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음 - 찬호께이, 한즈미디어


<13.67>의 작가 찬호께이의 신작. 시간 순서로 보면 <13.67>(2014)보다 3년 전인 2011년 대만에서 발표됐고, 이 작품으로 제2회 시마다 소지 추리소설상을 받았다. 단지 여행과 쇼핑의 천국으로만 생각했던 홍콩에서, 그리고 미스터리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홍콩에서 놀라운 이야기 세계를 펼친 홍콩의 추리작가 찬호께이의 재능을 이 작품에서 엿볼 수 있다. 

1인칭 화자로 진행되는 주선율의 이야기는 사실상 하루에 벌어지는 일이고, 각 장 뒤에 ‘단락’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어느 시간의 이야기가 짧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등장한다. 주선율 이야기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어느 날 아침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깨어난 후 지난 6년간의 기억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작품은 마술처럼 독자의 눈을 어지럽히면서 펼쳐지고, 작가는 교묘하게 독자들을 함정에 빠뜨리면서 그들의 추측과 경악마저 완벽하게 장악한다. 이런 능력은 교묘한 플롯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설계 능력으로 이어진다. 또한 그는 이해력과 고도의 글쓰기 능력을 활용해 21세기 본격추리라는 새로운 용어와 창작 방법에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작가의 머릿속에 자발적으로 떠오른 창작이라기보다 자신의 재능 일부를 활용해 타이완에 상륙한 21세기 본격추리라고 할 수 있다.




비상 경보기 - 강신주, 동녘


철학자 강신주가 <경향신문> 지면 등을 통해 우리 이웃들의 삶을 옥죄는 지금 여기의 위기를 직면하고 경보했던 글들을 60개로 추려내 새로 다듬고 엮어 한데 묶은 책이다. 저자의 책 가운데 가장 직접적으로 이 체제와 우리의 삶을 인문정신으로 가늠한다. 동서양의 철학을 종횡하고, 문학과 역사를 끌어와 지금 여기를 구체적으로 직면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철학자가 지금 여기에 울리는 경보들을 글로 담아 모았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 모두가 권위와 억압을 딛고 바로 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누군가가 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내가 나를 대변하는 것으로서의 원칙적 민주주의다. 외적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노예가 아닌 주인의 삶, 온전히 내가 나일 수 있게 하는 인문 정신의 강조다.

또한 내가 아닌 너에 대한 의무를 말하는 사랑이 인문정신의 핵심이라고 갈파한다. 나만이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너 역시 주인이 되는 것, 우리 모두가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야 말로 인문학이 늘 생생하게 살아 있을 수 있는 근거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저자가 늘 강조하는 사랑과 자유는 나와 너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것, 그리고 그들이 함께하는 원칙으로서의 민주주의인 셈이다.




세월호, 그날의 기억 - 진실희 힘 세월호 기록 팀, 진실의힘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이 10개월 동안 방대한 기록과 자료들을 분석해, 세월호 안과 밖에서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급격히 오른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해 10시 30분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생하게 재현했다. 배가 급격히 기울어졌을 때 조타실 상황과 승객들의 모습,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도주한 선원들의 대화, 해경 경비정에 옮겨 탄 선원과 해경의 대화, 그 후 해경이 지휘부에 보고한 내용, 사고 소식을 들은 청해진해운이 감추려 했던 장면 등을 눈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냈다. 

단원고 최덕하 학생의 최초 신고를 받은 해경 구조대가 현장에 출동해서 세월호가 침몰할 때까지 무슨 일을 했는지, 현장 구조 세력과 교신하며 지휘한 해경 수뇌부는 무엇을 했는지도 세월호 사건 수사 및 공판 기록, 해경 지휘부와 구조 세력의 교신 내역, 영상 등을 분석하여 퍼즐 맞추듯 구성했다. 서로 구명조끼를 챙겨 입히고, 약한 사람들을 먼저 배 밖으로 내보내고, 사력을 다해 구조 요청을 하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공포의 시간을 견딘 승객들의 마지막 모습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았다.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 에멀린 팽크허스트, 현실문화


20세기 초 영국에서 '서프러제트'로 불리는 전투적 여성참정권 운동을 이끈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여성참정권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냈고, 남성과 동일한 한 표를 갖는 우리 시대 '여성'의 모습을 최초로 빚어냈다고 평가받는다.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내는 전략에 대해 현재 한국사회에 유효한 참조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차별받는 사람들이 평등한 권리를 보장받고자 한다면 선한 권력자의 호의에 기대서는 안 되며, 직접 나서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책은 지금도 끊이지 않는 억압과 차별을 상기시키며,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이들이 왜 종종 과격한 전략을 펴는지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내면 보고서 - 폴 오스터, 열린책들


회적이고 세련된 감수성,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 놀라운 상상력을 갖춘 작품들을 발표하며 전 세계 지적인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우리 시대의 탁월한 이야기꾼 폴 오스터. <내면 보고서>는 폴 오스터가 자신의 유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기억들을 탐사하며 그의 내면이 성장해 온 궤적들을 특유의 아름다운 산문으로 복원해 낸 회고록이다. 

그의 세계관을 형성한 가장 원형적인 체험들부터 부인이 된 여자 친구와 주고받은 연애편지까지, 오스터 자신의 가장 사적이고 내밀한 기록들이 집약되어 있다. 일정한 연대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연상 작용에 따라 떠오르는 기억의 단상들을 하나씩 발굴해 나가는 이 독특한 형식의 회고록을 통해, 어린 시절 오스터의 풋풋하고 섬세한 내면을 탐험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디어 존, 디어 폴 - 폴 오스터, J.M. 쿳시, 열린책들


폴 오스터와 J. M. 쿳시의 서간집. 앞서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중국, 일본, 스웨덴, 폴란드, 헝가리, 덴마크, 터키, 이란 등 10여 개국에서 출간되며 수많은 독자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우연의 미학'이라는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재담가 폴 오스터와 서구 문명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과 탁월한 상상력으로 200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J. M. 쿳시. 두 사람의 만남은 세간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삶의 비극에서조차 유머를 발견하는 다정함과 지치지 않는 열정을 겸비한 오스터와 10년간 그가 웃는 것을 단 한 번 보았을 뿐이라고 동료가 진술할 만큼 진지하고 냉철한 성격의 소유자인 쿳시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짝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든 두 작가는 편지로 인생의 희로애락을 논하며 깊은 우정을 나눈다. 

<디어 존, 디어 폴>은 그간 베일에 싸여 있던 쿳시의 사생활과 생생한 육성을 담고 있으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때로 남모를 고충을 겪은 오스터의 인간적 면모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중소사업장의 근로자와 사용자를 위한 단 한권의 노동법 - 정종희, 시대의 창


최근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개혁 법안이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근로의 조건을 규정하는 법안의 큰 틀이 바뀌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노동개혁 5대 법안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노동법'에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누구나 알아야 할 노동법을 저자가 현장 실무에서 느끼고 배운 경험을 토대로 실무와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풀어쓴 책이다.

저자는 노동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근로기준을 '근로시간', '임금', (기타) '근로조건'으로 나눠 설명한다. 더불어 사업장의 현실을 고려해 80여 개의 표를 수록해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도왔다. 난해한 학설과 법률 대신 수록한 이 표에는 계산 과정까지 담겨 있어, 노동법의 실제를 수월하게 파악하고 간결하게 이해하며 명확하게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취업규칙을 예시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마지막에 노동법의 법원에 대해 해설하여, 법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지향하는 바에 대한 내용까지 담아냈다.




게코스키의 독서편력 - 릭 게코스키, 뮤진트리 (개정판)


세계적인 희귀본 서적상이자 장서가, 독서광으로 이름 높은 릭 게코스키의 ‘내 인생의 책들’. 게코스키는 삶의 각 단계에서 자신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적인 도서 목록을 소개한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T. S. 엘리엇의 <황무지>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고전도 있지만, 동화책과 탐정소설, 의학서까지 자신이 ‘개인적으로’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한 책들을 키워드로 삶 전체를 회고한다. 

한 사람의 독서 경험 속에는 그 사람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책 속에는 저자의 코흘리개 시절부터 나중에 장성한 아들과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노년기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책들이 언급되는데, 이 책들은 그 시절의 게코스키를 호명한다. 곧, 그 책들과 그 독서 경험이 과거의 나,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수준 높은 성찰과 매 순간 웃음과 눈물을 번갈아 짓게 하는 고도의 유머 감각과 글쓰기 솜씨는 읽는 이를 ‘게코스키 마니아’로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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