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살 짜리 딸아이 하나를 둔 정차장의 아내가 최근 암 소견을 받았다. 정밀진단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정차장은 걱정이 태산이다.
"아내는 다음주에 조직검사에 들어갑니다. 나는 그것이 직장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정말 걱정됩니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것이 나의 주관심사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면 어떻게 하지요? 어떻게 아내를 돌보면서 직장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지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저축해둔 돈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Q. 정말 걱정이 크시겠군요.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A. 원래 물혹이 있었는데 갑자기 근종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아직은 초기라고 하지만 워낙 급성이라 안심할 수 없다는군요. 조직검사 결과 입원하면 집중적인 항암치료가 필요하답니다.
Q. 꼬마는 누가 돌봐줄 사람이 있습니까?
A. 어머니께서 당분간 집에 와 돌봐주시기로 했습니다. 사실 어머니도 편치않아서 오래 봐줄 형편은 안됩니다. 어쨌든 급한 불부터 꺼야하니까요.
Q. 회사에는 얘기하셨나요? 간호할 수 있을만큼 충분한 여유가 있겠습니까?
A. 요새 회사가 어렵잖습니까. 아무리 사정이 어려워도 그렇게 여유를 주기가 제 생각해도 힘듭니다. 더구나 이번에 제가 부장진급을 앞두고 있어서 사실 실적이나 승진시험 등에 신경을 많이 써야할 때입니다. 저한테는 매우 중요한 타이밍인데. 집사람은 괜찮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픈 사람이 있는데 할수없죠. 하지만 어떻게 두가지 모두 잘 해낼 수는 없을까요?
Q. 부인의 건강도 잘 돌보고, 직장 일도 문제없이 해내고 싶은 것이 목표군요? 두가지 일을 병행하는데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은 어떤 것인가요?
A. 일단 낮시간에 누가 돌볼 것인가, 만일 회사일때문에 늦어지면 저녁때까지 누군가 있어야할텐데. 퇴원후엔 병원 데리고 다니는 것도 일입니다. 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밥을 챙겨주는 것도 그렇구요. 그러면서 회사일을 하기엔 역부족입니다.
Q. 잠깐만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잠시 유보하셔야 합니다. 정차장은 당황하셔서 그런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간병인을 두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이는 유치원에 잘 얘기해서 각별하게 신경써달라고 부탁해보시지요. 누군가 당신의 시간을 덜어줘야 할 것 같은데요.
A. 천상 그래야겠지요. 가만 있어보자. 주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리스트업해봐야겠군요. 처형과 처남댁이 있고, 올캐도 있으니 벌써 세사람이나 있습니다. 일주일에 토, 일은 제가 전적으로 맡고, 그러면 이틀만 간병인을 쓰면 되겠네요. 일주일에 하루는 시간조절을 해서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간호사에게 일상적으로 해야하는 일을 메모해서 벽에 붙여놓고 실수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는 유치원에 알아보고 오후까지 있을 수 있도록 부탁하겠습니다.
Q. 아무래도 회사쪽에서 양해를 해준다면 좋겠는데.
A. 쉽진 않겠지만 웃분들과 직원들에게 도와달라고 하겠습니다. 간부회의가 있는 날만 빼고 출퇴근을 일찍 하겠다고 말입니다. 직원들과 팀워크를 더 강화해서 시간소모를 줄이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가급적 주말엔 접대일도 삼가하겠다고 하겠습니다. 그대신 꼭 해야하는 일은 예전보다 더 바짝 긴장해서 실수없이 해야하겠지요. 집안 일 때문에 회사를 소홀히 한다는 인식이 들게 해선 안되니까요.
Q. 예전보다 힘드실테지만 열심히 해보세요. 이밖에도 혹시 문제가 될만한 일이 없겠습니까?
A. 물론 집사람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까, 다른 사람은 다들 잘 사는데. 이런 일만 없다면 정말 승진도 되고 아무 걱정 없을텐데. 가끔 지치거나 회사일이 잘 안풀리면 그런 부질없는 생각이 들어서 우울해집니다. 그리고 여태 일해도 병원비와 간병인을 충분히 쓸 여유돈조차 없이 살고 있다는게 한심하단 생각이 듭니다.
Q.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시지요. 부인이 아니라 정차장님이 몸져 누워있다면. 그리고 부인께서 낙심천만해서 그런 우울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땐 돈벌 사람도 없고 승진준비는 꿈도 못꿀텐데요. 돈을 못모았다고 자책하기 보다 이럴 때를 대비해 보험도 들어놓지 않은 재난대비 무계획이 더 문제 아닐까요?
A. 제가 쓰러졌다면 큰 일이지요. 그나마 지금은 제가 건강하니까 현명하게 판단해서 성실하게 생활한다면 힘들어도 충분히 해낼 수는 있을 겁니다. 돈을 조금만 절약해서 보험을 들어두었다면 이럴 때 덜 당황했을 것 같아요. 반성합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막막해서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아내 건강도 돌보고 집안일도 더 신경쓰겠습니다. 회사 일도 더 효율적으로 챙길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요.
Q. 대부분의 고민은 감정적으로 격앙돼있거나, 전혀 경험이 없는 일을 당했거나, 일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못매기거나 그밖의 여러가지 이유로 차분하게 생각하지 못해서 해결의 실마리를 못찾는 것입니다. 정차장님의 경우도, 수많은 유사사례가 있기 때문에 주변의 경험자들에게 물어보면 어려움도 미리 예측할 수 있고,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까지 대화한 내용을 다시 한번 정리해볼까요?
A. 아내의 갑작스런 발병때문에 당황했고, 그랬을 때 집안과 회사일을 과연 모두 잘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났습니다. 회사일에만 집중해도 어려운데 하필 이럴 때 걱정거리가 생기다니하고 짜증도 났습니다. 일단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장 문제가 되는 시간부족을 해결할 대안들을 생각해보니 가족친지들의 도움을 적절하게 받는게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스스로 규칙을 정해서 업무가 더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고 직장동료들의 양해를 받아야겠습니다. 차제에 내 주변의 모든 생활이 새로운 상황에따라 원만하게 재편되도록 할 것입니다. 가끔씩 그래도 내가 아프지 않아서 아내를 돌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다행스러운 일 아니냐고 스스로 다짐하겠습니다.
Q. 부인께서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정차장님같은 든든한 남편이 있으니 마음은 편하실 겁니다. 힘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