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책의 숲에서 꿈을 찾다 - 중고생을 위한 자기관리 추천도서 60 청소년 자기계발 시리즈 2
방누수(일열) 지음 / 인더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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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044.


사실 저는 책을 소개한는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싫어한다고 말해야 옳을까요? 특히 소개하는 책이 주로 문학이 된다면 더더욱 싫어합니다. 그 긴 장편 소설을 단지 네다섯 장에 요약해버립니다. 이게 단순한 스토리 소개로 끝났다면 거기서 그치겠지만, 게으른 사람은 겨우 그 다이제스트를 읽고 '아 이 책, 읽었지' 하며 책은 펴보지도 않습니다. 책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안다는 오만함, 그게 참 싫습니다. 아무리 요즘이 효율성을 따지고 시간을 아끼자는 시대이긴 하지만 단순히 이야기 얼개만 파악한 독서는 영 탐탁치 않거든요. 게다가 원래 책의 저자 의도를 읽는 사람이 날 것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책을 소개하는 책의 저자(뭔가 말이 이상하지만 그냥 넘어갑니다)가 원작자의 의도가 이럴 것이다 하고 한번 눈과 뇌의 필터를 거쳐 말하기에, 그건 제대로 된 감상이 아닙니다. 책을 읽은 후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하고 여러 의견을 모아야지, 먼저 '이럴 것이다' 하는 추측성 의도를 접하고 책을 읽으면 사고는 너무 고착화됩니다.

하지만 그건 문학에서의 이야기이고, 비문학이나 실용서적에 들어오면 조금 다릅니다. 저번에도 누차 말했듯이 독서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정독, 통독, 속독, 간독, 발췌독 등이 있는데요, 문학과 다르게 비문학은 간독과 발췌독이 가능한 분야라고 합니다. 책의 모든 내용을 읽지 않고 내가 필요한 부분, 즉 수많은 예시는 모두 제외하고 굵직한 주장만 뽑아서 보자는 주장이지요. 어느 정도 공감은 합니다. 사실 쓰잘데기없는 예시를 나열해 책 한 권을 출판한 경우도 많거든요. 그럴 때, 사실 그 많은 예시가 저자의 주장을 확실히 뒷받침하는 데 쓰이긴 하겠지만 그걸 읽지 않아도 우린 저자의 뜻을 잘 알잖아요. 똑똑하잖아요 여러분은.

그렇기에 이 책이 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책은 사실 시리즈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류대성 선생님께서 쓰신 <청소년, 책의 숲에서 꿈을 찾다>라는 책에 이어 비슷한 제목을 달고 출판된 책입니다. 앞의 책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정말 재밌습니다. 저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려 열심히 책을 읽는 편이긴 합니다만 여기서 소개된 책 중 딱 두 권밖에 읽어보지 않았더군요. 절반이 넘는 책을, 제목조차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참 시야가 좁게 살아왔던 거죠. 맨 앞 장(자서전) 빼고는 대부분 실용서적이나 인문서, 교양서이기에 발췌독이 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발췌독의 산물이라 할 수 있겠네요. 굵직한 예시를 몇 개 들어주고 저자의 의도나 책이 위시하고 있는 주장을 적었습니다.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생각해볼 점을 던짐 독자에게 단순한 정보를 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필터를 한 번 거쳐 쓰인 생각이기에 이 역시 무조건적으로 믿으면 안 되겠지만요.

저는 나이로는 청소년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가슴뛰었습니다. 아, 아직 내가 읽지 못한 책이 많구나, 접하지 못한 세계가 많구나, 많이 모자라구나, 하면서 말이죠. 조금 열등감이 들면서도 기뻤습니다. 모르는 것을 인식했다는 것, 그건 모르는만큼 내가 알 수 있고 성장할 여지를 주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혜란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모름의 즐거움, 무지의 즐거움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이 책과 함께, 당신이 청소년이 아니더라도, 즐겁게 숲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가지,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을 무조건 믿지는 마시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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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찬 청춘 - 원하는 것을 스스로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
조윤호 지음 / 씨네21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043.


  저번 주에 드디어 대망의 총선이 끝났습니다. 이래저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건이었지요. 뭐, 여권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할 거란 예상은 했기에 그리 충격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SNS에 재밌는 소식이 돌았습니다. 20대 여성의 투표율이 겨우 8%밖에 되지 않는다는 얘기 말예요. 그리고 20대 투표율은 25% 정도였던가요? 어쨌든 SNS에서 그렇게 광풍이 불던 것과는 다른 양상을 띤, 아주아주 아쉬운 선거였습니다. 물론 투표율 관련한 소식은 모두 루머라고 합니다. 세세한 통계는 2개월 정도 뒤에야 분석이 된답니다.


  덕분에 저희 20대는 '또' 욕을 먹었습니다. 20대 70% 이상만 투표를 했어도 야권이 이겼을 것이다, 20대 너희는 반값 등록금 공약을 지키라는 말 따위 하지 마라, 너희에게 미래는 없다, 아주 난리도 아니었죠. 이런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는 비단 이번 투표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지금의 20대, 뭐랄까, 참 힘든 사람들입니다. 어떤 세대가 힘들지 않느냐고 하겠냐마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세대라 이겁니다. 당장 사회 제도권에 발을 들이기 위해 열심히 공부에만 집중하면 너희는 왜 지금의 틀 안에 갇혀서 놀려고 하냐 타박을 주고, 반대로 사회에 고착된 틀을 깨려고 행동에 나서면 남 생각 안하고 혼자 튀려고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욕들만 먹어왔습니다. 이게 왜냐, 지금 어른이 되신 분들은 8, 90년대에 민주화를 위해 힘써 오신 분들이기 때문이고, 그분들과 20대 사이에 끼어 계신 분들은 그나마 정치와 행동에 관심을 덜 가질 수 있는 시기(IMF 때 먹고 사는 데에나 신경쓰면 다행이었지요)를 사셨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위기도 벗어났고 사회는 성장만 바라보고 있던 시기, 그때 우리 20대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재난은 언제 어디서든 터지는가 봅니다. 서해교전이나 효순이 미순이 사건, 한미FTA,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등,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니 엄청나게 머리 아픈 문제가 빠빠빵 터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뭐겠어요, 당장 입시에 내 코가 석자다 이 모양인데 다른 곳에 신경쓰고 있을 겨를이 있나요. 아침에 일어나 아침 먹고 학교 가고 공부하고 점심먹고 공부하고 저녁먹고 야자하고 집에와서 공부하고 조금 자고, 이런 생활의 반복인데 다른 곳에 한눈 팔 겨를이 어딨겠습니까. (감히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렇게 저희는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던 세대였고, 그랬기에 욕을 먹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똑똑한 사람은 똑같은 시대를 살아도 뭔가 특출하나 봅니다. 이 책의 저자는 ㅈㅓ보다 한 살이 적은데도 이력이나 경력이 대단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엉망일 때부터야 정치에 관심을 가지던 저였는데 저자는 무려 중학생 시절부터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웠습니다. 참, 부러운 친굽니다. 이 책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저자가 어떤 눈으로 우리나라를 봐왔는가 기록한 책입니다. 정치는커녕 축구에도 관심이 없던 저자였지만 광장에서 함께 축구응원을 하면서부터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미군부대 문제부터 노무현 당선, 탄핵, 한미FTA, 이명박 당선까지, 10년 동안 사회에서 다루어진 굵직굵직한 이슈에 대해 그때의 상황과 자신의 시각, 느낌을 썼습니다. 정치얘기를 한다고 딱딱하지만은 않고 톡톡튀는 20대의 감각이 있어서인지 이야기도 상당히 재밌게 풀어나갑니다.


  모든 정치관련, 아니 어떤 이념이나 주의에 대한 책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자신만의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장하준의 저서가 나오자, 그 저서에 반하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장하준의 책에 대해 엄청난 열광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장하준도 사람이니 완벽할 순 없겠지요. 분명 논리에 빈틈이 있었을 테고 그 빈틈을, 그에 반대하는 책이 멋지게 파고들었지요. 물론 판매량이 어땠을지는 모르겠네요. 어쨌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드려면 양쪽의 이야기 모두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똑똑한 친구가 쓴 멋있는 책이기도 한 동시에 상당히 위험한 책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자는 양쪽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의견을 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읽은 책에는 자신이 지지했던 의견들에 대한 근거만 나와 있지 반대되는 의견의 근거는 그리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물론 전자도 부족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독자가 아무런 정보나 근거 없이 저자의 의견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 시국으로 보면 저자의 의견을 수용하는 건 아주 일반적일 수 있거든요. 생각하기 싫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먹기 쉬운 과일과 같습니다. 그냥 떠먹여줘요. 저자야 치열한 사고 끝에 결론을 얻었지만 책에 그런 게 나와 있답니까. 독자는 그냥, 아, 이렇다니까 이렇겠구나 하며 아무 비판 없이 넘어가버립니다. 그러니까 이 책을 모두 맹신하시진 말란 소립니다. 뭐든지 맹신은 좋지 않은 겁니다.


  정치. 참 어려워보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도 어렵습니다. 수식이나 이론에 얽매이는 게 아닌 사람 사이의 심리, 세계경제, 역사 모두에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앎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 정치이기에, 정치는 세상의 모든 것에 영향을 줍니다. 내 먹을 것, 입는 것, 사는 곳, 놀 것, 읽을 것, 즐길 것, 탈 것, 이 모든 것에 말이지요. 전 누군 여당을 찍었다고, 누군 야당을 찍었다고 편 가르기를 하며 싸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들 자신의 신념이 있기 마련이고 다른 것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는 언제 웃으면서 정치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싸이 말마따나 동서로 갈라 여야로 갈라 놀지 않고, 부산에서도 민주당이 전라도에서도 새누리당이 당선되는 날은 언제 올까요. 서로를 까대기만 바쁜 이 나라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개념차다'라는 의미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그 선택을 하느냐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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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수필
최민자 지음 / 연암서가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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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042.


  저에게 수필은 범접하기 어려운 분야입니다. 참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쓰이기에 접근하기 쉬워보이지만 쉽게쉽게 쓴다고 글을 내려적다 보면 결국 쓰레기가 되곤 하지요. 아아, 좌절. 물론 방법론 이전에 의식이 문제지만요. 예전엔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면, 이제 꿈은 '내 이야기를 온전히 쓰고 싶다'로 바뀌었습니다. 절대 파이가 작아진 게 아니어요. 오히려 더욱 깊어진 거지요.


  수필과 일기, 낙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항상 고민하지만 항상 난항에 빠지고 좌절하고 말지요. 소설은 신변잡기적인 글을 쓰면 안 된답니다. 그렇다면 수필은? 수필 역시, 형식은 매우 자유롭지만 잡담을 쓴다면 그저 그런 낙서에 지나지 않겠지요. 자기반성과 성찰, 그리고 세심한 관찰력이 없다면 글은 그저 허세 가득한 글자모음밖에 되지 못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수필은 세상에서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인 것 같습니다.


  제 글쓰기의 마지막 꿈이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였는데, 과연 이 꿈을 제대로 세운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있어 보이고 싶어서 저런 문장을 앞세운 건 아닌지. 때론 자만에 잔뜩 취해 고개를 한껏 쳐들다가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가 하며 머리를 쥐어싸매며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요. 하긴, 글쓰기는 자신감과 자만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라고, 누군가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 사실을 잊고 기뻤다가 슬펐다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하루에 몇 번이고 타고 말지요.


  저는 글을 잘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참 바보처럼요. 아니, 노력이 아니라 시간 낭비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수필을 쓰려면 수필을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전 작법서만 신나게 쳐다보고 있었지요. 이렇게 쓰면 소설을 잘 쓸 수 있어, 저렇게 써야 제대로 된 묘사야, 이게 바로 공감각적 표현이지. 방법을 알면 글 쓰는 게 쉬워질 줄 알았지요. 하지만 방법이 중요한 게 아니었더군요. 제길.


  그런 면에서 <손바닥 수필>을 접한 나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폭신한 양장본 표지에 앙증맞은 크기, 하늘을 향해 마음의 창을 활짝 여는 듯한 표지그림까지, 정말 너무 멋진 책이더군요. 물론 단순히 모양 때문에 책이 사랑스러웠던 건 아닙니다. 수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지요? 일상의 작은 편린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감정이 과잉되지 않게 담담히 써내려가는 글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귀해지기 시작한 것은 시계가 흔해지고 나서부터다. 시계는 시간 도둑, 시간의 천적이다. 시간을 계량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훔치고 잡아먹는다. 시계들이 기하급수족으로 새끼를 쳐서 부엌에도 책상에도 손목 위에도 크고 작은 변종들이 범람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시간이 귀해지기 시작한 거다. 먹잇감은 일정한데 개체수가 증가하니 모자라 아우성을 지를 수밖에. (49쪽, '시간도둑'에서)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일상들을, 배배 꼬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지나쳤던 것들을 조금 다르게 봄으로써 그것들은 생각한 이에게 의미를 가진 것이 되겠지요. 그럼으로써 조금씩 주변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다들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고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글쓴 이 최민자 씨의 이름은 처음 듣습니다. 하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에서, 저자의 푸근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왠지 여기저기 주름도 패어 있지만 그 주름이 단순한 세월의 흔적은 아닐 듯싶습니다. 엽편 또는 장편이라 불리는 분량의 짧은 글로 구성된 책입니다. 어느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무 페이지나 쫙 펴서 읽어도 너무나 좋을 책이란 걸 직감합니다. 책을 덮고나니 푹신한 표지가 손바닥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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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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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한동안 '독서'라는 주제를 가진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론, 독서인생, 독서방법, 독서에세이 등등. 독서가 좋아 이런 부류의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독서에 질릴 정도로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책의 종지부를 찍는 책이 바로 <혼자 책 읽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엄청 기대를 하고 샀지만 책값 13,800원의 값어치를 해주지 못한, 너무나도 아쉬운 책이 되겠습니다.


  저자는 하루 한 권 책읽기와 인터넷 서평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합니다. 나이도 꽤나 있으신 여성분이시네요. 애들 키우는 데에 신경쓰느라 시간도 많이 부족할 텐데 하루 한 권이라니, 엄청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열정이 저에게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지만.


  아, 그닥 좋은 느낌을 받은 책은 아니어서 길게도 쓰지 못하겠네요. 그렇다고 소설처럼 깔 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제 입장에서 좋은 에세이는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콕콕 박히거나, 일상의 작은 편린을 너무나도 멋있게 보여주거나, 제 영혼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아야 합니다. 하지만 죽음과 슬픔이라는 상처를 독서로써 메꾸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그 어느 부류에도 들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도 중구난방이고. 그냥 개인의 취향일 뿐이지요. 뭐, 그런 겁니다. 차라리 딱딱한 서평을 보는 게 재밌다고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무정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이상타? 아직 고독함이 부족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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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네사 2012-06-0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다행이네요. 저랑 느낌이 비슷해서요.
전 제가 이상한 사람인가 했거든요. 뭐, 이상한 사람일수도 있겠지만서도,ㅋㅋㅋ
적어도 동지가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되네요. 에휴~~~
 
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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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9.


  언제나와 같이 짤막한 감상 전에 작가에 대해 말해보고 갈까요. 미미여사로도 불리는 미야베 미유키의 책입니다. 상당히 다작하는 작가인데 전 아직 세 작품(<용은 잠들다>, <크로스 파이어>, <브레이브 스토리>)밖에 안 읽어봤네요. 작가 이름만 봐도 믿음이 간다는 분들도 많다네요. 다작만 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어느 정도 평작은 쳐주는 보증수표 같은 존재인가 봅니다. 단순히 미스터리만 쓰는 작가인줄 알았건만 판타지나 SF, 시대극까지 손을 댈 줄 아는, 능력 있는 분이었습니다. 아이 부러워. 그런 분이 쓰신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화차> 역시 평균 이상이었습니다. 굳.

  얼마 전에 개봉한 한국 영화 '화차'의 원작소설인데 무려 1992년 작품입니다. 이 작품으로 야마모토 슈고로 상을 받았고,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역대 20년 총결산에서 1위를 했다는군요. 개인적으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는 나오키나 아쿠타가와 상보다 좋아하는 타이틀입니다. 역시 꾸준히 많은 책을 봐야겠어요. 진짜 작품은 의외의 곳에서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책은, 무릎이 총알에 다쳐 휴직한 형사 혼마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내의 사촌오빠의 아들(사실 이 책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이 사람이 육촌인가 아니면 다른 호칭인가!) 이 갑작스레 혼마를 찾아옵니다. 결혼하려는 여자에게 신용카드를 만들어주려 했더니 파산한 여자라고 카드 발급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그런 소식을 알릴 새도 없이 여자는 잠적해버렸답니다. 의아한 마음으로 친척의 부탁을 받은 혼마는 여자의 파산을 맡았던 변호사를 찾았고, 변호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혼마가 알고 있던 여자와 변호사가 알고 있는 여자는, 이름만 같지 생김새가 전혀 다른 사람이었지요. 그러니까, 이 여자는 다른 여자의 신분을 사칭해 살고 있던 거지요.

  혼마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게 이 시점입니다. 책을 나흘에 걸쳐 천천히 봤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흐름이 늦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변호사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당신은 나에게 다른 사람 얘기를 했어요' 부분이 겨우 80쪽밖에 안 되는 거 있죠. 남은 400쪽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두꺼운 책을 만지며 한숨을 쉬었는데 웬걸, 몰입도가 엄청납니다. 한번 책을 펼칠 때마다 적어도 100쪽씩은 읽고 덮었습니다. 행방불명된 한 여자를 찾는 데서 시작한 사건은 스케일이 점점 커지고 심각해져갑니다. 자잘한 증거를 모으고 여러 인물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실체를 파악하는 혼마. 여타 미스터리 소설이 그렇듯 증거들을 우연히 발견하고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던 증거들은 하나씩 꿰어맞추다 보면 그럴 듯하게 들어맞지요. 조금 구식인 듯하면서도 오히려 직설적인 이 장치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페이지는 정말 슈슈슉.

  물-론 모든 작품은 약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중간에 변호사가 신용카드와 카드돌려막기와 신용불량자에 대해 말하는 긴 부분은 새겨들을 만한 내용이면서 무척이나 지루했습니다. 아니, 스토리진행은 하나도 없고 무려 30쪽에 걸쳐 사회현상과 짜잘한 이론에 대해 말한다면 어느 누가 지루해하지 않고 버팅기겠습니까. 중요한 부분이긴 합니다만.

  흔히들 우리나라와 일본은 10년의 시대차가 난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카드대란이 있었지만 일본은 조금 더 이른 때에 이런 심각한 일이 대두됐나봅니다. 카드 때문에 부채가 생긴 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긴 이유는 사람 자체보다 부(한자로 부)라는 허상의 이미지를 덧씌워 이익만을 좇는 사회, 그리고 그런 것을 제대로 인지시키지 않았는데도 열심히 권하는 사회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뱀이 탈피하는 이유는, 껍질을 벗다 보면 언젠가 다리가 생길 거라는 믿음을 갖기 때문이라고, 작중 인물이 말합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뱀들에게 다리가 있는 것처럼 비춰주는 거울을 파는 뱀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많은 뱀들은 생기지도 않을 발을 위해 빚을 내서라도 거울을 사고 싶어합니다. (346, 347쪽) 보통 신용불량자를 보는 시각은, 그거지요. 네가 못났고 돈을 그리 헤프게 쓰니 신용불량자가 되지, 쯧쯧쯧.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삶에 대한 갈망이 있었을 뿐 아닌가요. 남보다는 아니어도 남만큼은 살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욕구를 가지면서요. 그런데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 마치 마술쇼의 거울처럼 우리 모습을 왜곡시켜 착각하게 만듭니다. 네가 바라는 행복은 다른 게 아냐, 바로 무언가를 갖는 거야. 다들 착각에 빠져 살게 말입니다.

  큰 줄기의 이야기 외에 아주 작은 이야기로 혼마의 아들, 사토루가 잠깐 등장합니다. 사토루와 친구 갓짱이 귀여워하던 강아지가 있는데, 다른 또래 친구가 이 강아지를 때려 죽입니다. 사토루는 그 사실에 대해 화를 냈지만 가사도우미의 말을 듣고 화를 삭힙니다. 가사도우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한테 못된 짓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왜 그러는지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이지요. (413쪽) 아주 짧은 대목인데요, 이 책이 그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전체적으로 꿰뚫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캬, 역시 일류 작가는 달라도 뭐가 다르단 말예요. 하지만 이렇게 안 좋은 모습만 보이던 범인도 뒤지다보니 인간적인 면도 있더이다. 그래서 혼마는 범인을 잡아 실상을 밝히겠다는 마음보다, 안다 네 마음 다 안다 그러니까 얘기해보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거겠지요. 범인이나 자기나, 세상이 주는 헛된 상상에서 영원히 맴도는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하여간, 간만에 만난 수작입니다. 한동안 사회파 미스터리보다 본격이나 정통을 많이 봤는데, 역시 일본 장르문학 하면 사회파 미스터리 네가 최고야 하고 엄지손가락 척 올립니다. 읽을거리뿐 아니라 생각할거리까지 함께 제공한 이 책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너무 긴 장편이라 중간중간 솎아내야 할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이야기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 않지요. 영화는 원작을 따라가지 못했고 결말과 세세한 설정이 조금 다르다 하니, 책 한번 펴보시라우 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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