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헬렌 어브 트로이’, ‘트로이의 헬렌’은 영화 ‘트로이’-브래드 피트 주연-와 같이 등장한 영화이다. 마치 ‘트로이’의 아류작 비슷하게 등장한 것이 그 영화를 그늘지게 한다. 영화 ‘트로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당연히 ‘헬렌 어브 트로이’에 대한 무게비중은 감소시켰다. 마치 트로이의 사생아 같은 격이 되어버린 영화, <헬렌 어브 트로이>….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에 대해 정확하게 평가한다. ‘트로이’ 보다 ‘헬렌 어브 트로이’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요 근래 칼라판으로 아주 화려하게 수놓은 700페이지를 넘는 양의 책을 한 권 구입하였는데 그 책 이름은 바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교양 Bildung’이다. 이 책은 출판사 ‘들녁’에서 기획작품으로 내어놓은 특별판 이었다. 원래 3만원 정도했던 책이었는데 2004년도 판에서는 사진과 그림을 수록하여 종이재질은 아주 고급용지로 하여 책의 부피를 부풀리면서 가격이 5만 2천원으로 껑충 뛰어버렸다. 이 책을 서점에서 보고는 살까? 말까? 대단히 고민했었다. 5만 2천원 책을 그것도 현금 박치기로 산다는 것은 내게 쉬운 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돈을 제일 많이 쓰는 곳이 바로 ‘책’이라는 영역이기에 결국 사고 말았다.
그 책에 보면 오늘날의 시대가 많은 부분에서 풍부하고 풍성하여 흘러 넘치는 것 같지만 막상 돌아보면 ‘기본’이 결여된, ‘교양’이 무너진 현실이라고 꼬집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제목의 책이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교양>말이다. 그 전에 나는 ‘이.마트’에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책’(저자는 ‘크리스티아네 취른트’이다)을 이미 구입했었다(참고로, 이마트는 OK Cashbag적립이 대단히 짠데, 유독 책을 구입하면 10%나 적립시켜 준다. 솔직히 이 10퍼센트 적립이 컸다).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쓴 ‘교양’을 보면 유럽의 역사가 <두 문화, 두 민족, 두 텍스트>로 출발했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헬레니즘 문화와 히브리즘 문화이다. 헬레니즘 문화는 신화적인 작가, 호메로스가 쓴 이야기, ‘그리스가 트로이를 포위한 사건에 관한 ‘일리아스ilias’(트로이는 그리스어로 일리온Ilion이다). 그리고 지략에 뛰어난 오디세우스가 파괴된 트로이에서 자신의 아내 페넬로페가 있는 고국으로 귀환하는 도중에 길을 잃고 헤매게 되는 과정을 묘사한 ‘오디세이아Odyssey’라는 양대 서사시이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내용과 영화의 내용이 오버랩 되었던 것이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다가 만 나로선, 아직도 이러한 신화적인 이야기들에 대해선 생소한 느낌이 많이 드는데,
‘헬렌 오브 트로이’를 보면서 책을 우연찮게 동시에 읽게 된 타이밍이라 책의 내용과 영화의 내용을 대비할 수 있어 좋았다. 그리스.로마신화를 잠시 소개하면, 그리스 신들이 사는 하늘(판테온)에는 여러 갈래의 부족집단이 있으며, 상호간의 결혼관계가 하도 복잡해 전체적인 조망이 불가능할 정도다. 그러니깐 수많은 개별적인 신화들은 하나의 가족 전설의 일부분인 셈이다.
우라노스Uranos가 ‘어머니 대지(大地)’라는 별명을 가진 모친 가이아Gaea와 근친상간을 함으로써 그 전설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세 명의 외눈박이 거인 족 키클롭스Cyclops가 태어났으며, 그 다음에 열두 명의 티탄Titan이 태어났다. 이 외눈박이 거인족들이 반역하자 우라노스는 이 거인족들을 타르타로스(Tartaros. 지하세계. 일종의 편안한 연옥)로 내던졌다. 가이아는 막내아들 크로노스(Kronos. ‘시간’이라는 뜻)에게 낫을 주어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자르게 했다. 크로노스가 생식기를 잘라 바다에 던지자, 핏물 거품 속에서 아프로디테(Aphrodite. ‘거품에서 태어난 사랑의 여신’이라는 뜻)가 솟아 올랐다. 크로노스는 자신의 누이 레아Rhea와 결혼했고 부친의 왕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크로노스 역시 자녀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되리라는 예언을 들었다. 그는 그 예언의 실현을 막기 위해 자식들, 즉 헤스티아Hestia, 데메테르Demeter, 헤라Hera, 하데스Hades, 포세이돈Poseidon을 모두 잡아먹었다. 그의 아내 레아는 점점 그 행동이 부질없는 짓이라고 여겨 셋째 아들 제우스Zeus를 크레타 섬에 숨겨두었다….
이 제우스는 여성편력이 대단했는데 테미스, 레다, 세멜레와 간통을 한다. 제우스와 레다 사이에서 딸이 미녀 헬레네Helene이다. 영화 ‘헬렌 어브 트로이’는 이러한 신화적인 배경을 깔고 보면 흥미가 더해진다. 아트레우스Atreus 가문에서는 아가멤논Agamemnon과 메넬라오스Menelaos가 태어난다. 아가멤논은 탄탈로스Tantalos의 딸 클리템네스트라Clytaimnestra와 결혼했다. 그의 동생 메넬라오스는 레다의 딸인 미녀 헬레네와 결혼했다. 아프로디테는 그 두 여인의 정숙하지 못한 결혼생활이 인간들에게 재앙을 불러 오도록 그 운명을 미리 정해놓았다…. 영화에서는 헬렌이 클리템네스트라의 동생으로 나온다. 그리고 메넬라오스가 헬렌과 결혼하는 것도 인위적으로 각색했다. 트로이이의 왕, 프리아모스Priamos에게는 두 왕자 헥토르Hector와 파리스Paris가 있었다. 파리스는 영화에서 헬렌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이것은 아프로디테가 지워진 운명이기도 했다.
이것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이 목동(파리스를 지칭한다. 그는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꿈 때문에 트로이의 왕가에서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총사령관은 그 아기를 살려주었고 잘 키워 목동이 된다)은 인물도 수려하고 가축을 감정할 때는 뇌물에 흔들리지 않고 단호한 판정을 내렸으므로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그를 세 여신, 즉 아테나와 헤라, 그리고 아프로디테가 출연하는 미인 선발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임명하기에 이르렀고,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사과 하나를 상으로 건네주라고 시켰다. 아프로디테가 그를 만나서 만일 자기에게 사과를 주면 미녀 헬레네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매수하자,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에게 사과를 주었다. 여기에 실망한 아테나와 헤라는 트로이를 파괴하기로 결심했다….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Iphigeneia를 제물로 바쳐 죽이는 장면은 신화에서는 없는 장면이다. 영화는 딸을 죽임으로 함대가 출항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지만 신화에서는 ‘신들은 그녀를 타브리즈Tabriz로 데려갔다. 그런데도 함대는 출항할 수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를 10년 동안이나 포위하고 있었다. ‘일리아스’의 이야기는 바로 이 10년째 되는 해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가 여기서 등장한다. 영화는 이러한 모든 그리스의 이야기를 조합하여 각색하였고 그것을 ‘트로이의 헬렌’으로 포커스를 모은다. 한 여자로 인해 벌어진 역사는 수많은 살상과 전쟁과 폐허를 남기고 종말을 지우게 된다. 관객의 입장에서 파리스와 헬렌의 사랑이 계속되기를 바랬지만, 그러한 기대도 무너진다. 모든 것을 거머쥔, 트로이를 거머쥐고 헬렌을 동생인 메넬라오스 앞에서 강간하면서 야심 찬 욕망을 모두 채운 듯 했으나 그는 딸을 잃은 어미인 클리템네스트라, 즉 자신의 아내에게 칼로 난자 당하여 목욕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영화와 신화의 대조점을 찾아보면서 영화를 보면 흥미를 더하겠으나 영화의 완성도나 전개나 스토리 구성 등을 두고 볼 때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은 맘은 없다. 내가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교양’이란 책을 그 즈음에 읽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내 기억 속에 그리 오래 남을 여지가 없어 보이는 영화이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리스의 문화는 참으로 대단하며 탁월하며 심오하나 복잡하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것만은 사실이다. 오죽하면 내가 새벽까지 영화 보고 이렇게 책을 참고해가면 글을 쓰겠는가?
…2004-07-08 새벽에
Written By karl21
참고도서
-디트리히 슈바니츠,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_교양(서울: 들녁,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