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렐렘
나더쉬 피테르 지음, 김보국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사실적이고 비사실적인, 실제적이고 

비실제적인, 따라서 두 개가 아닌 서로 독립적인 체계. 바로 그 반대. 큰 체계의 부분들, 왜냐하면 하나는 그 다른 것에 대한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비사실적인 관련 체계 안에서 뭔가 그 다른 것을 사실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사실적인 관계 체계 안에서 움직이면서, 내가 보는 것은 비사실적으로 보인다." -146페이지 중에서


나더쉬 피테르라는 독특한 작가의 소설을 한 권 만났다. 늘 편하게 읽던 국내 소설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펼쳐봤는데 처음부터 글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지 종잡을 수 없다. 한 번을 읽고 다시 한 번 더 작가가 말하는 바를 집중하다 보니 이게 뭐야 싶기는 했지만 그 안으로 점점 들어가는 생각을 느낄 수 있다. 작가의 기법도 독특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 그 생각을 따라가기 바쁘다. 

 

읽는 독자로 하여금 더욱더 글에 집중하게 하고 뭐지 싶지만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그 밖에서 펼쳐지는 작가의 글들은 공간을 날아다니는 듯 기분이다.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만나는 사람들을 왠지 의심하게 되는 기분까지 불러온다. 이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그런 기분을 지울 수 없으니 그렇다. 시간과 공간을 오고 가며 퍼붓는 듯한 그리고 다시 멈추어 대화를 나누지만 어느 것이 안이고 어느 것이 밖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는 상황들은 혼란스럽다. 

 

결국 삶이 그러한 것들이 아닌가. 구분 지으려 하고 규정지으려고 몸부림치는 삶의 모습이란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곳, 다른 공간을 찾아다니지만 우리는 결국 그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은 것은 아닌지. 

 

작가 나더쉬 피테르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헝가리가 낳은 20세기의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그의 삶이 그렇다.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장을 만들어놓은 것에는 그의 삶과 사고가 그대로 녹아져 있는 기분이다. 그가 던진 다양한 삶의 문제들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가 던져놓고 그것들을 서로 엮어 놓음으로해서 우리를 그 안에 가두었다가 다시 풀어놓아다가 묶어 놓는 그런 아주 복잡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으니 말이다. 

 

풀고나와야 할 몫은 우리의 것이다. 현실을 벗어나던가 그 안에 푹 묻혀 살던가.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을 이유도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세렐렘이라는 말이 헝가리어로 '사랑'이란다. 남자 주인공과 그의 애인 에바의 하룻밤의 이야기 속에 뿌려진 삶의 질문들을 하나 하나 담아보고 싶다면... 기존의 인식을 벗지 못하면 안으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듯 싶다. 


한 문장 더 옮겨보자.


"내가 있었던 어떤 깊이에서부터 더 높이 오른다. 여기 이 방이 있는 것을 그곳에서 이미 보았다. 하지만 지금도, 마치 내가 본 그 방에 있는 것이 아닌 듯 하다. 그러면 어디에? 감옥. 만약 내가 외부 세계에 속하는 감옥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러면 기억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구급차를 부른다면, 구급요원들은 우리를 감옥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러므로 구급차를 불러서는 안 된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구급차를 부르지 않는다면, 그들이 우리를 감옥에 데려가지 않는다면, 나는 언제 이 방에서 나갈 수 있는 걸까?" -110페이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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