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높고 쓸쓸한 - 안도현 시집 문학동네 시집 99
안도현 / 문학동네 / 200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읽고 싶어서 읽는 시도 있지만 누군가의 글과 강연에서 들은 시를 다시 꺼내 읽거나 보는 것은 또 다른 맛이다. 그의 말과 해석으로 다시 살펴보기 때문이다. 처음 볼 때 뭔가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들이 새롭게 들어온다. 시집을 보면 그 안에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다. 시인의 화두인 것 같기도 한 단어들을 모아보면 생각과 삶이 보여 진다. 수 많은 쇄를 거듭한 이 시집의 첫 번째 시는 두말할 필요도 없는 시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이 시를 말해주었다. 뭐야 하며 놀라면서 그 글을 보내 달라고 했는데 그럴 만큼 긴 글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 강렬함이란 뭐랄 말 할 수 없다.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그 마지막 줄은 살아가면서 나를 돌아보는 글이 될 듯 하다.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남을 탓하고 비난하기 앞서 나를 살펴보고 나의 현재를 돌아보는 것 만큼 큰 일이 있고 앞설 일이 있겠는가 싶은 거다. 그리고 그 다음 그 다음의 시를 찬찬히 읽는다. 삶과 떠어져있지 않은 안도현 시인의 시는 맑고 때로는 솔직하고 아이와 같다. 자연 속에서 삶의 현장에서 봐온 것들이 그대로 드러나 친근하기 까지도 하다. 편안함이라고 말해도 좋을 듯 하다. 사람들의 감성을 이끌어내어 공감을 더욱 키운다. 시인이 있어 우리는 더 편하고 그로 인하여 불현한 마음을 씻어낼 수 있는 것이리라. 힘들고 지칠 때 그가 겪은 삶의 고통 한 조각 한 조각으로 오늘의 나를 돌아보는 일은 더욱 힘을 내도록 해 준다. 편하게 갈 길을 어떻게 보면 우리 스스로 어렵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한다.

 

삶이 가르쳐준 길을 따라 제대로

나는 가고 있는지, 가령

쌀 한됫박에 감미료 조금 넣고

한 없이 돌리다가 어느 순간 뻥, 튀밥을 한 자루나 만들어내는 것처럼

순식간에 뒤집히는 삶을 기다려 오지는 않았는지

튀밥으로 배 채우려는 욕심이 크면 클수록

입 안에는 혓바늘이 각성처럼 돋지

안 먹겠다고, 저녁밥 안 먹겠다고 떼쓰다

어머니한테 혼나고 매만 맞는 거지

 

('튀밥에 대하여 중'에서)

 

가장으로서, 시인으로서 살아가면서 부대끼는 일들을 통해 우리 삶의 드라마를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올라오는 시골집 굴뚝의 연기로 마음은 설레기도 한다. 아 좋다. 나는 참 좋다. 초록 생명, 작은 풀 하나를 보면서도 염려한다. 여기가 지금 어떤 세상이라고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면서도 그 순수함과 초록의 빛을 따라 살고 싶다고 말한다. 백석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이 시집 한 권이면 마음의 불편함을 달랠 수 있으리라. 두고 두고 볼 일이다. 다만 아끼지는 말고.

 

저 어린 것이

이 험한 곳에 겁도 없이

뾰족, 뾰족 연초록 새순을 내밀고 나오는 것을 보면

애쓴다. 참 애쓴다는 생각이 든다.

저 쬐그만 것이

이빨도 나지 않은 것이

눈에 파랗게 불 한 번 켜보려고

기어이 하늘을 한번 물어뜯어보려고

세상 속으로

여기가 어디라고,

 

 

('저 물푸레나무 어린 새순도'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