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시집간 누이동생이 친정나들이를 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두 아들을 돌봐야 하는 그녀는 교사일까지 하고 있다. 일년전에 대기업을 퇴직한 남편은 아직도 일자리를 잡지 못해 걱정이다. 몸이 몇달전에 비해 부쩍 불어나 그것도 짜증스런 일이라고 한다.
"정신도 하나 없고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해요. 남편은 되는 일은 없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매일 밤늦게 들어오고, 시부모님은 내 눈치를 보면서도 짜증을 부리시고, 학교일은 바빠 죽겠어요. 살은 왜 이렇게 찌는지 원."
Q. 그걸 해결하면 다른 일들이 잘 풀릴 것 같은 가장 큰 불만은 무엇입니까.
A. 남편이 하루빨리 일자리를 잡는것 아니겠어요? 일단 경제적으로 제 부담이 너무 크고, 무엇보다 집안식구들간의 갈등이 자꾸 생겨요. 시어머니도 아이를 봐주면서 생색을 내시고, 저는 그러면 안되는거 아냐하는 오기가 자꾸 들어요. 남편에게 짜증은 기본이구요. 남편도 할 말이 없으니까 자꾸 밖으로 도는 것 같아요. 어떨때는 불쌍하기도 하지요.
Q. 집안이 안정되지 않고 또 언제 안정될 지 감을 잡기 어려운 불안감이 강하군요. 그런데 집안의 안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
A. 저는 갈등이 싫습니다. 서로 각자의 역할에 따라 즐겁게 살고 서로 위해주면 그걸로 충분하거든요. 제게 너무 많은 부담이 몰려요. 다른 식구들은 정말 무책임하단 생각도 들구요. 어쨌든 저는 제 시간을 좀 가졌으면해요. 새벽에 학교가서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오고 저녁밥해서 치우고나면 애들 봐주랴, 집안 청소하려, 내일 수업준비 좀 하다보면 파김치처럼 녹초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은 운동도 하고, 대학원도 다니는데 나는 끝도없이 가사일에만 매달려야 하니까 답답하지요.
Q. 당신에게 매일 한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A.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매일 한시간이 날 수가 있나요? 어림없을 것 같은데.
Q.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만약 당신이 아파서 병원에 매일 다녀야한다면 시간을 낼 거 아닙니까?
A. 그거야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시어머니한테 저녁좀 해달라, 남편한테 애들 봐달라 하기가 심난합니다. 불만도 대단할 것이고, 남편은 들은 척도 안할 것 같은데요.
Q. 글쎄요. 운동을 한다는 것이 우리 가족 전체에 어떤 의미라는 것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해봐야 안통한다는 얘긴가요.
A. 특히 남편하고는 이제까지 제가 일방적으로 잔소리를 해대고, 남편은 못들은척하거나 듣고도 나중에 딴소리를 하는 식이었습니다. 제가 사실 바라는 것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서로 도울 것은 무엇인지 좀 얘기가 통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일만 죽어라 하고 도대체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하기만 하니 힘이 들지요. 제가 운동을 그냥 시작하면 될 일을 왜 걱정하고 있냐면, 어차피 남편이나 시어머니가 펑크를 내면 내가 뒷감당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니까 그렇습니다. 사고 쳐봐야 저만 더 고생인걸요.
Q. 가정의 행복은 공유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한사람이 희생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이 아닙니다. 미래를 공유하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것이 가정아닙니까? 그 사실을 안다면 망서릴 이유가 없겠지요.
A. 그렇다면 어떻게 얘기를 꺼내는게 좋겠습니까? 제가 워낙 말주변도 없고 남편에게 감정이 많아서 정상적으로 대화가 잘 안되거든요.
Q. 이메일로 해보시지요. 오히려 새로운 발견이 될 수도 있을겁니다. 심사숙고해서 올바른 결론을 낼 수 있도록 해봅시다. 가능하면 남편을 이해하려고 애를 써보시구요. 남편에게 당신의 가사부담을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시고 그 중 일부를 분담하는 것이 가장으로서 꼭 해야할 일이라는 것을 설득해보세요. 향후의 계획에 대해 서로 대략적인 원칙에 합의를 보았다면 훨씬 좋은 분위기에서 만나 대화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A. 그렇게 하겠습니다. 처음엔 모든게 뒤죽박죽이었는데 하나씩 풀어보니까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군요. 남편과의 의사소통문제가 가장 본질적인 것이었습니다. 대화만 잘 되면 오해와 갈등도 없어지고 경제적 문제야 제가 당분간 맡겠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책임감이 더 생기겠지요. 물론 새로운 대화방식도 잘 될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만, 시도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