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 잘 팔리는 책들의 비밀
한승혜 지음 / 바틀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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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통 서평집하면 스테디셀러나 좋은 책, 고전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이런 책도 있습니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런 의도에서 쓰인 책이니 명작이라 불리는 책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다. 특이하게도 이번 책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이하 ‘한번’)은 베스트셀러를 리뷰한다.  유튜브의 국내 최초 망한 영화 리뷰 채널인 ‘거의없다’와 비슷한 컨셉이랄까.



2.  책을 웬만큼 읽어온 독서가들은 베스트셀러(이하 베셀)를 말하면 진저리치곤 한다. 출판사의 마케팅일뿐이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안 좋은 책이다, 트렌드에 맞춰서 만들어진 책이다, 등등. 저자는 이런 현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베셀를 단순히 하나의 기준으로 범주화가 가능할까? 단순히 베셀라는 이유로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어>와 <사피엔스>를 어떤 공통점으로 묶기 힘들다(12쪽).



3.  고오오오급 취향을 가진 이들은 종종 베셀를 사고 읽는 독자를 도매금으로 ‘저급 독자’로 취급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저자는 베셀가 받는 비난에 맞서기 위해 글을 썼다. 단순히 비난만 하지 말고 그 책이 어째서 문제인지, 무엇 때문에 좋지 않은 평을 받는지 설명해야 독자도 납득이 가능하다(20쪽). 단순히 베셀를 나쁜 책이라고 취급해버리면 가뜩이나 작은 독서 시작은 양극화되어 불모지가 될 것이다.



4.  책은 최근 5년의 베셀 28권을 크게 자기계발서, 힐링도서, 대중소설, 유명 작가의 소설, 일반도서로 목록화했다. 대부분 독서가 취미인 사람뿐 아니라 책 읽기를 시작하려 책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대부분 들어봤을 제목이다.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언어의 온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미 비포 유>, <82년생 김지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1Q84>, <사피엔스>, <팩트풀니스>


평소 읽던 서평집과는 전혀 다른 목록들이잖아.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읽어보고 싶게 만든다.



5.  1장 ‘자기계발서’의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자기계발서를 이렇게 변명해준다.


그렇다고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100퍼센트 쓸모없고 무용한 행위는 아니다. 사람에 따라 특정 자기계발서를 읽고 큰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다만 그와 같이 책을 읽고 실질적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을 얻으려면, 무엇이 납득 가능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책에서 어떤 부분은 유용하고, 어떤 부분은 그렇지 않은지를 판가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_32쪽


자기계발서는 모두 쓰레기라는 말을 서슴치않게 하는 이들이 있지만, 저자의 말처럼 무의미한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음으로써 열정을 찾아내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저자는 여기서 더 들어가 각 책마다 어떤 점이 좋고 나빴는지를 말한다. 자기계발서라는 큰 범주를 비판하지 않고 개별 도서를 분해하고 소감을 말했다는 점이 <한번>을 깊게 만들어주는 큰 요인이다.



6.  저자가 <언어의 온도>를 다루는 장에 오면, 어쩌면 나와 이렇게 생각이 비슷한지 읽다보면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온다. <언어의 온도>를 재밌게 읽으신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대체 이 책이 왜 잘 팔리고 심지어 몇번을 표지갈이하면서까지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마케팅이 승리라는 지인의 말에 200% 동의한다). 해당 꼭지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웃지 않을 수 없다.


본문 중 저자가 글쓰기 강의를 하러 다니는 내용도 종종 나오는데, 수강생들에게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계실지 궁금해진다. 개인적으로는 글쓰기 가의보다 마케팅이나 세일즈 강의 쪽을 더 듣고 싶은 마음이다.  _95쪽


이외에도 비슷한 평을 내놓은 책이 많다. 공감력은 폭발하나 단지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트렌드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잠재독자를 사라지게 만드는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줄거리는 평이하고 인물들은 전형적이지만 현실을 텍스트로 옮겼다는 의미가 있는 <82년생 김지영>까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평이 대다수다.



7.  물론 해석이 다른 글도 있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다룬 글에서, 주인공이 화학적 거세를 당해서 성욕을 비롯한 모든 욕망에 초연해졌기 때문에 모든 일에 심드렁하다는 해석이다. 나는 이 책을 '사람이 빠진, 오로지 이데올로기만의 대립'의 역사의 폭력과 불행으로 해석했다.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인데,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구나, 뜻밖의 부분에서 함부로 사람을 예단하면 안된다는 뜻깊은 교훈(?)을 얻기도 했다.



8.  다독가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많이 줏어들은 보람이 있다. 분석을 잘 하고 글 잘쓰는, 발전된 ‘나’를 보는듯한 기분이여서(저자께 죄송합니다…) 디테일보다는 크게 줄기만 읽었다. 전체적으로 조금 뻔하게 느껴지면서도, 지식이 모자라서 못한 말들을 반듯하게 잘해주어 의미 있는 책이다.



9.  "베스트셀러 읽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대신 "이 책도 읽어보시는 건 어떠세요?"라면서 더 좋은 책을 권해주는 일. 이게 북 큐레이션이고, 진짜 독서가의 역할이 아닌가 싶다. 잘난척 하지 마시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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