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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키초의 복수
나가이 사야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5월
평점 :
소설은 2년 전 고비키초 극장 뒤편에서 벌어진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한다. 정월 그믐밤, 앳된 소년 기쿠노스케는 아버지의 원수라며 한 무뢰배와 진검승부를 벌이고, 결국 그의 목을 베는 장면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단번에 자극한다. 이 사건은 '고비키초의 복수'라 불리며 소설의 중심축이 된다.
이야기의 본격적인 전개는 2년 후, 기쿠노스케의 지인이 고비키초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는 기쿠노스케의 편지를 들고 극장 사람들을 만나 ‘고비키초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문전 게이샤, 무술 연기자, 의상 담당자, 소품 담당자, 각본 담당자 등 다섯 명의 화자가 각자의 시점에서 기쿠노스케와의 인연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뛰어난 가독성이다. 각 장마다 화자가 바뀌는 일인칭 시점은 이야기가 지루해지지 않게 한다. 에도 시대의 용어나 풍습에 대한 설명이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가볍게 넘기면 된다(몰라도 읽는 데 어려움이 없다).
복수극의 진실을 파헤치는 데 300페이지나 할애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작가의 의도적인 장치다. 다섯 명의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독자를 2년 전 그 날로 데려가 사건을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이를 통해 독자는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 더욱 깊이 있는 독서 경험을 할 수 있다.
무사로 살던 기쿠노스케가 극장 사람들과 생활하며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이는 소설의 본질적 가치, 즉 우리가 모르는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힘을 잘 보여준다.
다만, 책 뒷표지의 ‘미스터리’라는 단어에 큰 기대를 걸고 이 책을 접근한다면 약간의 실망을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스릴 넘치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잔잔하고 따뜻한 인간 드라마에 가깝다. 하지만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의 특별한 매력이 되기도 한다.
<고비키초의 복수>는 흥미로운 이야기 구조와 섬세한 인물 묘사, 그리고 에도 시대의 생생한 묘사가 어우러진 소설이다. 복수극이라는 강렬한 소재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탐구한다. 잔잔하지만 여운을 남기는 작품을 찾는 독자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