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인적 드문 산중백수의 블로그지만 여차하면 빈축을 사기에 똑 알맞은 얘기라 말꺼내기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한 석달 됐나보다. 한여름 땡볕에 양복을 입고 곤죽이 됐으니까. 떨떠름한 발걸음으로 변호사와 함께 법원에 들어갔다. 판사앞에서 조정인지 뭔지를 받아야 한단다. 복잡할 것도 없는 사연이다. 노친께서 십삼년 동안 땅 임대를 준 고향후배요, 대학 후배라는 양반이 있다. 수 삼년전부터 거기다 조그만 건물을 하나 지어야 하니 비워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양반 겉으로는 예 예 하면서 막판에 돈 좀 챙겨야겠다 고약한 심뽀를 먹은 것이다. 급기야 법정공방까지 갔는데, 그날이 판사가 합의를 유도한다고 양쪽 모두 출두하라는 날이었다.
우리 쪽의 손해는 자명했다. 임대료 밀린게 반년치에 소송비, 시설물 철거비 등등 그 액수도 적잖았다. 판사가 불러 들어갔다. 의외로 사람좋게 생긴 부장판사가 단도직입으로 얘기하잔다. <얼마나 줄겁니까?> <뭘 주라는 겁니까? 손해는 저희들이 봤는데. 오히려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딱하다는 듯 잠시 나를 바라보던 판사 나으리가 입을 열었다. <가진 자들은 무조건 죄인입니다. 아십니까?> 넌 그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이었다. 쉽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아직도 자본주의국가인줄 아느냐는 얘기였다.
법원 현관앞에서 개기름이 번질거리는 그 양반이 유들유들 악수를 청했다. 그 정도 돈만 받고 합의해준 것도 크게 선심 쓴 거라는 표정이었다. 돌아 나오면서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있느냐 변호사에게 화풀이를 했다. 이따위로 결말이 날 거면 소송도 안했다. 당신도 나처럼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냐. 변호사는 허허하고 속없이 웃고는 더 끌어봐야 우리만 손해본다 잘한거다 라고 위로같잖은 위로의 말로 토닥거렸다.
혹시 그 임차인이 당연히 받을 걸 요구한 건데 '가진 자'가 그걸 안주려했던 거 아니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봐 그 후일담을 잠깐 소개해야겠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시작되고 며칠 후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시냐는 말도 하는둥 마는둥 무슨 일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 양반 왈 그동안 임대료를 줄여서 신고했던 것을 국세청에 정정신고하겠단다. 아무거나 트집 잡아 엿을 먹이겠다는 건데, 속셈은 빤했다. 신고 안하는 조건으로 돈을 마저 뜯겠다는 얘기다.
뭐 이런 게 다있나 싶어 아무 말도 안하고 30초쯤 전화기를 들고있었다. 끊으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끝까지 악연을 이어가려고 하시는군요. 이렇게 얻는 손톱만한 이익과 대를 물려 깊어지는 악연을 비교해보십시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나라에 내야할 게 있다면 내겠습니다. 그걸 안낼 요량으로 잔머리쓸 생각도 없고, 단돈 백원 한닢도 허투루 쓰지 않을 겁니다.>
유류도매상을 했던 그 양반은 당국에 신고한 규모의 무려 열배에 해당하는 탱크를 땅속에 묻어놓고 장사를 했다. 공사 첫날 파보니 온 땅이 잠수함만한 기름탱크로 꽉 차있었다. 보나마나 소득을 속였을 게고 엄청난 규모의 탈세를 저질렀을 게 틀림없다. 어디 그뿐이랴. 땅은 온통 탱크에서 새어나온 기름으로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그걸 특수폐기물로 치우느라 비용이 두배도 더들었다. 국세청에 신고한다고 기고만장하던 그 양반은 그 날 이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는 농으로 그 성씨와는 삼대에 걸쳐 통혼을 금하겠다고 했다.
머릿말이 너무 길어졌다. 요지는 <가진 자들이 민폐 안끼치고 조용히 살면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더 갖겠다고 못 가진자를 핍박하는 자들을 징치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어렵게 땅 한자리 사서 이삼십년을 조용히 갖고 있었다면 거기다 집을 짓든, 밭을 매든 내버려둘 일 아닌가. 건물 짓는다고 얘기하면 대뜸 눈치부터 확 달라지기에 조심스러워 하는 말이다.
노모가 호랑이 어금니처럼 간직해온 땅에 작은 건물 하나 지어드리는 것이 올해 백수아들의 최우선 프로젝트였다. 마침 작년에 내린 폭우로 해묵은 낡은 건물에 치명적 균열이 갔기 때문에 소심하기 짝이 없는 노모께서도 건축을 허락하실 수 밖에 없었다. 아홉달 만에 대부분의 공정이 끝나간다. 설계부터 땅파고 콘크리트 붓고 빼대올리는 과정이 낱낱이 머릿속에 들어있다. 유리색깔부터 타일 한장까지도 불원천리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한 뒤 골랐고, 강남 인근에 예쁘장한 빌딩이라면 안가본 곳이 없다. 그렇게 공을 들여 다음달초면 완공이 된다.
원래 아버지는 그런 복잡한 일은 딱 질색인 분이다. 혹여 공연한 참견을 하신다거나 서툰 관심을 보여 헛점을 드러내는 법도 결코 없다. 그런데 그렇게 무심으로 일관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건물을 둘러보시곤 마음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며칠 전 아침에 갑자기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게 아닌가. <거기 말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름을 '흑진주빌딩'이라고 하는게 좋겠어.> 으아. 흑. 진. 주. !!! 건물 외벽을 검은 돌로 붙이고 전면 유리창색도 짙은 청색으로 했더니 보시기에 흑진주같다고 느끼신 게다. 흑진주빌딩이라. 어허 이 엄청난 크리에이티브를 그 순간앤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결정타를 날리셨다. <흑진주는 무슨. 그건 이혼할 때 주는 선물 아닌가. 음. 난 말야. 대성이라고 하는게 좋을 것 같아.> 대성이라 하시면...<큰 대, 이룰 성, 대.성. 좋지않어?>
한때 이름 짓는데 재미 붙였던 적이 있다. 내 손으로 지은 이름이 제법 된다. 국내 언론사상 최초의 컴퓨터 섹션이었던 <사람과 컴퓨터>부터 <굿모닝 디지틀>까지. 그 후에 지은 회사 이름도 몇개 된다. 디자인중심, 소프트중심 등 중심을 뒤에 붙여서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은 중심을 많이 쓰지만, 당시로선 대단히 파격적이라고 했다. 무엇이든 중심을 선언하면 다른 것들은 졸지에 변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매우 공격적이고 안하무인인 이름이었다. 전략 컨설팅 회사이름을 레인메이커라고 지었다. 마른 대지에 단 비를 내리게 하는 주술사. 월가에선 대박을 치는 펀드매니저를 그렇게 부른단다. (존 그리샴의 동명소설은 나중에 알았다.) 돈을 만지는 투자컨설팅회사 이름을 짓는데 좀 고민스러웠다. 회사 주인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오닉스 ONIX라고 붙였다. Omni-Network-of-Investment-Xperts. 그럴싸했다. 오닉스는 검은색깔의 보석이기도 하다. 그 회사의 CI를 블랙톤으로 하라고 말해줬다.
그 회사들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게 혹시 이름 탓이 아닌가 싶어 면구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이번 건물의 작명엔 철저히 빠질 생각이었다. 가끔 머릿속에 휙 지나가는 단어들이 있었지만 절대로 멈춰서게 하지 않았다. 건물도 내 소유가 아닌데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친들을 위해 했던 일이므로 당신들의 뜻대로 정하시는게 옳았다.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치 방언이 터지듯 당신들 입에서 대단한 이름들이 튀어나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성이란 이름은 나를 미소짓게 한다. 대성학원의 대성이나, 대성가스보일러의 그 대성이 아니다.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은 실로 어머니같은 이름이다. 당신의 성격과 스타일 그대로를 담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큰 대 이룰 성자를 만들어내셨다. 전혀 내색 안하시는 듯 하면서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 곰곰 좋은 이름을 궁리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그러다 문득 대성 두글자를 떠올리시곤 흐뭇한 웃음을 씨익 웃으며 비로소 편안한 잠에 드셨을 당신을 생각해본다. 다른 이가 냈으면 일고조차 안했을 그 이름을 그대로 큼지막하게 붙여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그날 아침엔 너무 경황이 없어 아버지께 칭찬을 못해드렸다. 내가 다소 희한한 이름을 지어내는 내력이 어디서 비롯됐나 싶었더니 역시 세상사엔 다 뿌리가 있는 법이다. 정수리에서 부은 물이 발등으로 떨어지지 어디로 갈 건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다들 한번 들으면 절대 안잊혀지는 이름이라고 한다. 흑설탕도 아니고 흑돼지도 아닌 흑진주라. 평생 책읽는 모습 한번 보여주신 적 없는 노인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이젠 아버지를 알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겪을 수록 새록새록한 분이다.
오늘 아침에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로 나오다가 아버지께 준비해두었던 칭찬을 해드렸다. <아버지도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정말 대단하셨겠어요. 흑진주. 이거 보통 대단한 이름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난리에요. 좋다고. 따지고 보면, 저희 삼남매가 부모 잘 만나서 다들 좋은 학교 나오고 사회생활 잘 하고 있지만 아버지 어머니에 대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참 아쉽습니다. 그 재주말이에요.>
<중학교부터 친척집에 얹혀 타향살이를 시작해서, 주머니에 땡전 한푼없이 대학까지 나올라니 무슨 공부를 제대로 했겠냐. 그 집 장작도 패주고 물도 길어다주면서 부뚜막에서 식은 밥 한덩이 먹고 방 한켠에 쪼그리고 새우잠 자는 걸 마냥 감사하며 살았다. > 잠시 상념에 젖어있던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문득 나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야, 근데 내가 방금 생각한 건데... 건물 이름말야, 블랙박스 어떠냐. 거 왜 미국 대통령이 항상 들고다닌다는 그 가방말야. 이 건물안에 매우 중요한 게 있다는 그런 뜻인데. 괜찮지않냐?>
지금 아버지는 탄력 '이빠이' 받으셨다. 아들의 흔치않은 칭찬에 한껏 고무된 당신. 급기야 크리에이티브의 못다핀 꽃 한송이를 피우리라 작정하신게다. 바로 이 순간 안방에서는 아버지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천정에 수없는 이름들을 지우고 또 지워가며 머리를 쥐어뜯고 계실게 틀림없다. 이 가을은 크리에이티브의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