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지정보

  • 지은이: 장류진
  • 제목: 연수
  • 출판사: 창비
  • 출간 연도: 2023.06
  • 페이지: 336쪽(반양장)



오늘은 조금 가볍게, 장류진 작가의 <연수>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써볼까 합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달까지 가자>로 큰 사랑을 받은 장류진 작가가 새 단편집 <연수>를 출간했습니다.

전작들은 모두 일상에서 있을법한 일을 사실적으로 그려내어 큰 화제였죠.

특히 첫 단편집의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은 2018년에 창비 홈페이지에서 발표되자마자 여러 커뮤니티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준다는 IT 기업, 무슨 역할을 하는지 모를 육교 등 웃픈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재밌는 소설이었습니다.


장류진 작가는 꾸준히 글을 썼고, 여섯 편의 단편을 모아 <연수>를 선보였습니다.

(언제, 어디에 실린 작품인지는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표제작 '연수'는 2020년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합니다.

장류진 작가 특유의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관계 묘사를 통해, 상당히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던 단편이었습니다.


표제작 소개만 간단히 해볼까요.

‘연수’의 화자는 주연은 굴곡 없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무엇 하나 거칠 것 없는 그녀지만, 운전석에만 앉으면 교통사고 생각에 결국 운전을 포기하고 말죠.

맘을 굳게 먹고 맘카페에서 실력 좋기로 소문난 운전 강사에게 운전 연수를 받기 시작합니다.

짧닥막한 아주머니 강사는, 좋으면서도 싫은 면이 공존합니다.

포인트만 딱딱 집는 훌륭한 티칭은 너무 좋은데, 남편 밥은 차려줬냐, 아니 결혼을 아직도 안했냐 등등 같은 여자로서 마음에 안 드는 이야기를 잔뜩 하는 강사.

우당탕탕 주연의 운전연수는 잘 마무리가 될까요.


<연수>의 가장 큰 장점은, 읽는 재미입니다.

어려운 단어 하나 없고, 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넘치고 살아 있는듯한 느낌을 줍니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소설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최은영),  <각각의 계절>(권여선)보다 문장의 밀도나 진지함은 다소 떨어집니다만, <연수>는 재치와 활력을 담았습니다.


여섯 단편 중 가장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단연 <라이딩 크루>입니다.

라이딩 크루의 리더인 ‘나’는, 새 크루원이 등장으로 독보적이었던 크루 내 위치를 빼앗길 위기에 처합니다.

크루에서 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은 자신이었는데, 능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자, 이건 불공평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둘은 세기의 라이딩 대결을 벌이는데…

이 모습이 얼마나 우습고 꼴사나운지는 책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장류진 작가는 경쾌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메시지를 은근히 전달합니다.

힘들고 아이러니가 가득한 일상에서, 나를 지탱하는 누군가, 또는 무언가 덕분에 우리는 우리로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_31쪽, ‘연수’에서


작가가 말하는 아이러니는 무엇일까요.

인간을 선인 - 악인으로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연수’의 운전강사는 주연에게 남편 아침밥은 차려줬냐고 물어보죠.

여자는 응당 결혼을 해야 하고, 남편에게 밥을 차려줘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세계관에 사는 운전강사였던 겁니다.

딸의 성공을 위해서 죽어라 일하고 그 성공이 곧 자신의 성공이라 믿는, 자신이 싫어하는 전형적인 부모의 모습까지.

주연은 드문드문 보이는 그 모습이 싫습니다.

하지만 주연은 연수 후반에 그 모습마저 이해를 하게 됩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100% 같은 가치관으로 살아가겠어요.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친하게 지내다가도, 내 가치관과 반하는 모습 때문에 정이 떨어질 때가 있겠죠.

단 하나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 사람을 배제해야 할까요?

용납하지 못할 수준이 아니라면, 단점을 감안하면서 살아가는 거죠.

(물론 엄청난 악인인데 장점 하나는 있어~ 식의 반대사항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연수’의 운전강사, ‘펀펀 페스티벌’의 이찬휘, ‘공모’의 김상무, ‘미라와 라라’의 많은 인물들이 다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 하나씩 있는 사람들이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 연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들을 실어주며 살아가는 모습.

가끔 연대가 깨지면서 서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거나 관계가 위태로워질 때도 있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동안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책만 읽느라 소설을 멀리했습니다.

소설을 가장 좋아하는데, 하도 안 읽다보니까 읽기가 어려워지더라구요.

한편의 시트콤 같은 <연수>를 읽다보니 어느새 소설 불감증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소설을 읽는 기쁨과, 주변을 돌아보며 함께 연대해나갈 의지도 생겼습니다.

일상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동시에 잘 표현한 이 작품을, 장류진 작가의 팬뿐만 아니라 소설을 사랑하는 분 모두에게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