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은경의 톡톡 칼럼 - 블로거 페크의 생활칼럼집
피은경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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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은경의 톡톡칼럼>을 읽는데, 아는 블로거, 페크님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참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옛날의 기억을 소환하게 되었다.





2

˝내겐 친구가 없어!˝

이 말을 친구들 앞에서 했더랬다. 20대의 푸르른 청춘의 시절에 나는 교회에서 항상 부대끼던 ㅂㅇ친구 둘 앞에서 내뱉었다. 그것도 우리 집에 초대해서 1박을 하면서 노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면 우리집에 와 있던 그 두 명의 친구들은 친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내가 그 때 무슨 생각이 골몰한 나머지 그런 말을 했는지 참 똘아이도 그런 똘아이가 없다 싶다. 지금 생각하니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발언 때문인지, 시간의 풍화작용에 의해서인지 우리는 연락을 거의 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의 독소와 같은 말의 영향력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단지 시간의 풍화작용에 의해 우리의 관계가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지냈던 것 같다.






3

말이란 것이 얼마나 파급효과가 큰 가! 그 말 한 마디가 사람의 내면 속에서 맴돌다가 혀 끝에서 준비하다가 입 밖으로 튀어져 나올 때 그 말이 주는 무게감이라는 것, 그 영향력이란 것이 얼마나 거센가! 후폭풍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은 우리가 오늘날의 정치판에서도 너무나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네가 하면 불륜이다‘는 말처럼, 저자 피은경은


‘직장에서 내가 휴식을 취하면 재충전이지만, 남이 휴식을 취하면 근무태만이다‘(59p)


라는 말로 인간의 내면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말이라는 것은 한 개인에게서 출발하여 누군가에게 전달되어질 지향점,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다른 이의 가슴이란 과녁과 표적에 정확하게 맞는다면, 그것이 상처의 데미지를 줄 수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는 감동의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신에게서 출발되어지는 것인데, 그 출발지점에 선 나 자신, 나라는 인간이 어떤 내면의 풍경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상처의 화살인지, 위로의 화살인지가 결정날 것이다.


마태복음 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비판 자체를 하지 말라고, 헤아리는 그 헤아림과 판단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내가 비판하고 판단한다면, 반드시 그것을 내게로 되돌아 올것이라고 말한다.






4

저자의 글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지인이 친구들과 모임에서 다들 차를 몰고 왔는데, 자신은 차를 몰고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차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친구 중에 하나가 집으로 가는 길이 같은 방향이니 태워주겠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한 대목이 오히려 본인에게는 상처가 되었다고 말한다.


‘배려해 준 것은 고마웠으나 그 말을 하는 바람에 다른 이들이 자신이 차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게 문제였다. 그 친구는 차가 없는 자기 처지를 자각하게 되면서 자존심이 상하더란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악‘은 평범한 것으로 ‘사유하지 않음‘에서 시작된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린 타인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52p)


이 대목을 읽는데 저자의 범상치 않은 사유에 감탄을 하게 된다. ‘배려‘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의 동서남북을 얼마나 측량할 수 있는 지, 그 정신적 크기가 얼만큼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내겐 친구가 없어!˝


나는 왜 그때 미친 또라이 같은 발언을 했을까! 적어도 20년은 지난 듯 한데, 글이 기억을 소환하니 갑자기 미친 듯이 글을 적고 있다.







5

아이가 아팠을 때다. 통장의 잔고는 바닥을 치고 있고 치료비는 계속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20년 전에 친구의 면전에다 그 비수같은 말을 꽂았는데, 그 사실은 새까맣게 잊고 전화를 걸었다. 내가 그때 내가 했던 그 말을 기억했다면, 미안해서라도 연락을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친구가 자신의 상황도, 여건도 좋지는 않지만, 20여년 만에 전화해서 부탁하는 나에게 거액을 빌려주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씩이나 빌려주었다. 내가 얼마나 몹쓸 놈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내가 그렇게 어려운 부탁을 해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는 사람이 친구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 바보같은 놈아!



˝내겐 친구가 있다!˝



인제 이렇게 다시 바꿔 20여년 만에 친구에게 연락해야겠다. 아직 빚이 있으니, 빚 갚을 때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 용서를 구해야겠다. 빚은 지니깐 채무자가 된다. 채무자는 채무의 의무 때문에 채주에게 얼굴을 잘 못 들게 된다. 친구에게 약속을 제대로 지킨 후에, 이 과거의 썰을 풀어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고맙다, 친구야!˝


˝그리고, 그때는 내가 어리석었다. 미안하다, 친구야!˝






6

잠언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고맙다, 친구야!”


*페크님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기억소환하는게 많아 천천히 음미중입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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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9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쓰기를 끝내신 걸 축하드립니다.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기에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 님이 나중에 책 내시면 그땐 제가 리뷰를 써 드리겠습니다. 좋은 이웃 덕분에 감사한 밤입니다.

카알벨루치 2020-09-19 22:54   좋아요 1 | URL
리뷰쓰기라기보단 그냥 제 기억을 소환하여 성찰한 내용이 많아서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문학과 기타 독서가 삶에 녹아내린 글과 사유가 너무 좋던대요 아직 읽고있습니다 페크님 다음 책 기대할께요 페크님 배려심이 장난 아니신 듯 싶어요 뫼르소 이야기도 좀 놀랬습니다 또 이야기를 페이퍼로 쓸수 있을 듯 합니다 ^^

2020-09-19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9 2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8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29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