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지 마라, 지친다
이지풍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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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이야기가 당연하지 않게 여겨지는 세상은 끝이 날까. 


휴식을 두려워하는 선수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연습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며 밤새 공을 치고, 연습을 하는 선수는 다음 날 열리는 경기에서 제대로 공을 쳐낼 수 있을까. 충분한 휴식이 오히려 더 좋은 경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그럴까. 


야간 훈련을 한다고 불을 밝히고 연습을 하는 선수들은 다음 날 혹은 그다음에 있을 경기에서 그만큼의 속도와 근력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을까. 검증되지 않은 방식으로 혹은 감독이나 코치의 스타일에 따라 훈련 방식은 다르다. 그에 따라 선수의 수명도 달라진다.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선수의 길은 달라진다. 


없던 재능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훈련을 하고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것이다. 


2022년 4월 개막을 앞둔 프로야구는 어떤 모습을 선사해 줄까? <뛰지 마라, 지친다>는 제목 그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지 말고, 그 시간에 오히려 휴식하면서 몸의 움직임을 상상해 보라고 권한다. 


이 책을 쓴 이지풍은 비 야구선수 출신으로,  현재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서 수석 트레이닝 코치로 일한다. 이지풍은 이 책에 그가 지금까지 선수들 속으로 어떻게 스며들고, 선수들이 어떻게 코치에게 다가오는가를 현장에서 보듯 꺼내놓았다. 물론 다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문장 속에서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 많았다. 


'야구는 인생'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선수들은 오늘은 이기는 경기를 하지만, 내일은 지는 경기를 할 수 있다. 오늘 잘 던지다가도 내일 던진 볼 넷으로 질 수 있는 경기도 한다. 오늘 잘 나간다고 으스댈 것이 없다. 오늘 힘들다고 물러나 앉을 이유가 없다. 어떤 공을 던지고, 어떻게 받을 것인가. 그 태도에 따라서 삶은 달라진다. 


야구단에서는 여러 조직이 있다. 그 안에서 열심히 일하면 선수들이나 구단에 인정받기를 누구나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인정을 받고 싶고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을수록 자기 일에 대한 욕심을 조금 내려놓는 것이 필요하다. 조직 안에서 혼자서 이뤄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고 부서 간의 유기적인 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아니라 타인 혹은 타 부서의 일을 먼저 존중할 때 나의 일과 역할이 도리어 돋보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앞선 나의 경험처럼 말이다.-276페이지, <뛰지 마라, 지친다> 중에서


야구는 혼자 잘나서 하는 경기가 아니다. 팀 협력 게임이기 때문에 그렇다. 필드에서 서로 의지하고 협력해야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 투수가 공만 잘 던져서 이길 수 있나. 타자가 잘 때려야만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각자의 자리가 중요하다. 그 자리에서 자기 몫을 하고 다른 선수들이 그 자리에서 제 몫을 할 수 있게 격려해 주는 게 중요하다.



저자 이지풍은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확대해나가는 재주가 있다. 누군가에게 다가서는 것도 어렵지만, 누군가를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것도 어렵다. 이지풍은 그런 면에서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기다려줬다. 


나는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고, 조언해 주고 싶고 나서고 싶지 않은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역할을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런 순간을 잘 넘기고 차근차근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키워나갔다. 곁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코치한다고 선수가 다 받아들이고 잘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필드에서 결국 결정권은 선수에게 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선택의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더 가르치고 알려주는 게 코칭스태프의 일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문제를 선수가 받아들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 그냥 지적만 한다고 좋은 코치가 되는 건 아니다. 물론 선수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꽤나 어려운 일인 건 맞다."-212쪽


내가 키우는 게 아니라 상대가 알아주도록 하는 게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는 발판이다. 


야구는 멘탈 게임이다. 체력으로 승부를 한다고 하지만, 필드에서 뛰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은 활동을 위해 수 없는 훈련을 한다. 타석에서 공을 쳐야 할 순간,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정신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훈련해야 할까. 답을 찾아야 할 곳에 답을 찾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한마디로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지풍은 훈련으로 조지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소위 훈련으로 조지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 많은 지도자들이 어떻게 가르칠지, 어떻게 잘하게 만들지를 더 많이 고민했으면 좋겠다."-136쪽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제대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못 짚으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 선수들이 잘 못하는 것, 부진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를 제대로 보지 못하면 선수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이지풍은 그런 점을 이 책에서 보여준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인간존재이지만, 또 다른 상품이다. 인간 가치가 연봉으로 규정된다. 상품이 그 가치를 다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코치이고 감독이 아닌가. 어떤 것에 초점을 둘 것인가에 따라서 결과는 달라진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이지풍의 <뛰지 마라, 지친다>를 읽으며 잘 못했던 순간에 무너지지 말고 잘 했다고 마음 들떠서 나설 일이 없다. 늘 겸손하게 속도감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 이지풍은 한편으로는 선수 스스로 자신감을 갖는 것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빠른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더 큰 성장과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과대포장을 해선 안 되겠지만 그동안 자신이 이뤄온 성과나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능력과 업적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야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다."-101쪽



지난해 지인의 소개를 한 사람을 만났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자리였다. 올 초에 다시 정리해서 보고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 후에 다른 연락이 없다. 온라인 메시지를 보냈지만, 몇 줄 문장 속에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나를 돌아 본 그때 그 순간, 내가 다가가지도 그들이 내게 다가오게도 하지 못했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선수의 휴식을 그 무엇보다 강조한다. 멀리 가기 위해 충전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이라는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할지를 선수들과 생활하며 얻은 지혜를 풀어낸 이 책은 소주제 속에서 인생 깨달음의 중요성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강압과 억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기는 사람의 특징은 똑같은 상황에서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을 애정으로 바라보지만 먼저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말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선수로 하여금 더 오래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조직 생활은 또 어떨까? 직원 스스로 창의적인 활동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데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지는 않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다음 문장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며 많은 지적 혹은 지시를 한다. 하지만 그 지적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는 모른다. 지적할 때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204쪽 중에서


<뛰지 마라, 지친다>는 야구선수들과 만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을 다룬 에세이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그런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 선수와 코칭스태프 혹은 구단과의 관계 속에서 선수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지풍은 코칭도 잘 하지만, 생각과 글도 바르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지친 일상에는 휴식이 필요할 때 읽어볼 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2022년 한화 이글스의 성적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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