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동안 밀밭 근처에도 안갔는데. 지난 주부터 하루 걸러 술을 마셨다. 술맛이란 걸 모르니 술복 터졌다고 좋아할 일도 아니다. 생일이라고 친구가 술 한잔 받았다. 식구들도 잊고 지나가는 생일이었는데. 그 날 만취했고, 다음날 외국에서 친구가 와 또 마셨다. 두번 다 압구정동이었지만 코스는 영판 달랐다. 전날은 요즘 잘 나간다는 베트남 음식점에서 시작해 커피빈에서 입가심하고 룸으로 가서 두어 시간 밴드불러 놀다오는 전형적인 코스였다. 격세지감이라. 노는 데 이골이 났던 몸이 부끄럼을 다 타더군. <긴 하루>가 겨우 살려줬다.
친하게 지냈던 술집 여사장님들이 반색한다. 살이 쪽빠졌다며 놀라다가, 옛날 통통했던 게 더 낫었다고도 하고, 저마다 한 마디씩 관심을 보인다. 예전엔 한달에 두서너번은 들렀으니 잔정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근본이 착한 친구들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고아원에 매달 보내는 후원금을 걸러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덕분에 생일잔치도 잘 치렀다. 공짜술도 생일선물로 받았다. 제발 가끔 들러 라면 끓여달라고 하란다.
요즘 경기 탓인지 풀기가 없다. 그래도 말로는 그냥 그렇다고 한다. 친한 친구도 일년만 안보면 전화 걸기가 서먹한게 염량세태 아닌가. 비록 술손님이라도 단골이 찾아오면 반갑지 않을 리 없다. 사업 때문에 못먹는 술을 억지로 마셔야 했지만 술김에라도 실수 한번 하지 않은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잘하고 신통한 일이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했으니 일년만에 삐쭉 얼굴을 내밀어도 반갑게 맞아주는게 아닐까.
둘째날은 모인 선수가 죄다 지방출신들이다. 막걸리 동네 포천에서 교수하는 녀석. 상도동 꼭대기에 사는 중앙일보 기자놈, 인도네시아에서 반팔 입고 온 그릇장수 친구. 역시 동선이 살짝살짝 비켜간다. 리틀사이공에 또 가는가 싶더니 옆으로 빠져 2층 노바다야끼집. 개시도 하기전에 밀고 들어가 오징어포로만 맥주 너덧병을 비웠다. 그날 주빈인 친구에게 뭘 먹겠냐 물었더니 고기가 먹고싶단다. 희한하다. 집에서 어쩌다 삼겹살 굽는 날 빼곤 밖에서 고기 먹어본 적이 언제였던고. 사연을 들어본 즉 인도네시아는 맛있는 육고기가 없단다. 쇠고기나 돼지고기가 대부분 냉동육이기 때문에 여기만큼 입에 붙지 않는다고 했다. 압구정동에서 한참을 돌아다니다 제법 그럴싸한 고깃집에 들어갔다.
방에 올라앉아 갈빗살과 와인 삼겹살을 사람수대로 시켰다. 의외로 값이 헐하다. 곁반찬도 깔끔한 편이고 대체로 준수하다. 친구는 변두리 고깃집보다 오히려 여기가 더 맛있고 싸다고 한다. 하기사 여긴 경쟁이 치열하니까. 오랜만에 고기를 굽고 있으려니 옛날얘기도 구수하고 매캐해진다. 이십년전 동네 색시집 다니던 얘기며, 마패라는 싸구려 브랜디먹고 골팼던 얘기, 파란만장했던 첫사랑 얘기들. 잊고 지냈던 과거의 한 페이지들이 넘겨질 때마다 불판도 갈고 고기와 술도 추가됐다.
인도네시아간지 4년반. 중간에 한번 들렀으니 한국땅에 온게 2년반 만이란다. 그런데 그 친구 말하는 건 완전히 6.25 직후에 떠나 반백년만에 돌아온 교포같다. 하기사 고작 그 세월에 사오정이 된 것이 어찌 그 친구 탓일까. 그 친구의 어록은 <너희들 한국에서 사는 게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로 시작됐다.
얼마나 오지에 살길래 그런 <망발>을 서슴지 않나 싶었다. 자가용에 기사가 딸리고, 가정부 두명. 저녁엔 고급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고 한시간만 나가면 멋진 해변에 기막힌 동물원까지 있단다. 고깃집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한바탕 프리젠테이션까지 한다. 그런데 뭐가 부족해서 한국 생활을 부러워하는지. 그의 부족한 2%는 바로 이렇게 말을 섞을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야~ 우리도 네가 와야 모인단다.
엊그제 큰형집에 갔더니 장조카녀석이 서울공대에 합격됐다고 해서 잔치라도 벌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가 역시 사오정 취급당했다고 한다. 서울 공대 집어치우고 재수해서라도 지방의대 가야겠다고 한단다. 기가 막혀 몇마디 퉁박을 줬다가 형수한테 공연히 욕들었다는 것이다. 이 친구 한술 더 떠 대학가서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면서 세상공부도 하고 인생에 대해 생각도 해봐야한다고 말붙였다가 쫓겨날 뻔 했다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어리둥절한 교포녀석을 빼고 비겁한 중년 셋이 소주잔을 부딪혔다. 대대로 남자들이 등신인 나라. 젊으나 늙으나 애비들이 쪽팔리는 나라.
한 녀석이 병신처럼 울었다. 마누라하고 악화일로라고 한다. 둘러보니 내가 만나는 그룹에서 거의 유일하게 집안들이 온전하다. 그것도 못난 거 아니냐고 한 녀석이 농을 했다. 자기는 그래도 남들만큼은 하는데 마누라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있다고 그런단다. 하기야 중풍으로 반신불수인 시어머니 수발을 드는 며느리가 몇이나 될까. 하지만 증세가 좀 심한 편이다. 안팎에서 더 이상 못살겠다며 서로 나가라 말라 고성이 오간다고 한다. 내가 코치라는 얘길 듣고 나한테 먼저 물어본다. 눈치없는 교포친구가 <여자란 원래 속이 좁은 인간이라 남자가 참고 보듬어줘야 한다>는, 요새 참 듣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다가 욕을 냉면 그릇으로 들이키고 뻘쭘하게 물러났다.
<그러니까 네가 바라는게 마누라와 네가 함께 행복해지는거냐, 아님 그냥 너만 좀 편했으면 하는거냐?> 묵묵부답이다. 할만큼 했단 얘기듣고 알아봤다. 배울 만큼 배우고 살만큼 산 두 사람이 정말 치명적인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에선 의외로 무지하고 철딱서니없어진다. 그만큼 자기 생각에 머리가 꽉 차있단 얘기다. 이 사회는 사람들을 그렇게 이기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혼률 세계 1위가 그냥 생기는 현상이 아니다.
얼근하게 각 일병씩 비우고 이번엔 포장마차로 간다. 지난번에 봐둔 폼나는 맥주 브루어리로 가자 했더니 배터진다고 포차가서 소주 한잔 더하잔다. 술먹고 열이 뻗쳐서 길가 파라솔에 앉았다. 찬바람이 휘익하고 지나가니까 금방 으쓱으쓱 춥다. 따뜻한 부대찌개와 삼천만의 포차안주 계란말이를 시켰다. 시골선수들이 앞뒤로 앉은 아가씨들 넘겨다 보느라 주의가 산만하다. 마흔 중반의 노털들이 누리께한 표정으로 클클클 웃으며 쳐다보면 그것만으로도 성폭력이다. 식설객설하다가 몇잔씩 더하고 열한시 좀 넘어 일어섰다.
친구들이 우르르 택시타고 떠나버렸다. 길에는 외로운 바람만 이따끔씩 분다. 눈썹같은 달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큰 길 이쪽편에는 차와 사람들이 얽혀 난장인데 맞은편으로 건너가서 보니 마치 TV를 보는 것 같다. 차가운 조명만 븀하게 켜진 자동차 전시장 쇼윈도 앞에 쭈그리고 앉는다. 쓸데없이 많이 먹었다. 입에선 소주 단내가 난다. 이렇게 시간은 무심코 흘러간다. 하지도 못할 일에 욕심을 내고 계획을 세운다. 실천하지 못한 것을 반성하고 자책하며 또다시 욕심껏 계획을 세운다. 부질없이들 잘도 살아간다.
술 먹은 김에 결심한다. 이번 주 제꼈으니 다음 한주도 내버려 두리라. 무작정 놀아 버리고 무계획적으로 살아버리자. 무슨 세상을 이만기 샅바 당기듯 이리도 바짝 틀어쥐며 산단 말인가. 가을인데 어디 만만한 산 골라서 단풍놀이나 가볼까. 술취한 놈 단풍에 취해 쓰러지길 기다려, 몰래 떼어놓고 내려와야겠다. 그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