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공장 - 소설가 김중혁의 입체적인 공장 산책기
김중혁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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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묵직해야 한다, 혹은 읽기 편해야 한다 등등의 정의를 내릴 수 있다. 그렇게 정의 내릴 수 있지만 정답이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여러 시도들이 작가에 의해서 일어난다. 소설가로 필명을 알린 분들은 수필을 쓰기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한다. 때로는 시인들은 여행기를 쓰고, 소설에도 도전한다. 글을 쓰는 일이 형식을 달리할 뿐이지 어떤 것을 써도 문제 될 것은 아니다. 다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러한 힘을 좀 더 모아서 한 길로 갔으면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네가 무슨 참견이야' 할 일이겠지만. 우리 인생도 사실 뭐 별다른 게 없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지. 그래서 하나 걸리면 그것 같고 사는 거고 말이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면서 내 스타일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김중혁의 소설은 그렇게 내가 접해 본 바 없지만, 경력의 특이성은 어디선가 읽어본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작자가 작가를 뭐라 저라 할 일이야 있겠냐. 

 

이 책으로 김중혁 작가가, 아, 이 분이 이렇구나 하는 것을 안 것만으로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력이 좀 짧은 편이라 '힘'을 키운다가 이 책 저 책 보며 '용'을 쓰고 있는 중이다. 힘이 생기면 뭘 읽어도 받아 감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초등생처럼 말이다. 뭐 모르고 덤빌 때는 창피한지도 모르지만, 조금 아, 이런 분위기인가 싶을 때면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제 생각도 말 못하고 제 글도 제대로 못 쓴다. 그래서 나는 아직 어리다. 

 

내 유년 시절, 아버지는 철 공장에 다니셨다. 돌아오면 항상 쇳가루들이 날렸던 것 같다. 때로는 쇳가루들 때문에 아버지의 작업복은 반짝거렸다. 쇠를 녹이고 다시 모양을 만들어내는 그런 작업들을 반복하셨다.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쇠를 식히는 과정에서 화상으로 사고를 당하시기도 했다. 

 

그런 시절, 우리 마을 근처에는 부라보콘 공장이 있었다.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그 공장이다. 공장 인쇄소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납품을 받은 포장지를 쌓아두어서 그런지, 공장 주변에는 고깔 모양의 콘 종이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냄새. 바삭바삭한 과자도 있었다. 깨지고 부서진 과자들을 어떻게 맛봤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러한 부스러기들을 팔았던 것 같다. 제조 중에 문제가 된 것들을 말이다. 하여튼, 초등생에게 전해진 그 달달함이란. 저 공장에서 일하는 분들은 실컷 드시겠다 싶었다. 

 

작가들이 유명해지면 아무래도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나름 좋은 점도 있지 않겠는가 싶다. 그중 하나가 이런저런 방문에 따른 혜택 같은 것 말이다, 아닌가, 그런 거 전혀 없나? 글을 아는데 사람 얼굴을 못 알아봐서 그런가. 그럴 때 나는 '***의 작가다', 이렇게 말하면서 말이다. 

 

요즘 와서 내가 좀 기술을 배우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이과 기질이 없는 탓도 있지만 우리 공부할 때 보면 이과는 기계나 만지는 사람으로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자신의 생각과 아이디어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돈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나와서 뭔가를 하나 남기고 가는 것 아닌가. 요즘 나는 나도 뭔가를 남기고 싶은 생각에 골몰해있다. 뭘 남기나.  허섭스레기 같은 글 말고 말이다. 이건 그냥 쓰레기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더욱 이렇게 글 잘 쓰고 생각대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부러운 거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네 삶을 살라고 하지만, 남 삶이 아름답고 좋아 보이는데 어찌 그것을 안 따라가고 배기나. 다리가 찢어지더라도 그러고 싶은 것이 인간 본성 아닌가, 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타 오른다. 이글이글. 

 

그간 신문사와 함께 글을 연재한 작가의 책이다. 공장 탐방기였다. 나는 처음 무슨 소설인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다. 산책기라는 부제를 보기 전에는 말이다. 아마, 성장과정에서 보고 싶었던 궁금했던 공장을 떠올리며 찾아낸 공장 목록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콘돔 공장, 브래지어 공장을 비롯한 맛의 바탕이 되는 간장 공장, 작가들의 생명을 유지하는 종이 공장 등을 비롯한  15개의 공장을 산책했다. 

 

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들은 안전하게 좋은 시설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건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깨끗하게 포장된 것들을 보면 그런 의심을 할 수 없다. 그래도, 어떤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사람이 제일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어느 공장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여전히. 

 

"공장이란 곳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호의와 선의'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다. 또한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절박한 필요'에 의해 움직이는 곳이기도 하다. '절박한 필요'가 '호의와 선의'를 이길 때  음식물에다 이상한 물질을 때려 넣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 '호의와 선의'가 '절박한 필요'를 이길 때, 안타깝지만 공장은 망한다."-본문 214페이지 중에서

 

그중 하나는 작가의 글 공장이다. 먹고 입는, 그리고 생활이 되는 공간을 돌아봄으로 해서 그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궁금했던 것, 사물에 대해 갖고 있던 호기심들을 하나하나 풀어간다. 작가의 궁금증을 토대로 일반 독자가 가질 만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받는다. 제품의 이력과 장소의 탄생을 상식으로 챙겨 볼 수 있다. 공장 설립과 운영 중에 얽힌 에피소드가 굳은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짓게 만든다. 김중혁 글 공장의 공장장의 능력 아니겠는가. 그의 공장에는 '바라보자',라는 문구가 있단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

 

-종이

-콘돔

-브래지어

-간장

-가방

-지구본

-초콜릿

-김중혁 글 공장

-도자기

-엘피

-악기

-대장간

-화장품

-맥주

-라면

 

커피 한 잔 먹기 좋은 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내 속에 감추어진 생산 본능을 끌어낼 수 있게 마구 펌프질 한다. 후회하지 말고, 지금 뭔가 만들어봐라. 타이핑으로 글을 만드는 것만큼 또 다른 나의 모습은 없는지 구석구석을 뒤져보게 만든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들으려면 그래도 10년이면 된다고 하고, 1만 시간 이상

일하면 전문가라고 하지만 적어도 30년은 되어야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는 분들의 공장이 있는 곳.

 

"공장의 작업 지시서에서 또 하나 잊히지 않는 문장이 있다. 아마도 작업 지시서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문장일 것이다. 


'시작과 끝이 일치하도록 한다.'


박음질의 마무리를 일컫는 말이지만 작업의 기본을 지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만듦새는 일정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꼼꼼해야 하고, 끝을 예감하며 긴장을 풀어서도 안 된다. 시작과 끝이 일치하도록 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책상 앞에다 큰 글씨로 프린트해서 붙여 두고 싶은 문장이다. 저 문장을 읽을 때마다 브래지어 공장의 경쾌하지만 조용한 리듬의 재봉틀 소리가 기억 날 것 같다." -본문 61페이지에중에서

 

장인의 정신으로 지금까지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공장을 이끌고 있는 분들과 그 안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오늘도 서울 외곽 혹은 어딘 가에서 열심히 미래 대박을 예감하며 뭔가를 만들고 있는 분들은 더욱 힘을 내길 바란다. 앞으로 더 파야 한다고 한다. 중도 포기만큼 나약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시대가 원치 않더라도 원망하지 말 일이다. 

 

만약 내가 이러한 글을 쓰기 위해서 공장을 간다면 나는 어떤 공장을 찾아가볼까?

음...

 

모든 것이 기계화되고 자동화되는 지금, 생산을 책임졌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그 자리를 기계와 로봇들에게 물려주고 인간은 그 자리를 물러나고 있는 지금, 김중혁이 찾은 공장의 제품들은 사람만큼 정교한 손놀림이 없다면 만들 수 없는 제품들이기에 지난날의 추억과 지금 삶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시간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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