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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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조우’(45쪽)을 읽고 - 본문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대학 시절, 작가는 등단 소식을 어머니에게 전화로 전한다. 어머니는 그날 가게 문을 닫고 초저녁부터 노래방에 있었는데, 좀 취해 있었지만 딸의 좋은 소식에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가계의 형편이 어려워지던 무렵이어서 그의 어머니는 마음을 달래려 노래방에 몇 번 더 갔다고 한다. 그렇게, 가사를 잘 몰라도 박자를 놓쳐도 음치여도, 그저 흥이 나는대로 노래를 불렀을 사람들.

> 음치인 어머니가 삶의 진부함을 인정하며 목놓아 불렀을 노래, 노랫말도. 문학도 처음에는 모두 노래였으리라. _47쪽

문자가 없던 시절. 그때 문학이래봐야 뭐겠어, 시장바닥 길바닥에서 에헤! 어히! 하면서 가락에 맞춰 노래부르는 것 아니었겠어?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해서 형식을 잊고 그저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이 지나며 길바닥의 노래는 지면을 통해 언어로 순화되면서 단순해지고 정갈해졌다. 카버의 단편 중 하나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의 제빵사가 ‘한 뚝배기 하실래예?’라고 물어보는 대신 ‘당신들 뭘 좀 먹는 게 좋을 것 같소’라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37쪽)

길바닥의 노래는 우리에게 과잉된 감정을 남겨주었고, 일부는 부사로 전해내려오지 않았나 모르겠다. 글을 쓸 때 피해야 할 품사 1순위인 부사. 부사가 쓰인 문장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부사를 지우며 더 짧은 문장으로 바꿔본다. 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고 사랑스런 부사다.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는, 다른 방법을 놔두고 단순하고 무능한 부사를 쓴다고 하지만 - 그만큼 촌스럽거나 순진하거나 다급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리라(88, 89쪽). 아름다움과 우아함만이 아닌, 글쓰기의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과함이 있기에 우리를 흔드는 무언가가 있는 것들.

> 작가들은 그 말 주위를 부지런히 싸돌아다닌다. 삶이 가진 진부함의 잔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면서. 그러다 가끔은 말들의 뒤뚱거림 속에서 또 새로운 박자를 발견해가면서 말이다. _100쪽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노래들 사이에서 작가는 본연의 감각으로 새로운 박자를 찾아 작품을 써내려간다. 아무 규칙이 없어 보이던 우리네 일상은 작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그때 느껴지는 한 줄기 아름다움은 우리의 단조로운 일상이 새로운 의미를 품은 작품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때마다 우리는 기저에 빛나는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것에 놀라곤 한다.

그러니까, 한번 토해내보자. 빛나는 무대에서 수상소감을 말하지 못하더라도, 가슴 속 이야기라도 속시원이 뻥! 하고 말이다. 무대 위에서야 보는 눈이 많다지만 코인 노래방에서 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하나 없다. 고야하고 아름다운 문학 말고, 거칠고 조악하고 저열하고 못생겼지만 - 내 목소리와 다정하고 따뜻한 감정이 가득 담긴 문학을 말해보고 싶다. 이 세계가 전부 노래방이다.

> 문학이란 어쩌면 당신들을 초대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 기꺼이 와준 당신, 바로 그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문학은 하나의 선을 편드는 문학이 아니라, 이제 막 사람들 앞에 선 당선자의 허영, 그 헛폼 안에조차 삶의 이면을 비출 수 있는 뭔가가 있다고 손들어주는 , 여러개의 팔을 가진 문학이었다. _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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