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디렉터 홍실장은 오늘도 취재부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업무성격상 원고가 나와줘야 그에 해당하는 디자인이나 일러스트가 만들어지는데 번번히 취재쪽에선 마감시간을 어겨서 그 부담이 몽땅 디자인팀에게로 전가돼왔다. 그 결과 밤샘이 잦아지고 디자인의 품질에도 문제가 생겨 영문모르는 사람들은 디자인팀의 실력이 떨어지는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전적으로 기자들의 잘못입니다. 이곳에 올 때마다 한번도 기사가 깔끔하게 마감된 적이 없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건 우리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마감을 해줘야 우리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 아시잖습니까? 나도 입아프니까 앞으론 그들이 마칠 때까지 그냥 기다리겠습니다."

Q. 마감이 늦어지는 이유가 어디있다고 보십니까?

A. 처음엔 기자들이 마감에 임박해서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더군요. 취재부장이 원고마감 관리를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들도 몇번 독촉하다 안되니까 구태여 싫은 소리 안하려고 하더군요.

Q. 그렇다면 데스크에게 정확하게 문제제기를 해보셨나요?

A. 사실 그친구에게 병목현상이 일어납니다. 과도한 업무량이 집중되니까요? 바빠서 쩔쩔매는 사람에게 불만을 터뜨리기가 뭣해서 심한 어필은 삼가해왔습니다. 병목을 해소시켜보려고 마감을 세번에 나눠서도 해보았지만 기자들이 시의성있는 기사를 쓴답시고 제대로 지키질 않습니다. 데스크도 번번히 챙길 여유가 없으니까 용두사미가 되고 말더군요.

Q. 현재 상태가 계속되면 최종 결과물에 이상이 생기게 됩니까?

A. 처음 한두달은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다치고, 계속 최종부서에 무리가 가해지면 당연히 품질저하가 일어날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되면 결국은 기자들에게도 피해가 간다는 걸 왜 모르는지.

Q. 기자들에게도 피해가 갑니까?

A. 아 그렇지요. 아무리 공들여 쓰면 뭐합니까? 디자인도 엉망이고, 사진이나 제목글씨도 뒤죽박죽 가독성이 떨어지면 누가 읽나요? 그런데 기자들은 그런 걸 몰라요. 그냥 특종만 하면 되는줄 안다니까요. 디자이너들이 뭘 하는지를 잘 모르기도 하구요.

Q. 그러니까 기자들과 디자이너들이 서로 윈윈을 해야 좋은 신문이 나오는 것이군요? 왜 기자들은 그런 사실을 모를까요?

A. 기자들이 수습할 때 인쇄도 가보고, 판매도 해보는데 디자인쪽은 경험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특수한 업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디자이너들도 굳이 자기들의 업무를 공유한다는 생각을 안했던 것이지요. 그런 몰이해때문에 서로 불만을 많이 갖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Q.그렇다면 홍실장님이 기자들에게 디자인의 중요성을 교육하고, 좋은 디자인이 나오기 위해 절대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게 어떻겠습니까?

A.하긴 제가 아무리 떠들어도 기자들이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하면 그만이거든요. 저와 디자이너들의 애환을 잘 설명하고 디자인이 좋으면 기사가 돋보이는 것이니까 서로 윈윈하기 위해 마감이라도 잘 지키자고 하겠습니다.

Q. 그런 공감대도 중요하지만 실제 업무에서 디자이너들이 마냥 원고만 기다리지 않고 시간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A. 가능합니다. 아무래도 부장이 기사의 밸류나 취지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으니까 원고의 맷수와 사진, 필요한 일러스트 주문등을 미리 해주면 나중에 원고를 끼워 맞출 수는 있지요. 물론 부장이 최종적인 순간까지 상기사항을 업데이트시켜줘야되지만. 톱기사가 바뀐다거나 예정과 달리 기사가 길어지거나, 꼭지수가 줄어들면 디자인 레이아웃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땐 미리 해놓는다는 것이 무의미해집니다.

Q. 어쨌든 몇가지 비상수단이 가능하긴 하군요.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시간과 품질의 상관관계를 설득력있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A. 말로는 안된다는 얘긴데. 자발적인 시간엄수가 필요합니다. 언제까지 아트디렉터가 시간얘길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한달동안 원고 넘어오는 시간과 디자인 마감하는 시간을 리스트업해서 표로 만들어보겠습니다. 아마 내가 안챙기면 점차 늦어지겠지요.  어차피 디자인도 인쇄시간에는 무조건 맞춰야하니까 절대 소요시간이 부족하면 품질 관리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보여줄까 합니다. 즉 시간을 안주면 품질은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국장이나 윗선에서 지적을 하면 소명자료로 쓰겠다는 것을 취재부장에게 말하겠습니다.

Q. 좋습니다.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고 객관적 자료를 만들어서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뜻이군요. 오늘 코칭을 받으신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기자들에게 우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준 적이 없더군요. 가급적이면 서로 얘기 안하고 그저 각자 욕 안먹을 정도로 해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런 상태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짜증부터 나게 되고, 감정적으로 흐르기 십상입니다. 기자들과 공감대를 넓히고 서로 돕는 것이 윈윈이라는 걸 알게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어쨌든 시간기록을 남겨 경계심을 늦추지 않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코칭을 받게 되면 저를 화나게 만든 상대방에 대해 잠깐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좀더 깊이 내려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만 해도 몇가지의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코칭 받기전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말이죠.

Q. 도움이 되었다하니 기쁘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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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이 노발대발했다. 방과장이 맡고 있는 고객사이트에서 또 클레임이 터진 것이다. 얼마전에도 김부장이 가서 간신히 수습했는데 옆에서 팔짱끼고 딴청만 피우더니 또 사고를 낸 것이다. 김부장은 사장을 만나서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며 당장 해고하자고 촉구했다.  

"우리는 다시 그 일이 터져서 너무 화가 나 있습니다. 방과장은 팀이 일하는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이 맡은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함께 협력해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그가 암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 팀에 맞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손발이 안 맞는데 진력이 났고 회사에서 그를 해고했으면 좋겠습니다."

Q. 김부장님은 강과장이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경험미숙과 노력부족입니다. 경험이 없으니까 일의 순서를 모르고, 반드시 확인해야할 것들을 놓쳐서 고객들의 불만을 초래합니다. 한번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방과장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력부족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Q. 방과장과 마주 앉아서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대화해보셨나요?

A. 물론이죠. 몇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입니다. 성격이 차분하지 못하고 주의산만해서 집중을 못해요. 지난번에 퇴사 직전까지 갔다가 마지막 기회를 주자고 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겁니다.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85%쯤 보고 있습니다.

Q. 방과장이 해고될 경우 회사엔 문제가 없습니까?

A. 현재 인원이 부족해서 당장 배치될 사람이 여의치 않다는게 문제지요. 최소한 두세달 정도는 더 둘 수밖에 없는데다 지금 해고통지를 하면 그나마 서비스도 엉망이 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Q. 지금 이상태로 계속 가면 고객불만이 가중돼서 복구 불가능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쨌든 대책은 있어야 겠군요.?

A. 현재로선 고객을 안심시키고, 정상적인 서비스를 공급하는게 관건입니다. 방과장 혼자서 안되면 나머지 사람들이 지원하는 형태가 돼야겠지요. 일단 주2회 현장방문시 제가 대동할 계획입니다. 방과장의 직속매니저에게 그의 업무수행을 계속 보고하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렇게 비상수습을 해놓고 적임자를 뽑아 충분히 교육시킨 후 3개월내에 대체할 예정입니다.

Q. 일단 해고를 기정사실로 생각한다면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다른 문제가 파생되진 않을까요?

A. 이번 방과장의 건으로 현장 책임자에 대한 교육과 관리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다들 현장경험이 없어서 어떤 교육을 시켜야하는지 몰랐습니다. 각자 알아서 대처하는 수준이었는데, 이번에 체계적인 교육의 필요성과 목표를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관리시스템도 가끔 상급자가 전화를 걸거나 메일을 주고받는 정도였는데 무엇을 어떻게 점검해야하는지 정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Q. 오늘 코칭의 결과를 정리해봅시다.

A. 방과장의 사고때문에 분통이 터졌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현장에 대한 체계적인 대비와 효율적인 관리시스템이 없었던 것도 문제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개인의 역량에 알아서 맡겨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해당 고객사이트에는 다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업무를 분담하고 관리를 강화하도록 할 작정입니다. 그리고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동안의 경과를 감안해서 시스템적인 대안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Q.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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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자씨는 작년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들어왔다. 청년실업난이 좀처럼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요즘 김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심상찮은 소문이 들려왔다. 회사가 다른 쪽에 인수된다는 것이었다. 인수후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감원이 있을 거라고 한다.

"이 회사는 온통 불안하다. 당신과 이 상황을 점검해보고 싶다. 이 회사가 다른 회사로 넘어갈지 모른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인가? 항상 소문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나를 불안하게 한다. 주말에도 그 걱정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이 안정될 수 있겠는가?"

Q. 그 소문이 어느 정도 신빙성있는 얘기인가요?

A. 그동안 내색하지 않던 부장님도 "짐쌀 때가 된 것 같아"라고 하시는 걸로 봐선 임박한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회사는 자금난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부도를 못면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넓혀온 시장과 브랜드가 있기 때문에 인수라도 되는 거랍니다.

Q.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얘기해봅시다. 회사가 인수합병됐을 때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해하십니까?

A. 구조조정과 감원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희 부서는 우선대상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실업자가 되면 취직도 더 어렵고, 여자친구와 결혼도 해야하는데 정말 걱정입니다.

Q. 감원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회사차원의 일이라, 원한다고 해서 될 일은 아니겠지요. 만일 불가피하게 해고가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 저야 사업 같은 것을 할 자본도 없고, 당장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입장이니 서둘러 취직준비를 해야할 겁니다. 그런데 요즘같아서는 취직도 힘들 것 같아요. 아직 경력이 쌓이지도 않아서 거의 신입사원과 다름없는데 누가 뽑아주겠어요?

Q. 빨리 취업해서 안정을 되찾는 것이 김선생님의 목표로군요. 그런데 경력이 일천하고 취업난이 악화돼서 취업하기 어렵다는 얘기입니까?

A. 예. 그렇습니다.

Q.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도 회사들은 좋은 인력을 계속 뽑고 있습니다. 김선생님께서는 이미회사를 다닌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좋은 인력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A. 물론입니다. 예전에는 컴퓨터와 영어를 잘하고, 지식이 많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회사생활을 해보니 고객마인드가 잘 갖춰져 있고 대인관계가 원만한 사람이 훨씬 필요하더군요. 그런 점에서 일년동안의 경험이 있으니 완전 초보보다는 낫겠지요.

Q. 좋습니다. 만일 이력서를 쓰신다면 일년전보다 어떤 점을 더 강조하시겠습니까?

A. 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실무에 투입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겠습니다. 그만큼 회사가 원하는 것을 빨리 포착할 수 있다는 점이 다르구요, 부장님이나 이사님의 추천도 필요하다면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저를 키워주셨거든요.

Q. 요즘 회사들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가장 중점을  두는 사항입니다. 현장실무능력이 신입사원들보다 월등하다는 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A. 아직 관리자로 훈련받지는 못했지만, 그분들을 모시고 일하면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특히 고객서비스의 중요한 원칙들은 잘 알고 실천해왔습니다. 그리고 서비스요원 훈련을 어떻게 시켜야 하는지, 관련부서와 어떻게 일해왔고 주요 실적은 어떤 것이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야겠군요. 면접때 3분정도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서 제 성공사례를 소개해보겠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고객서비스 파트에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자신있게 요청하는 건 어떨까요?

Q. 좋은 생각입니다. 김선생님은 취업전선에 다시 들어간다해도 매우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본인이 자기의 강점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어떤 회사에 들어가길 원하십니까? 그 회사에 어떻게 접근하시겠습니까?

A. 사실은 이번에 저희 회사를 인수한다는 동현엔지니어링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 회사는 경영자들의 수완도 좋고, 자금력이 풍부해서 사업추진력이 월등하다고 들었습니다. 인수후에 전 직원대상으로 인터뷰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주눅들지 말고 제가 준비한 것을 설명할까 생각중입니다. 

Q. 그대로 좋겠지요. 그렇게 하시는데 혹시 걸리는 건 없으십니까?

A. 사실 감원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저혼자 살아보겠다고 그러는게 자존심도 상하고 주변에 눈치도 보입니다. 그냥 대세에 따르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Q. 다른 분들은 인수될 경우 모두 회사를 그만두거나 포기할 생각들이신가요? 혼자 살아보겠다고 그러는 것 같다고 하시길래 물어보는 겁니다.

A. 그렇지 않겠지요. 가능한 남아있으려고 하겠지요. 저마다 노력할 겁니다. 경영진들은 한 사람이라도 고용승계를 하게 해주려고 노력할거구요.

Q. 그렇다면 회사에 계속 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런 노력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설사 있다해도 귀기울일 필요가 없겠지요. 대개의 경우 대세를 따라 다같이 그만둘 수는 있지만 그 이후에도 함께 행동하는 경우는 드물더군요. 감안하시기 바랍니다.

A. 제가 감상적으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Q. 오늘 코칭한 결과에 대해 정리해주시겠습니까?

A. 많이 답답했습니다. 민감한 문제라 윗분들한테 상의를 드릴 수도 없고. 저만 아무 대책없이 이러고 있는게 아닌가 당황했습니다. 제 목표는 감원을 당하더라도 빨리 취직해서 안정을 찾아야갰다는 것이었고, 제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직 경력이 일천해 강점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코칭을 받다보니 그 경력이 신입들로서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고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자신도 생기구요. 가능하면 저희 회사를 인수할 곳에 제 생각을 표현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창피한 일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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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을 버리라 할 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데>라는 말로 운을 뗀다. 왔가 갈 때 빈손인 것만은 틀림없고, 그걸 모르는 이도 없다. 그런데도 물욕이 세상에 파도처럼 넘치는 걸 보면 그 말의 신빙성이 떨어지는게 분명하다. 

왕의 아들로 태어난 것과 머슴의 딸로 태어난 것은 태생부터 다르다. 이미 태중에서 얻어 먹은 자양분부터 다르다. 태어나자 마자 비단 강보에 싸여 은수저를 입에 무는 아기가 있는가 하면, 무명홑청에 둘둘 싸여 윗목으로 밀쳐지는 처지가 있다. 빈손으로 나왔을 뿐, 둘의 운명은 천양지차다. 

빈손으로 가는 것은 맞지만 죽는 과정도 역시 다르다. 평생 호의호식한 사람이 특별히 힘들게 가는 것도 아니고, 고생만 죽어라 했던 천민이 편하게 뜨는 것만도 아니다. 사람들은 하기 좋은 말로 잘먹어서 생긴 병이 어쩌구, 사실은 악식(惡食)이 보약이라는 둥, 앞뒤를 맞춰 보려고 하지만 궁색할 뿐이다. 

생과 멸은 하나로되 그 과정은 결코 같지 않다. 하늘과 땅의 수많은 살아있는 것들의 삶이 멸을 향해 줄지어 가고 있는 장사행렬은 아니다. 그래서 <인생이 다 그런거다>라는 말이 듣기 싫다. 삼십년 면벽수행끝에 깨달았다 하는 것이 고작 인생무상이란 말인가. 도(道)를 깨쳐 얻은 것이 모든게 헛되고 헛되다는 탄식이라면 차라리 깨닫지 말 것을 하고 후회할 것 같다. 목적지 없이 부유하는 인생도 불쌍하지만, 앞뒤만 잘라 뻔하다고 얘기하는 것도 슬프긴 마찬가지.

없으면 궁하고 추레해지는 것이 범속한 인생사인데 그걸 벗어나 무소유를 실천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갖는다는 것이 곧 집착이요, 그 집착의 뿌리를 잘라내지 않는 한 번뇌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렇다고 버린다는 것 만으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라면, 한참 생각해보고 마음을 정해야 옳다.

어떻게 소유할 것인가. 어떻게 무소유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소유하되 과한 욕심부리지 말고, 물건때문에 심신을 상하게 하지 말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만약 그정도로 타협을 볼 수 있는 거라면 무소유란 얘기는 꺼낼 필요도 없었을게다. 물욕을 대수롭게 봐선 안된다. 물욕은 마치 술처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만 종국에는 나를 마셔버리고 만다. 술싫어하는 놈은 있어도 돈 싫어하는 놈은 없기 때문에 그 중독성은 더욱 맹렬하고 전염성이 강하다. 

빌 게이츠는 매년 수십억달러를 기부하고 환원해도 해마다 최고의 갑부가 된다. 아무리 많이 써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는 하루에 12시간은 돈벌기 위해 일하고, 나머지 12시간은 자기 행복을 위해 돈을 쓴다.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맹렬하고 적극적이기 때문에 그의 화수분은 시들줄을 모른다. 물욕이란 기부와 사회환원으로 상쇄될 수도 없으며 미덕으로 대체되지도 않는다. 가끔 신문에 미담으로 등장하는 <시장통 욕쟁이 할머니 평생 억척스레 번돈 10억 장학금으로 쾌척>도 할머니의 물욕을 가려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물욕의 불길을 어떻게 잡을 수 있나부터 따져보자. 첫째, 내가 지향하는 꿈을 가능한 구체적으로 상상하라. 구체적이지 않은 꿈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둘째, 그 꿈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물건의 양과 쓰임새 역시 가능한 구체적으로 정해놓는다. 세째, 앞의 두가지가 내 분수와 운수에 맞는 일인지 계속 따져본다. 네째, 제대로 맞지 않는다 싶으면 재빨리 축소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 한다. 어영부영하거나 만용을 부리면 곧바로 보복이 시작된다. 다섯째, 꿈은 작은 것부터 하나씩 이루어가야 한다. 자만을 경계하라. 아홉을 이루었다 해도 열번째로 모든 것을 날릴 수 있는게 인생이다. 여섯째, 자기 자식까지만 신경써라. 그 뒤는 그 녀석이 알아서 할 일이다.  

무소유의 미덕은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다. 그 한가지 방법이 내 육신으로부터 정신을 독립시키는게 아닐까. 그동안 나는 나였을 뿐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손가락과 지금 이 글을 불러대고 있는 정신은 언제나 하나라고 생각했다. 정신과 육신이 일체가 되어 더 많은 쾌락과 더많은 만족을 주기 위한 물질들을 움켜쥐려 했다. 문득 내 정신이 원하는 대로 살다보니 불쌍한 육신은 그만큼 고달프고 아파한다는 것을 알았다. 정신은 육신에게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고, 인내를 강요하고, 성취감과 희망을 떼어내 먹이로 던져주었다. 갈때까지 간 뒤에야 정신은 채찍을 놓았고, 자신이 저질러놓은 짓에 대한 뒷감당에 육신은고통스러워했다.   

한번 혼이 났으니 정신차렸을 것이다. 육신을 아끼고 돌보되 물욕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정신에게 맡겨진 새로운 임무다. 육신에게 적게 먹이고, 많이 움직이게 할 것이며, 비싼 것을 걸치지 않게 한다. 그러기 위해 정신은 소유에 대한 집착, 터무니없는 욕심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부질없는 자격지심부터 들어내야 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능력에 넘친다는 점을 자각해야 하며, 수고로움으로 얻어진 작은 성과에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 정신은 육신을, 육신은 정신을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한다. 

나에겐 오늘 하루가 중요하다. 내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사형수의 오늘처럼, 내일 목숨을 건 수술을 앞둔 난치병자의 오늘처럼. 미루지 말고 그렇다고 매달리지도 말고 한순간을 소중하게 사용하자. 생명의 귀중한 한토막을 희생해 그 댓가로 양에 넘치는 술과 고기를 가지려 버둥거리지 말라,  용서할 일이 있으면 그리하고, 내키지 않으면 잊어버리자. 법정스님은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라기 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라고 했다.

물욕을 비롯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라. 무소유의 말씀은 생멸의 화두라기 보다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살기 위한 것이라 내겐 더 소중하다. 법정스님은 매일 하나씩 내가 소유했던 것들을 버리자고 한다. 자식처럼 아꼈던 난분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나니 만행의 발걸음이 이리도 가벼울줄 몰랐다 한다. 그런데 나는 버리기는 커녕 지금도 끝없이 소유하려고 바둥거리며, 빼앗기지 않으려고 주먹을 꽉 쥐고 있다.

지금 내가 실천해야할 무소유는 더이상 가지려고 독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다. 내 품을 벗어나는 것들에게 마음을 뺏기지 말고 그냥 놓아둘 일이다. 원래 내것이 아니었으니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심사숙고하지 않은 댓가와 요행수, 그리고 믿지 못할 내 능력에 기대선 안된다. 한여름 내내 농부가 불볕을 등에 지고 노동하여 얻은 수확이 물욕의 소산이 아닌 것처럼, 끊임없이 독서에 정진하고, 책읽기와 마음공부에 힘써 얻는 결실, 나날의 노동과 공부로 얻어진 결과만을 소유하도록 하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은 완전한 노동만이 나를 자유케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겠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회심(回心), 즉 마음을 돌이키는 일로써 내 인생의 의미를 심화시켜야 한다. 온전한 사람은 내 마음을 내가 쓸 줄 알아야 한다. 남을 미워하면 그 심화가 내 정신까지 삼켜버린다. 아까운 시간에 남에 대한 미움때문에 나를 불태우는 일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다. 마음을 돌이키면 될 일이다. 악연을 잇지 않겠다, 여기서 끊겠다 생각하고 눈감아버리면 그뿐인데 앙심과 복수의 무한 사이클을 반복해서 무슨 낙을 얻을까. 

이 책 <무소유>의 맨 앞장에 적힌 말을 되짚는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소유한 것을 무작정 버리는 것도 할 일이 아니다. 매였다고 판단하고 풀어야 겠다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허투루 취해 갖게 될 번뇌의 악연까지 생각하라. 가진 것의 쓰임새를 정확히 알고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쓰는 것이 우선이요, 좋은 뜻으로 널리 쓰이도록 베푸는 것이 그 다음이며, 종국에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도가 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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