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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졸업을 앞두었음에도 정규직 취업에 실패한 나는 2007년 2월 1일부터 어느 은행 소속의 연구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다. 아직 비정규직법이 발의 되기 전이라 연구소 내에는 많은 계약직들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나는 연구소의 계약직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약직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관계가 비좁았던 난 누군가에게 조언 한마디 듣지 못하고 갑자기 사무직 근로자가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라서 저지른 황당한 일도 꽤 많았던 거 같다. 그 사람들은 날 보면서 아마 '역시 쟤는 여기 있는 우리들보다 질이 떨어지는구나..'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안했는데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연구소의 사람들은 듣기만 하고 실제 접한 적은 한 번도 없는 저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었다. 그 곳의 사람들은 다들 악의 없고 친절하긴 했지만 매일 느끼는 그들과 나 사이의 어마어마한 괴리 때문에 난 별안간 슬퍼지기도 했고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 자존감은 점점 바닥을 향했다. 

  내 업무는 높으신 연구소 분들이 하지 않는 일이었다. 감히 그 분들 손에 더러운 토너가 묻으면 안되니 토너도 갈아주고, 수고롭게 무거운 다과와 음료수를 직접 구매할 수 없으니 지하 매점가서 다과랑 음료수도 사놓고, 우편물도 분류하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고 뭐 그런 일들 말이다. (당시 경험 때문에 난 지금도 복사기, 프린터의 웬만한 고장은 혼자 뚝딱 고치는 편이다.) 난 초등학교 5학년 짜리도 아무 문제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별 불만도 없었다. 말했다시피 자존감이 워낙 바닥을 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지금 하는 일이 나한테 딱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느 집단에 좀 오래 있다보면 그 곳에 속한 사람들을 분류하게 되고 나름대로 각 집단의 사람들을 정의하며 심지어 가치판단까지 하게 되는 법이다. 나쁜 버릇이지만, 인간으로 이 세상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그리 된다. 몇 개월 정도 지나니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을 발견했고, 눈여겨 보게 되었다. 그 사람의 책상 위에는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피규어가 주르륵 세워져 있었고, 그 사람이 제출하는 직원 복지비로 청구할 도서 구입비 영수증은 대부분 일본 현지에서 산 만화책의 영수증 이었다. 그 직원은 남한테 자기 일을 시키는 법이 없었는데, 워낙 책임감이 투철해서 그랬다기 보다는 남에게 쉽게 부탁을 못하여 결국 자기 혼자 모든 일을 하고 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어떤 종이와 칼을 들고 내 책상에 왔다. 그는 엄청 망설이며 이 프린트물은 자기가 쓴 보고서 설명회 초대권인데 자기는 아무리 해도 똑바로 못 자르겠다며 시간나면 잘 좀 잘라달라고 했다. 종이와 칼을 든 그의 손을 보니 너무 크고 손가락이 둔해보여 예리한 칼질을 못할 것 같기도 했다.

  시위대를 뚫고 퀵서비스 기사가 건내주는 서류를 들고 오라는 심부름도 아무 문제 없이 수행하던 내가 그 정도 칼질을 못할 리가 없었다. 받자마자 다 해서 가져다주니 그 사람은 너무 황송해 하며 고마워했다. 썩 잘 잘리지도 않았건만 어떻게 이렇게 똑바로 칼질을 할 수 있느냐며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고 나의 칼질 실력에 대해 거듭 칭찬했다.

  그렇게 안면을 튼 뒤로 그 사람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는 그 사람은 다른 연구소 직원들과는 달리 인천 어딘가에서 장사하는 부모님을 두었다는 것과 (그 연구소 근무하는 사람들 아버지는 대학 총장이거나, 국회의원, 어떤 회사 사장이거나, 뭐 기타 등등 이었음) 두번째는 서울대 모과를 수석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업을 지속하지 않고 그 사람 기준으로는 매우 누추한 그 곳에 취업을 한 괴짜라는 것 이었다.

  별 거 아닌 일에 심하게 고마움을 표하고, 내 나름대로 별로라 판단한 어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그 사람이 계약직 근로자들을 회집에 데려간 적이 있었다. 워낙 돈 잘 버는 사람들이고 연구소에 예산이 넘쳐나서 그런 식으로 비싼 밥을 얻어먹는 일은 흔했다. 그런데 그 회식은 다른 때와 달리 마음이 참 편안했다. 내 글쓰기 실력으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연구소의 다른 사람들에게 느꼈던 우리를 향한 은근한 무시 같은 게 없었달까. 기회다 싶어 회집에서 궁금한 걸 물었다.

  "서울대 모과 수석 졸업하셨으면 더 공부해서 교수하거나 재경부나 한국은행도 갈 수 있지 않아요? 왜 여기에 취업하셨어요?"

  "저는 놀고 먹으려고 여기 취업했습니다. 여기 사람들 다 편히 일해요. 한국은행가면 야근하고, 재경부 가면 일 빡세고 공부는 더 하기 싫고, 그래서 전 여기서 놀고 먹으면서 편히 살 거예요."

  연구소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국가에 굉장히 중대한 일이며 또 자기네들만이 그런 우아한 일을 할 자격이 있는 듯 행동하고 말할 때가 있었다. 그들은 창구 '애들'이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대출 서류에 도장 찍는 것 밖에 없다며 비웃었다. 그런데 연구소에서 가장 잘난 사람일 수도 있는 사람이 대놓고 연구소 사람들 편히 놀고 먹는다고 하니 어쩐지 통쾌했다. 

  그 해 7월말 난 정규직에 취업했고, 당연하게도 연구소의 사람들 중 그 누구와도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다. 10년 전 연구소 월급 통장으로 만들었던 은행 통장은 현재 엄마 보험금을 관리하는 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며칠 전 보험금으로 가입했던 예금의 만기가 다가와 오랜만에 은행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사이트 게시판에 10년 동안 잊고 있었던 그 사람의 이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클릭해서 확인해보니 어떤 보고서였고, 보고서에 적힌 이메일 아이디가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이름인 것을 보아 틀림없이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이 쓴 보고서가 맞았다. 이 발견 때문에 그다지 즐겁지 못했던 10년 전을 회상했고, 읽은 지 좀 오래된 체호프의 '바다에서' 라는 단편소설을 떠올렸다.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은 오히려 가장 고귀한 사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젊은 선원은 를 포함한 동료 선원들이 짐승에 가까운 추악한 사람들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배의 선원들은 승객 중 고매해 보이던 영국인 신부나 점잖던 신혼부부의 남편에 비하면 순수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이었다. 주인공인 나는 다른 선원 한명과 함께 신혼부부가 있는 선실을 훔쳐보다 그들의 어떤 행동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엿보기 위해 뚫어놓은 선실 벽의 구멍에서 황급히 눈을 떼버리고 만다. 옆에 있던 선원은 넌 이런 걸 보기엔 너무 어리다며 주인공을 다른 곳으로 끌고 간다.


  10년 전 연구소의 그 사람을 보며 느낀 것도 이와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는 본인은 지금 놀고 먹고 있으며 나 뿐 아니고 다른 사람도 다 여기서 놀고 먹는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그 사람은 보고서를 제일 많이 쓰고 웬만한 일은 혼자서 다 하는 연구소에서 제일 '안'놀고 먹고 있는 사람이었다.

  사이트에서 그 사람의 이름을 발견한 뒤 반가운 마음에 10년 전에 연구소에서 잡일을 하던 저에게 친절 배풀어 주신 것 지금이라도 감사드린다고 메일을 보냈다.

  예상했던대로 그 사람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역시 예상대로 너무 친절했다.


사람은 대개 추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 이따금 선원은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추악하고, 심지어 가장 추잡한 짐승보다도 더 추악해진다. 짐승은 본능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변명이라도 할 수 있다. 인생을 잘 모르는 내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원들에겐 그 누구보다 자신을 미워하고 욕할 이유가 많은 것 같다. 언제고 돛대에서 떨어져 파도 속으로 영원히 사라질 수 있고, 물속에 빠지거나 거꾸로 떨어질 때만 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도대체 뭐가 필요하겠는가?

- p.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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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열린책들 세계문학 20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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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때 민음사에서 나온 '베니스에서의 죽음' 을 읽으며, 세상에 이렇게 재미 없는 소설들이 있을까 싶었다. 억지로 읽어서 그런지 끝까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니스에서 죽음' 외 다른 단편 소설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러다 거의 새책과 다름없는 열린책들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중고서점에서 발견하였고, 정말로 이 책이 내 기억대로 재미없는 소설인지, 아니면 이제와서 읽으면 꽤 재밌는 소설일지 궁금해서 다시 읽었다.

  대학생 때 보다는 재밌게 읽었지만, 역시 토마스 만의 중단편 소설은 재미에서 가치를 찾기는 어렵단 결론을 내렸다. 이 책에는 토마스 만이 작가로서 조금씩 인정을 받던 시기의 소설 8편이 실려있다. 「굶주리는 사람들-토니오 크뢰거-힘든시간-베네치아에서의 죽음」 까지 무려 책의 절반인 4편의 소설 주인공이 속세와 거리가 멀고, 세상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외로운 예술가, 즉 토마스 만 자신을 투영한 사람인 건 좀 아쉬웠다. 또 소설들 대부분이 바그너의 음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바그너 음악이라곤 '발퀴리의 비행' 과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 밖에 모르는 나는 그의 소설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 그래도 이번 열린책들 버전에서는 바그너에 대해 주석으로 꽤 많은 설명이 되어있어서 읽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


  제일 좋았던 소설은 대학생 때도 좋아했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이고, 그 다음으로는 이번에 처음 읽은 '굶주리는 사람들' 이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베네치아에서 휴가를 보내던 소설가 '아센바흐'가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를  사랑하게 되고 결국 그 곳에서 죽는 이야기다. 이 소설을 다시 읽으니,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베네치아를 어딘지 모르게 병들고 광기어린 곳으로 묘사한 것 자체가 대단하단 생각을 했다. 아센바흐가 사랑하는 타지오도 단지 미와 젊음의 상징이 아닌, 불길함과 타락의 상징이지 않은가. 이러한 역설적 상징과 소설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에 매혹될 수 밖에 없었다.

  '굶주리는 사람들' 에서는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 섞이지 못하는 이가 느끼는 고립감과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선망이 뒤섞인 묘한 감정이 너무 절절하게 서술되어 있어 읽다 좀 울었다. 이 소설이 좋았던 건, 제목이 그냥 '굶주리는 사람' 이 아니라 '굶주리는 사람들' 인 것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나와 비슷한 누군가를 발견하고, 자기와 닮은 그를 깊이 동정하면서도 동질감을 느끼는데 그 장면마저 없었다면 이 소설 역시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만큼 우울한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토마스 만의 가장 유명한 소설 중 하나인 '토니오 크뢰거' 도 다시 읽으니 새로웠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람과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하여 누가 토마스 만 처럼 잘 쓸 수 있을까 라고 내내 감탄하며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여행에서 돌아온 토니오가 자기 애인에게 본인의 예술관을 설교하는 부분은 좀 지루했다. 그 설교가 아예 의미가 없다고 보진 않는다. 토니오가 굳이 그렇게 반복 설명을 한 이유는 아마도 토마스 만 본인이 예술가로서의 사명감과 가치관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으리라. 

  근친상간을 소재로 한 '벨중족의 혈통' 은 다 읽고나서 너무나 찝찝했다. 남녀 이란성 쌍둥이였던 토마스 만의 아내에게서 소재를 가져와 쓴 소설이고 그 때문에 소송에 휘말릴까봐 한동안 출판을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이 신기한 게 이 소설이 쓰여진 후 태어난  토마스 만의 자녀 중 첫째인 딸 에리카와 둘째인 아들 클라우스도 남매보다는 연인에 가까운 관계 였다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이 소설이 자녀들의 미래를 예언한 꼴이 되고 말았다니.. 좀 끔찍하다. 소설에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이 언급되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갔던 곳이 독일 소설에 나오다니?!


토니오는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렸고, 그의 두 눈은 우울한 빛을 띠며 흐려졌다. 둘이서 오늘 오후에 같이 가볍게 산보를 하기로 한 사실을 한스는 잊어버렸단 말인가? 이제야 그것이 생각났단 말인가? 자신은 그 약속을 한 이후 거의 한시도 잊지 않고 이 순간을 손꼽아 기다려 오지 않았던가!

- 「토니오 크뢰거」 중

그래서 그는 해맑고 순결한 자신의 사랑의 불꽃이 불타오르는 제단 주위를 조심스럽게 맴돌다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는, 변치 않는 마음을 간직하려고 불을 휘저으며 어떻게 해서든 그 불씨를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어느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리 소문도 없이 그 불꽃은 사그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토니오 크뢰거는 이 지상에선 변치 않는 마음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과 환멸감으로 가득 찬 채, 불꺼진 차가운 제단 앞에 아직 한동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제 갈길을 갔다.
- 「토니오 크뢰거」 중

아센바흐는 소년의 외모가 완벽하게 아름다운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창백하고 우아하며 내성적으로 보이는 그 소년의 얼굴은 벌꿀 색 머리칼에 에워싸여 있었다. 곧게 뻗은 코와 사랑스런 입, 감미롭고 신적인 진지한 표정은 가장 고귀한 시대의 그리스 조각품을 생각나게 했다. 더없이 순수하고 완전한 형태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바라보는 자가 자연에서도 조형 예술품에서도 그만한 성공작을 본 적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유일무이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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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에 관한 잡담
    from 케이의 가지 못한 길 2017-09-07 13:12 
    P.S 1. 단편 소설집 독후감 제대로 쓰려고 맘 먹은 건 처음인데 너무나 어렵다.. 7월에 읽어놓고 이제서 쓰는 이유도 도저히 어떻게 써야할 지 감이 안잡혔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구려 구려.P.S 2. 요즘 구글에서 작가들의 실제 삶에 대해 찾아보고, 사진 보는 데 재미가 들렸다. '벨중족의 혈통' 을 읽고 너무나 큰 충격에 토마스 만의 가족들에 대해 찾아봤는데, 토마스 만의 누나 둘은 자살했고, 토마스 만의 첫째, 둘째 아들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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