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시 no.6 #1 무한도시 no.6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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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031.


  흠. 이 책을 왜 보고자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산 책은 거의 왜 샀는지, 어디서 샀는지, 어디서 추천받았는지 기억하는 편인데 이 책만은 도무지 기억이 없다. 아마 영 어덜트 소설 중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다루었다고 해서 한켠에 적어두었나보다. 구입은 민음사 리퍼브도서전에서 반값으로. 만약 이걸 제값주고 샀다면 아마도 땅을 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를 했을 듯싶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계에 이상도시를 건설했는데 그 중 하나가 'no.6'다. 뭔가 심오한 이유는 없다. 그냥 여섯번째 도시이기 때문에 no.6일 뿐이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이기 때문에 당연히, 완벽해 보이는 도시는 사실 허상이고 뒤에선 구린내가 풀풀 풍긴다. 다들 그걸 모를 뿐. 엘리트 소년 시온은 교정시설에서 탈출하는 부상당한 생쥐(캐릭터 별명이다)를 응급처치해주고 그때문에 계급이 박탈당한다. 몇 년 뒤, 공원 관리일을 하던 시온은 사람에게 기생하던 벌이 숙주를 죽이고 부화하는 것을 본다. 평소 no.6에 의문을 가지던 시온은 이 사건에서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되지만 생쥐가 그를 구한다. 쓰레기더미 서쪽 구역으로 피신한 시온은 no.6의 전말을 알게 되는데…


가 단순한 스토리. 재밌는 인물이 나오고 인물들끼리 과거에서부터 얽히는 스토리도 있지만 정도가 매우 미미하다. no.6와 교정시설을 무너뜨리는, 어떻게 보면 매우 큰 도시를 붕괴시키는 게 메인스토리인데 그에 비해서 인물의 폭이 너무 좁다. 지금 손으로 꼽아보니 소설에서 많이 다뤄지는 인물은 꼴랑 다섯이고 서브캐릭터를 해봐야 스물 되려나. 실상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소설도 인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캐릭터성에 치중한 <무한도시>는 그 깊이가 매우 얕다.


  깊이의 단점은 묘사와 진행에서도 드러난다. 세계관으로만 따진다면 <멋진 신세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멋진 신세계>는 고전다운 서술 - 즉, 다소 고루하고 장황하지만 서사에 기댄 서술을 보여준다면 <무한도시>는 철저히 캐릭터에 의존한 서술이다. 청소션 소설을 표방하지만 라이트 노벨의 노선을 그대로 밟는다. 세계관도 그리 매력적이지도 않고 권마다 다루는 이야기도 매우 적다. 9권의 시리즈는 대략 장편소설 2권 정도로 압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라이트 노벨의 공식(한두 권에 이야기 완결)을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서쪽 구역에서 슬렁슬렁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권이 있는가 하면 급박하게 교정시설로 들어가는 권도 있다. 즉, 이건 9권 분권해서는 안될 책이었다! 이건 명백하다. 교정시설이 무너진 후의 전개와 결말은 분량조절 실패로 허무하고 허무하다. 어쩌라는겨?


  아무리 청소년 소설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 문장에 깊이가 있어야 할텐데 글솜씨도 그닥 좋지 않다. 이러니 청소년 소설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 아닐까. <아가미>만 봐도 이렇지 않단 말이지. 아무리 세부 장르가 다르지만. BL 요소를 첨가한 두 캐릭터(시온과 생쥐)의 매력도 그리 와닿지 않는다.


  여튼 끝. 3일에 걸쳐 읽었는데 나중엔 메인스토리만 파악하려고 문장은 읽지도 않고 넘겼다. 머리에 남을 것도, 배울 것도, 재미도 없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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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 개정판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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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9.


  문학을 주로 다루고 감상도 정말 맛깔나게 쓰는 블로그 이웃의 별 다섯 개 리뷰를 보고 책을 고르곤 한다. 더러는 익숙한 책도 있지만 거의 처음 듣는 책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이다. 문장보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나와 달리, 이 블로거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는 타입이다. 번역에서도 매끄럽고 참신한 번역을 찾고, 나와는 영 안 맞는 은희경, 코맥 맥카시, 이언 매큐언을 최고로 꼽는다. 세 작가의 대표작(<소년을 위로해줘>(은희경), <속죄>(이언 매큐언), <로드>(코맥 맥카시))을 읽어본 결과 아, 난 역시 좋은 독서가는 못 되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모두가 극찬하는 <속죄>는 묘사 덩어리에다가 판본 때문에(그렇게 믿고 싶다) 더욱 읽기 힘들었다. 한 30쪽 읽고 덮었던가.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은 사실, 구매계획이 전혀 없던 책이었다. 친구들과 홍대 카페 꼼마에 들렀다가 나 책 좀 읽어라는 으스대는 자세로 고르고 고르다 평소 읽지도 않을 책을 서가에서 꺼낸 게 화근이었다. (덕분에 친구는 김영하의 <검은 꽃>을 구입했다) 읽자니 전의 경험 때문에 버겁고, 안 읽자니 들인 돈이 아까웠다. 며칠간 다소 읽기 쉬운 책들을 읽었기에 어려운 난도에 한번은 도전할 필요가 있었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덮으면 되지.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폈다.


  확실히 읽기 어려운 책이다. 책은 주인공 퍼론이 토요일 하루 동안 겪는 일을 장장 500쪽에 걸쳐 이야기한다. 묘사의 끝이라고 생각했던 <폐허>(스콧 스미스)에서도 며칠 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하지만 여기선 일주일도 아니고 하루다. 잠 자다 읽어나고 창밖을 보는데 비행기가 떨어지고 있고 무슨 일이지 하고 다시 침대에 들어간다. 이 단순한 상황에 작가는 수많은 글자를 넣는다. 인물이 겪는 상황의 단순묘사는 물론이요, 갑자기 아들과 아침에 대화를 했다거나 딸과 장인어른이 과거에 싸웠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자신이 일하는 병원과 가장 친한 동료에 대해 줄줄이 소세지로 말한다.


  스토리의 방향성은 아주 미미하고 곁가지로 계속 빠지고 다시 돌아올 듯하다가 다시 다른 곳으로 빠지는 모양새가 답답할 만하지만 이상하게도 <토요일>은 재밌다. 서술에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한 듯한데 자칫 잘못하면 한도 끝도 없이 나아갈 이야기의 리듬감이 매우 좋다. 읽기 지루하고 너무 나갔다 싶으면 얼른 제자리로 끌어오는 느낌이랄까. 단 하루에 일어난 일로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알 수 있고 그덕분에 인물 간 대화의 입체감이 느껴진다. 풍부하다 못해 넘칠 듯한 서술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모든 감상에서 평범한 토요일에 퍼론 가족에게 닥치는 사건을 통해 일상에 갑자기 스며드는 폭력을 말하던데, 솔직히 그런 것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평범한 서술과 묘사에 불안한 이미지를 은밀하게 삽입하는 건 역시 디테일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것보다도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에서 남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 눈에 띈다.


  퍼론의 서술 중 편안함이 묻어나오는 부분의 대부분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온다. 아내가 곤히 자는 침실, 태곳적 진화의 딜레마(잠은 자야겠고, 그러다 잡아먹힐까봐 두렵고)를 생각하며 차 문을 잠근 차 안, 병원 동료 제이와 함께 있는 스쿼시코트, 가족과 모인 집은 매우 편안한 느낌이 든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지는 동시에 타인을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타인을 진정으로 배려한다거나 사랑하는 느낌이 아니다. 새벽의 비행기 사고를 아들과 대화할 땐 그저 단순한 사고로, 속으로는 흉폭한 테러이길 은근히 바란다.


  이는 타인과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정도을 넘어 완전히 밀어내려는 수준으로 강화된다. 벡스터와의 첫 마찰에서 퍼론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조금만 상대에게 맞췄다면 저녁의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잘못된 일인줄 알면서도 의사의 권위를 이용하여 심리적으로 그를 갖고 놀아버리고 만다.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벡스터의 눈에서 원망이 아닌 슬픔이 보이는 마지막 장면과도 대치된다. 인류의 성공과 우위의 비결이자 핵심은 선택적으로 발휘하는 자비심이라고 생각하는 퍼론에게 평화는 오직 그만의 평화일 뿐이다.


  사실 퍼론의 집에 예정치 않은 손님이 하나 더 있다.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밝히지 않겠지만, 그 사람으로 인해 퍼론의 집에는 또 다른 타인이 껴들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퍼론은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타인은 무조건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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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 상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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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026, 028.


  사실 <천사들의 제국>은 보려고 본 게 아니다.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다가 열린책들 세계문학 읽기는 조금 뭐하고 해서 가볍게 읽을 책이 없나 찾다가 한참 전에 결제한 베르나르 전집(베르나르 베르베르 앱에서 구입)을 봤다. 홧김에 산 세트에다가 <제 3인류 3>을 읽고 작가에게 배신감을 느껴 쳐박아두었는데. 여튼, 그나마 칭찬받은 <신>을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서문에 이 책은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에 이어지는 이야기라고 하지 않는가. 어쩔 수 없었다. 어려운 책보다는 가벼운 책을 읽고 싶었고 그땐 베르나르밖에 선택권이 없었다. 결국 <타나토노트>부터 읽기 시작.


  <타나토노트>는 고등학교 때인가 꽤나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뭐 어차피 얻고자 하는 교훈도 없고 스킬도 없고 상상력을 빙자한 시간때우기용이란 생각이 드는 베르나르의 책이기에 생각없이 휙휙 넘겼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일직선적인 단순한 스토리라인(사실 그게 장점이다)과 공감이 가지 않는 캐릭터, 감동 없는 이야기까지 고루한 책의 장점을 모두 가진 책이었다. 그러니까, 소년소녀 감성으로 읽어야 흥미가 동하는 책이고, 앞서 말했듯이 시간때우기용이다. 단, 베르나르의 자료수집력과 자료끼리 연관짓는 능력, 상상력은 확실히 발군이다.


  멍-하니 <타나토노트>를 다 읽은 후 뒤이은 내용인 <천사들의 제국>을 바로 봤다. 예전에 <타나토노트>를 봤다면 당연히 <천사들의 제국>도 봤어야 했는데 분명히 읽은 기억이 없다. 왜냐고? 지금보다 더 쉬운 독서를 하던 그때에도 이 책이 재미없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렸다. 전작에서 영계 탐사단이었던 미카엘 팽송이 환생점수를 다 채워 천사가 되었고, 그는 이제 세 명의 영혼을 맡아 600점의 환생점수를 채워야 한다.


  그래, 바로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다운된다. 나는 팽송의 탐사 이야기를 보다가 갑자기 세 인간의 탄생담을 읽게 된다. 테라 인코그니타를 뒤로 밀며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던 용감한 개척자들의 이야기에서 자기 앞길 살기 바쁜 답답하고 미련한 인간의 이야기로 회귀한 것이다. 주인공이었던 팽송은 우주를 날아다녔는데 이번 주인공인 세 명의 인간(자크, 비너스, 이고르)은 한낮 자기 인생을 살 뿐이다.


  작가도 세 캐릭터들만으로는 이야기의 볼륨을 유지하기 힘들었는지 천사가 된 팽송, 라울, 프레디, 그리고 마릴린 먼로(???) 이 넷이 자신들보다 더 높은 존재를 찾기 위해 탐사하는 이야기를 곁다리로 껴넣는다. 4명이 필요하면 전작에서 그럴 듯한 인물을 데려오든가 조금이나마 탐사에 당위성이 있는 인물이었어야 했는데 갑툭튀 마릴린 먼로라니. 이부터 영 아니올시다다. <천사들의 제국>은 인간이었던 <타나토노트>, 신으로 활동 할 <신>의 중간에서 천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분량과는 반대로 시리즈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스토리적 중심은 탐사에 있다. 결국 전(前) 영계 탐사단의 이야기가 메인이고, 진짜 곁다리는 자크와 비너스, 이고르의 인생이다.


  이건 정말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 명의 천사가 우리은하 외에 다른 운하에서 그곳의 천계를 찾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스토리인데 실상 이건 단편이나 중편으로 짧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다. 근데 여기에 세 명의 불쌍한 영혼의 이야기를 곁들여 이야기를 키웠다. 그것도 양장본 두 권으로 말이다. 팬서비스 차원에서 중간에 이런 이야기를 쓸 수야 있지만 길이가 길어도 너무 길다. 물론 셋의 이야기에서 돌고 도는 순회과 숙명에서 오는 재밌는 운명의 이야기는 소소한 재미를 주지만. (펠렉스와 아망딘의 만남, 화가 이야기) 에드몽 웰즈는 왜 지상의 인간에게 자신의 백과사전을 계속 쓰게 했는가. 쓸데없이 중간중간 들어가는 백과사전 내용은 왜 있는가.(자신의 정보수집을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유 없는 내용도 꽤나 많은 듯하다. 


  베르나르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신>이라는 새로운 이야기가 목적이 아니었다면 아마 내팽개쳤을 책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삶과 죽음, 운명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는 철학적인 책'이라고 평한다. 세 번째 말하지만, 그저 시간때우기용 이상, 이하도 아니다. 혹평을 이렇게 길게 쓸줄은 몰랐다. 나도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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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의 몸값 87분서 시리즈
에드 맥베인 지음, 홍지로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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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처음 읽는 87분서 시리즈이다. 국내 출간된 시리즈 중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제목과 표지여서 계속 미뤄두었는데 워낙 칭찬이 자자해 꺼내들게 되었다. 그리고 87분서 시리즈의 왕팬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57편의 모든 시리즈가 국내에 얼른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매우 크다.


  더글러스 킹은 경쟁자를 제치고 보스턴 거래를 성사시킴으로써 한 기업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한다. 거래일 직전, 킹의 아들을 납치했다는 전화를 받고 놀라지만 웬걸. 아들 바비는 아무일 없다는 듯 집에 들어온다. 사실 유괴된 사람은 킹의 부하직원인 찰스 레이놀즈의 아들 제프였다. 바비와 제프의 금발머리가 유괴범들을 헷갈리게 한 것이다. 유괴범들은 잘못된 유괴대상에 화를 내다가 꾀를 낸다. 더글러스 킹에게, 당신의 아들이 아니어도 몸값을- 그것도 보스턴 거래를 망칠 수 있는금액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킹은 자신의 미래와 제프의 목숨을 두고 저울질을 하게 된다. 


  이 시리즈는 가상의 도시 아이솔라 안의 87분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다만 이번 책인 <킹의 몸값>은 다른 책에 비해 분서 수사관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타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해 그냥 그러하다라는 사실만 알고 있다) 수사관의 비중이 적고 범죄자와 피범죄자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요즘의 과학수사니 홈즈의 뛰어난 추리 따위은 등장하지 않고 전통적인 유괴범 수사방식이 동원된다. 범인들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추적하고 유과현장에서 증거를 찾지만 사실, 꽤나 지지부진하다. 별 얘기거리가 안된다.


  진짜 주인공은 87분서 수사관이 아니다. 주인공은 남의 아이 몸값을 지불해야 하는 더글러스 킹과 유괴범들이다. 사실 이상적이고 교훈적인 이야기라면 킹은 몸값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지불해야 한다. 아무리 자신의 사업이 중요하다지만 한 사람의- 그것도 어린 아이의 목숨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킹은 현실적이어도 너무 현실적인 사람이다. 그는 50만달러를 내주기가 무섭다. 이길 수만 있으면 규칙은 만드는 거라고 말하는(51쪽) 초반 장면에서 이미 그의 고매함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50만달러를 유괴범들에게 주는 순간 보스턴 거래는 끝이 나고 자신은 회사에 붙어 있기는 커녕 라이벌들에 의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 판이다. 곧 제프의 몸값에 대비되는 것은 결국 킹 자신의 목숨값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킹의 아내 다이앤은 제프의 목숨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50만달러를 줄 것을 강력히 주장하며 지불하지 않을 경우 집에서 나가겠다고 주장한다. 또 유괴범 패거리(주도자인 사이, 기술자인 에디, 에디의 아내 캐시) 중 캐시는 아이를 풀어주자고 거듭 말한다. 오, 이런 인정 넘치는 사람들이 다 있는가! 남의 아이에게, 또 자신들에게 돈을 가져다줄 아이에게 어찌 이리도 착한 모습을 보인단 말인가.


  여기에는 조그마한 함정이 있다. 다이앤은 어릴 적주터 가난함이 무엇인지 모르고 유복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킹은 밑바닥부터 올라온 인생이다. 다이앤에겐 그깟 50만달러지만 킹에게 그 돈은 자신과 가족을 모두 절벽으로 밀어버리는 놈이다. 나는 거기서 다이앤에게 묻고 싶다. 당싱은 과연 여태까지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거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킹이 현실을 뜻한다면 다이앤은 이상을 뜻한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나도 50만달러를 당연히 건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저런 상황을 접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제프를 구출하기 위해 한 부부가 천 달러를 보내는 장면도 있다. 여기서 재밌는 상상을 할 수 있는데, 제프의 몸값이 50만달러가 아닌 충분히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면 킹은 과연 거래를 수용했을까이다. 천 달러를 보내온 부부에게 그 돈은 자신들의 전부였을까 아니면 목숨과도 같은 전재산이었을까. 킹이나 그 부부나 제프는 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주변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이리도 다르단 말안가. 여기에서부터 돈에 의한 도덕적 딜레마가 시작된다. 그리고 이 딜레마는 속물이 된 나에게(어쩌면 당신에게도) 손가락질하며 비웃는다. 


  캐시 또한 은행털이는 수용하면서 유괴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참된 인간성의 발로이면서 동시에 유괴의 결말이 결국 전기의자이기때문에 두려워하는 것 아닌가 싶다. 종막에 혼자 체포된 사이는 공범을 불지 않지만 이는 그들끼리의 의리 때문이 아니라 감옥에서 '경찰도 꺾지 못한 악당'이라는 이미지로 수감자들에게 거물대접을 받을 요량이다. 절대적 선과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는 현실의 상황과 상충하여 헛돌고만다. 각자 자신의 죄에 대한 면죄부를 작성하려고 열심히 애를 쓰지만 결국엔 모두 상처만 가진 채 각자의 죄값을 치를 것이다. 뭐, 죄값이래봐야 결국 마음의 짐일 뿐 신경쓰지 않는다면 죄 따위야 그딴 것으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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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약속 가연 컬처클래식 17
이상민 지음, 김태윤 각본 / 가연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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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건을 그린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각색소설'이다.내용 자체가 워낙 좋기 때문에 간단히 책과 영화의 비교만 하고 넘어가자. 아주 간단히.


장점.

1. 인물들이 각 챕터마다 화자로 등장해서 이야기의 볼륨이 커졌다. 모든 인물을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화자를 여러 명으로 나눈 것은 매우 좋은 선택인 것 같다.

2. 역시 글이기 때문에 디테일이 살아 있다.


단점.

1. 윤미 아버지인 상구의 강원도 사투리가 살지 않는다. 박철민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영화인데 책으로 옮기려니 아무래도 이 부분은 어려움이 있었던 듯하다.

2. 화자가 워낙 여러 명이기에 각 챕터별로 분량이 다소 적게 느껴진다. (이는 영화의 단점이기도 하다. 영화의 메시지나 의도는 좋으나 영화 '자체'로 보자면 완성도가 아주 높은 편은 아니다)

3. 이건 절대로 책으로 못 옮기는 건데, 영화의 초반, 중반, 후반, 시간 경과에 따라 변하는 울산바위 전경이다. 정말 영화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장면이다.


  만약 영화 '변호인'을 책으로 옮겼다 치자. 그걸 봤을 때 과연 감동이 올까? 영화는 송강호라는 배우의 연기에 기대어 가는 부분이 꽤나 크기 때문에 그걸 옮긴 글은 영화보다는 감동이 덜할 것이다. 늘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지만 영화 분위기는 불같기 때문이다. 반면 '또 하나의 약속'은 얼음 같다. 눈 나리고 입김이 새나오는 배경에 조용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바다가 등장한다. 분노를 터뜨리는 방향이 아닌 조용히 삭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상대적으로 영화적 재미는 '변호인'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차분한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이 각색소설이 재밌게 읽힌다. 이미 영상으로 본 내용에 대해 글로 봤을 때 각색소설 특성상 재미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데(급감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다행히 이 책은 선방할 정도의 수준이다.


  이 포스트를 보고 있다는 건 이미 이 영화와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영화와 사회, 삼성에 대해선 구구절절 쓰지 않겠다. 마지막으로 인상깊은 구절.



  문득 민규가 떠나면서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보고 나만 정의를 추구하고 나만 올바르게 사는 사람인 줄 아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그래서 한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정말로 나는 정의로운 사람인가? 그래서 늘 정의를 추구하며 살았는가? 그렇게 자문해보니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지금껏 내가 정의롭거나 그렇다고 남다른 정의감으로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선민의식 따위는 가져본 적이 없다. 난 단지 상식을 추구했을 뿐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상식적인 것을 지키려고 했을 뿐인데, 그걸 보고 다른 사람들은 나보고 혼자 잘난 맛에 정의감을 운운하고 정의의 용사처럼 군다는 것이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어째서 사람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을 두고 다르게 보고 정의니 뭐니 거창한 잣대를 들이대려는 걸까, 하고. 그건 아마도 그들이 무엇이 상식인지 모르는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마 그 물음에 답은 이 기나긴 싸움이 끝나면 알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난 지금도 말할 수 있다. 나는 정의감도 없고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단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상식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뿐이지. 이 두가지가 그렇게 닮았나? _259, 2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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