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대중반의 주부 강씨는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남편때문에 걱정이다. 미국박사인 남편은 환경관련 연구소의 중역을 맡고 있고 주위의 촉망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평생 가치있는 일을 못한다는 거에요. 공부해서 학문적 업적을 쌓아야 한다는거죠. 지금처럼 공무원들 정책 보조만하다간 아무것도 안된다면서 초조해하거든요. 이해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게 어디 간단한 문제인가요. 너무 쉽고 단호하게 결정하려드니까 불안해요."
Q. 남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A. 유학이후 십여년동안 정부부처에 파견을 나가 환경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했어요. 지금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장을 맡으신 분이 전혀 행정경험이 없어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써드려야 한데요. 최근에 그분께 자기 생각을 말씀드리고 빠른 시일내에 정리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동안의 행정실무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리하는 연구집필작업을 해야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지요.
Q. 이해는 하신다고 했는데 남편의 계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저축한 돈이 있고 유산으로 물려받은 건물이 있으니 특별히 경제적인 걱정은 없지만 그래도 아무 수입없이 지내기는 무척 불안하지요. 애들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씀씀이가 커질텐데. 그리고 젊은 사람이 아무 직업없이 집안에 있는다는 것도 남들 눈을 의식하게 되구요. 무엇보다 남편의 변덕스런 성격과 유약함때문에 걱정이에요.
Q. 남편께서 그래도 그런 결정을 하셨다면 무슨 결심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A. 그 양반 성격이 워낙 물러놔서 아침에는 펄펄 나르다가 저녁에 무슨 얘기를 들으면 침맞은 지네처럼 푹 쳐져 들어오곤합니다. 제가 옆에서 챙기느라 얼마나 마음고생하나 몰라요. 차라리 단호하게 결심을 했으면 뭔가 결론이 나겠구나 하겠는데 내일이면 후회하고 좌절할까봐 걱정입니다.
Q. 그렇다면 남편과 그런 장래의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결론을 내고 싶은 거군요?
A. 그렇습니다. 남편이 단호한 결심과 구체적 계획이 있다면 누가 말리겠어요?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현실에 충실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좋습니다. 남편은 사모님께서 걱정하시는 문제, 즉 가계운영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판, 향후 직업선택 등에 관해 충분한 계획을 세우셨나요?
A. 글쎄요. 아직은 구체적인 얘길 못들었습니다. 요즘 시간날때 서너번 기회가 있었는데 얘기가 오래 지속되진 않았습니다.
Q. 매우 중요한 얘기일텐데 오래 지속되지 못한 이유라도?
A. 제가 보기엔 논리의 비약이 있거나 허황된 대목이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큰 얘기보다 세부적인 각론으로 빠지게 됩니다. 특히 성격에 관한 문제가 나오면 과거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와서 남편과 말다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남편도 그 얘기를 섣불리 꺼내지 못하는 것 같고 혼자 고민만 하고 있는 듯 합니다.
Q. 자세한 얘긴 아직 나누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두분의 가장 큰 이견은 어떤 것입니까?
A. 남편도 오랜 기간동안 고민했던 문제니까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을 겁니다. 더구나 남들처럼 정리해고를 당하는 것도 아니고 한참 잘나간다는 시점에 내린 생각이니 나름대로 이유가 분명할 것입니다. 그의 능력도 믿구요. 그렇지만 일이년 뒤가 아닌 십년뒤의 모습을 저는 그려지지가 않아요. 어떤 모습의 삶을 살게 될 것인지 불확실하다는 겁니다. 그는 자기만 믿으라하는데 마음 턱 놓고 믿기가 어렵거든요.
Q. 불확실한 미래때문이군요. 그게 없으면 아무래도 불안하시겠지요. 남편께 원하는 것도 그런 구체적인 계획이겠네요.
A. 그렇습니다.
Q. 만약 사모님이 남편이라면 아내에게 어떻게 해주시겠습니까?
A. 아마 아내가 하는 걱정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살펴서 그에 대한 자기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리하고 미심쩍거나 불확실한 대목이 있으면 함께 상의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내도 남편의 비전과 계획을 공유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겠구나 하는 마음의 준비도 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가족 회의를 열어서 아빠의 뜻과 엄마의 생각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주고, 앞으로 변화된 상황에서 우리 가족들이 아빠를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할 생각입니다.
Q. 정말 민주적인 가정이군요. 부럽습니다. 남편께서도 그렇게 하시면 좋겠는데 그분 입장에선 그게 쉬운 일이 아닌가봅니다. 남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본인도 생각이 많겠지요. 가족도 가족이지만 우선은 자신의 문제일테니까요.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도 세운 단계는 아닌 것 같고, 마땅히 상의할 사람도 없을 거구요. 집에서는 걱정만하니까 심난할 겁니다. 뭔가 돌파구는 필요한데 답답하겠지요. 아마 아내인 제가 자기 얘기를 잘 들어주고 격려해주길 바라고 있을 거에요.
Q. 남편에게 자기 생각과 구상, 그리고 아내가 걱정하는 것들에 대한 의견등을 쭉 정리해서 함께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십시오. 물론 절대 과거 얘기나 남편을 주눅들게 만드는 얘기는 안한다, 그리고 남편의 설명 중간에 끼어드는 것도 하지 않는다. 충분히 듣고 협의하는 자세로 이야기 한다 등의 원칙을 세워보시지요.
A. 일단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다 끄집어놓고 시작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걱정과 고민도 미리 충분히 전달해서 남편에게 대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해야겠군요. 무엇보다 남편과 아내가 뜻이 같아야하지 않겠어요? 그러자면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알고나서 시작해야 하겠지요.
Q. 이 건이 물론 남편의 문제에서 출발한 것은 분명하지만,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묻고, 남편은 그 질문에 대답만 하는 것처럼 되어서는 공감이 이루어지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모님께선 어떤 꿈을 갖고 계셨습니까? 이번 일이 없었다면 십년후에 어떤 삶을 그리고 계셨는지요?
A. 그동안 아이 둘을 키우느라 직업도 못가졌고,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아이들도 4년후엔 다 대학에 가고, 그러면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해보려고 했지요. 공부도 다시 하고, 조그만 사업도 했으면 싶었습니다. 십년후엔 전원주택에서 평온한 삶을 살면서 취미인 여행을 많이 다녔으면 했습니다. 남편이 연구와 집필을 하겠다면... 글쎄요. 이제까지 가족들을 위해 희생했던 그 시간들이 좀 더 연장되지 않겠나 싶네요.
Q. 사모님의 계획에 따르면 남편께선 어떻게 하는게 좋겠습니까?
A. 내 생각이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름대로 보람이 없지 않으니까 십년후에 은퇴해서 연구하면 안되나 싶습니다. 어차피 본인 얘기로는 교수가 되겠다든가 하는 직업차원의 고민이 아니므로 공부만 한다면 지금 하나 그때 하나 마찬가지 아닐까 생각합니다. 왜 지금 꼭해야 하는지, 내 스케줄에 변동은 없을 것인지 그것도 꼭 얘기해봐야 겠네요.
Q. 그렇게 하시는게 좋겠군요. 자 그럼 한번 정리를 해볼까요?
A. 남편의 갑작스런 노선 변경에 사실 당황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계획을 충분히 경청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문제점만 지적했습니다. 그 결과 나도 걱정되고, 남편도 답답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입장을 바꿔보니 알겠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구체적인 계획과 의지에 따른 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내 생각과 걱정을 충분히 전달해서 그가 구체적인 계획과 대안을 세울 수 있게 하고 함께 현안들을 협의해나가겠습니다. 부부간이라 대화가 감정적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몇가지 원칙들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제 스케줄과 비전에 대해서도 얘기해서 두 사람이 충분히 서로의 삶을 공유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Q. 오늘 코칭에 대해 느낀 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가정사를 얘기할 때 많이 망서리게 됩니다. 속 얘기를 다 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코칭을 받긴 했지만 정작 집에 가서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솔직히 실현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가정사의 특수성을 빼고 이성적인 코칭, 즉 옳은 얘기만 한다면, 그리고 부부 중 한사람의 의견에 치우친다면 효과가 반감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잘 들어보고 나서 얘기하자는 원칙은 꼭 지키겠습니다.
Q. 좋은 지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