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모종혁 지음 / 서교출판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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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 년 전 중국 술을 난생 처음 입에 대었다. 그 기억은 너무 강렬해서 엊그제 같기만 하다. 주로 팩스로 업무 교환을 하다 직접 (나는) 중국 땅을 밟게 되었는데, 얼굴 모양만 한국인과 흡사하고 일상의 모습은 덜 개방된 낙후한 모습을 띠었다. 그런데 무역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즉 총경리, 경리, 통역, 기사 등은 외국물을 먹어서인지 제법 때깔 나는 입성으로 나를 극진히 대해 주었다. 한국 인천에서 위둥 페리를 타고(22시간 정도) 닿은 곳이 바로 웨이하이였다. 나는 그곳에서 인생 처음으로 중국이라는 민낯을 몸과 마음으로 맘껏 흡수했다.

 

 대학 시절 배우고 익혔던 중국어는 소통에는 어느 정도 가교 역할을 해 주었지만 심오한 대화는 불가능했다. 짧게는 1주일 길게는 4주 정도를 머물게 되었는데, 일정에 따라서는 무역부 사무실 직원과의 생산 리드 타임 조율과 제품 하자 최소화, 선적 등에 관한 문제를 협상했다. 내 옆엔 한족이면서 평양에서 한국어를 배운 통역이 있었다. 그의 말투는 북한 말투에 가까운 듯 투박하고 단조롭기만 했다.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지의 살아있는 중국어를 익히려고 귀로 듣고 손으로 메모하기에 바빴다. 현지 무역부 직원과 생산 공장 책임자(공장장급 등)와의 식사는 으례 목이 타들어가는 도수 높은 중국 술이 '약방의 감초'와 같이 주석을 빛내 주었다.

 

 처음 웨이하이 땅을 밟고 식사 대접을 받았던 음식점은 규모나 분위기 면에서나 최상은 아니었다. 당시 최신 유행가가 식당 공간을 휘감아 주고, 이윽고 내오는 중국 음식의 가짓수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방불케 했다. 색, 향,맛이 삼위일체가 되어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를 만난 듯 했다. 음식의 이름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라탕에 우량예(五糧液)라는 술이 아니었나 싶다. 한국에서 소주, 맥주는 기분에 따라 '벌컥벌컥' 마실 수도 있겠지만 50도가 넘는 중국 술은 살금살금 문지방을 넘어가는 것처럼 눈을 딱 감고 입과 식도를 넘겨야 하는 수순, 의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중국 술 자체를 사양했지만 그 자리의 주인공이고 펑요우(친구)로서의 체면(몐즈)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인간관계를 고려해서 아니 마시고는 제대로 일과 관계가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 마실 수 밖에 없었다. 목이 타는 듯한 고약하고 매서운 느낌은 위 속으로 유영해 들어갈 때엔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뒤끝은 없었다.

 

 『술로 만나는 중국. 중국인』은 오랜 시간 중국에서의 생활 경험과 지식 등을 두루 소개하고 있는 모종혁 저자는 중국 현지의 선구자로 불릴 정도로 중국통(中國通)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중국 오지 등을 밀착 취재하면서 폭넓은 지식과 식견, 현장감 있는 현지 소식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나 역시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하나가 중국 소수민족이 사는 곳인데, 이 글에선 소수민족과 관련한 역사, 문화, 술 등에 얽힌 고사를 들려 주고 있다. 풍수지리에 입각하지는 않았더라도 좋은 물, 토양, 원료 등이 제대로 배합되고 오랜 세월 숙성시킨 술이라면 술의 품격은 살아 있지 않을까. 특히 중국은 94%를 차지하는 한족을 위시해서 조선족 등의 55개 소수민족이 살아가고 있는 세계 제1의 인구 대국이다. 게다가 세계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황허 문명과 역사 속의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남긴 술과의 고사 등은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를 더해 준다. 강물과 지하수를 끌어와 전통주를 빚기도 하고, 수많은 소수민족과 굴지의 대표 요리(베이징, 상하이, 쓰촨, 광둥)들이 특색 있는 지방 술과 더불어 중국의 문화를 한층 더 빛내고 있다. 근자에는 포도 생산량을 증대시켜 중국 와인의 격조를 높이려는 야심찬 기획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후, 풍토, 산물 들과 어울려 중국 술은 중국인의 뇌리에 깊은 문화적 DNA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삼국시대의 조조, 손권, 유비, 제갈량 등을 비롯하여 시(詩) 세계의 거인 두보, 이백 그리고 현대 중국사에 있어 마오저둥, 덩샤오핑, 저우언라이 등이 중국 술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다. 쿵푸쟈주, 마오타이주, 우량예주 등을 넘어 셀 수 없이 많은 중국 술은 직접 그 곳에 가서 음미하고 느껴야 비로소 중국 술과 중국인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세계 제1의 인구 대국 중국은 명실공히 술의 왕국이 아닐 수가 없다. 운치와 기품이 넘치는 리장과 우전(수로와 민가의 조화)의 술이 익어가는 풍경이 인간의 온갖 시름을 달래 주기에 족하다. 중국 술은 갖가지 곡류를 이용하여 제조하는 것이어서인지 마음 든든하게 다가온다. 모종혁 저자의 중국에 대한 애정과 폭넓은 식견은 새삼 중국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새롭게 전환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중국 술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를 떠나 중국 역사와 문화, 고사를 다시 체득하는 시간이 되어 내게는 매우 유익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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