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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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하나 가지고도 이런 글을 쓰고 문장을 이끌어가는 작가는 또 누가 있을까. 경험과 조사와 그의 재능이 결합한 문장이 독자를 꼬들꼬들하게 삶아 낸다. 길지 않은 문장, 간결함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어떤 힘이 있는 걸까. 


오랜만에 나온 산문집은 그가 다른 책에서 쏟아낸 글을 뽑아 싣고 새로 쓴 글을 모은 책이다. 그 첫 번째 글이 라면에 대한 이야기. 먹는 것, 사는 것, 쓰는 것에 대한 그의 삶의 길을 이 글을 통해서 새삼 되짚어 볼 수 있다. 


나도 다음에 라면 끓여 먹을 때는 좋은 도자기 그릇을 준비해서 먹고 싶다. 그 맛의 즐거움을 가져보고 싶다. 배고픔을 달래주는 라면에서부터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서 그 값이 달라지는 라면의 맛과 과 품을 느껴보고 싶다. 작가처럼. 


이렇게 라면 이야기로 시작된 그의 글은 가족,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그 아닌가. 그의 글의 시작이 아버지는 아니었겠는가. 그렇게 그의 삶을 이룬 고향과 가족들의 이야기, 여행에서 보고 느낀 감상들은 고스란히 글로 이 책에 가득하다. 가볍게 넘길 일도 그에게는 허투루 넘어갈 것들이 아무것도 없다. 


삶과 죽음 속에 갇힌 인간의 모습, 그가 바라본 삶과 밥벌이에 대한 이야기. 


나는 작가의 개인으로서의 삶이 있지만 작가로서 또한 사회에 대한 정의를 이야기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가져본다. 김훈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작가들이 또 그렇게 글로서 힘을 내도록 했으면 좋겠다. 지치고 힘든 삶에 헛된 희망의 구름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었으면 한다.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싯바늘을 발라내고 먹이만을 삼킬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근면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다. 돈과 밥을 위해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181페이지 중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밥벌이의 지겨움이 있지만 다시 살아야 한다. 살아서 싸워야 한다. 허위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인간 본질을 되찾는 길은 무엇일까. 있는 대로의 모습, 그 모습을 갖고 사는 삶을 인정하고 그 길대로 갈 때 우리는 좀 더 사람을 향한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인간의 몸에 대한 그의 탐구는 3부 몸에 들어 있다. 가을 이 계절에 읽기 좋은 문장들이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들의 아름다움으로 화장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인간의 내면은 반드시 그 눈빛과 낯빛과 몸가짐에 드러나는 것이라고 유가는 가르친다. "-236페이지 중에서


얼마 전에 본 영상이 하나 있다. 연어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들의 삶의 마지막 종착지를 찾아서 오는 연어의 길이 막혔다는 것이다. 높고 높은 콘크리트 벽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낚싯대를 내리고 생명을 뿌리겠다고 올라온 연어를 잡아 채 올리는 사람들과 인공적인 부화를 하겠다는 공공시설의 연구원들의 모습 속에서 점점 삭막해가는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에서도 연어 이야기가 들어 있다. 생명을 이어주는 연어에 대한 이야기이다. 


"저절로 되어진 것들의 힘들은 무섭다"-392페이지 중에서


연어의 일생을 담은 글을 통해서 삶의 소중함을 새삼 느껴본다. 


먹는 것, 사는 것, 죽는 것, 쓰는 것... 이 반복되는 삶, 그러나 좀 더 가치있게 힘있게 살자. 그래야 할 이유, 목적을 찾아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자. 


무엇보다 인상적인 텍스트는 역시 세월호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아직도 변한 것이 없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되짚어 봤다. 지옥문이 점점 넓어지는 현실을 어찌 부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장도 쉽지는 않지만 나는 김훈의 글이 좀 더 힘이 들어가면 좋겠다. 그게 조금은 아쉽다. 뭐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지만 그래도 아쉽다는 생각은 남는다. 이런 문장을 내가 쓰기나 할 수 있겠나. 


"내 몸이 허락할 때, 나는 내 맘에 드는 글을 쓸 수가 있고 내 몸이 허락하지 않는 글을 나는 쓸 수가 없다. 지우개는 그래서 내 평생의 필기도구다. 지우개는 그래서 내 평생의 필기도구다. 지우개가 없는 글쓰기를 나는 생각할 수 없다. 지워야만 쓸 수 있고, 지울 수 있다는 희망이 있으므로 나는 겨우 두어 줄씩 쓸 수 있다. 그래서 원고를 몇 장 쓰고 나면 내 손은 새까맣게 더러워진다. -268페이지 중에서


이렇게 쓰는데 무슨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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