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군도 많이 늙었더군. 나이 먹은 태야 사람마다 가지각색 아니던가. 몸이 붇거나 빠지거나, 아니면 얼굴에 주름이 늘거나 머리가 하얗게 세는게 보통이지. 그 정도면 곱게 늙는거야. 돈과 권력을 탐하든지, 추접스럽게 보약과 어린 것들을 밝혀 노추로 손가락질 당하는 치들도 있는데.
S군. 당신의 세월은 눈밑에 머물러있더라. 젊었을 때 사흘이 멀다하고 밤샘한 눈처럼 부스스하게 살집이 돋아있다. 안광도 흐리고 어깨도 한결 쳐져 있는 것 같구나.
올해 서른 여덟이라구. 낼모레 마흔이라고 덧붙인 말이 소슬 바람 뒤끝처럼 스산하다. 너를 만난지 열두해. 그땐 스물예닐곱 푸른 눈의 청년이었다. 눈살 꼿꼿하고 성질 강파른 선배를 차마 마주 쳐다보지 못하고 항상 45도 오른쪽으로 시선을 꺾던 심성착한 사람이었다. <일하는 사람은 아프지 않는 법>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선배의 말에 펄펄끓어 입술이 허옇게 타들어가는데도 아프단 말 한마디 안하던 그였다.
일년내내 따뜻한 말한마디 없이 열나게 굴려대던 선배가 미국출장 잘 갔다오라며 틱 던져준 백불짜리 달러를 들고 눈자위에 물기가 가득했던 정에 약한 후배였다.
영문도 모르는 선배들의 싸움박질에 휘말려 엉터리 3류신문사로 가자고 내가 보따리를 쌀 적에 눈치 한번 안보고 따라나선 네가 일년뒤 나를 붙잡고 말했다. <이선배 저 좀 돌아가게 해주세요.> 못나빠진 선배 놈은 그 말 한마디에 소주 한병 나발불고는 롯데 호텔 커피숍 빨간 카페트위에 풀썩 무릎을 꿇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없구나. 돌아가거라. 그리고 나와 함께 했던 미친 세월일랑 잊어버려라.>
너희들과 함께 천하를 얻으리라던 철없는 골목대장은 그 자리에서 가뭇없이 스러졌다. 널 돌려보낸 후 지금까지 십년동안 나는 혼자다. 한때 많게는 이백여명, 적게는 십수명의 장이기도 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 한 적 없다.
<제 밑에 한 오십명 데리고 있습니다.> 너도 이제 그런 자리에 있나보다. 몇년전인가 로데오의 재즈바에서 너와 수하들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이선배님이시다. 인사드려라.>넌 제법 호기롭게 후배들을 다스리더구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라며 고개를 꾸벅하는 너댓 기자님들에게 황송하게 답례를 하며 <언제 한번 모시지요. 만나뵈어 반갑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선배. 애들한테 말놓으시죠.>
오늘 만난 S군은 함께 온 팀장에게 깎듯이 존대를 한다. 나이도 대여섯이나 어린데. 신문사에선 있을 수 없는 관계다. 몇년전의 패기와 위풍당당은 어디 갔을까? 애늙은이처럼 돼버린 모습에 내 마음이 저리다. 나와는 다른 길을 가기를 빌어마지 않던 그가 재즈바 앞길에서 수하들에게 인사시킬 때 속으로 걱정했다. <얘야. 그거 좋은 거 아니다.>
오늘 그의 겸손한 모습을 봤으면 마음이 놓여야 마땅한데 외려 더 짠하다. 애정을 가질 어떤 것도 틀어쥐지 못한게 아닌가하는 걱정. 살다보면 어느날 문득 느낀다. 행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불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해라. 돌아보면 행복한 시간이 얼마나 될까? 다 합치면 일주일쯤 될라나. 그럼 불행했던 시간은 얼마쯤일까? 행복한 시간 빼고 나머지 절반은 불행했을 것이다.
지금 나는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역설적으로 불행하기 짝이 없다. 이 무슨 이율배반이란 말인가. 난 그것이 신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시간이 불행한 시간과 엇비슷만 해도 이렇게 처량맞지는 않을게다. 아무도 신을 찾아 애걸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한 시간은 불행한 시간의 50분의 1쯤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행복해지려고 안간힘을 쓰지말고 불행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현명하다.
S군. 그때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장장 십년여를 지옥에서 살지 않았나. 앞으로 그런 일은 없을거다. 자네도 그런 일은 만들지도, 겪지도 않길 바란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그 날들을 추억한다. 들킬세라 떨리는 마음으로 돌아본다. 그때 그 사람들의 꿈과 사랑을 고통스럽게 반추한다. 아프구나. 많이 아프다. 혹시 너도 아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