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제국 - 문강형준 문화비평 칼럼집
문강형준 지음 / 북노마드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오히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현실의 더러움과 모순들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는지 읊조리는 냉소적인 목소리다. 따뜻하고 긍정적이고 부드럽기만 한 '진정성'이라는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한 차갑고 딱딱한, 무엇보다 '진실된' 그런 목소리 말이다. -70쪽


이 책은 저자가 우리 시대의 문화현상을 통해 바라본 사회 구조를 분석한 칼럼집이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담았다. 무엇에 정신을 쏟고 살고 있는지 묻는다.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이 시대, 우리에게 미래는 정말 존재하는가? 전진을 외치면서도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라니 말이 되는가.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욕망을 부채질하고 소비를 촉진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지 않는가. 힐링이라고 포장된 우리 시대의 아픔은 개인의 것으로 치부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분노는 줄여야 하며, 그것은 너 자신의 문제이니 그것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 개인의 독특함은 사라지고 똑같은 규격대로만 맞추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게 만들어지고 있지 않나. 우리 지금 사는 세상이? 대규모 오디션을 통해 착한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사람을 불러 모아놓고는 그 안에 살아야 살 수 있다는 것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하지 않나.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도 정답을 은연중에 강요하고 모범 답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나.


'창조'란 천재들의 전유물도, 상품으로 변환되는 아이디어도 아니다. 모두가 어떤 방식으로든 창조자가 가 될 수 있다. 좋아서 하는 놀이가 깊어져 어떤 수준을 넘어설 때 그것은 새로운 창조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아이도, 노동자도, 아저씨도, 할머니도 삶에서 작은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이창동의 영화 <시>는 할머니가 쓰는 초라한 시 속에 들어 있는 삶과 윤리의 깊이를 보여준다. 문제는 누구나의 창조적 능력을 천재만의 것으로, 상품으로, 채용 기준으로 만들어 특화하고 대상화하는 정부와 자본의 좁고 천박한 상상력이다.-186쪽


저자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그가 기록한 칼럼을 통해서 지난 3년여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짚어보고 뭔가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본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고 그 아픈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은 마련될 수 없는 걸까. 우리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지 않나. 오직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 모든 것들을 얻어내기 위하여.


성찰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사라질 때 인간과 괴물의 차이 역시 사라진다. -219쪽


이 책을 통해서 그간 방송매체를 통해서 보이고 우리 사회 속에서 등장한 다양한 기호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있으며 어떻게 봐야 하는가를 짚어볼 수 있었다. 좀 더 다르게, 좀 더 깊게, 좀 더 따뜻하게 상대를 바라보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갖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 좀 더 필요한 일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애매함이 인문학의 본질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애매함은 삶의 본질이며, 인간의 본질이며, 세상의 본질이기도 하다. 인간은 답이 없으며, 끝까지 답이 없는 세계에서 살다 죽는다. 그런 인간에게 확실한 정답과 정체를 강요하면서 이를 혐오와 폭력으로 연결시키는 사회라면 그곳은 분명 인간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인문학이 번성한다면 둘 중 하나다. 사회가 가짜이거나, 아니면 인문학이 가짜거나. -2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