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프레임 -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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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


  중세의 마녀사냥을 다루었다. 마녀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때의 논리 프레임인 '마녀 프레임'은 현재 어떻게 변주되어 살아 있는가. 발췌만 해도 좋은 글들이니 이번엔 발췌만 나열한다.



  체제에 위기 국면이 오면 언제나 이념으로 똘똘 뭉친 결사체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반대로 말하면 근본주의 창궐은 특정 체제에 위기가 닥쳤음을 반영하는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    _21쪽


  이렇듯 마녀사냥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상당히 흥미로운 사유 거리를 던져준다. 권력과 권위 그리고 이념을 통해 통제되었던 질서 정연한 세계가 무너지고 아노미 상태를 맞이하는 상황은 1987년 이후 민주화 체제를 맞이한 한국 상황을 연상시킨다. 일부 냉전 세력 인사들이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냉전 시절이 좋았다"라고 발언하는 것은 인식적 혼란과 도덕적 아노미 상태를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질서 정연한 세계를 다시 복원하기 위해 이들이 택한 방법은 '색깔 논쟁'이었다. 현대판 마녀사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빨갱이 떄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워졌다고 말하지만 과연 사실일까? 과도한 단순화에 불과한  발상이다. 제6공화국 시절부터 한국 경제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세계 무역 협정에 가입하고 농수산물 개방을 실시했던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냉전 체제를 붕괴하게 만들고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 장본인으느 빨갱이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였던 것이다. 이런 사정은 냉전 수구 세력 반대편에 있는 통칭 진보 세력에게도 마찬가지 효과로 작용했다. 과거처럼 정권 투쟁만을 내세우면서 자기 정체성을 보전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것이다.    _65쪽


  새로운 의학 지식은 '사실'에 근거했기 때문에 이론과 의료 행위 사이에 있는 괴리를 인지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사실들과 빈번하게 조우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지식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더 이상 진단을 위한 준거점을 찾을 수 없는 상태에서 발견되는 낯선 사례들에 대해 이 시기 의사들은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즉 과학적 세계관은 특정한 것을 명확하게 했던 만큼 그 명확성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미지의 것'으로 남겨놓아야 했다. 여기에 의사들은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고 따라서 지적 헤게모니를 쥐기 위한 여러 가지 방책들을 고안하였다. 이는 지식과 정치가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_90쪽


  합리성은 종종 비합리성을 옹호하기 위해 동원되고는 한다.    _92쪽


  극단적으로 주장하면 마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할 수가 없었다는 쪽이 옳을 것이다. 오늘날 초등학생조차도 마녀가 실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마녀는 판타지나 옛 이야기에서 의미를 가진 상상 속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마녀는 실제로 존재했다. 또한 존재해야 했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마녀를 존재하게 한 것은 마녀 프레임이었다. 프레임을 작동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데올로기다. 이데올로기는 숭고한 대상을 필요로 한다. 이 대상은 욕망이 실현될 수 없다는 한계를 은폐하기 위한 절대적 대상이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경험과 증명을 초월해 있다는 뜻이다. 마녀는 불가능한 초기 근대 과학을 정당화하는 숭고 대상으로 작동했다. 자신이 세계를 온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마녀가 발명되었다.    _112쪽


  "마녀는 실재로 존재한다기보다 얼빠진 사람들의 마음 속에 존재한다."    _122쪽


르네 지라르가 지적한 것처럼 문화는 폭력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순화제일지도 모른다.    _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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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염정용.장수미 옮김 / 단숨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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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 눈알사냥꾼, 제바스티안 피체크


  피체크의 전작 <눈알수집가>는 진즉에 알았던 책이다. 제목도 제목이지만(눈도 아닌 눈알이라니. 게다가 수집이라니) 표지 정중앙에 떡하니 박힌 퍼런 눈은 자연스레 이 책을 피하게 만들었다. 장르도, 사이코스릴러란다. 스릴러도 즐길 종류가 많은데 하필 '사이코'라니, 거참 정이 안 갔다. 넬레 노이하우스마저 극찬했다는 화려한 광고문구는 뻔한 마케팅 같아서 싫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후속작 <눈알사냥꾼>을 만났으니, 오호 통재라. 썩 좋지 않은 이미지의 책을 읽어야 하다니, 손에 든 건 반드시 읽어야 성이 차는 '쓸데없는 의무감'은 모든 독서가에게 축복이자 벌일 것이다. 나름의 기한인 4월 마지막 주까지 읽으려 했으나 워낙 벌려놓은 일이 많아 손도 못 대다가 조금 짬이 나서 책을 펼 수 있었다.


  사실 독일 스릴러는 국내 독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건 넬레 노이하우스가 쓴 '타우누스 시리즈'다. 유럽이 항상 서늘하고 습기가 많아서일까. 미국의 크라임스릴러는 둔중하고 단호한 면이 있다면 유럽 스릴러는 끈적거리고 분위기가 쎄-하다. 책 뒤에 '인간의 정신 가장 깊은 곳을 꿰뚫는 스릴러. 작가가 미쳤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는 홍보문구가 있는데 이는 유럽 스릴러를 단적으로 표현한다.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는데 이쪽은 범죄 자체가 엽기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


  <눈알수집가>에서는 납치한 아이들의 왼쪽 안구를 파내고, 후속작인 <눈알사냥꾼>에선 납치한 여자의 눈꺼풀을 도려낸다. 끝까지 읽다보면 별 시답잖은 이유들이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그랬단다. 그래, 그러니까 사이코스릴러라는 이름이 붙었다.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와는 다르게 그냥 뇌 한 부분이 훼까닥 미쳐서 제정신이 아닌 범인들이다. 아무리 작가와 등장인물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지만 이쯤 되면 작가를 한번쯤 의심해 볼 만하다.


  읽는 재미만큼은 확실한 책이다. 사흘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읽었으니 한 번 펼 때마다 100쪽 조금 넘게 본 셈이다. 의학적 지식도, 형사들의 수사도 나오지 않는다. 다른 스릴러 장르보다는 전문적인 내용이 적고 읽기 편한 내용들로 쓰였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밀도가 낮은 것도 아니다. 알리나가 갇힌 방에서 탈출하는 장면은 맹인인 인물의 시선과 행동을 꽤나 잘 표현했다.


  편집도 훌륭한 편이다. 한 장(章)이 길지 않기 때문에 느껴지는 속도감이 매우 빠르다. 장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교차로 등장하는 동시에 앞선 장에서 말했던 소재나 인물이 바로 뒤에 나온다. 적절한 긴장감을 줌과 동시에 나름 훌륭한 복선과 반전을 만드는 편집은 고전적이지만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다만 결말이 의외인데, 앞에서 쌓았던 점수를 단숨에 깎고 말았다. 모두 다 꼭두각시 인형극에 놀아난 게 되버린 것처럼 보이는 결말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이는 <눈알수집가>의 후속작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눈알사냥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될 게 아니라 <눈알수집가 2권>으로 나왔어야 한다고 본다. 이 책의 메인 악당인 차린 주커 박사도 생각보다 임팩트고 적고 말이다.


  결말이 조금 아쉽지만 앞서 말했듯이 재미 하나는 보장한다. 단, 전작인 <눈알수집가>를 먼저 보길 권한다. 책 중간중간 나오는 전작의 에피소드나 인물 사이의 관계가 파악된다면 읽는 재미가 한층 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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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CAR MINI 마이 카, 미니 - 나를 보여 주는 워너비카의 모든 것
최진석 지음 / 이지북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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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나이 스물 여덟에 운전면허를 딴 지 벌써 세 해가 지났건만 면허증은 지갑, 그것도 뜯어져서 미사용 중인 카드를 모아둔 지갑에 고이 모셔져 있다. 전북 정읍의 할아버지 댁에 가는데도, 부천 친척 집에 가는데도, 가까운 마트 가는데도 항상 예순 가까이 되신 아버지가 차를 몰아야 한다. 심지어 같이 면허를 딴 네 살 어린 '여'동생도 차를 몰고 마트에 가는 마당에 말이다!


  면허를 따면 운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마구 든다는데, 이상하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면허를 딸 때나 지금이나 차를 몰 기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 기숙사에 살고 근무지는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하고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맛집을 찾아다니지도 않고 여행은 싫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BMW(Bus, Metro, Walking)이면 충분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 대신 차를 몰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신문을 볼 때조차 돋보기 안경을 쓰시는, 노안이 오는 아버지가 운전할 때 도로가 어떻게 보이는지 전혀 상상할 길이 없지만, 시력에다 체력까지 나빠지는 게 눈에 훤히 보일 정도니 조수석에 앉아 꾸벅 졸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여동생에게 뒤쳐진다는 생각까지 드는데다가, 나보다 어린 친구들도 오너(owner)인 걸 보면 뭔가 아쉽다.


  운전을 하지 않은 이유는 기회가 적은 것도 있지만 원체 차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네댓 살 먹은 어린 아이들도 자동차 바퀴만 보고 브랜드를 척척 맞춘다고 하는데, 나는 차 모델을 맞추기는 커녕 어떤 회사에서 나온 차인지도 매칭이 잘 되지 않는다. 외모와 달리 섬세하게(?) 작은 기기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그 큰 차를 왜 좋아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MY CAR MINI>(이하 마이카)를 만났다. 미니라곤 미니쿠페밖에 모르고, 실제론 거의 보지 못했으며 그나마 카트라이더에서 무료로 증정했던 미니쿠퍼로 게임을 즐겨본 기억밖에 없다. 그저 '예쁜 차'로만 알고 있던 미니였고, 사실 난 미학보다 효율을 더 중시하기에 책도, 미니도 그리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일주일 전 할아버지 댁에 내려가면서 힘들게 운전하시는 아버지를 보고는 차 구입을 잠시 생각하였다. 그리고 문득 든 생각이 미니와 <마이카>였다. 집으로 온 후 얼른 책을 펼쳤다.


  국내에서만 연간 최대 6천 대 이상 팔리는 미니는 이미 소형차의 대표 프리미엄 브랜드다. 하지만 차 한 대로 책이 어떻게 나오겠는가? 그저 차일 뿐인데 말이다. 책은 미니가 어떤 차인지부터 읊는다. 'MINI is mini, MINI is not min'라는 소제목에서 미니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겉으로 보이기엔 작은 차지만 안을 들어다보면 의외로 넓고 수납공간도 꽤 된다고 한다. 처음 기아 SOUL을 탔을 때가 기억난다. 아마 미니는 그것만큼 충격적(?)이지 않을까 예상한다.


  한 가지 놀란 점은 미니가 무려 7종의 라인업을 가지고 있고 차의 심장인 엔진은 5종이라는 것이다. 즉 이리저리 조합하면 35종의 많은 미니가 탄생한다. 엔진은 숫자가 가득하고 관심(사실 지식)이 없기 때문에 넘어가지만, 미니의 7종 라인업은 아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본형인 해치백부터 오픈형인 컨버터블, 속도감의 쿠페, 대형미니인 컨트리맨까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한다.


<미니 7종 라인업과 종별 특징>



  연간 판매량이 30만대에 불과한(BMW의 한 해 판매량은 196만대) 미니지만 고유의 매력 때문인지 유명인들도 미니를 많이 몰았다. 비틀즈 멤버인 조지 해리슨은 미니의 외관에 비틀즈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장식을 했고 마가릿 대처도 미니를 타고 다녔다. 이미지 매칭은 잘 안 되지만 축구선수 웨인 루니도 미니 쿠퍼S 해치백을 탔단다. 우리나라도 사용자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이 이루어진다. 미니 런 인 코리아나 미니 유나이티드 코리아 등 큰 행사도 개최됐다.


  책이 내 사고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드물다. 한 해에 백 권이 넘는 책을 읽어도 얼마 꼽지 못하는데, 신기하게도 관심도 없던 분야의 책인 <마이카>가 차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었다. 무조건 효율과 연비, 예쁜 것보다 투박한 게 진리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미니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28년만에 처음으로 차 가격을 검색해보았다. 오 마이 갓. 2013 미니 쿠페가 3천 후반에서 4천 초반까지다. 입이 떡 벌어진다. 비슷한(그렇다고 생각한다) SOUL이나 i30, 벨로스터의 두 배 가격이라니…. 그럼에도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미니를 볼수록 탐난다. 겉으로 보이는 미적감각에 주행성과 안정성까지 꽉 잡은 미니. 아, 당신은 내 마음을 확 사로잡아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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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1 얼음과 불의 노래 1
조지 R. R. 마틴 지음, 서계인 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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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5, 038.


  벌써 세번째로 읽는 책이다. 군대 가기 전, 전역 후, 그리고 이번. 작년 10월에 맹장 수술로 입원했을 때 읽으려고 전자책으로 사두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사실 이번에도 읽으려고 일부러 핀 게 아니라, 워낙 할 게 없고 손에는 핸드폰밖에 든 게 없어 심심풀이 땅콩으로 폈다.


  4월 초부터 계속 본 기록이 있으니 거진 2주가 걸린 듯하다. 예전에는 에픽 판타지의 최고봉이라고 치켜세우며 빠져들었는데 4부까지의 내용을 모두 아니 호기심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리고, 문장이 생각보다 평이하다. 원서 문체는 꽤나 칭찬받는 듯한데 아무래도 번역의 입김이 서리다보니 평범한 문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화된 기억과는 정반대로 서술과 묘사 또한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 의외의 곳에서 늘어지거나 쓸데없는 곁가지가 꽤나 있다.


  번역은… 말 않겠다. 소설 하나에 역자가 세 명이 달라붙는 게 말이 되는가. 다만 번역을 문제삼아 이 책을 보지도 않고 까는 건 참을 수 없다. 번역 덕분에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는 부분이 더러 있지만 그정도는 감안하고 봐도 매력적인 소설이다. 제발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에게 원서를 권해서 제풀에 포기하게 하지 말고. (원서, 상당히 어렵다)


  고유명사의 번역 오류는 파급력이 상당하다. Jaime를 자이메로 번역하였는데 실상 발음은 제이미란다. 그런데 제이미라니, 이게 킹 슬레이어에게 마땅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가? <드래곤 라자>의 제미니가 퍼뜩 떠오른다. 저런 나약한 이름은 허용할 수 없다! 셉타 모르다네는 실제론 모르데인, 니메리아는 나이메리아다. 아직 드라마를 1부 3화까지밖에 못 봐서 이정도밖에 모르겠다. 허나 번역서의 선택이 더 옳아 보인다. 자이메는 물론이거니와 모르데인은 과거 킹스가드였던 아더 데인이 떠오르고(조용한 그녀가 말이다!) 나이메리아는 우리나라 정서상 잘 맞지 않는다. (헤르미온느와 마찬가지 느낌이랄까) 다만 서자-바스타드, 반역자(찬탈자)-우스르페르의 혼용은 피해야 했다. 우스르페르는 원서에서 고유명사화해서 사용하는 단어라 우스르페르로 칭했을지도 모른다. 뭐, 사실상 발음은 유서ㄹ퍼에 가깝다. 번역에 대해선 엔하위키 같은 곳에 자료가 많으므로 참고바람.


  책과 드라마를 같이 보고 원작 팬인 나로선 드라마가 영 재미없게 다가온다. 소설의 영상화가 항상 그랬듯이 아쉬운 부분이 매우 많다. 워낙 긴 호흡의 소설이기에 많은 부분을 쳐냈겠지만 정도가 심하지 않나 싶다. 드라마에서 가장 잘 표현한 부분은 바로 시리오 포렐ㄹㄹㄹㄹ의 등장이다. 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ㄹㄹㄹㄹ발음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들려준다.(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얼음과 불의 노래>를 판타지라고 일반문학보다 한 수 아래에 두는 사람이 많은데, 과연 그들이 판타지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나 의심된다. 당신들이 높게 치는 일반문학도 사실 현실을 바탕으로 짜낸 판타지라는 걸 알랑가몰라.


  오늘은 일기를 끼적였다. 크하하하하! 참, 산도르는 생각보다 멋진 놈이고, 자이메도 그렇다. 하지만 티리온을 따라갈 사람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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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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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4.


  그냥, 잡담. 책에 대한 내용은 얼마 없다.


  책에도 분명 교묘한 마케팅이 존재한다. 사재기 따위의 허섭한 수 말고, 은근히 얼굴을 내비치면서 책을 홍보하는 방법이다. 영상의 시대답게 책은 드라마와 예능에서 자신을 홍보한다. 별그대에서는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이, 달빛 프린스에서는 <꾸뻬씨의 행복여행>이었다. (오, 제목은 왜 이리도 긴가) 드라마셀러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한데다 책 내용에 맞춰 각본까지 수정할테니 마케팅 비용 좀 대라는 요청까지 있었다니 방송이 책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영상만 있느냐, 조금 아날로그적이어도 듣는 홍보수단도 있다. 라디오는 한물 간 지 한참 됐고 이제 그 자리는 팟캐스트가 꿰어찼다. 김영하가 책을 읽어줄 때는 아는 사람만 알았던 팟캐스트가, 스마트폰의 보급과 여러 매체의 홍보 의지(?)가 결합하여 많은 소통 채널을 만들었다. 책에 관련돼 가장 인기가 좋은 팟캐스트는 역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이다. 저번 회에서는 이언 매큐언의 <속죄>를 다루었는데 때마침 알라딘에서 <속죄> 반값 세일을 하면서 이 책이 반짝 베스트셀러에 등극했다. 어쩌면 우연을 빙자한 마케팅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차저차 잡담이 길어졌는데 뭐, 잡담하려고 쓰는 포스트니까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다. 결국 하고픈 말이 무언가 하면, 빨책을 듣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를 샀다는 거다. 빨책을 듣기 전에는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몰랐고, 아마 알았던들 별로 땡기진 않았을 것이다. 에세이류는 웬만하면 피하는데다 워낙 재미없게 읽은 <죽음>도 한몫 한다. 책에 대한 에세이도 싫어하는데 죽음이라고 좋아할 성싶더냐. 하지만 빨책 신봉자에다가 팔랑귀인 난 이 책을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빨책에선 정말 좋은 책이라고 썰을 풀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책이란 건 취향을 워낙 타는 것이고, 게다가 남들이 좋다고 말한 책을 읽었지만 크게 피를 본 적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띠지에 적힌 정재승의 추천사가 매우 거슬렸다. 읊어보자면


  매력적인 책이다. 우리의 몸과 삶에 대해 쏟아내는 과학적 통찰력들이 우리로 하여금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총널살인 같은 명언들에 취하고, 몸의 변화에 공감하며 읽다가, 결국 감동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는 책!

(이것은 감성 마케팅이 분명해!)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알라딘과 예스24는 이 책을 에세이와 교양인문학으로 분류하였다. 에스콰이어 리뷰에서는 회고록, 에세이, 인문서를 언급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결국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 이 책은 명확한 구분이 어렵다. 일단 인생을 유년기와 아동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죽음의 4장으로 나눈다. 그리고 그 나이대에 해당하는 과학·생물학적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간단히 예를 들면 사람이 태어날 때를 말하면서


  우리는 뼈를 350개 가지고 태어나는데(긴뼈, 짧은뼈, 납작뼈, 불규칙뼈), 자라면서 뼈끼리 붙기 때문에 어른의 몸에는 206개만 남는다. 우리 몸무게에서 70퍼센트쯤은 물이다. 지표면에서 물에 덮인 부분의 비율과 비슷하다.


라는 식이다. 과학적 이야기만 늘어놓는다면 뭔 재미일까. 저자는 이야기를 덧붙이는데, 첫째는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는 볼기분만이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해서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하지만 다리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한 후 그 꿈은 접어야 했다. 젊었을 적부터 머리가 벗겨졌고, 허리가 매우 좋지 않다. 등등.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는 저자가 말하는 과학적 사실에 재미라는 양념을 쳐준다. 자신의 강점이었던 농구 이야기를 하면 독자는 자연히 농구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자신있어 하고 좋아했던 것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에세이의 소감이 굉장히 사변적으로 흐르게 하는 방식이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재밌어서 참 다행이다. 저자와 아버지의 다소 상반된 모습(저자의 아버지는 매일 운동을 한단다. 97세인데도 말이다)도 흥미롭다. 다만, 앞선 과학적 사실과 개인의 이야기가 너무 얼개 없이 서술되는 방식이 많이 발견된다. 빨책에선 이런 뜬금없음이 굉장히 위트 있다고 말하지만 독자에 따라서는 어색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일단 나부터 논리적 전개에서 너무 벗어나는 부분도 있고 대체 왜 이 에피소드가 여기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가 책을 전체적으로 넓혀준다면, 삶과 인생, 죽음에 대한 수많은 명언은 책에 깊이를 더해준다. 주옥같은 말들이 워낙 많아 이것만 다 옮겨도 꽤나 많은 양이 될 듯싶다. 딱히 기억에 남는 건 없지만(이번 책은 갈무리를 하나도 하지 않았다) 당장 책을 피면 좋은 글귀들이 많다. 몇 장만 펴보자.


*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 태어나고, 자신의 고통 속에 죽어간다. _프랜시스 톰프슨 (33쪽)

* 나는 33세이다. 급진 혁명가였던 예수의 나이와 같다. 혁명가들에게 치명적인 나이다. _카미유 데물랭 (145쪽)

* 세상의 모든 쓸모 있고 감동적이고, 고무적인 없적은 25세에서 40세 사이의 사람들이 이룬 것이다. _윌리엄 오슬러 (163쪽)

* 노인들에게는 접촉이 필요하다. 노인들은 키스와 포옹이 필요한 인생 단계에 다다랐다. 그러나 의사 외에는 누구도 그들을 만지지 않는다. _로널드 블라이스 (251쪽)

*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한 순간의 것이었다. _엘리자베스 1세 여왕 (287쪽)


  죽음을 다루는 책은 결국 삶을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더욱 가열하게 살라고 역설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신체적 변화를 객관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우리의 삶이 사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동시에 시간이 참 느리다는 생각도 든다. 1초 1초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 1초가 모이고 모여 1달, 1년이 되면 시간이 참 안 간다고 느끼기도 한다. 시간의 화살과 시합에서 결국 지고 우리는 언젠가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아직 남은 시간을 보면, 아니 당장 바로 앞만 봐도 우리 인생은 얼마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빛을 가지는가! 마지막으로, 책 뒤표지에 쓰인 본문을 옮기고 잡담을 닫는다.


  내가 이제껏 지지부진 늘어놓은 이야기는, 어쩌면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개체는 중요하지 않다. 아버지, 당신도,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저도, 물론,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는 세포들의 생명을 전달해주는 매개동물에 지나지 않아요. 유전자가 불멸하는 대신 우리는 늙어 죽는 대가를 치러야 해요. 아버지는 이 사실에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것처럼 느끼죠. 저는 그 사실에 짜릿하고 속이 시원해요. 제가 보기에 삶은 단순하고 비극적이에요. 그리고 기이하리만치 아름다워요. _본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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