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정찬우(1929-1970)는 실존인물이다. 고인의 유일한 자손이 평생 남몰래 보관해온 수기를 작가가 받아들었다. 장롱 깊은 곳에 50년 동안 쳐 박힌 원고는 손만 대면 떨어져나갈 정도였다. 그 수기의 내용들이 스토리화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이다.

 

 

 

정찬우는 전북 고창 출신이다. 그는 일제 말기 만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가담했다가 평양으로 귀환한다. 그 바람에 그의 운명은 바뀐다. 정찬우는 전쟁의 무자비한 참상을 생생히 기록했지만, 그의 존재 자체를 감추고 싶었던 가족들에 의해 수기는 어두운 옷장 속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한 출신이었지만, 정찬우는 김일성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유능한 엘리트관료가 된다. 김일성대학에는 식민지 시절에 이름을 날리던 많은 학자들이 포진해 있었다. 삼팔선 이남이 미군정과 손잡은 친일세력의 세상이 되면서 분노한 이들이 월북한 덕분에 김일성대학은 당대의 최고의 지성인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교수진을 이루고 있었다.

 

 

 

195074,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22살의 푸르른 청춘의 기운이 가득한 정찬우는 당으로부터영남지방 교육위원으로 임명된다. 약혼녀를 놔두고 진해로 내려간다낙동강 12단고지는 전쟁의 아수라장이었고, 진동고개는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곳이었다. 북측과 남측의 옥신각신하는 전투의 현장 가운데서 정찬우가 직접 보고 듣고 목격한 것들이 소설로 나타난다.

 

 

 

인민군이 도시를 장악하면 민중들은 김일성 만세’, ‘인민군 만세를 불렀다. 하지만, 연합군이 장악하면 민중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유엔군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쳐댔다. 나라의 민심은 무력 앞에 그렇게 스스럼없이 굴복했던 것이다.

결국 정찬우는 진주의 임시 포로수용소, 광주 중앙포로수용소, 대구형무소에서 포로로 수용하게 된다. 전쟁의 위기는 인간의 심성 밑바닥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인간의 마음 그 깊은 심연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온 사방에 이봉춘이 같은 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시대의 권세를 좇아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놈들이 언제나 권력을 쥐고 있으니 한심하지요. 명색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공산주의자가 저런 자들을 이용해 공포정치를 하더니 반공주의자들 역시 저런 자들을 앞세워 사람을 억압하니 참 우스운 세상입니다.“(191p)

 

 

저마다 생존하려고 발버둥치는 몸부림이라고 변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이전에 보여줬던 대의명분과 의지와 외침은 그 전쟁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하는 인간들이 너무나 넘쳐났다. 민중도 그러했는데, 군인이라고 별 수 있는가! 지도자들도 똑같은 양상이었다.

 

 

 

윤태호의 인천상륙작전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인민군의 서울 수복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송을 해서 피난을 가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승만은 대전을 거쳐 부산까지 일찍이! 서둘러! 재빨리! 안전하게! 겁나게 빨리! 내려간다.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36계를 놓으면서도 라디오방송에서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가만히 있으라!였다. '피난가지 않아도 된다. 서울은 안전하다.'

 

 정말 이 나라는 도대체 무엇이 이 모양인가! 이승만은 부산까지 내려갔다가 옆의 참모들이 너무 내려온 거 아니냐고 해서 머쓱한 나머지 대전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는 정말 피를 끓어오르게 만든다. 더 가관인 것은 서울로 다시 돌아와서는, 라디오방송 듣고 피난 가지 않은 백성들을 빨갱이로 취급하여 잡아 죽이는 미치광이 짓을 했다는 것이다.

    

 

 

 

지난 날 이승만 정부의 좌익 학살이 워낙 극악했던지라 저는 정말 치를 떨었습니다. 전쟁으로 남조선 민간인이 백만이 죽었다면 그 중 삼분의 일은 이승만 군대가 직접 잡아 죽인 남조선 민중일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그 놈들이 또 무슨 악마 같은 짓을 할지 저는 겁이 납니다.”(247p)

 

 

지도자가 그 모양인데, 백성들을, 민중들을 원망할 수 있겠는가! 눈치를 잘 살핀 자들은 자신의 신변을 보호할 수 있었지만, 정찬우 같이 우직한 자들은 평생 절망 가운데 살 수 밖에 없었다.

 

법정에서 법무관이 정찬우에게 법정에서 느낀 감상을 말해보라고 한다.

 

 

약소민족의 비애를 느꼈습니다.”

약소민족의 비애라면?”

우리 민족이 강대하였더라면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지 않았을 것이고, 남북으로 양단되는 서러움도 없었을 것입니다. 국토가 두 동강이로 나누어진 이 약소민족의 처지가 저로 하여금 법정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생각됩니다.”(215p)

 

 

정찬우는 김일성대학출신의 엘리트였고 필적도 좋을 뿐만 아니라 심지가 굳은 사람인지라, 다른 이들처럼 박쥐같이 앞면 몰수하고 처신하지 않았던 결과로 징역 10년형을 받는다.

 

학교에서 배운 사상이론은 단순했지만, 전쟁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헝클어놓았다. 선과 악의 경계를 오가던 이봉춘도 그랬고 박창섭도 그랬다. 어쩌면 정찬우 자신도 정신분열의 상태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진리나 절대 선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북 아니면 남을 선택해야 하고, 공산주의 아니면 자본주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가 정신을 분열시켜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찬우는 그만 벽에 기대 눈을 감고 말았다.’(227p)

 

정선생, 이 기회에 지나온 이야기나 좀 해보시오.”

......

참으로 기구한 팔자요.”

이북에는 근로자가 살 만하다지요?”

 

 

정찬우로서는 싫은 질문이었다. 이북에는 아예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듯 얕추 보는 이들도 못마땅했지만, 진실한 내막도 모른 채 이북을 지상천국이라고 동경하는 이들도 어리석어 보였다. 각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만 믿고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는 그 양편의 편견을 없애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251p).

 

 

좌익 중에서도 극좌파이던 박창섭.이봉춘이나 우익 중에서도 극우파인 이간수장이나 모두 선량하고 약한 사람들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기생충 같은 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정신병자들이 아니다. 이기적이고 교활하고 현실적인 인간일 뿐이다. 또 얼마나 가문과 가족에 충실한 인간들인가? 이남이나 이북이나 그런 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게 현실 아닌가? 좌익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고 우익 중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실권을 잡은 자들은 따로 있다. 이들은 기생충이 아니라 바로 몸뚱이가 되어버렸다.’(274p)

 

 

 

수감생활은 고문의 연속이었다. 빨갱이라는 이유로. 감옥에선 끊임없이 정찬우가 북한의 고위 관료이기 때문에 전향서를 쓰기를 원했다. 북한의 지도급이 전향하면 다른 포로들에게도 막대한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같이 10년형을 받았던 동지 심영숙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찬우는 전향서를 쓰게 된다.

 

내가 전향서를 쓰게 된 것은 남이야 무어라고 하든 나로서는 완전히 공산주의와 절연할 뿐만 아니라 민족진영에서 굳세게 살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고로 이미 공산주의 진영에서는 이탈자가 된 것이며, 반겨하건 푸대접하건 자유진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때문에 나로서는 심각히 생각한 끝에 새로운 각오로 전향서를 썼다. 내가 전향한 동기는 이러하다.

첫째...

둘째...

셋째...

넷째....

그는 자신의 전향에 대한 이목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서,

시간은 모든 것을 판정하는 가장 위대한 스승’(310p)이기 때문이다....

 

 

 

정찬우는 101일 새 정부 수립과 대통령 취임식을 맞이하여 가석방된다. 그토록 자유를 그리워했던 그가 출소한다. 하지만 자신을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아버지는 반 년 전에 이미 사망한 후였다.

 

 

그토록 자유를 그리워했던 정찬우. 하지만 모진 고문과 고생의 후유증으로 갓 마흔을 넘긴 나이에 병명도 모른 채 숨진다. 떠나고 남은 유일한 혈육은 생후 5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의 엘리트 출신의 전쟁포로, 정찬우는 정말 우직하고 합리적인 인물이다. 품에 권총을 품고 있었지만, ‘한국전쟁에 대해 명분을 찾지 못했기에, 그 권총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정찬우의 인생이 너무 가슴 아팠다. 그토록 그리워하던 자유의 향기를 제대로 잘 맡지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다.

 

 

    정찬우가 말한다.

 

 

"정의로운, 정의의 전쟁 따위는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9-14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에서 비극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이승만이 그랬던 것처럼
세월호 때도 가만 있으라고 했지요.

시간은 모든 것을 판정하는 스승이라
기 보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괴자가
아닐까요.

저도 시간 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8-09-14 12:21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께 제가 추천을 ㅋㅋ황송하여라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