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 대기근 - 삼백만 명이 굶어죽은 허난 대기근을 추적하다 걸작 논픽션 5
멍레이 외 엮음, 고상희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지나간 역사의 비극 현장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세상에 알리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그것은 사회체제 및 주류 이데올로기가 어떠하느냐에 따라 해당 사건에 대한 공개 여부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일종의 정보의 불투명성이라 여겨지지만 인류 역사 이래 비밀이란 결코 없다.투철한 직업정신과 불요불굴(不搖不屈)의 집요한 기자정신에 입각한 중국 현대사의 비극 취재 결과가 세상에 드러났다.바로 중일전쟁의 와중에 허난(河南)성에서 발생한 재해와 인재가 뒤섞여 아사자만 300여 만을 낳았다.그것도 중국과 일본이 싸우는 가운데 허난성의 애꿎은 인민들만 새우등이 터진 꼴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소름 끼치는 재해의 현장은 제석천과 아수라가 싸우는 아수라장을 연상케 한다.허난성 인민들은 일본군이 허난성을 쳐들어 올 무렵 제방 폭파로 황허강이 범람,이재민이 대거 발생한다.연이어 가뭄까지 들어 식량을 구할 수가 없게 된다.굶주림에 지친 인민들은 느릎나무 껍질과 같은 초근목피로 연명을 하는데,때아닌 메뚜기 떼가 허난성을 급습하여 허난성 인민들은 천형(天刑)을 받아야만 했다.더욱 놀라운 점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자식을 매매하고 인육까지 서슴치 않고 먹는다.게다가 자국의 인민들을 보호해야 할 지도자들은 인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양식들을 착복한다든지 (인민들이)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여겼는지 탕언보(湯恩伯)와 같은 군인들은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한다.설상가상 기근으로 수많은 이재민까지 발생한다.그들은 일본군과 자국 군인의 학살을 피해 후방지역 (샨시성)으로 피난을 간다.

 

 당시 대기근의 상황을 집중 취재했던 미국 「타임즈」기자 해리슨 포먼이 없었더라면 1942년 허난성 대기근 상황은 그저 흘러가는 에피소드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해리슨 포먼 기자가 있었기에 당시 대기근 상황과 허난 인민들이 간난신고의 처지를 현장감 있게 접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죽음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허난 인민들이 겪어야만 했던 길고 긴 피난 행렬은 한국 전쟁을 방불케 한다.허난성을 일본군이 침입하자 장졔스 군인은 양식이 일본군에 돌아갈까 방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인민들이 굶주려 죽어 나가는 상황을 알고도 모르쇠로 일관했다.중.일전쟁이라는 난리통에 허난 성 인민들은 자식들을 병역에 보내고,현물납부가 필수적이었다.

 

 1942년 대기근을 경험했던 생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기근의 참담함을 그대로 전한다.메뚜기 떼가 허난 성을 급습하면서 허난 인민들은 메뚜기를 구워 먹는다는 생각은 못했던 모양이다.재앙을 부르는 곤충을 먹으면 하늘의 노여움을 산다는 미신을 믿었던 탓이다.양식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했던 허난 인민들은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먹고 보자는 심경이었을 것이다.보리 뿌리,야생 노란 국화,콩 줄기,목화 잎,호두 껍질,감나무 잎,능금나무 잎,가죽 끈 등 셀 수도 없을 정도이다.뤄양역에서 시안으로 떠나는 피난 행렬은 생지옥과 같다.말그대로 '콩나무 시루'와 흡사할 정도로 피난민으로 가득차 발들일 틈이 없다.타임즈지의 해리슨 포먼 기자의 생생한 리포트와 촬영을 본 장졔스는 결국 허난성에서 발생한 대재앙을 추스르는 동시에 인민들에겐 적극적인 구제활동을 실시하게 명령했다.

 

 장졔스가 허난 인민들에게 적극적 구제활동을 명령하면서 탕언보 군인이 인민들을 학살한 사건과 관련하여 인민들은 탕언보 탄핵과 허난 성 개각을 요구하게 된다.허난 성 대재앙은 결국 '수해,가뭄,메뚜기 재해,탕언보'라는 4대 재앙으로 압축된다.1942년 허난 성 대재앙이 종식되고 70여 년이 흐른 현재의 허난 성은 처참했던 당시의 상황은 찾을 길이 없을 정도로 상전벽해의 꼴을 보이고 있다.도시화,산업화에 의해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서고,당시 처참했던 상황은 생존자들의 경험이 가감없이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또한 기근 문제와 관련하여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쿠마르 센이 보여 준 사실 증명은 정치 지도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근이 자연재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객관적인 요소는 주로 어떤 결과를 야기하거나 심화시키는 작용만 할 뿐이다.권리의 불평등,정보의 불투명성,언론 자유의 부재,민주적이지 않은 정치체제야말로 빈곤과 기아를 악화시키고 대량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기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즉 식량 문제의 본질은 정치와 관련이 있고,기근의 발생 여부는 한 사회가 어떤 권리와 제도를 갖추었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이것은 1942년 대기근의 본질이기도 하다."

 -p3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