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면 보고싶고 헤어지면 그리워지는 건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나 대상을 정말 좋아하는지 궁금하면 이 공식에 대입해보라. 안보면 무척 보고픈데, 막상 헤어지면 가물가물한 게 하나 있다. 영화가 내겐 바로 그렇다. 신간 소개 못지않게 뚫어져라 영화평을 읽어본다. 옆에 색연필이라도 있으면 대뜸 순위를 매기고 언제가 길일이겠다 짚어보기까지 한다.

이번 주에도 그랬다. 양조위의 <2046>을 첫손에 꼽고, <콜래터럴>과 <21그램>이 검지에, <주홍글씨>와 <비포 선셋><내머릿속의 지우개> 등의 미개봉작들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이들 대부분을 DVD로 보거나 출발 비디오여행의 맛뵈기로 만족할게 분명하다. 그나마 돌아서면 가물가물할 게 뻔하고.  

더구나 하늘이 이렇게 높고,  오늘내일이 단풍의 절정이라고 다들 난리굿인데 영화보러 굴로 들어간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러나 나는 오늘 영화보기를 결행하고야 말았다. 푸른 하늘을 망연자실 우러르기 민망하고 울긋불긋 단풍이야 이 고비만 어떻게든 넘기면 되겠다싶었다. 일종의 도주본능이다.  그럼 그렇지 <2046>은 없고 <콜래터럴>뿐이란다.

가운데 서너줄만 옹기종기 사람이 있고 극장 안은 텅비었다. 군데군데 노인네들도 눈에 띤다. 웬만한 영화 매니아가 아니면 여기 낄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 쿨한 표정으로 자세 잡고 내 자리 아닌 곳에 깊이 몸을 던진다. 의자 안쪽으로 쑥 기대고 나서  다리를 척 꼬았다. 이럴 때 팝콘을 와삭대고 콜라를 쪽쪽 빨아댔다간 치명적 이미지 손상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나는 그 두가지 음식물의 도움 없이는 이  예측불허의 러닝타임을 내내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LA의 택시운전사로 분한 제이미 폭스의 차분한 오버 연기가 돋보인다. 물론 생전처음 악역을 맡았다는(흡혈귀는 악역이 아닌가보다) 톰 크루즈의 변신도 박수 받을 만 했다. 별을 준다면 3개하고 4분의 3정도. 살인청부를 맹렬히 비난하는 폭스에게 크루즈는 <이 우주에 티끌만도 못한 존재가 하나둘 없어진다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떠느냐> 한다. 더구나 <엠네스티도 아니고, 그린피스도 아닌 주제에, 지하철에서 사람이 죽어도 6시간이 지나도록 방치된다는 이 지겨운 도시에 살면서 무슨....>  그러면서도 크루즈는 폭스를 계속 살려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폭스의 총에 맞아 고개를 떨군다.

사람들과 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이웃사촌들과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사년을 살고 이사갈 때까지 옆집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섞여살면 재미는 있는지 몰라도 피곤한 건 사실이다.  어지간한 포용력과 이해심, 그리고 내 것을 고집할 게 별로 없는 경우가 아니면 솔직히 별로 안내킨다. 회사 걷어치우고 집에서 한 일년 놀고 싶어도, 아파트 아줌마들 수근대는 소리가 벽을 뚫고 들리는 것 같아 눈치보여 못 놀겠다는 얘기도 이해가 간다.

공기좋은 곳으로 이사가자고 허겁지겁 분당으로 왔다. 전철역과 뚝 떨어져 불편하지만 산이 가까와 여기서 살기로 했다. 그런데 밤새 활짝 열어 놓았던 창문도 아침엔 모두 꼭꼭 닫아야 한다. 8시반쯤 되면 어김없이 밑에서 생선굽는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오기 때문이다.  생선냄새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나로선 이게 웬 봉변인가 싶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역삼동 대로변 빌라가 백배 낫다. 아랫층 사람들은 생선구이를 몹시 좋아하는 모양이다. 거의 예외 없이 점심 때도 그 냄새가 올라온다. 그래도 아무말 할 수 없다. 먹는데는 개도 안건드린다며 눈꼬리를 치켜 올리면 솔직히 뭐라 할말도 없다. 나는 이런 군집생활을 혐오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조차 없으면서 이렇게 아래윗집으로 천장을 바닥삼아 기대사는 건 그 자체로 불행일 뿐이다.

우리 아파트는 지난번에 보니까 <방송 반상회>란 걸 한다. 오프라인으로 집을 정해 모이라면 고작 서너집이 삐쭉 들여다 보고 그냥 간단다.  우리 반장님 고민 끝에 경비실 마이크를 빌려 10분 동안 일제히 방송을 한다. 물론 일방적으로 얘기하고 일방적으로 정한다. 반장님 왈, <이렇게 반상회를 대신하니까 반응들이 너무 좋아요. 한달에 한번 보는 것도 부담이라면 부담인데 이렇게 간단히 방송으로 대신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다고 다들 그러시네요. 호호호>  저녁 무렵에 방마다 층마다 쩌렁쩌렁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혹독한 고문이다. 반상회 안나가면 벌금이 5천원인가 그렇던데, 저 방송 꺼버리고 5천원을 내는게 낫겠다 생각한다. 이웃 사촌 어쩌구하면서 월 일회 반상회는 얼굴 안보는 방송으로 대체됐다. 다들 편하다고 그런단다. 이런게 인지상정이다.

COLLATERAL. <담보로 잡혀있는 물건> 또는 <곁에 항상 수반되는 대상>을 뜻하니 아마 폭스를 말하는 모양이다. 폭스는 뒷자리에 손님으로 탄 여검사조차 혹할 만큼 자상하고 사려깊은 이웃이다. 이루어지지도 않을 꿈을 하루에도 틈나는대로 수십번씩 되새김하면서, 십이년째 하고 있는 운전수 일조차 파트타임이라고 생각하는 고단한 소시민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처럼 위기상황에 있는 여검사를 구하려고 킬러와 맞짱 뜰 인물은 절대 아니다. 이에 반해 킬러 크루즈는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눈꼽만치도 없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 모더니스트. 긴 말이 필요없다. 내가 잘 아는 전형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폭스와 크루즈의 예견된 갈등은 이미 폭스의 승리로 정해져 있었다. 이 영화가 별 넷이 되지 못하는 가장 어정쩡한 판타지다.  

사람들은 겉으론 폭스처럼 말하지만 실제론 크루즈처럼 느끼고 행동한다. 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선 안면없는 사람들의 목숨따위는 안중에 없다. 상황이 조금 심각해지면 까짓것 안면 좀 있어도 상관없다.  IMF당시 몇백명을 스스로 목줄라죽게 했던 금융기관의 채무추심 전문가들이 자신의 행위를 후회한 나머지 참회록을 썼단 얘기 들어본 적 없다. 지금도 곳곳에서 수천 수만의 어린아이들의 발목을 자르는 지뢰 판매상들이 반성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다만 얼마라도 기부금을 냈단 소식 역시 들어보지 못했다. 크루즈는 악마가 아니라 그냥 보통 사람이다. LA에서도, 서울에서도 수없이 눈에 띄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감독은 폭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마치 아무리 우리가 지옥에 살지언정, 인간성(휴머니즘)만은 영원히 포기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냐고 절규하면서.   

크루즈는 지하철 의자에 앉은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는 감독의 절규 따위는 들으려 하지도 않는 것 같다. 뭐라고 비분강개하든 그는 그렇게 오늘 죽어갈 뿐이다. 조용히 앉아서 동터오는 새벽녘을 향해 실려가는 그에게서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아침마다 그들은 지하철에 그렇게 앉거나 또는 서서 죽은 채로 거리를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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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0-23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군집 생활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어쩔 수 없이 지어진지 오래된 허름한 빌라에 살고 있지만, 빨리 부자가 되서 아니면 원주 어디쯤 단독으로 이사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상회 형식적이고 별로 도움은 안 되지만, 어떤 땐 필요할거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서로의 불편함과 양해를 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런 창구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안 그러면 자기네들이 평생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할 거 아니겠어요?
<콜래트럴> 저도 보고 싶은 영환데 효자님의 리뷰가 참 근사하군요. 어찌 그리 글을 잘 쓰시는지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