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니 컨셉이 뭐야?  ............ 컨셉?

그러니까 니가 한마디로 뭐냐 말야? 임마. ........  나?

그래, 너 이 자식아. 너 맨날 컨셉 컨셉 했잖어........... 내가?

얘 왜 이러냐? ........... 그러게.

송두율은 자기가 <경계인>이라더군. 엊그제 만난 누군가는 <동기부여전문가>라고 불러달라대. 좋게 들리길래 나도 <조선효자>라고 할래다가 양심이 있어서 입다물었어. 마흔이 넘어 컨셉도 못잡는 내가 불쌍해 보이길래 핑계를 찾기로 했네. 궁리끝에 <나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는게 당키나 한 짓이냐>며 버럭 화를 내고 얼렁뚱땅하기로 정했어. 어제 늦게 잤더니 졸립기도 하구. 자네도 알다시피 모순과 자가당착 덩어리에 이중삼중다중인격자이며, 하루에 열두번씩 극보수와 극진보를 종횡무진하는 화상 아닌가. 사상의학적으로도 이 몸은 태음인과 소양인 사이를 깔끔찮게 왔다갔다 한다네.  세상에 날고 기는 카피라이터라도 쉽지 않을 걸. 물론 돈 많이 주면 가능하다는건 알고있어. 그들은 내가 준 돈으로 궁짜낀 자네를 매수해서 웃기지도 않는 컨셉을 내가 믿게끔 만들게야. 그러고보니 그런 것들이 밥벌려고 만들어낸 컨셉에 공연히 휘둘리고 있는게 아닌가. 앞으로 누가 물어보면 썰렁하게 받을라네. <니 컨셉이 뭐야?><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그게 뭐야 임마><내 컨셉이라니까. 아는 놈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모르는 놈은 말해줘도 모른다 이상.><그 새끼 염병허네.>끝

다케무라 겐이치가 쓴 <단 1줄의 성공법칙>의 머릿말 제목은 멋지게도 <결심은 한줄이면 충분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인 답지않은 뒤집기, 돌리기, 말꼬리잡기가 제법 설득력있다. 남들에게 폐 안끼치고, 털 뽑은 자리에 그대로 박기, 공손하고 겸손하게 등과는 담을 쌓기로 작정했다. 본인의 실천으로 체득한 것이라 말장난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한줄로 정리한다는 것은 웬만한 밀도의 실천경험이 없으면 엄두조차 내기 어렵다. 이 양반 그나라에서 살기 꽤 피곤했겠다. 읽다보니 중간중간 자기도 사람들한테 오해를 많이 받았다느니, 따돌림을 당했느니하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도 이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한다. <일본의 상식은 세계의 비상식>이라고 일갈하면서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상식 역시 비슷하다. 누가 <상식적으로 판단해볼때>라고 말하면 그 상식의 몰상식성에 대해 곧바로 생각이 미친다. 여하튼 많은 사람들이 그러려니하고 생각하는 것의 상당부분은 비상식과 몰상식이라고 치부해도 좋다. 즉 그런 대중적 상식에 무조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이다>라고 나서도 절반 이상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개겨봐야 별 소용없다는 것은 알아야 한다. 일본보다 훨씬 강도높게 사고가 경직돼있기 때문이다. 앞에선 그럴 수 있겠다는 표정을 지어도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순진한 놈이다. 그들의 생각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열변을 토하며 설득해도 사람들은 그놈의 상식을 버리고 돌아서지 못한다. 치러야할 댓가가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재수없으면 혼자 두들겨 맞아야 한다는 걸 그들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따라서 남을 설득하는 일을 삼가해야 하며, 이 책에 나온 반상식적 발상에 대해서도 혼자 읽어보고 말 일이지 떠들면 곤란하다.   

겐이치는 이 책에서 53가지의 룰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룰을 하나씩 설명하고 나서 친절하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좋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고 싶어진다. 그러고 싶은 질문 몇개를 옮겨 적었다. 결국 서른 아홉개나 적었다.

1. 나 자신한테 먼저 인정받는 사람이 되겠다. -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남도 인정할 수 없다.(서양격언)  자신을 신뢰하는 가장 좋은 습관은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읽는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나의 상>은   무엇입니까? 확신에 차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2. 변하는 모습으로 나를 그려가겠다. - 승자는 꼴찌를 해도 의미를 찾지만, 패자는 오직 일등을 했을 때만 의미를 찾는다.(탈무드) 지금 성격때문에 너무 고민하지 말라. 오히려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이를 자신의 장점으로 어떻게 하면 키워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게 낫다.

당신의 단점은 무엇입니까? 단점이 장점으로 작용했던 적이 있습니까?

3. 쉬운 <변명>대신 어려운 <가능성>을 선택하겠다.-  승자가 즐겨 쓰는 말 "다시 한번 해보자" 패자가 즐겨쓰는말 "해봐야 별수 없다."(탈무드)

여건이 안되서 미루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일인가요?

4. "하나 더 한발짝 더' 생각하겠다. - 길은 아무리 짧아도 걸어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다. 일은 아무리 작아도 시작하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 (중국속담) Study와 Learn의 차이를 아십니까?

어렵게만 보였던 일이 언제부턴가 쉽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습니까? 앞으로 스터디하고 싶은 분야는 무엇인가요?

5. 나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겠다. - 세계가 어떻게 보이는지는 보는 사람 나름이다. (카슨 멕카라이즈)

다른 사람들은 당신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이에 대한 당신의 이견을 써보세요.

6. 자기 인생을 진솔하게 즐기고 싶은 사람은 무엇때문에 돈을 벌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는지, 무엇이 수단이고 무엇이 목표인지 혼동하지 말아야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를 정확히 세우고 매 순간마다 하고싶은 일과 해야할 일 들을 착실히 수행해 나간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이 길만이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첩경이다. 성공은 이런 사람에게 어느날 문득 선물처럼 배달된다.

당신 인생의 최종 목표는 무엇입니까? 무엇때문에 성공을 꿈꿉니까?

7. 실패의 경험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무엇입니까?

8.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9. 아마추어의 눈으로 보았을 때 바꾸고 싶은 사회제도, 편의시설로 무엇이 있습니까?

10.당신의 현재 목표가 이뤄지면 누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습니까?

11.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서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즐겁습니까?

12. 당신은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편입니까? 어느 정도의 책임감을 갖고 그 일을 처리해줍니까?

13. 주변에서 평이 좋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14. 신경 쓰이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15. 주위에서 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에게 배울 점은 없나요?

16. 당신의 직급을 떼어냈을 때 가장 내세울 수 있는 점은 무엇입니까? 당신 상사의 직급을 빼면 그는 당신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춰집니까?

17.짧은 시간안에 하고 싶은 말은 다하면서 상대방에게 나의 인상을 강하게 남기려면 <선수치기>를 해야합니다. <선수치기>에 좋은 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18. 소문과는 달리 만나보니 매력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서 어떤 매력을 찾았습니까?

19. <기브 앤 태이크>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서로 같은 차원의 재화를 주고받아서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상대방이 그 분야에서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제공해야한다. 주변을 돌아보고 누구에게 어떤 기브가 필요한지 생각해보세요.

20. 요즘 젊은 사람들의 행동중에서 관심있는 점을 한가지만 생각해보세요.

21. 80%의 신뢰관계를 맺은 사람이 있습니까? 100%의 신뢰관계에 있는 친구보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22. 직언하는 것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직언으로 말미암아 치명적인 결과가 생기는 경우도 많다. 직장 상사의 잘못을 발견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직언하겠습니까?

23.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일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바꿔야 한다. 당신의 업무중 즐길만한 요소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24. 나를 돌아보고 의미없는 노력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봅시다.

25. 지금 나를 채찍질하기 위해 허세를 부린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26. 지금 당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능력은 어떤 경험에서 얻었나요?

27. 내가 지금 <남이 걷지 않은 길>을 찾고자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28. 당신이 주로 이용하는 정보원은 무엇입니까?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하겠습니까?

29. 귀를 통해 들어오는 온갖 정보들을 쉽게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집중력은 다소 떨어질지 모르지만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상대적으로 뛰어나다. 그들은 전혀 새로운 일이 주어져도 아무 문제없이 소화해낼 수 있을 분 아니라 독창적인 사업을 구상하는 일에도 훨씬 유리하다. <청각형 인간>이 되기 위해서 나에게 부족한 점은 무엇일까요?

30. 인터넷 검색사이트의 인기검색어를 찾아봅시다. 왜 이런 단어가 인기를 끌까요? 당신이 생각하는 단어가 인기검색어에 있나요?

31. <요즘 젊은이들>이란 제목으로 글을 한번 써보세요.

32. 약속에 조금씩 늦는 사람의 생활태도는 어떻다고 생각됩니까? 당신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는지 생각해봅시다.

33. 당신이 포착하고 있는 미래의 징후는 무엇입니까?

34.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35. 나를 나의 친구라고 가정하고 좋은 점들을 적어보세요.

36. 나의 결점이 무엇인지 적어보고 이 결점을 상쇄할 장점을 생각해봅시다.

36. 혹시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지금 선뜻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있나요?

37. 내가 이재까지 직면했던 가장 깊은 골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봅시다. 그때를 통해 무엇을 배웠나요?

38. 쉬운 말로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말하던가요?

39. 좋은 날이 오면 문화를 즐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좋은 날이 더 빨리 오도록 만들기 위해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더 멋있고 근사하다. 내 분수를 깨고 하고 싶은 일을 한가지만 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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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큰 사업을 하다가 일년동안 단촐한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박사장은 후배들과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회사설립을 앞두고 그는 지금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생각하게 됐다.

"보나마나 이 사업이 시작되면 하나에서 열까지 챙겨야할 일들이 생길 겁니다. 그동안 조그만 사무실에서 내 하고싶은대로 편하게 지냈는데 과연 예전처럼 골치아프게 살아야 하는 건지 고민스럽군요. 하기야 내내 이렇게 지낼 수야 없겠지요. 돈도 더 많이 필요하고, 또 한편으론 내가 너무 나태해지는게 아닌가 걱정이 들기도 하거든요."

Q. 새로 설립하는 회사에선 어떤 일을 하게 될 것 같습니까?

A. 저를 빼놓곤 다 기술자들이라 경영은 전혀 모르는 친구들이지요. 그대신 개발능력은 대단합니다. 저를 선배요, 사부로 모시니까 제품기획에서 마케팅, 관리, 심지어 자본출자까지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Q. 돈이 필요해서 시작하는 사업이라 하셨는데 죄송합니다만 얼마쯤 받게 되나요?

A. 아마 돈을 벌게 되면 훗날 상장을 하거나 해서 주식으로 벌겠지요. 그전에는 월급받을 생각같은 건 안해봤습니다.

Q. 경험상 주식으로 벌기엔 성공확률이 낮지 않습니까? 돈이 필요하시다면 매월 일정하게, 물론 기여에 비하면 매우 낮겠지만 받으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A. 생각해보니 그럴 것 같습니다. 피차 선은 분명히 하는게 좋다는 생각은 합니다. 내가 이 만큼 해주었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최소화해서 이정도 하겠다고 밝혀놓는것이 서로 오해도 안생기고 역할분담도 명확해져서 좋겠군요.

Q. 사업을 하긴 해야겠는데 일단 시작하면 복잡한 일이 생길 것 같아 골치아플 것 같다구요? 그 일을 적당히 나눠할 사람이 없나요?

A. 대표이사를 맡을 친구가 있습니다. 기술자 출신이지만 경영의 경험도 있고, 자기 비전도 경영자로 잡고 있는 친구이지요.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만 열심히 합니다.

Q. 박사장께서 예상하는 일중에서 그 대표이사와 또는 다른 분의 조력을 얻어 줄일 수 있는 게 없습니까? 혹시 박사장님께선 모든 지침을 직접 내려야한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솔직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A. 저는 대표이사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사실 제가 분명히 선을 긋고 나머지는 대표이사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못할 것도 없겠지요. 정 안되는 일만 내가 도와주면 되겠지만 마음이 불안해서요.

Q. 박사장님께 개인의 여유시간을 갖겠느냐 아니면 그 회사 일을 꼼꼼하게 챙겨 불안한 마음을 가시게 하겠느냐 선택을 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 글쎄요. 가능하면 전자를 택할 것 같습니다. 잘 될 수만 있다면 구태여 일일이 관여할 까닭이 없겠지요. 그리고 시간이 갈 수록 개인 시간을 갖는게 좋습니다.

Q. 좋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결정을 내리신다면, 대표이사를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A. 서둘러 얘기하면 아마 당황할 겁니다. 웬만큼 진행된 후에 얘기해야지요. 첫째, 나의 희망사항 즉 내가 이 회사를 시작한 이유와 목적을 말하고, 둘째, 내가 기여하는 것과 보상받는 것을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역할분담을 나누고, 그에 해당하는 보상을 가시화하는 것. 세째, 대표이사의 비전과 전략, 조직운영방침 등을 들어보고 그가 내게 원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 등을 얘기하겠습니다.

Q.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될만한 건들은 없을까요? 이를테면 대표이사나 박사장님의 생각이 변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A. 그럴 수 있지요. 대표이사의 생각도 정확히 들어봐야겠지만, 예전의 경험으로 미뤄보면 제 예상을 빗나가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그 친구도 고집이 대단하거든요. 물론 제 생각도 아직은 왔다갔다 합니다. 한편으로 여유있게 살고 싶다가도 또 한편으론 확실하게 사업에 몸을 담가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Q. 다행히 어떤 경우도 예상 가능하군요. 어떤 문제도 예상만 할 수 있다면 대비하고 해결 가능합니다. 어떻게 그 문제에 대비하시겠습니까?

A. 대표이사와 그런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자리를 갖겠습니다. 몇가지 주제를 정해놓고 그 친구가 예전엔 왜 그렇게 결정했는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앞으로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중요한 건 내 문젠데. 음. 내가 정말 원하는게 무엇인지 아직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 시간을 어떻게 쓰는게 가장 행복한지 잘 모르겠군요.

Q. 오늘 대화의 핵심적인 사항입니다. 박사장님이 충분히 행복해 하면서, 회사도 잘 운영하는게 최선이겠지요. 세상에는 행복하게 돈버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많은 분들이 그 두가지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십니다. 좋습니다. 질문의 방향을 조금 바꿔보겠습니다. 아까 편안하게 지내고 계시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A. 주변의 문제에 대해 깊이 관여하지 않고, 그들이 원할 때 원하는 만큼만 성실하게 대해주면 다들 좋아하고 저 역시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습니다. 책임질 수 없거나 책임지기 싫은 것을 억지로 떠맡게 되면 짜증이 생기게 되고 불편해지는거죠. 사람관계나 사업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Q. 혹시 박사장님 개인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하고 계신 일이나 취미 등이 있으신지요?

A. 요즘 골프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매일 열심히 하고 있지요. 폼도 좋아지고 건강관리도 되구요.

Q. 그런 일들에 목표를 가져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부담스럽게 할 필요는 없지만, 꼭 하고 싶고, 하면 성취감이 클 것 같은 일을 지속적으로 해보시지요. 회사일이든, 취미생활이든 박사장님의 행복을 위해 촛점을 맞춰본다면 시간배분도, 관여수위도 조절가능할 것 같습니다. 

A. 중요한 것은 이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내 행복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점에 십분 공감합니다. 회사를 새로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짜증나게 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내가 충분히 행복하면서도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강구해봅시다. 돈도 필요한 만큼 벌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불식하고, 일이나 취미를 균형있게 가져가는 것도, 생각해보면 분명히 가능할 겁니다.

Q.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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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본부장은 지난달에 신입 수습사원을 다섯명이나 받았다. 기존 인원이 여섯명이었으니 배가 늘어난 셈이다. 새식구가 될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적잖이 기대했지만 요즘 그는 몹시 못마땅하다. 건질만한 사람이 하나도 눈에 띠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이해가 안됩니다. 내가 주재하는 회의에 한시간씩 늦는 경우도 있고, 회사에 바라는 게 뭐냐고 코칭을 했더니 간식비 늘려주고 유니폼 왜 안주느냐는 기막힌 얘기들만 나오는 겁니다. 아무 생각도 없는 것 같아요. 공연히 저만 힘 빠집니다. 석달후 수습이 끝나면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Q. 수습사원을 그렇게 많이 뽑게된 이유가 있습니까?

A. 지난 연말에 사원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해서 한 사람에 하나씩 보조할 직원이 있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원을 좀 많이 뽑게 된거죠. 지금 사원들이 한사람씩 맡아서 지도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빨리 숙달해서 현업에 넣겠다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Q. 한사람씩 개인지도를 하고 있다면, 그 직원들에게 수습교육을 개별전담시킨다는 뜻인가요.

A. 물론 전체 OJT가 있습니다만, 실무교육은 개별적으로 받고 있는 셈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기존직원들도 훈련이 잘돼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들어온 친구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구요.

Q. 혹시 본부장님의 눈높이가 좀 높은 것은 아닌가요? 다섯명 모두 좋은 사람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A. 글쎄요. 업무보조로 급히 충원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왕이면 좋은 인재가 들어오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Q. 본부장께서 당초에 원했던 결과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A. 성실하고 정신자세가 곧은 청년들을 기대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비전을 잘 이해하고 우리 업무의 특성을 빨리 숙달할 수 있기를 바랬지요. 그래서 젊은 직원들 키우는 보람도 느껴보고 싶었구요.

Q. 본부장님께선 입사전에 그런 자질을 가진 사람이 백명중에 몇이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무작위의 사람들이 입사후에 그렇게 되려면 어떤 교육을 얼마나 받아야 한다고 보십니까?

A. 어렵네요. 백명중에 열명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입사후에 최소한 한달은 집중적으로 OJT교육을 받아야 되겠지요. 그러고 보니 내가 좀 무리한 욕심을 부린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청년실업난이라해도 사람 뽑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웬만하다 싶으면 수습발령을 낸 셈이지요. 교육도 전담요원이 붙지 않고 개별적인 지도에 많은 비중을 두었습니다.

Q. 수습기간이 석달이라 하셨는데 지금같은 상황이 계속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A. 제 마음같아선 전원 탈락시키고 싶지만, 저만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도 신경쓰이고. 그러다가 어영부영 다 합격할까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지금은 수습이니까 못본척 넘어갈 수 있지만 정규직원이 된 뒤에도 그런다면 생산성도 문제고, 본부내 팀워크에도 오히려 지장이 클 것 같습니다.

Q. 수습기간의 업무평점 시스템이 있는지요? 본부장님의 재량권이 어느 정도 됩니까?

A. 있긴 하지만 구체적이진 않습니다. 거의 제 재량에 맡겨있는 셈이지요.

Q. 그게 부담스러우면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A. 좋은 생각입니다. 자기 담당만 평가하면 주관성이 개입하니까 여러 직원이 한 수습사원을 다면평가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본부장인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가지 기준을 반영하도록 해보지요. 그렇게 시스템을 통해 일단계 조직적인 평가를 하고 나서 조직운영 방침에 대한 제 개인적인 판단을 집어넣는게 좋겠습니다.  

Q. 그렇다면 내일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행동을 취하시겠습니까?

A. 기존 직원들중에 한명에게 수습직원 관리 총괄을 맡기겠습니다. 이 직원에게 고과기준을 잡아보라고 하고, 다른 직원들의 의견도 수렴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기존 직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파악해볼 생각입니다. 기준이 만들어지면 수습직원들에게 상세하게 설명해주라 하고, 기존 직원들에게 전파해서 담당자들을 돕는데 참고하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곧바로 생각해보겠습니다.

Q.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 다른 문제점은 없습니까?

A. 제가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 무슨 편견이 있는건 아닐까요? 제 눈에만 잘못 비춰지는 것은 아닌지 좀 꺼림직합니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하는가 아닌가 싶습니다.

Q. 좀전에 수습기간을 데이트기간이라고 하셨는데 재미있는 질문 한가지 해볼까요? 어떤 이성과 데이트를 시작했는데 상대방이 약속시간에 번번히 늦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숙한데다, 비전이나 목표도 없다면 그 사람을 키우려고 노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빨리 다른 사람을 찾아보시겠습니까?

A. 하하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저도 함께 일하는 당사자이므로 그 사람 못지않게 저 역시 행복해야겠지요. 내가 불행하고 불쾌하다면 상대방도 행복하지 않을겁니다. 세상은 넓고 사람을 많으니까 새로운 인연을 찾아보는게 피차 좋겠군요.

Q. 오늘의 대화를 정리해보도록 하지요.

A. 제 목표는 좋은 사람을 선별해서 빨리 현업에 투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다소 무리하게 수습사원을 뽑아서 자질에도 문제가 있고, 우리 준비도 충실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차제에 그들이 석달동안 선별과정을 제대로 거치도록 교육시스템도 만들고 평가기준도 세울 생각입니다. 하지만 데이트하는 기분으로 무리없이, 피차 행복해질 수 있는 결과를 내도록 하겠습니다. 

Q. 감사합니다. 좋은 성과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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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박노해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들 하지만

어느날 그 사람이 너무 쉽게 변해가고
하루 아침에 그가 무너졌다고 말들 하지만

꽃도 별도 나무도 사람도
하루 아침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 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 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작은 일을 끈질긴 사랑으로 밀어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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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인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눔은 잘 되고 있는건가.

시인의 심성으로 결코 쉽지않은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

작은 보탬이라도 주고 싶다.

나처럼 몰인정하고 표독한 인간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 하는

박시인과 나눔의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박노해. 그의 본명은 기억나지 않는다.

분노와 좌절로 찢기고 터졌던 젊은 시절

그의 시는 흉터를 어루만지는 동료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다시 일어서게 붙잡아 일으키는 굳은 악수였다. 

단 한권의 시집만으로 나를 위무한 사람은

김지하도, 신동엽도, 고은도, 백무산도, 푸시킨도, 소월도 아니었다.

박시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탄핵반대인가, 반전반핵인가, 그도 아니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해야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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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군이 일년동안 휴직계를 내고 뉴질랜드로 떠났다고 한다. 20일전쯤 우연한 기회에 한번 모이자고 전화했더니 휴대폰을 안받더란다. 집전화번호를 알아내서 와이프하고 통화를 했는데 신문사에다간 무급휴직을 하겠다 하고 혼자 떠난지 달포쯤 됐다고 한다.

지난 연말 망년회때 막걸리 몇잔 걸친 후 밤 열한시쯤 안국역에서 지하철을 함께 탔다. 별로 말이 없는 친구라 우린 덤덤하게 몇정거장을 갔는데, 갑자기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남자의 후반생>이라는 책을 읽어보았느냐 뜬금없이 물었다. 평소 답지 않게 강군은 <범려>라는 인물에 대해 한참 얘기했다.

취기가 얼근한테다 전철 안이 후덥지근해 그의 말이 잘 들리진 않았지만, <이 녀석 뭔가 딴 마음 먹고 있는 거 아냐>하는 직감이 딱 꽂혔다. <밖에 나갈 일이 있을 것 같애.><그래, 너도 이제 연수나 특파원갈 때가 됐지. 언제쯤 갈 것 같냐?><글쎄, 빠르면 빠를 수도 있고. 아직 잘 모르겠어. 하지만 오래 걸릴 것 같진 않아.><결정되면 꼭 연락해라.> 평촌까지 가야하는 강군은 다음 역에서 내려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막차를 잡으러 걸어갔다.

그가 떠났다는 얘길 듣고 사람들은 <짜식, 전화 한 통 없이 떠났네.>라고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하고 무덤덤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리 헤어진 후 한달쯤 있다가 떠난 셈이다. 그것도 회사에서 보내주는 게 아닌, 자비 외유를 말이다. 그와는 대학을 같이 다니고, 같은 직장에서 일년반쯤 같이 일했다. 뭔가 절박함이 느껴진다. 단신으로 떠난 것도 그렇고, 뉴질랜드, 일년휴직 등의 단어들이 풍기는 냄새가 심상치 않다.

뉴질랜드에 무슨 연고가 있단 얘기도 들은 적이 없다. 우연히 며칠전에 황순현에게 권혁종선배가 그곳으로 이민을 갔단 말을 들었다. 거기서 교민신문을 만든다 했는데 강군 얘길 듣자마자 느닷없이 그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러 갔거나 머리식히러 떠났을 리는 없다. 아마 옮겨갈 수 있는지 확인하러 갔을 것이다. 일년 말미를 얻어 정착기반을 만들려는 생각인 듯 하다. 정 안되면 회사에 다시 들어가 때를 기다리겠다는 생각일게다. 여하튼 90% 상상이지만 그는 이 땅을 떠날 생각을 굳힌 것 같다. 

한때는 이민가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맺은 인간관계, 이땅에서 써먹을 만한 학벌과 직장경험,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키워왔던 야망과 기개는 어찌하고 하루아침에 탈탈 털고 떠날 수 있는 걸까. 지난 세월이 너무 아깝고 앞으로의 생활이 너무 불안하게 보였다. 그러나 지금 강군이 내게 전화해서 <어, 나  이민가기로 했어.>라고 하면 뭐라 할것인가. <너 미쳤냐, 어딜 간다는거야.>라고 할까, 아니면 <좋겠다. 그래 먹고 살 수만 있다면 가는게 좋지.>라고 할까.

식구들을 파리로 보내면서 두가지를 다짐했다. 첫째, 아이들은 이 나라 대학에 보내지 않겠다. 다시말해 우리나라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어떤 공부도 시킬 생각이 없다. 둘째, 아이들이 이 나라에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 자기 정체성만 있다면 사는 곳은 어디든 상관없다. 아니 가급적이면 여기서 살지 않기를 바란다. 앞의 다짐은 내 의지가 강하고, 뒤의 것은 장차 아이들의 판단에 맡기겠지만 나의 희망사항이다. 이렇게 두가지만 정리하니까 복잡한 계산이 필요 없어졌다. 언제 다시 돌아올 거냐, 거기있다 오면 여기서 적응 안될텐데, 그래도 대학은 여기서 잠깐 다니는게 좋을 걸, 미국으로 유학가야 나중에 여기서 자리잡기 좋아, 왜 프랑스로 가? 애들 교육도 마음놓고 못시키는 나라에서 웬 잔머리는 그리 많은지. 돌아오고 싶으면 맘대로 해라, 하지만 안돌아와도 좋다. 이렇게 다짐한 이유는 뒤에 가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사는게 억수로 피곤한 곳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런 다이나믹스가 좋았다. 이 작은 나라에서, 신문 1면톱이 이렇게 다양하고 충격적일 수 있나 감탄한 적도 있었다. 이땅에서 기자질을 한다는게 너무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뿌듯해 했다.  딴나라가서 무슨 재미로 살겠느냐 한 적도 있었다. 이제는 지쳤다. 한도 끝도 없다. 그만했으면 한다. 내가 그런다고 그만둘 일이 아니란걸 잘 안다. 그래서 좌절했고 체념한다. 많이 묵었다 고마 해라.   

뉴질랜드로 떠난 강군의 전반생이다. 뒤늦게 들어간 <인문대 문학회>에서 강군은 첫손 꼽는 강경파요, 원칙주의자였다. 언변은 어눌하지만 입장은 단호했고, 행동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서넛밖에 없는 동기지만 여간해선 곁을 주는 법이 없었다.  3학년때 과회장을 맡고나서 연거푸 세번을 학사경고 받는 바람에 제적이 됐다. 그리고 반년인가를 서성이다가 백골부대에 들어갔다. 그 어름이었다. 어느날 산꼭대기 자취집에 들렀더니 그는 새하얀 얼굴에 눈이 쑥들어간 표정으로 앉아있다가 계면쩍게 나를 맞았다. <밥은 먹었냐?> 의례적인 인사에 머쓱하게 웃으며 그는 말했다. <쌀이 떨어져서.><언제?><한 사나흘 돼.><그럼 그동안 내리 굶었단말야?><응. 그렇지 뭐.>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처음으로 강군을 알게 됐다.   

지금도 어머니는 강군 걱정을 그중 많이 하신다. 당시 우리 집 근처에 살던 그의 큰 누님이 동생 제적됐단 얘길 듣더니 어머니를 붙들고 꺼이꺼이 울더란다. 전라남도 어느 궁벽한 섬마을 소년이었던 강군은 어려서 어머니가 농약먹고 자진하는 불행을 겪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큰누이 집에서 눈칫밥 먹으며 더부살이를 했지만, 그래도 서울대에 들어가서 매형에게 덜 미안하다 싶었는데 제적이라니. 그도 누이와 매형 보기가 미안해서 집엔 못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서 돈이 떨어지면 입 꾹다물고 며칠을 굶었다.

여우처럼 헤반주그레한 애인이 있었다. 유난히 모성에 허기져하던 그는 그녀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제적당한 처지에 군대까지 가야하는 형편이니 마음끝이 편치 못했다. 걱정한 대로 그녀는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고, 그 상대도 어처구니 없었다. 우리는 용서받지 못할 사랑을 하고야만 그 두사람에게 평생 나타나지 말라고 파문을 내리면서 더럽게 안풀리는 강군의 팔자를 서글퍼했다. 정작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군대에 있는동안 민주화 운동으로 제적당한 학생들의 복학 허용조치가 내려졌고, 그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제대후 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동기들은 모두 졸업해서 현장에 가거나, 군대에 갔기 때문에 그의 복학생활을 귀담아들을 여유가 없었지만, 가끔 풍문으로 대단히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받는다는 믿을 수 없는 얘기가 들리곤 했다. 

그가 모 경제신문사에 들어가고 수더분한 전주처녀를 만나 결혼을 하고, 과천에 아파트 한채를 사서 신혼집을 마련했을 때 나는 그의 평범한 새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 않았다. 더구나 그가 색시에게 냅다 핀잔을 하고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칠 때 <녀석 제법인데, 그래 너도 큰 소리치고 살아라>하며 속으로 웃곤 했다. 일년 그리고 이년 강파르던 그의 턱에 살집이 붙고, 어느샌가 저 닮은 푸짐한 딸을 낳으면서 그의 30대는 마치 석달열흘처럼 지나갔다. 

직장을 두어번 옮겨 이제 제법 좋은 신문사에서 고참차장으로, 적어도 겉보기엔 남부러울 것 없는 자리에 올랐다. 팽팽했던 눈자위도 부드러워졌고, 단호했던 정치적 입장도 더이상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안하고, 그저 제 할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기사쓰고 취재하는 것이 천직인양, 벤처붐이 그렇게 불고 지나갔어도 눈길한번 돌린 적 없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뉴질랜드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 남자의 후반생은 그렇게 시작하려나보다.

그가 툭하고 던진 <남자의 후반생>을 진즉 사놓고 띄엄띄엄 읽다가 엊그제 주르륵 다 훑어보았다. 공자, 위징, 범려, 진평, 여몽, 소진, 장의, 사마천, 사마광, 여불위, 유방, 법정, 조조, 왕안석 등 얼추 알거나 들어본 바 있는 인물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짧지만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대부분 전반생에 잘 나가다가 날벼락을 맞고 재기불능상태에 빠졌지만, 불굴의 의지와 자신감으로 실패를 딛고 다시 성공했다는 판에 박힌 얘기거나, 마흔이 다되도록 초야에 묻혀있다 진흙속의 진주처럼 빛을 발하기 시작해 놀라운 속도로 부와 권력을 얻었다는 통속한 얘기다. 결론은 역시 버킹검. 실패하더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심기일전하여 재주와 학문을 부단히 익히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예전같으면 연신 무릎을 탁 치며 감탄했을게 분명하다. 가끔은 천장을 쳐다보며 <내게도 언젠가는> 하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했으리라.

적어도 요즘 내가 감을 잡아가고 있는 후반생의 모습은 이 책의 인물들과는 전혀 방향과 내용을 달리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우선 나는 이 나라에 대한 애정지수가 위험상태를 넘어섰다. 전반생의 내 많은 것을 동원해가며 염원해 마지 않았던 가치에 나는 더이상 의욕을 갖지 않는다. 그래도 그러는게 아니다? 나도 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내 욕심껏 살았던 것 뿐이란 걸 안다. 최근 몇년의 연이은 실패로 의기소침해있는 것도 맞는 얘기고, 그 화풀이를 엉뚱한데다 한다고 빈정거려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작금의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이 나라에 정 떨어져 하는 건 비슷하다. 서로 터놓고 말은 안한다. 그러나 나도 강군도 주변 사람들도 보여지는 행동들은 너무 비슷하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이 나라의 정치며, 경제, 문화, 교육 어느 하나도 건질게 없다.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빌어먹을 주둥이, 눈귀를 막고 싶을 만큼 무섭고 환멸스럽다. 그 대열에 그동안 끼어있었다는 추억에 전율할 지경이다. 나이든 자들은 비겁하고, 어린 것들은 시건방지다. 작은 원칙도, 새로운 방법론도, 심지어 제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루의 시간을 탕진한다. 소설에나 나옴직한 싸구려 인생살이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멱살 잡을 일도 아닌 것에 주먹을 휘두르고 앙심과 몽니로 소송질하다 직장도 떨려 집안도 주저앉아, 홧김에 퍼먹은 술로 풍맞고 길거리로 나앉아 행려병으로 화장터가는, 그야말로 개떡같은 인생파장 이야기가 수도 없다. 개도 안물어가는 학벌 때문에 평생을 열등감에 시달리는 반편이가 있는가 하면, 세계 5백등 안에도 못드는 국산 일류대에 보내려고 유치원때부터 게거품을 무는 헛배운 인간들도 득시글거린다. 누군가 그 안에서 이루어내겠다 하면 말리진 않겠지만 난 엄두가 나질 않는다.  

나는 이 소음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변화와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는 해묵은 가치체계로부터도 도망가고 싶다.  심신을 추스리든가, 아니면 다른 시공간을 찾든가 결판을 내야한다. 후반생을 시작하기 전에 단 얼마만의 시간이라도 완전히 이기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나만 생각하자, 적어도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자. 행복이란 무엇인가. 내가 이제까지 행복의 조건이라고 단정하며 추구했던 것들을 되돌아보자.

명예와 권력을 탐했다. 사실이다. 그것으로 나의 아이덴티티를 입증하려 했다. 술먹고 대형 사고 친놈 전화 몇통으로 빼보기도 하고, 시건방 떠는 녀석 정신 버쩍나게 얼차려를 주기도 했다. 머리굵은 놈의 뒤통수를 냅다 후려갈긴 적도 있다. 글 솜씨 있다는 얘기도 들어봤고, 그 나이에 출세했단 말도 들었다. 그러나 역시 <공짜 점심은 없었다.> 그런 허접한 힘을 쓰기 위해 밤마다 먹기 싫은 술을 퍼마셔야 했고, 불쌍한 후배들을 잠 재우지 않았으며, 내 몸을 지독하게 학대했다. 그것과 바꾼 알량한 명예의 꼬락서니라니, 그 권력의 초라함이라니. 

그것만으로 만족이 안돼니까 돈으로 확인해보자 했다. 사실 나는 돈을 모른다. 돈이란 걸 의식할 만큼 수중에 돈을 가져본 적도 없고, 돈의 들고남을 한번도 기억하고 처리해본 일이 없다. 그런 인간이 사업을 한다고 나섰으니 먼저 본 놈이 가져가는게 당연한 노릇이다. 지금도 한심한 생각을 한다. 돈에 관심을 쏟고 의욕을 부리면 그에 반비례해서 돈이 뭉텅뭉텅 나간다. 차라리 아무 생각없으면 아껴 쓸만큼의 돈은 떨어지지 않는다. 앞으로 돈은 그렇게 대하려고 한다. 일은 성실하게 하되 그게 얼마의 돈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접기로 한다. 들어오는 만큼 쓰되 근검하고 절약하는게 정신건강에도 좋다. 솔직히 쓸만큼 써봤다. 따라서 돈 욕심을 내게 하는 투자는 절대 삼가할 것이며, 꼭 필요하다면 그냥 준다는 생각으로 할 것이다. 또한 사업의 성공을 절대 낙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머릿속에서 셈빠른 계산이 나온다 할지언정, 몇날몇일 고민했는데도 실패할 가능성이 없다할지라도 잘될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겠다. 쉽게 말해서 돈 벌 생각 안하겠단 얘기다.  

앞으로 이삼년동안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나지 않았다면>하는 가정을 전제로 삼아보련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선 빌어먹을 중고등학교 시절을 그리 안보냈을 것이고, 점수에 맞춰 대학에 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학생운동이니, 민주화운동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고, 군대 끌려가서 꽃같은 젊음 허송세월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아이들 교육때문에 외국 유학을 내보내고 혼자 살지도 않았을게다. 그리고 이런 류의 구차스런 얘기를 꾸역꾸역 후반생의 첫장에 적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예술에 종사했을 거고, 집안 가득히 그림을 걸었을 것이며, 세계여행을 일년에 석달 정도는 했으리라. 매일 글을 쓰고, 요리를 하고, 산책을 하고,  친구들과 차를 마시며 한국을 비롯한 세상의 뉴스메이커들을 비웃는 농담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체면 깎일까 부질없는 걱정도 안한다.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에 충실하고자 한다. 나의 후반생은 모름지기 전반생과는 많이 다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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