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군도 많이 늙었더군. 나이 먹은 태야 사람마다 가지각색 아니던가.  몸이 붇거나 빠지거나, 아니면 얼굴에 주름이 늘거나 머리가 하얗게 세는게 보통이지. 그 정도면 곱게 늙는거야. 돈과 권력을 탐하든지, 추접스럽게 보약과 어린 것들을 밝혀 노추로 손가락질 당하는 치들도 있는데.

S군. 당신의 세월은 눈밑에 머물러있더라. 젊었을 때 사흘이 멀다하고 밤샘한 눈처럼 부스스하게 살집이 돋아있다. 안광도 흐리고 어깨도 한결 쳐져 있는 것 같구나.

올해 서른 여덟이라구. 낼모레 마흔이라고 덧붙인 말이 소슬 바람 뒤끝처럼 스산하다. 너를 만난지 열두해. 그땐 스물예닐곱 푸른 눈의 청년이었다. 눈살 꼿꼿하고 성질 강파른 선배를 차마 마주 쳐다보지 못하고 항상 45도 오른쪽으로 시선을 꺾던 심성착한 사람이었다. <일하는 사람은 아프지 않는 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선배의 말에 펄펄끓어 입술이 허옇게 타들어가는데도 아프단 말 한마디 안하던 그였다.

일년내내 따뜻한 말한마디 없이 열나게 굴려대던 선배가 미국출장 잘 갔다오라며 틱 던져준 백불짜리 달러를 들고 눈자위에 물기가 가득했던 정에 약한 후배였다.

영문도 모르는 선배들의 싸움박질에 휘말려 엉터리 3류신문사로 가자고 내가 보따리를 쌀 적에 눈치 한번 안보고 따라나선 네가 일년뒤 나를 붙잡고 말했다. <이선배  저 좀 돌아가게 해주세요.> 못나빠진 선배 놈은 그 말 한마디에 소주 한병 나발불고는 롯데 호텔 커피숍 빨간 카페트위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없구나. 돌아가거라.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미친 세월일랑 잊어버려라.>

너희들과 함께 천하를 얻으리라던 철없는 골목대장은 그 자리에서 가뭇없이 스러졌다.  널 돌려보낸 후 지금까지 십년동안 나는 혼자다. 한때 많게는 이백여명, 적게는 십수명의 장이기도 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한 적 없다.

<제 밑에 한 오십명 데리고 있습니다.> 너도 이제 그런 자리에 있나보다.  몇년전인가 로데오의 재즈바에서 너와 수하들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이선배님이시다. 인사드려라.>넌 제법 호기롭게 후배들을 다스리더구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며 고개를 꾸벅하는 너댓 기자님들에게 황송하게 답례를 하며 <언제 한번 모시지요. 만나뵈어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선배. 애들한테 말놓으시죠.>

오늘 만난 S군은 함께 온 팀장에게 깎듯이 존대를 한다. 나이도 대여섯이나 어린데. 신문사에선 있을 수 없는 관계다. 몇년전의 패기와 위풍당당은 어디 갔을까? 애늙은이처럼 돼버린 모습에 내 마음이 저리다. 나와는 다른 길을 가기를 빌어마지 않던 그가 재즈바 앞길에서 수하들에게 인사시킬 때 속으로 걱정했다. <얘야. 그거 좋은 거 아니다.>

오늘 그의 겸손한 모습을 봤으면 마음이 놓여야 마땅한데 외려 더 짠하다. 애정을 가질 어떤 것도 틀어쥐지 못한게 아닌가하는 걱정.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느낀다.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라.   돌아보면 행복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다 합치면 일주일쯤 될라나. 그럼 불행했던 시간은 얼마쯤일까? 행복한 시간 빼고 나머지 절반은 불행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역설적으로 불행하기 짝이 없다. 이 무슨 이율배반이란 말인가. 난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시간이 불행한 시간과 엇비슷만 해도 이렇게 처량맞지는 않을게다. 아무도 신을 찾아 애걸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은 불행한 시간의 50분의 1쯤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쓰지말고 불행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S군. 그때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장장 십년여를 지옥에서 살지 않았나.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거다. 자네도 그런 일은 만들지도, 겪지도 않길 바란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그 날들을 추억한다. 들킬세라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본다. 그때 그 사람들의 꿈과 사랑을 고통스럽게 반추한다.      아프구나. 많이 아프다.  혹시 너도 아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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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의요정 2004-10-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행복하세요

stella.K 2004-10-28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님의 글 속에서 발견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리 인적 드문 산중백수의 블로그지만 여차하면 빈축을 사기에 똑 알맞은 얘기라 말꺼내기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다. 

한 석달 됐나보다. 한여름 땡볕에 양복을 입고 곤죽이 됐으니까. 떨떠름한 발걸음으로 변호사와 함께 법원에 들어갔다. 판사앞에서 조정인지 뭔지를 받아야 한단다. 복잡할 것도 없는 사연이다. 노친께서 십삼년 동안 땅 임대를 준 고향후배요, 대학 후배라는 양반이 있다. 수 삼년전부터 거기다 조그만 건물을 하나 지어야 하니 비워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양반 겉으로는 예 예 하면서 막판에 돈 좀 챙겨야겠다 고약한 심뽀를 먹은 것이다. 급기야 법정공방까지 갔는데,  그날이 판사가 합의를 유도한다고 양쪽 모두 출두하라는 날이었다. 

우리 쪽의 손해는 자명했다. 임대료 밀린게 반년치에 소송비, 시설물 철거비 등등 그 액수도 적잖았다. 판사가 불러 들어갔다. 의외로 사람좋게 생긴 부장판사가 단도직입으로 얘기하잔다. <얼마나 줄겁니까?> <뭘 주라는 겁니까? 손해는 저희들이 봤는데. 오히려 우리가 받아야 합니다.> 딱하다는 듯 잠시 나를 바라보던 판사 나으리가 입을 열었다. <가진 자들은 무조건 죄인입니다. 아십니까?>  넌 그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이었다. 쉽게 말해서 대한민국이 아직도 자본주의국가인줄 아느냐는 얘기였다.

법원 현관앞에서 개기름이 번질거리는 그 양반이 유들유들 악수를 청했다. 그 정도 돈만 받고 합의해준 것도 크게 선심 쓴 거라는 표정이었다. 돌아 나오면서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있느냐 변호사에게 화풀이를 했다. 이따위로 결말이 날 거면 소송도 안했다. 당신도 나처럼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거냐. 변호사는 허허하고 속없이 웃고는 더 끌어봐야 우리만 손해본다 잘한거다 라고 위로같잖은 위로의 말로 토닥거렸다.

혹시 그 임차인이 당연히 받을 걸 요구한 건데  '가진 자'가 그걸 안주려했던 거 아니냐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봐 그 후일담을 잠깐 소개해야겠다. 우여곡절 끝에 공사가 시작되고 며칠 후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시냐는 말도 하는둥 마는둥 무슨 일이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 양반 왈 그동안 임대료를 줄여서 신고했던 것을 국세청에 정정신고하겠단다. 아무거나 트집 잡아 엿을 먹이겠다는 건데, 속셈은 빤했다. 신고 안하는 조건으로 돈을 마저 뜯겠다는 얘기다. 

뭐 이런 게 다있나 싶어 아무 말도 안하고 30초쯤  전화기를 들고있었다.  끊으면서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끝까지 악연을 이어가려고 하시는군요. 이렇게 얻는 손톱만한 이익과 대를 물려 깊어지는 악연을 비교해보십시오.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나라에 내야할 게 있다면 내겠습니다. 그걸 안낼 요량으로 잔머리쓸 생각도 없고, 단돈 백원 한닢도 허투루 쓰지 않을 겁니다.>       

유류도매상을 했던 그 양반은 당국에 신고한 규모의 무려 열배에 해당하는 탱크를 땅속에 묻어놓고 장사를 했다. 공사 첫날 파보니 온 땅이 잠수함만한 기름탱크로 꽉 차있었다. 보나마나 소득을 속였을 게고 엄청난 규모의 탈세를 저질렀을 게 틀림없다. 어디 그뿐이랴. 땅은 온통 탱크에서 새어나온 기름으로 시커멓게 썩어있었다. 그걸 특수폐기물로 치우느라 비용이 두배도 더들었다. 국세청에 신고한다고 기고만장하던 그 양반은 그 날 이후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나는 농으로 그 성씨와는 삼대에 걸쳐 통혼을 금하겠다고 했다.

머릿말이 너무 길어졌다. 요지는 <가진 자들이 민폐 안끼치고 조용히 살면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더 갖겠다고 못 가진자를 핍박하는 자들을 징치하기에도 바쁜 세상이다. 어렵게 땅 한자리 사서 이삼십년을 조용히 갖고 있었다면 거기다 집을 짓든, 밭을 매든 내버려둘 일 아닌가. 건물 짓는다고 얘기하면 대뜸 눈치부터 확 달라지기에 조심스러워 하는 말이다.

노모가 호랑이 어금니처럼 간직해온 땅에 작은 건물 하나 지어드리는 것이 올해 백수아들의 최우선 프로젝트였다. 마침 작년에 내린 폭우로 해묵은 낡은 건물에 치명적 균열이 갔기 때문에 소심하기 짝이 없는 노모께서도 건축을 허락하실 수 밖에 없었다. 아홉달 만에 대부분의 공정이 끝나간다. 설계부터 땅파고 콘크리트 붓고 빼대올리는 과정이 낱낱이 머릿속에 들어있다. 유리색깔부터 타일 한장까지도 불원천리 직접 가서 눈으로 확인한 뒤 골랐고, 강남 인근에 예쁘장한  빌딩이라면 안가본 곳이 없다. 그렇게 공을  들여 다음달초면 완공이 된다.

원래 아버지는 그런 복잡한 일은 딱 질색인 분이다. 혹여 공연한 참견을 하신다거나 서툰 관심을 보여 헛점을 드러내는 법도 결코 없다. 그런데 그렇게 무심으로 일관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건물을 둘러보시곤 마음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며칠 전 아침에 갑자기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게 아닌가. <거기 말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름을 '흑진주빌딩'이라고 하는게 좋겠어.> 으아. 흑. 진. 주. !!! 건물 외벽을 검은 돌로 붙이고 전면 유리창색도 짙은 청색으로 했더니 보시기에 흑진주같다고 느끼신 게다.  흑진주빌딩이라. 어허 이 엄청난 크리에이티브를 그 순간앤 감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옆에 계시던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결정타를 날리셨다.  <흑진주는 무슨. 그건 이혼할 때 주는 선물 아닌가. 음. 난 말야. 대성이라고 하는게 좋을 것 같아.> 대성이라 하시면...<큰 대, 이룰 성, 대.성. 좋지않어?>

한때 이름 짓는데 재미 붙였던 적이 있다. 내 손으로 지은 이름이 제법 된다. 국내 언론사상 최초의 컴퓨터 섹션이었던 <사람과 컴퓨터>부터 <굿모닝 디지틀>까지. 그 후에 지은 회사 이름도 몇개 된다. 디자인중심, 소프트중심 등 중심을 뒤에 붙여서 이름을 지었는데 지금은 중심을 많이 쓰지만, 당시로선 대단히 파격적이라고 했다. 무엇이든 중심을 선언하면 다른 것들은 졸지에 변방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매우 공격적이고 안하무인인 이름이었다. 전략 컨설팅 회사이름을 레인메이커라고 지었다. 마른 대지에 단 비를 내리게 하는 주술사. 월가에선 대박을 치는 펀드매니저를 그렇게 부른단다. (존 그리샴의 동명소설은 나중에 알았다.) 돈을 만지는 투자컨설팅회사 이름을 짓는데 좀 고민스러웠다. 회사 주인들의 얘기를 들어보고 오닉스 ONIX라고 붙였다. Omni-Network-of-Investment-Xperts. 그럴싸했다. 오닉스는 검은색깔의 보석이기도 하다. 그 회사의 CI를 블랙톤으로 하라고 말해줬다. 

그 회사들이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게 혹시 이름 탓이 아닌가 싶어 면구스러울 때도 있다. 그래서 이번 건물의 작명엔 철저히 빠질 생각이었다. 가끔 머릿속에 휙 지나가는 단어들이 있었지만 절대로 멈춰서게 하지 않았다. 건물도 내 소유가 아닌데다, 처음부터 끝까지 노친들을 위해 했던 일이므로 당신들의 뜻대로 정하시는게 옳았다. 내심 걱정하고 있었는데 마치 방언이 터지듯 당신들 입에서 대단한 이름들이 튀어나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성이란 이름은 나를 미소짓게 한다. 대성학원의 대성이나, 대성가스보일러의 그 대성이 아니다.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은 실로 어머니같은 이름이다. 당신의 성격과 스타일 그대로를 담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큰 대 이룰 성자를 만들어내셨다. 전혀 내색 안하시는 듯 하면서 밤마다 잠자리에 누워 곰곰 좋은 이름을 궁리하셨을 어머니를 생각해본다. 그러다 문득 대성 두글자를 떠올리시곤 흐뭇한 웃음을 씨익 웃으며 비로소 편안한 잠에 드셨을 당신을 생각해본다. 다른 이가 냈으면 일고조차 안했을 그 이름을 그대로 큼지막하게 붙여드리고 싶습니다.  어머니.

그날 아침엔 너무 경황이 없어 아버지께 칭찬을 못해드렸다. 내가 다소 희한한 이름을 지어내는 내력이 어디서 비롯됐나 싶었더니 역시 세상사엔 다 뿌리가 있는 법이다. 정수리에서 부은 물이 발등으로 떨어지지 어디로 갈 건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다들 한번 들으면 절대 안잊혀지는 이름이라고 한다. 흑설탕도 아니고 흑돼지도 아닌 흑진주라. 평생 책읽는 모습 한번 보여주신 적 없는 노인네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을까? 이젠 아버지를 알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겪을 수록 새록새록한 분이다.

오늘 아침에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서울로 나오다가 아버지께 준비해두었던 칭찬을 해드렸다. <아버지도 좋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정말 대단하셨겠어요. 흑진주. 이거 보통 대단한 이름이 아니거든요. 사람들이 난리에요. 좋다고. 따지고 보면, 저희 삼남매가 부모 잘 만나서 다들 좋은 학교 나오고 사회생활 잘 하고 있지만 아버지 어머니에 대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요. 참 아쉽습니다. 그 재주말이에요.>  

<중학교부터 친척집에 얹혀 타향살이를 시작해서, 주머니에 땡전 한푼없이 대학까지 나올라니 무슨 공부를 제대로 했겠냐. 그 집 장작도 패주고 물도 길어다주면서 부뚜막에서 식은 밥 한덩이 먹고 방 한켠에 쪼그리고 새우잠 자는 걸 마냥 감사하며 살았다. >  잠시 상념에 젖어있던 아버지가 환한 얼굴로 문득 나를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야, 근데 내가 방금 생각한 건데... 건물 이름말야,  블랙박스 어떠냐. 거 왜 미국 대통령이 항상 들고다닌다는 그 가방말야. 이 건물안에 매우 중요한 게 있다는 그런 뜻인데.  괜찮지않냐?> 

지금 아버지는 탄력 '이빠이' 받으셨다. 아들의 흔치않은 칭찬에 한껏 고무된 당신. 급기야 크리에이티브의 못다핀 꽃 한송이를 피우리라 작정하신게다. 바로 이 순간 안방에서는 아버지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 천정에 수없는 이름들을 지우고 또 지워가며 머리를 쥐어뜯고 계실게 틀림없다. 이 가을은 크리에이티브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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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2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조선 효자님이신가 했더니 정말 효자시네요. 님 글 읽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저 오늘은 기필코 이 글을 퍼가겠습니다. 양해하시길...^^
세상 살다 보면 기가막힌 별 일을 다 겪는다네요. 이 나라에 법이 바로서야 하는데, 이젠 법 조차도 무법이 되어버렸으니 법을 수호하겠다는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아쉽군요. 그 임차인이야 더 말이 필요없는 사람이구요.
그래도 그런 우여곡절 끝에 내달이면 건물을 완공하신다니 축하드립니다. 부디 두분의 어르신과 함께 행복한 효자님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전출처 : stella.K > Helen Rhodes 의 일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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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면 보고싶고 헤어지면 그리워지는 건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정말 좋아하는지 궁금하면 이 공식에 대입해보라. 안보면 무척 보고픈데, 막상 헤어지면 가물가물한 게 하나 있다. 영화가 내겐 바로 그렇다. 신간 소개 못지않게 뚫어져라 영화평을 읽어본다. 옆에 색연필이라도 있으면 대뜸 순위를 매기고 언제가 길일이겠다 짚어보기까지 한다.

이번 주에도 그랬다. 양조위의 <2046>을 첫손에 꼽고, <콜래터럴>과 <21그램>이 검지에, <주홍글씨>와 <비포 선셋><내머릿속의 지우개> 등의 미개봉작들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들 대부분을 DVD로 보거나 출발 비디오여행의 맛뵈기로 만족할게 분명하다. 그나마 돌아서면 가물가물할 게 뻔하고.  

더구나 하늘이 이렇게 높고,  오늘내일이 단풍의 절정이라고 다들 난리굿인데 영화보러 굴로 들어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나는 오늘 영화보기를 결행하고야 말았다. 푸른 하늘을 망연자실 우러르기 민망하고 울긋불긋 단풍이야 이 고비만 어떻게든 넘기면 되겠다싶었다. 일종의 도주본능이다.  그럼 그렇지 <2046>은 없고 <콜래터럴>뿐이란다.

가운데 서너줄만 옹기종기 사람이 있고 극장 안은 텅비었다. 군데군데 노인네들도 눈에 띤다. 웬만한 영화 매니아가 아니면 여기 낄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 쿨한 표정으로 자세 잡고 내 자리 아닌 곳에 깊이 몸을 던진다. 의자 안쪽으로 쑥 기대고 나서  다리를 척 꼬았다. 이럴 때 팝콘을 와삭대고 콜라를 쪽쪽 빨아댔다간 치명적 이미지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나는 그 두가지 음식물의 도움 없이는 이  예측불허의 러닝타임을 내내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LA의 택시운전사로 분한 제이미 폭스의 차분한 오버 연기가 돋보인다. 물론 생전처음 악역을 맡았다는(흡혈귀는 악역이 아닌가보다) 톰 크루즈의 변신도 박수 받을 만 했다. 별을 준다면 3개하고 4분의 3정도. 살인청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폭스에게 크루즈는 <이 우주에 티끌만도 못한 존재가 하나둘 없어진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 한다. 더구나 <엠네스티도 아니고, 그린피스도 아닌 주제에, 지하철에서 사람이 죽어도 6시간이 지나도록 방치된다는 이 지겨운 도시에 살면서 무슨....>  그러면서도 크루즈는 폭스를 계속 살려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폭스의 총에 맞아 고개를 떨군다.

사람들과 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이웃사촌들과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년을 살고 이사갈 때까지 옆집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섞여살면 재미는 있는지 몰라도 피곤한 건 사실이다.  어지간한 포용력과 이해심, 그리고 내 것을 고집할 게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니면 솔직히 별로 안내킨다. 회사 걷어치우고 집에서 한 일년 놀고 싶어도, 아파트 아줌마들 수근대는 소리가 벽을 뚫고 들리는 것 같아 눈치보여 못 놀겠다는 얘기도 이해가 간다.

공기좋은 곳으로 이사가자고 허겁지겁 분당으로 왔다. 전철역과 뚝 떨어져 불편하지만 산이 가까와 여기서 살기로 했다. 그런데 밤새 활짝 열어 놓았던 창문도 아침엔 모두 꼭꼭 닫아야 한다. 8시반쯤 되면 어김없이 밑에서 생선굽는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오기 때문이다.  생선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로선 이게 웬 봉변인가 싶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역삼동 대로변 빌라가 백배 낫다. 아랫층 사람들은 생선구이를 몹시 좋아하는 모양이다. 거의 예외 없이 점심 때도 그 냄새가 올라온다. 그래도 아무말 할 수 없다. 먹는데는 개도 안건드린다며 눈꼬리를 치켜 올리면 솔직히 뭐라 할말도 없다. 나는 이런 군집생활을 혐오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조차 없으면서 이렇게 아래윗집으로 천장을 바닥삼아 기대사는 건 그 자체로 불행일 뿐이다.

우리 아파트는 지난번에 보니까 <방송 반상회>란 걸 한다. 오프라인으로 집을 정해 모이라면 고작 서너집이 삐쭉 들여다 보고 그냥 간단다.  우리 반장님 고민 끝에 경비실 마이크를 빌려 10분 동안 일제히 방송을 한다. 물론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일방적으로 정한다. 반장님 왈, <이렇게 반상회를 대신하니까 반응들이 너무 좋아요. 한달에 한번 보는 것도 부담이라면 부담인데 이렇게 간단히 방송으로 대신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고 다들 그러시네요. 호호호>  저녁 무렵에 방마다 층마다 쩌렁쩌렁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혹독한 고문이다. 반상회 안나가면 벌금이 5천원인가 그렇던데, 저 방송 꺼버리고 5천원을 내는게 낫겠다 생각한다. 이웃 사촌 어쩌구하면서 월 일회 반상회는 얼굴 안보는 방송으로 대체됐다. 다들 편하다고 그런단다. 이런게 인지상정이다.

COLLATERAL. <담보로 잡혀있는 물건> 또는 <곁에 항상 수반되는 대상>을 뜻하니 아마 폭스를 말하는 모양이다. 폭스는 뒷자리에 손님으로 탄 여검사조차 혹할 만큼 자상하고 사려깊은 이웃이다. 이루어지지도 않을 꿈을 하루에도 틈나는대로 수십번씩 되새김하면서, 십이년째 하고 있는 운전수 일조차 파트타임이라고 생각하는 고단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처럼 위기상황에 있는 여검사를 구하려고 킬러와 맞짱 뜰 인물은 절대 아니다. 이에 반해 킬러 크루즈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눈꼽만치도 없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모더니스트. 긴 말이 필요없다. 내가 잘 아는 전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폭스와 크루즈의 예견된 갈등은 이미 폭스의 승리로 정해져 있었다. 이 영화가 별 넷이 되지 못하는 가장 어정쩡한 판타지다.  

사람들은 겉으론 폭스처럼 말하지만 실제론 크루즈처럼 느끼고 행동한다. 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선 안면없는 사람들의 목숨따위는 안중에 없다. 상황이 조금 심각해지면 까짓것 안면 좀 있어도 상관없다.  IMF당시 몇백명을 스스로 목줄라죽게 했던 금융기관의 채무추심 전문가들이 자신의 행위를 후회한 나머지 참회록을 썼단 얘기 들어본 적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 수천 수만의 어린아이들의 발목을 자르는 지뢰 판매상들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다만 얼마라도 기부금을 냈단 소식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크루즈는 악마가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이다. LA에서도, 서울에서도 수없이 눈에 띄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감독은 폭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치 아무리 우리가 지옥에 살지언정, 인간성(휴머니즘)만은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냐고 절규하면서.   

크루즈는 지하철 의자에 앉은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는 감독의 절규 따위는 들으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뭐라고 비분강개하든 그는 그렇게 오늘 죽어갈 뿐이다. 조용히 앉아서 동터오는 새벽녘을 향해 실려가는 그에게서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아침마다 그들은 지하철에 그렇게 앉거나 또는 서서 죽은 채로 거리를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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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2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집 생활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지어진지 오래된 허름한 빌라에 살고 있지만, 빨리 부자가 되서 아니면 원주 어디쯤 단독으로 이사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상회 형식적이고 별로 도움은 안 되지만, 어떤 땐 필요할거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서로의 불편함과 양해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창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안 그러면 자기네들이 평생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
<콜래트럴> 저도 보고 싶은 영환데 효자님의 리뷰가 참 근사하군요. 어찌 그리 글을 잘 쓰시는지요? 흐흐.
 

반년 동안 밀밭 근처에도 안갔는데.   지난 주부터 하루 걸러 술을 마셨다.  술맛이란 걸 모르니 술복 터졌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생일이라고 친구가 술 한잔 받았다. 식구들도 잊고 지나가는 생일이었는데.  그 날 만취했고, 다음날 외국에서 친구가 와 또 마셨다. 두번 다 압구정동이었지만 코스는 영판 달랐다. 전날은 요즘 잘 나간다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시작해 커피빈에서 입가심하고 룸으로 가서 두어 시간 밴드불러 놀다오는 전형적인 코스였다. 격세지감이라. 노는 데 이골이 났던 몸이 부끄럼을 다 타더군. <긴 하루>가 겨우 살려줬다.

친하게 지냈던 술집 여사장님들이 반색한다. 살이 쪽빠졌다며 놀라다가, 옛날 통통했던 게 더 낫었다고도 하고,  저마다 한 마디씩 관심을 보인다. 예전엔 한달에 두서너번은 들렀으니 잔정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근본이 착한 친구들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고아원에 매달 보내는 후원금을 걸러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생일잔치도 잘 치렀다. 공짜술도 생일선물로 받았다. 제발 가끔 들러 라면 끓여달라고 하란다.

요즘 경기 탓인지 풀기가 없다. 그래도 말로는 그냥 그렇다고 한다. 친한 친구도 일년만 안보면 전화 걸기가 서먹한게 염량세태 아닌가.  비록 술손님이라도 단골이 찾아오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사업 때문에 못먹는 술을 억지로 마셔야 했지만 술김에라도 실수 한번 하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잘하고 신통한 일이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했으니 일년만에 삐쭉 얼굴을 내밀어도 반갑게 맞아주는게 아닐까. 

둘째날은 모인 선수가 죄다 지방출신들이다. 막걸리 동네 포천에서 교수하는 녀석. 상도동 꼭대기에 사는 중앙일보 기자놈,  인도네시아에서 반팔 입고 온 그릇장수 친구. 역시 동선이 살짝살짝 비켜간다. 리틀사이공에 또 가는가 싶더니 옆으로 빠져 2층 노바다야끼집. 개시도 하기전에 밀고 들어가 오징어포로만 맥주 너덧병을 비웠다. 그날 주빈인 친구에게 뭘 먹겠냐 물었더니 고기가 먹고싶단다. 희한하다. 집에서 어쩌다 삼겹살 굽는 날 빼곤 밖에서 고기 먹어본 적이 언제였던고. 사연을 들어본 즉 인도네시아는 맛있는 육고기가 없단다. 쇠고기나 돼지고기가 대부분 냉동육이기 때문에 여기만큼 입에 붙지 않는다고 했다. 압구정동에서 한참을 돌아다니다 제법 그럴싸한 고깃집에 들어갔다.

방에 올라앉아 갈빗살과 와인 삼겹살을 사람수대로 시켰다. 의외로 값이 헐하다. 곁반찬도 깔끔한 편이고 대체로 준수하다. 친구는 변두리 고깃집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맛있고 싸다고 한다. 하기사 여긴 경쟁이 치열하니까. 오랜만에 고기를 굽고 있으려니 옛날얘기도 구수하고 매캐해진다. 이십년전 동네 색시집 다니던 얘기며, 마패라는 싸구려 브랜디먹고 골팼던 얘기, 파란만장했던 첫사랑 얘기들. 잊고 지냈던 과거의 한 페이지들이 넘겨질 때마다 불판도 갈고 고기와 술도 추가됐다.

인도네시아간지 4년반. 중간에 한번 들렀으니 한국땅에 온게 2년반 만이란다. 그런데 그 친구 말하는 건 완전히 6.25 직후에 떠나 반백년만에 돌아온 교포같다. 하기사 고작 그 세월에 사오정이 된 것이 어찌 그 친구 탓일까. 그 친구의 어록은 <너희들 한국에서 사는 게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로 시작됐다.

얼마나 오지에 살길래 그런 <망발>을 서슴지 않나 싶었다. 자가용에 기사가 딸리고, 가정부 두명. 저녁엔 고급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한시간만 나가면 멋진 해변에 기막힌 동물원까지 있단다. 고깃집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한바탕 프리젠테이션까지 한다. 그런데 뭐가 부족해서 한국 생활을 부러워하는지. 그의 부족한 2%는 바로 이렇게 말을 섞을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야~ 우리도 네가 와야 모인단다.  

엊그제 큰형집에 갔더니 장조카녀석이 서울공대에 합격됐다고 해서 잔치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역시 사오정 취급당했다고 한다. 서울 공대 집어치우고 재수해서라도 지방의대 가야겠다고 한단다. 기가 막혀 몇마디 퉁박을 줬다가 형수한테 공연히 욕들었다는 것이다. 이 친구 한술 더 떠 대학가서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면서 세상공부도 하고 인생에 대해 생각도 해봐야한다고 말붙였다가 쫓겨날 뻔 했다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어리둥절한 교포녀석을 빼고 비겁한 중년 셋이 소주잔을 부딪혔다. 대대로 남자들이 등신인 나라. 젊으나 늙으나 애비들이 쪽팔리는 나라.  

한 녀석이 병신처럼 울었다. 마누라하고 악화일로라고 한다. 둘러보니 내가 만나는 그룹에서 거의 유일하게 집안들이 온전하다. 그것도 못난 거 아니냐고 한 녀석이 농을 했다. 자기는 그래도 남들만큼은 하는데 마누라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다고 그런단다. 하기야 중풍으로 반신불수인 시어머니 수발을 드는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증세가 좀 심한 편이다. 안팎에서 더 이상 못살겠다며 서로 나가라 말라 고성이 오간다고 한다. 내가 코치라는 얘길 듣고 나한테 먼저 물어본다. 눈치없는 교포친구가 <여자란 원래 속이 좁은 인간이라 남자가 참고 보듬어줘야 한다>는, 요새 참 듣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다가 욕을 냉면 그릇으로 들이키고 뻘쭘하게 물러났다.

<그러니까 네가 바라는게 마누라와 네가 함께 행복해지는거냐, 아님 그냥 너만 좀 편했으면 하는거냐?> 묵묵부답이다. 할만큼 했단 얘기듣고 알아봤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살만큼 산 두 사람이 정말 치명적인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선  의외로 무지하고 철딱서니없어진다. 그만큼  자기 생각에 머리가 꽉 차있단 얘기다. 이 사회는 사람들을 그렇게 이기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혼률 세계 1위가 그냥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얼근하게 각 일병씩 비우고 이번엔 포장마차로 간다. 지난번에 봐둔 폼나는 맥주 브루어리로 가자 했더니 배터진다고 포차가서 소주 한잔 더하잔다. 술먹고 열이 뻗쳐서 길가 파라솔에 앉았다. 찬바람이 휘익하고 지나가니까 금방 으쓱으쓱 춥다. 따뜻한 부대찌개와 삼천만의 포차안주 계란말이를 시켰다. 시골선수들이 앞뒤로 앉은 아가씨들  넘겨다 보느라 주의가 산만하다. 마흔 중반의 노털들이 누리께한 표정으로 클클클 웃으며 쳐다보면 그것만으로도 성폭력이다. 식설객설하다가 몇잔씩 더하고 열한시 좀 넘어 일어섰다.

친구들이 우르르 택시타고 떠나버렸다. 길에는 외로운 바람만 이따끔씩 분다. 눈썹같은 달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큰 길 이쪽편에는 차와 사람들이 얽혀 난장인데 맞은편으로 건너가서 보니 마치 TV를 보는 것 같다. 차가운 조명만 븀하게 켜진 자동차 전시장 쇼윈도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쓸데없이 많이 먹었다. 입에선 소주 단내가 난다. 이렇게 시간은 무심코 흘러간다. 하지도 못할 일에 욕심을 내고 계획을 세운다. 실천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자책하며 또다시 욕심껏 계획을 세운다. 부질없이들 잘도 살아간다.   

술 먹은 김에 결심한다. 이번 주 제꼈으니 다음 한주도 내버려 두리라. 무작정 놀아 버리고 무계획적으로 살아버리자. 무슨 세상을 이만기 샅바 당기듯 이리도 바짝 틀어쥐며 산단 말인가. 가을인데 어디 만만한 산 골라서 단풍놀이나 가볼까. 술취한 놈 단풍에 취해 쓰러지길 기다려, 몰래 떼어놓고 내려와야겠다. 그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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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11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서재에서 보고 왔어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