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의 이중성Doubleness...신으로부터의 소외 & 인간으로부터의 소외

‘고도를 기다리며‘는 두 인물, 즉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가 Godot라는 막연한 인물을 기다리며 벌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벌어지는 사건이란 지루하고도 반복적이며 순환적인 일상뿐이다.

나무아래에서 에스트라공(GoGo), 블라디미르(DiDi)는 약 오십 년을 ‘Godot라는 인물 기다리기‘에 생을 할애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Godot의 정체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는 없다. 불가지한 상태이다.
물론 가끔씩 소년이 와서 그들에게 고도가 <내일> 올 거라는 가망없는 반복적인 말로 알려준다는 것만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들의 삶은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아무도 안 오고, 아무도 안 떠나고 참 지긋지긋하군‘이라는 GoGo의 말로 대변된다.
그들에게 이처럼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무의미하며 무가치하다.
그러나, 유일하게도 의미있는 것은 ‘이 광막한 혼란 가운데서 우리가 고도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그 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DiDi와 GoGo의 존재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둘은 정이 들만한 긴 세월을 같이 보내며 지냈지만
상대에게서 풍기는 ‘마늘냄새‘ 때문에 서로의 존재를 부둥켜 안지 못한 피상적인 관계가 된다
-그들은 서로를 소외(Estrangement). 이걸 1)인간으로부터의 소외라 칭하자-.
그러나, 이런 피상성이 그들의 관계를 파괴시키진 못 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함께 함(Togetherness)‘은 또 하나의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태는 현대인의 치부-피상성의 굴레-라 해도 좋겠다.

둘은 그런 갑갑하고도 지루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서 ‘목 매다는 일‘도 몇 번 시도해 보지만 결국 그들의 거대하고도 유일한 대의명분 ˝Waiting For Godot˝-이것은 ‘희망없는 희망(hopeless hope)이며 ‘비극적 희망‘인 것이다-
로 인해 내일로 미루는 사이클로 치장된다.

때때로 ‘에스트라공‘과 ‘뽀조‘는 망각의 존재로 나타난다.
바로 어제의 일도 제대로 기억치 못하는 레테에 빠져 있다.
작자는 ‘DiDi와 GoGo‘의 지루한 일상과 ‘GoGo와 뽀조의 이러한 망각 현상‘을 통해 인간상황의 부조리와 허무주의적 세계관을 내비춘다.
더 나아가 뽀조와 럭키의 인물 구도를 보자면,
뽀조는 강압적 명령자라면, 럭키는 무조건적인 순종자로 대비된다.

첫 번째 등장화면에서 아주 강한 이미지를 풍긴 뽀조는 점차로 무기력한 존재로 나타나고, 럭키는 여전히 포승줄에 목이 매인 채 살아가는 작태를 보인다. 이런 초상화는 나에게 뽀조는 신(God)을, 럭키는 무의미하게 고난받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각을 투영시키게 한다.

더 나아가서는 이 장면 구도는 바로 ‘신의 몰락‘을 그리는 것이라 본다.
‘저 놈(럭키)은 어느 날 벙어리가 되었고 나(뽀조)는 어느날 장님이 되었고, 또 어느 날엔가 우리(럭키와 뽀조)는 귀머거리가 될거요.‘

벙어리→장님→귀머거리

이런 육체적인 불구의 점층적인 구도를 보면 ‘신의 몰락‘의 구체적인 기상도가 그려진다.
또한 이러한 뉘앙스는 뽀조가 럭키의 근래에 추는 유일한 춤의 이름-‘전구제조인의 죽음‘, ‘늙은이의 암‘, ‘그물 춤‘-속에 내재되어 있다.

<신의 몰락>,
<신의 무기력한 존재로서의 전락>은 뽀조가 자빠져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일어나지 못하는 상(image)을 보면서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선 블라디미르는 이런 뽀조의 곤궁을 보며,
이것을 온 인류의 딜레마(Dilemma)로 끌어 올린다.

‘우리가 방금 들은 구원 요청은 차라리 인류 전체에게 보내어진거야‘

또한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온 인류를 상징하는 이름인 ‘아벨‘, ‘카인‘을 뽀조를 부를 때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인간이 신으로부터의 소외-소외.2가 되겠다-를 체험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신의 몰락, 그 자체가 바로 유한한 인간에겐 또 하나의 소외현상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그 당시의 역사적인 현실
-세계대전 이후의 암담함, 처절함, 절망성-에서 느끼는 세상의 고통과 악몽같은 허망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무엘 베케트는 스승이자 친구인, ‘율리시스‘의 작가인 ‘제임스 조이스‘의 비서였다고 한다.

*비슷한 주제의 최근에 읽은 소설은 어떤게 있을까? 폰은 10권이 맥시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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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08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존주의의 관점으로 <고도를 기다리며>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카알벨루치 2018-08-08 16:13   좋아요 0 | URL
이 작품이 나온 배경이 실존주의 태생과 연결되지 않을까 싶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