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이 십수년동안 국내에서 엄청나게 팔렸다는 얘길 들어왔다. 무식하게도 나는 <누가 내 치즈~>류의 약간 청소년 취향인 책이 아니겠느냐는 터무니없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분명히 어떤 꼬마가 호밀밭에서 망을 보고 있는 게 분명한데 뭣때문에 그러고 있는지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보리밭이나 수수밭, 또는 담배밭이면 문둥이나 바람난 동네 처녀총각, 또아리튼 구렁이를 연상하게 되는데 호밀밭엔 뭐가 있는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요즘 책 좀 읽는다고 어디 가서 얘기하는데(자꾸 요즘 뭐하냐고 묻길래) 그럼 호밀밭의 파수꾼은 읽어보았냐고 하면 낭패를 볼 것 같아 몇번 망서리다 구매버튼을 꾹 눌렀다. 끝까지 읽느라 정말 고생했다. 개인적 취향이지만 이런 류의 책은 딱 질색이다. 홀든 콜필드라는 겉으로 까져서 공부도 연거푸 낙제만 하는 꼴통 녀석이 학교에서 도망쳐 2박3일동안 방황하는 얘기다. 물론 그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가 느끼는 주위 커뮤니티에 대한 환멸과 고독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작가가 마음먹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하고(정작 홀든 콜필드라는 주인공은 자기 행동을 기억조차 못하는데) 디테일하게 눌러서 묘사하기엔 적당한 소재는 아닌 것 같다. 즉 최소한 십년정도의 스케일을 갖는 성장소설의 플롯을 이박삼일로 압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조차 느껴진다. 영미문학에 재미를 들여볼까 싶다가도 이런 류를 만나면 화들짝 놀라서 집어치우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다.
앞 단락에서 막말을 했지만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의구심 같은 것을 느낀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읽고 무슨 생각들을 하는걸까. 그들도 나와 같다면 결코 그렇게 많은 책이 팔릴 리가 없는데. 그들의 생각을 내가 도무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인가. 뭔가 나와 그들을 구분하는 철벽이 존재하고 그 너머에 그들만의 세계관이 따로 있는걸까. 심오하고 방대한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면 차라리 속이나 편하다. <호밀밭~> 팬클럽이 있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맨 마지막을 읽으면서 괄호안에 시니컬한 독후감 십자평을 써넣어본다. '사실 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나는 알고 있었다. 넌 아무 생각도 없는 녀석이다.)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네 이야기를 들은 걸 더 후회하고 있다. 그것도 어찌어찌 다 읽고 난 뒤에 그런 얘기를 하는 네 녀석이 얄미워 죽겠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희한한 일이다. 네 이야기를 쭉 들어온 나로서는 네가 그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같지 않은 편견과 혐오를 품고 있었는지 알고 있다. 네가 한 일을 다 알고 있는데 이제와서 보고싶다니.) 정말 웃긴 일이다. (그래 마음껏 비웃어라.)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진즉 알았으면 좋았을 대목. 변태 앤톨리니 선생이 책상으로 가서 앉지도 않고 그냥 선채로 종이에 뭔가를 써왔는데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학자가 쓴 글이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지 일찍 알았더라면 내 인생의 십년은 벌었을 터인데. 아깝다. 어차피 지금은 성숙 여부를 떠나 어떤 명분에 얼마 안 남은 목숨을 바칠 꿈도 꾸지 않기 때문에 이 대목을 읽고 깨달음이 크지 않다.
덜 떨어진 오빠와 깍쟁이 여동생 피비가 주고 받는 대화. "너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 이라는 노래 알지? 내가 되고 싶은 건...""그 노래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거잖아.""그런 것 쯤은 나도 알고 있어.""그렇지만 피비가 옳았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나다면'이 맞다 사실 난 그 시를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나봐.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있어. 내가 할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이 책을 덮으면서 <내 인생의 가장 길었던 하루>를 생각해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처음엔 이런 저런 기억들의 비늘을 무심코 쫓아갔지만,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숱한 날들중에 단 하루도 아침부터 밤까지 줄곧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머리를 긁적이다 쥐어뜯고 급기야는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오는 바람에 드러눕기 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기억을 남길 작정인가. 마지막 내뱉는 말이란게 고작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이어야 옳겠나. 어쩌겠나. 내 머리의 용량이 그만한데다, 압축 알고리즘도 형편없이 원시적이다. 그탓에 5초짜리 클립들만 대충 보관하고 있을 뿐, 하루분량의 다큐멘터리는 저장할 엄두도 못내는가 보다.
어제 친구 구도완을 만났다. 남자들의 전반생과 후반생을 비교했다. 전반생엔 시간도 많은데 뭘 그렇게 빨리 이루려고 서둘렀는지. 후반생엔 언제 멈출지 모르는데 뭘 그렇게 망서리고 우물쭈물하는 건지. 전반생이 속세가 원하는 <결과물>과 <스피드>에 집착했다면 후반생은 모름지기 자기 몸에 맞는 <과정>과 죽을 때까지 <지속가능>한 것에 몰두하게 된다. 이런 얘길 하고 있는데 그 친구 마누라의 끌탕이 쉬지 않는다. 충동적이며 도발적이고 비타협적이며 무책임한데다 유치찬란한 장밋빛이기 까지 하단다. 영화<올드보이>의 십자평이 떠올랐다.그러니까 남자는 늙어도(올드) 애(보이)란다.
이 글 머리에 있는 그림은 고호의 수채화다. 그답지 않게 깔끔하고 정성스럽다. 스텔라씨의 곳간에서 베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