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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를 보는 일은 내가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답답하거나 꽉 막힌 현실세계에서 벗어나 낯선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영상매체이다.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해석을 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뭘까라는 생각과 영상미 정도에 감탄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보는 행위들을 통해서 그간 봐온 것들을 다 꺼내놓고 다시 엮는 작가의 역량은 부러울 따름이다. 김영하 작가의 '보다'가 그렇다. 시리즈로 나올 책이라고 한다. 보고 읽고 말하는 행위를 통해서 세상과 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아닐지 추측해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우선은 자신이 예측 가능한 인간일지도 모른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탐정의 눈으로 자신의 일상을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다. 출근길을 바꾸고 안 먹던 것을 먹고 안 하던 짓을 하며 난데없이 엉뚱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점차 예측 불가능한 인간이 될 것이다. 이런 엉뚱한 연습에서 얻어지는 부산물도 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감수성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무심하게 내버려둔 존재, 가장 무지한 존재가 바로 자신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 모른다.
185페이지, '보다'중에서
그건 그렇고 우리가 봤음직한 영화들, 설국열차, 건축학개론, 그래비티 등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는 뭐 다른 전작들을 통해서 느꼈을 것이기도 하다. 에세이가 주는 맛은 짧지만 여러 갈래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데 있다. 작가의 특이한 경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맛은 점심과 저녁 그 사이 나른한 시간을 풀어주는 기분이 들게 한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샤워를 하지 않아도 노래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즉, 예술계의 현실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무대의 조건'을 자기에 맞게 바꾼다. 고전 오페라 무대에 샤워 부스를 설치해 주인공이 샤워를 하면서 아리아를 부르게 하면 되는 것이다. 앤디 워홀이 그랬고 백남준이 그랬다. 그들은 자기가 가장 잘하는 것, 그러나 아직 예술계가 용인하지 않던 것을 그대로 판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고선 그게 '현대적'이라고 우겼고, 그렇게 오래 우기자 하나둘 믿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멀쩡한 동료들이 워낙에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믿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안 믿던 불신자들도 그쪽으로 확 쏠렸고, 나중에는 무대에 샤워부스가 없으며 이상해 보이기 시작했고....... 뭐, 그런 일들이 벌어졌던 것이다.
106페이지 중에서, '보다(김영하, 문학동네)
상상력은 그냥 오지 않는다. 비꼬고 틀어보고 다르게 보는 연습을 통해서 나는 조금 더 어제보다는 다른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보다는 그러한 점을 일깨워준다. 늘 그렇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해서 의심을 품을 일이다. 탐정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