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촌 오후 4시 - 서촌에서 시작한 새로운 인생
김미경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2월
평점 :
그 좋은 자리를 박차고 왜 거리로 나갔을까 궁금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직업 중 하나 아닐까. 기자라는 것이 일은 힘들지만 멋진 직업 아닌가. 거기다 편집국장 자리라고 하면 말이다.
지금 나도 내가 나이가 들어가며 보니 서른 살 즈음에 했던 일들, 직장에서의 낮과 밤이 가끔 떠오른다. 무엇을 위해 왜 그렇게 했는지 말이다. 내 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내 것처럼 달려들었지만 돌아보니 나를 소진한 것 말고는 더 없다. 그게 다였다. 그리고 그다음 뭐? 나는 무엇을 더 기대하고 바랐던 것일까. 그 일은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인가, 아님 다 그렇게 했으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바퀴 안에서 살았던 것일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즐겁고 기쁘게. 이러한 삶의 태도로 사람들이 돌진하는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듯하다. 제주 올레길이 열리면서 역으로 다시 제주로 이민을 가는 사람들이 늘고, 아예 그곳을 삶의 정착지로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신만의 삶, 개성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청년취업률이 떨어지고 세대 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일부 청년들이 갖는, 그렇다면 삶의 즐거움이라도 잃지 말자는 태도가 좋다.
적게 벌더라도 적게 쓰면 된다. 적게 벌어 많이 쓰려고 하니 불행하다 느끼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 대출을 하고, 갚지를 못하니 신용불량자가 되면서 다시 회생하기 어려운 층으로 떨어지는 사회구조. 누구의 잘못으로 돌려야 할지 서로들 눈치만 보며 뺑뺑이 친다.
서촌 오후 4시에 나오는 그림들이 좋다. 고요한 서울이 좋다. 시끄럽고 매연 냄새 풀풀 나는 그 거리 말고 한적한 오후의 그 거리 말이다. 골목과 지붕에서 올라오는 그 정적 말이다. 가끔 이렇게 멈춰 살아야 할 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외로워지기 전에 혼자가 되기 전에 몸을 마구 쓰고 정신없이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서촌의 오후 4시 풍경은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이 모이고 북적거리면 개발이익을 찾고자 임대료가 오르고 그곳에 오롯이 담겨 있던 잔잔한 삶의 일상은 사라지고 마는 순서를 밟는 것이 지금의 골목, 거리가 아니었는가.
그래서 더 김미경이 옥상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서촌의 풍경과 서울의 지붕이 귀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삶의 경험과 깊이로 내려다 본 서울 서촌 풍경과 그가 살아오면 겪은 사람과 그 사람들 속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그림과 함께 잘 어울린다. 선 하나하나 세세하게 그려놓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벽, 지붕, 골목, 하늘, 산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화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이런 그림도 없었고 그녀는 그곳 사람들을 이웃으로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삶은 그래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사무실에 앉았을 땐 눈길 한 번 준 적 없었던 인왕산도, 하늘도, 바람도, 공기도 다 가까운 친구가 되는 즐거움도 만만찮다. 다른 건물 옥상 위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 빨래 널러 온 사람들, 기와집을 수리 중인 목수, 미장이 아저씨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슬쩍슬쩍 눈도 마주친다. 수없이 많은 에어컨 실외기, 위성 수신기, 굴뚝, 안테나 들도 자꾸 그리다 보니 친구 같다.-75페이지 중에서
지난해 작은 노트를 하나 사서 그림일기를 써본다고 했는데 처음 몇 장 그리고는 그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 사람을 잘 그리지 못한다. 언제쯤 잘 그릴 수 있을까. 더 노력해야 할 일이다. 저자처럼 선생님을 찾아가는 게 제일 빠를지 모르겠다.
옥상화가가 되어서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었다는 저자, 눈치 볼 것 없이 신나게 살자는 저자의 다음 책은 몇 시에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