일이 없었다면 십년후에 어떤 삶을 그리고 계셨는지요?

A. 그동안 아이 둘을 키우느라 직업도 못가졌고,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4년후엔 다 대학에 가고, 그러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해보려고 했지요. 공부도 다시 하고, 조그만 사업도 했으면 싶었습니다. 십년후엔 전원주택에서 평온한 삶을 살면서 취미인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했습니다. 남편이 연구와 집필을 하겠다면... 글쎄요. 이제까지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던 그 시간들이 좀 더 연장되지 않겠나 싶네요.

Q. 사모님의 계획에 따르면 남편께선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A. 내 생각이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름대로 보람이 없지 않으니까 십년후에 은퇴해서 연구하면 안되나 싶습니다. 어차피 본인 얘기로는 교수가 되겠다든가 하는 직업차원의 고민이 아니므로 공부만 한다면 지금 하나 그때 하나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지금 꼭해야 하는지, 내 스케줄에 변동은 없을 것인지 그것도 꼭 얘기해봐야 겠네요.

Q. 그렇게 하시는게 좋겠군요. 자 그럼 한번 정리를 해볼까요?

A. 남편의 갑작스런 노선 변경에 사실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계획을 충분히 경청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문제점만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나도 걱정되고, 남편도 답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입장을 바꿔보니 알겠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구체적인 계획과 의지에 따른 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내 생각과 걱정을 충분히 전달해서 그가 구체적인 계획과 대안을 세울 수 있게 하고 함께 현안들을 협의해나가겠습니다. 부부간이라 대화가 감정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몇가지 원칙들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제 스케줄과 비전에 대해서도 얘기해서 두 사람이 충분히 서로의 삶을 공유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Q. 오늘 코칭에 대해 느낀 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가정사를 얘기할 때 많이 망서리게 됩니다. 속 얘기를 다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코칭을 받긴 했지만 정작 집에 가서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실현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가정사의 특수성을 빼고 이성적인 코칭, 즉 옳은 얘기만 한다면, 그리고 부부 중 한사람의 의견에 치우친다면 효과가 반감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잘 들어보고 나서 얘기하자는 원칙은 꼭 지키겠습니다.  

Q. 좋은 지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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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십수년동안 국내에서 엄청나게 팔렸다는 얘길 들어왔다. 무식하게도 나는 <누가 내 치즈~>류의 약간 청소년 취향인 책이 아니겠느냐는 터무니없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분명히 어떤 꼬마가 호밀밭에서 망을 보고 있는 게 분명한데 뭣때문에 그러고 있는지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보리밭이나 수수밭, 또는 담배밭이면 문둥이나 바람난 동네 처녀총각, 또아리튼 구렁이를 연상하게 되는데 호밀밭엔 뭐가 있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요즘 책 좀 읽는다고 어디 가서 얘기하는데(자꾸 요즘 뭐하냐고 묻길래) 그럼 호밀밭의 파수꾼은 읽어보았냐고 하면 낭패를 볼 것 같아 몇번 망서리다 구매버튼을 꾹 눌렀다. 끝까지 읽느라 정말 고생했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이런 류의 책은 딱 질색이다. 홀든 콜필드라는 겉으로 까져서 공부도 연거푸 낙제만 하는 꼴통 녀석이 학교에서 도망쳐 2박3일동안 방황하는 얘기다. 물론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가 느끼는 주위 커뮤니티에 대한 환멸과 고독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마음먹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고(정작 홀든 콜필드라는 주인공은 자기 행동을 기억조차 못하는데) 디테일하게 눌러서 묘사하기엔 적당한 소재는 아닌 것 같다. 즉 최소한 십년정도의 스케일을 갖는 성장소설의 플롯을 이박삼일로 압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조차 느껴진다. 영미문학에 재미를 들여볼까 싶다가도 이런 류를 만나면 화들짝 놀라서 집어치우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앞 단락에서 막말을 했지만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의구심 같은 것을 느낀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고 무슨 생각들을 하는걸까. 그들도 나와 같다면 결코 그렇게 많은 책이 팔릴 리가 없는데. 그들의 생각을 내가 도무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인가. 뭔가 나와 그들을 구분하는 철벽이 존재하고 그 너머에 그들만의 세계관이 따로 있는걸까. 심오하고 방대한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면 차라리 속이나 편하다. <호밀밭~> 팬클럽이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맨 마지막을 읽으면서 괄호안에 시니컬한 독후감 십자평을 써넣어본다. '사실 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나는 알고 있었다. 넌 아무 생각도 없는 녀석이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네 이야기를 들은 걸 더 후회하고 있다. 그것도 어찌어찌 다 읽고 난 뒤에 그런 얘기를 하는 네 녀석이 얄미워 죽겠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희한한 일이다. 네 이야기를 쭉 들어온 나로서는 네가 그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같지 않은 편견과 혐오를 품고 있었는지 알고 있다.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는데 이제와서 보고싶다니.) 정말 웃긴 일이다. (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진즉 알았으면 좋았을 대목. 변태 앤톨리니 선생이 책상으로 가서 앉지도 않고 그냥 선채로 종이에 뭔가를 써왔는데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쓴 글이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지 일찍 알았더라면 내 인생의 십년은 벌었을 터인데. 아깝다. 어차피 지금은 성숙 여부를 떠나 어떤 명분에 얼마 안 남은 목숨을 바칠 꿈도 꾸지 않기 때문에 이 대목을 읽고 깨달음이 크지 않다.

덜 떨어진 오빠와 깍쟁이 여동생 피비가 주고 받는 대화. "너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 이라는 노래 알지? 내가 되고 싶은 건...""그 노래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거잖아.""그런 것 쯤은 나도 알고 있어.""그렇지만 피비가 옳았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나다면'이 맞다 사실 난 그 시를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나봐.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있어. 내가 할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이 책을 덮으면서 <내 인생의 가장 길었던 하루>를 생각해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처음엔 이런 저런 기억들의 비늘을 무심코 쫓아갔지만,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숱한 날들중에 단 하루도 아침부터 밤까지 줄곧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다 쥐어뜯고 급기야는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바람에 드러눕기 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기억을 남길 작정인가. 마지막 내뱉는 말이란게 고작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이어야 옳겠나. 어쩌겠나. 내 머리의 용량이 그만한데다, 압축 알고리즘도 형편없이 원시적이다. 그탓에 5초짜리 클립들만 대충 보관하고 있을 뿐, 하루분량의 다큐멘터리는 저장할 엄두도 못내는가 보다.  

어제 친구 구도완을 만났다. 남자들의 전반생과 후반생을 비교했다. 전반생엔 시간도 많은데 뭘 그렇게 빨리 이루려고 서둘렀는지. 후반생엔 언제 멈출지 모르는데 뭘 그렇게 망서리고 우물쭈물하는 건지. 전반생이 속세가 원하는 <결과물>과 <스피드>에 집착했다면 후반생은 모름지기 자기 몸에 맞는 <과정>과 죽을 때까지 <지속가능>한 것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얘길 하고 있는데 그 친구 마누라의 끌탕이 쉬지 않는다. 충동적이며 도발적이고 비타협적이며 무책임한데다 유치찬란한 장밋빛이기 까지 하단다.  영화<올드보이>의 십자평이 떠올랐다.그러니까 남자는 늙어도(올드) 애(보이)란다.  

이 글 머리에 있는 그림은 고호의 수채화다. 그답지 않게 깔끔하고 정성스럽다. 스텔라씨의 곳간에서 베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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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뚱땡이라는 별명을 가진 30대 중반의 세일즈맨 김종백과장은 비대한 몸때문에 보통 스트레스를 받는게 아니다. 대다수의 고객들이 김과장의 체중을 주제로 얘기를 시작한다. 자기관리를 못하는 전형적인 무능인간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나는 자주 출장 가기 때문에 올바른 식생활과 운동습관을 갖지 못했다. 옷이 맞지 않아서 문제다. 뚱뚱한 판매원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정말 안좋아 보인다. 나는 항상 체중관리에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하다. 특히 고객을 할 때는 영 기분이 안좋다."

Q.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신게 언제 부터입니까?

A. 원래 이런 몸은 아니었습니다. 결혼한 후에도 약간 통통한 정도였지 뚱뚱하진 않았습니다. 5년전 영업부로 들어오면서 잦은 접대와 출장때문에 체중관리를 못했습니다. 그렇게 몇년 지났더니 몸이 이렇게 되고 말았어요.

Q. 비만때문에 많이 불편하신가요? 아픈곳은 없으신지요?

A. 아무래도 불편하지요. 옷도 안맞고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찹니다. 하지만 일상생활하는데 그렇게 큰 지장은 없어요. 아직은 아픈 곳도 없지만 그래도 이젠 성인병도 조심해야잖아요.

Q. 당장 심각한 문제는 없는데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으시는 것 같습니다.

A. 그럼요. 주위 사람들이 살찐 사람 보길 짐승처럼 대하잖아요. 게으르고 자기관리도 안되는 무능력하고 욕심사나운 인간으로 단정합니다. 그래서 실적이 안좋으면 내가 살쪄서 사람들이 날 우습게 보는건가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Q. 체중을 빼려고 시도는 해보셨나요?

A. 정말 미치겠는게 아무리 식사를 줄이고 운동을 해도 별 효과가 없는거에요. 하루에도 몇번씩 체중계에 올라가보지만 고생한 것에 비해 턱없이 성과가 안나타나니 원.

Q. 지금 김과장님은 시합을 앞둔 권투선수처럼 계체량을 통과해야하는 의무는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본인의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받는 게 아닐까요? 오늘 우리 대화의 목표를 잡아봅시다.

A. 코치 말씀대로 저는 그런 불만때문에 자신감을 많이 잃은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대인관계도 원만해지고 짜증도 안낼 수 있겠습니까?

Q. 우선 살을 빼겠다는 의지와 일정기간동안 어떻게 빼야겠다는 계획은 있는거죠?

A. 물론입니다. 잘 안빠져서 그렇지 매일 운동과 새로운 식습관을 꼭 지킬 겁니다.

Q. 김과장님은 한번 한다고 결심하면 뚝심있게 관철하는 성격인가요?

A. 대체로 그렇습니다. 담배도 몇번 시도하고 실패도 했지만 결국 성공해서 지금 일년째 금연하고 있습니다.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지난번의 실패요인을 분석해서 미연에 방지하면 가능합니다.

Q. 사람들이 게으르고 자기관리를 못한다고 김과장님을 보고 있다하셨지요? 사실은 전혀 그렇지않은 것 같은데요.

A. 듣고보니 그렇군요. 그건 살찐 사람에 대한 편견에 불과합니다. 살이 찌고 마르고는 상관이 없어요. 부지런한 사람은 살찐 사람들 중에서도 많습니다. 저 역시 몸이 둔해지긴 했지만 집에서 청소도 잘하고, 회사에서도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편입니다.

Q.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도 김과장님처럼 마음만 먹으면 빈틈없이 계획을 짜고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비록 살이 쪘다고 하지만 조만간 빠질 것이 분명하고, 설사 남들보다 조금 늦게 빠진다해도 하루하루 적극적으로 살아가시는 모습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습니다.

A. 그래도 살이 미욱스럽게 찐 내 몸을 보면 금방 의기소침해집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살찐 사람보고 쑥덕거리는 걸 보면 꼭 내가 놀림감이 된다 싶어서 얼굴이 화끈거려요.

Q. 만일 살을 빼신 후에 혹시 살찐 사람을 만나면 다짜고짜 무조건 살부터 빼고 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영락없이 게으르고 절제가 안되는 인간이니까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시겠군요? 만약 따님이 그런 얘길 듣는다면 따님을 나무라시겠습니까?

A.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외모만 보고서 편견을 갖는 것은 가장 저열하고 교양없는 행동입니다. 나는 그 사람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이나 교양, 품성 등이 우선이지요. 외모까지 갖추면 금상첨화겠지만요.

Q. 혹시 주변에서 외모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하시겠습니까?

A. 외모는 선천적이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은 온전히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니까 더 중요합니다. 내면이 아름다우면 외모조차 그에 조응하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Q. 주변 사람들에게 김과장님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더욱 격려해줄 것 같은데요.

A. 살빼는 것도 요즘엔 장난이 아니에요. 식이요법도 정말 다양하고 운동도 부위따라 비만정도에 따라 체질에 따라 굉장히 다릅니다. 제가 조사하고 체험해본 다이어트 비법과 운동방법에 대해 사내 인터넷에 올려놓을까 합니다. 그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엔 마른 사람들이 더 수선을 떱니다. 주위에 비슷한 고민을 갖고 계신분들에게 소개도 할 수 있을 거구요.

Q.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입니다. 저 역시 사람마다 개성이 있듯이 몸이나 얼굴도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 남의 눈을 의식해서 유행에 따라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뚱뚱해도 자신있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다들 좋아할 겁니다. 게다가 몸을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한결 멋지지 않습니까?

A.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여전히 출장과 접대가 많아서 사실은 체중관리하기가 몹시 힘듭니다. 일주일 고생했지만 하루저녁에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Q. 꼭 먹고 마시는 접대만 있는 건 아닐텐데요. 다른 방법들을 생각해봅시다. 주위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보세요.

A.  저도 건강이 안좋은 고객에겐 술과 음식보다 좋은 영화나 컨서트를 함께 가자고 합니다. 운동을 함께 하는 것도 괜찮겠군요. 골프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때문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고객분한테 제가 이런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 지켜봐달라고 양해를 구하지요. 고객 역시 살찌는 음식은 좋아하지 않을테니 접대 자리도 웰빙으로 해보겠습니다.

Q. 탁월하신 영업맨이시니 접대 아이디어도 무궁무진하군요. 이 참에 살도 빼고 영업방법도 웰빙스타일로 확 바꿔보시면 고객분들의 찬사가 장난 아닐 것 같은데요. 오늘 대화를 정리해봅시다.

A. 살을 빼는 것보다 내 몸에 대한 자신감 회복이 더 중요한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게으르고 자기관리를 하지 않는다라는 자책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운동과 식생활조절을 빠짐없이 해서 스스로 성실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하다는 자부심을 갖겠습니다. 외모만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며, 그것이 밖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습니다. 회사 직원들에게 제가 경험한 것 중에서 좋은 정보가 될만한 것들을 조목조목 정리해서 나눠줄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제 노력도 알게 되니까 일거양득이지요. 고객분들에겐 살찌고 몸에 해로운 먹고 마시기 접대보다 훨씬 건강과 교양에 좋은 새로운 접대방법을 제안하고, 요즘 제 프로그램에 대해 말씀드릴 생각입니다.

Q. 잘 될 것 같습니다. 수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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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살 짜리 딸아이 하나를 둔 정차장의 아내가 최근 암 소견을 받았다. 정밀진단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정차장은 걱정이 태산이다.

"아내는 다음주에 조직검사에 들어갑니다. 나는 그것이 직장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정말 걱정됩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것이 나의 주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아내를 돌보면서 직장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저축해둔 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Q. 정말 걱정이 크시겠군요.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A. 원래 물혹이 있었는데 갑자기 근종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아직은 초기라고 하지만 워낙 급성이라 안심할 수 없다는군요. 조직검사 결과 입원하면 집중적인 항암치료가 필요하답니다.

Q. 꼬마는 누가 돌봐줄 사람이 있습니까?

A. 어머니께서 당분간 집에 와 돌봐주시기로 했습니다. 사실 어머니도 편치않아서 오래 봐줄 형편은 안됩니다. 어쨌든 급한 불부터 꺼야하니까요.

Q. 회사에는 얘기하셨나요? 간호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여유가 있겠습니까?

A. 요새 회사가 어렵잖습니까.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그렇게 여유를 주기가 제 생각해도 힘듭니다. 더구나 이번에 제가 부장진급을 앞두고 있어서 사실 실적이나 승진시험 등에 신경을 많이 써야할 때입니다. 저한테는 매우 중요한 타이밍인데.  집사람은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픈 사람이 있는데 할수없죠. 하지만 어떻게 두가지 모두 잘 해낼 수는 없을까요?

Q. 부인의 건강도 잘 돌보고, 직장 일도 문제없이 해내고 싶은 것이 목표군요? 두가지 일을 병행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요? 

A. 일단 낮시간에 누가 돌볼 것인가, 만일 회사일때문에 늦어지면 저녁때까지 누군가 있어야할텐데. 퇴원후엔 병원 데리고 다니는 것도 일입니다. 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밥을 챙겨주는 것도 그렇구요. 그러면서 회사일을 하기엔 역부족입니다.

Q. 잠깐만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잠시 유보하셔야 합니다. 정차장은 당황하셔서 그런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병인을 두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이는 유치원에 잘 얘기해서 각별하게 신경써달라고 부탁해보시지요. 누군가 당신의 시간을 덜어줘야 할 것 같은데요.

A. 천상 그래야겠지요. 가만 있어보자.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리스트업해봐야겠군요. 처형과 처남댁이 있고, 올캐도 있으니 벌써 세사람이나 있습니다. 일주일에 토, 일은 제가 전적으로 맡고, 그러면 이틀만 간병인을 쓰면 되겠네요. 일주일에 하루는 시간조절을 해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호사에게 일상적으로 해야하는 일을 메모해서 벽에 붙여놓고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 알아보고 오후까지 있을 수 있도록 부탁하겠습니다.

Q. 아무래도 회사쪽에서 양해를 해준다면 좋겠는데.

A. 쉽진 않겠지만 웃분들과 직원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겠습니다. 간부회의가 있는 날만 빼고 출퇴근을 일찍 하겠다고 말입니다. 직원들과 팀워크를 더 강화해서 시간소모를 줄이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가급적 주말엔 접대일도 삼가하겠다고 하겠습니다. 그대신 꼭 해야하는 일은 예전보다 더 바짝 긴장해서 실수없이 해야하겠지요. 집안 일 때문에 회사를 소홀히 한다는 인식이 들게 해선 안되니까요.

Q. 예전보다 힘드실테지만 열심히 해보세요. 이밖에도 혹시 문제가 될만한 일이 없겠습니까?

A. 물론 집사람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 다른 사람은 다들 잘 사는데. 이런 일만 없다면 정말 승진도 되고 아무 걱정 없을텐데. 가끔 지치거나 회사일이 잘 안풀리면 그런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해집니다. 그리고 여태 일해도 병원비와 간병인을 충분히 쓸 여유돈조차 없이 살고 있다는게 한심하단 생각이 듭니다.

Q.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부인이 아니라 정차장님이 몸져 누워있다면. 그리고 부인께서 낙심천만해서 그런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땐 돈벌 사람도 없고 승진준비는 꿈도 못꿀텐데요. 돈을 못모았다고 자책하기 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보험도 들어놓지 않은 재난대비 무계획이 더 문제 아닐까요? 

A. 제가 쓰러졌다면 큰 일이지요. 그나마 지금은 제가 건강하니까 현명하게 판단해서 성실하게 생활한다면 힘들어도 충분히 해낼 수는 있을 겁니다. 돈을 조금만 절약해서 보험을 들어두었다면 이럴 때 덜 당황했을 것 같아요. 반성합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막막해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내 건강도 돌보고 집안일도 더 신경쓰겠습니다. 회사 일도 더 효율적으로 챙길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Q. 대부분의 고민은 감정적으로 격앙돼있거나, 전혀 경험이 없는 일을 당했거나, 일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못매기거나  그밖의 여러가지 이유로 차분하게 생각하지 못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못찾는 것입니다. 정차장님의 경우도, 수많은 유사사례가 있기 때문에 주변의 경험자들에게 물어보면 어려움도 미리 예측할 수 있고,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대화한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볼까요?

A. 아내의 갑작스런 발병때문에 당황했고, 그랬을 때 집안과 회사일을 과연 모두 잘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났습니다. 회사일에만 집중해도 어려운데 하필 이럴 때 걱정거리가 생기다니하고 짜증도 났습니다. 일단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장 문제가 되는 시간부족을 해결할 대안들을 생각해보니 가족친지들의 도움을 적절하게 받는게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스스로 규칙을 정해서 업무가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직장동료들의 양해를 받아야겠습니다. 차제에 내 주변의 모든 생활이 새로운 상황에따라 원만하게 재편되도록 할 것입니다. 가끔씩 그래도 내가 아프지 않아서 아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러운 일 아니냐고 스스로 다짐하겠습니다.  

Q. 부인께서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정차장님같은 든든한 남편이 있으니 마음은 편하실 겁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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