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전 - 법정이 묻고 성철이 답하다
성철.법정 지음 / 책읽는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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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대표하는 각 종교계의 지도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각 종교의 본래 가르침을 따르고 삶에 크게 대입시켜 뭇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종교인 및 종교 지도자들을 보면 마음 한 켠에선 '독실한 신앙심의 참모습과 종교의 위력'이 스며들곤 한다.그런데도 나는 아직까지는 어떠한 종교를 갖지는 못했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의 이정표를 굳건히 지켜내기 위해 종교 하나쯤은 갖어야겠다는 생각은 늘 있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 할머니를 따라 절을 가곤 했다.할머니께서는 사월 초파일과 가족의 안녕을 비는 의미에서 불공(佛供)을 지극 정성 드리셨는데,어디 갈 때마다 나를 꼭 데리고 가곤 했다.할머니를 따라 가면 늘 먹을 것이 생기곤 했다.그것이 어린 내겐 참을 수 없는 유혹이고 기대감을 부풀어 오르게 했던 모양이다.절에서 나오는 각종 음식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촐하고 정갈하여 뒷맛이 개운했다.사찰 본당에서 불어오는 향불 내음과 함께 먹는 절 음식은 입에 인이 박힌 듯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할머니,어머니가 해 주신 음식 맛과 같이 내 뇌리에 깊게 아로새겨져 있다.지금도 어린 시절 졸졸 따라 갔던 절의 풍경과 음식은 마음의 본향과 같이 아련하기만 하다.

 

 한국 현대 불교계의 지도자로 잘 알려진 성철(性撤)스님과 법정(法頂)스님 대담집을 접하게 되었다.뜻깊은 시간이 되었다.도서의 제목에서 시사하듯 설전(雪戰)은 차가운 하얀 눈 위에 두 불교 지도자의 말씀을 덧대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제자격인 법정 스님이 스승격인 성철 스님께 불교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부터 신앙인으로서의 본분과 행각(行脚),(삶의) 철학 등을 들려 주고 있다.성철 스님은 고이 고이 보자기에 싸여진 삶의 진리와 말씀,나아가야 할 길 등을 담담하게 설파하신다.두 분의 인연은 해인사 백련암(白蓮庵)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내가 본 두 분의 공통점은 물질적 소유욕과는 거리가 먼 (보기 드문) 무소유의 상징 인물이다.

 

 이 글은 성철 스님이 "누구든 자신을 찾아오려거든 3천 배(拜)를 해야 한다"는 불문율부터 시작한다.3천 배를 하라는 의미는 남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말이다.그것을 수행하면 심중에 변화가 찾아오고 이타적인 생각과 감정이 생긴다는 법이다.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하여 성철 스님을 찾아 온 본인에게 이롭게 하고 싶었다는 속뜻을 알게 되었다.불교는 깨친 사람(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의미로 모든 중생이 부처님과 같이 스스로 깨우쳐서 우주 만법의 근본을 바로 알게 되면,부처 자신과 같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그런데 무릇 중생은 집착이 강하다 보니 사물의 본디 모습을 분간하지 못해 부처님과 같은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깨우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대인은 물질적 가치관에 심히 경도되어 물질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인간 본래의 이성적이고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은 사라지는 대신 돈과 물질의 힘이 절대적이고 무한한 능력으로 둔갑하여 정글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야만 하게 되었다.정신의 힘이 부재하고 물질의 힘이 드세게 되면 개인적.사회적으로 선행보다는 악행의 우려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즉 인간의 근본 가치는 인격이 우선이고 물질은 다음이다.이러한 화두가 오래 전부터 있었음에도 여전히 물질적 가치관이 우선시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인간의 존재 이유,인간의 존엄성의 회복은 우리 모두가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성철 스님의 공양은 매우 간소하고 의복은 더욱 검소하다.성철 스님은 '영원한 진리를 위하여 일체를 희생한다.'는 신념으로 일관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성철 스님의 생사관은 따로 없다는 것이다.삶 자체가 열반이고 해탈이다는 점과 눈을 감았을 때는 윤회고 눈을 떴을 때엔 대자유!라는 점이 인상 깊다.인간이 마음의 눈을 떠야 지상이 비로소 극락으로 다가온다는 가르침이 마음 속 깊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성철 스님은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 목표를 "상대유한의 세계에서 절대무한의 세계로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라고 했다.즉 상대유한의 세계는 생멸의 세계이고 절대무한의 세계는 해탈의 세계로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너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이것은 개인의 태도와 마음 자세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점은 겸손하면서 선행을 많이 쌓으려 한다.인과사상과 업(業)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생전에 잘해 놓아야 후세에게 정신적 가르침과 음양의 덕이 쌓일 것이기 때문이다.세 가지 화두(자기를 바라 보라,처처에 부처이고 처처가 법당이네,네가 선 자리가 바로 부처님 계신 자리)로 성철 스님의 불교관과 삶의 이력을 전반적으로 느껴 보는 시간이 되어 무척 다행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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