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
류전윈 지음, 문현선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뻔뻔하고 황당하기 그지 없는 작품을 접했다.흔히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 아닌 황당무계(荒唐無稽)의 극치에 포복절도하고 말았다.세속에서 권력도 권위도 없는 한낱 민초에 지나지 않은 일개 백성이 삼엄하고 경건하기 짝이 없는 국가의 최고 기관 속으로 뚫고 들어가 자신의 속사정을 고소하려는 돌발적인 행동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한참을 넋을 놓았다.참으로 가관이었다.이렇게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야기를 류전윈 작가는 능수능란하게 직조해 가고 있다.

 

 류전윈(劉震雲) 작가의 작품을 어느덧 네 번째 읽게 되었다.『닭털같은 나날』 『나는 유약진이다』 『말 한마디 때문에』에 이번 『나는 남편을 죽이지 않았다』까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중국 하류계층들이 겪는 삶의 고초를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점이다.생활 수준,사회적 위치가 높은 계층보다는 하루 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중국 하류계층의 삶의 고단함을 우회적이나마 해학과 풍자를 섞어 건조한 일상에 윤기를 더해 주고 있다.그리고 이러한 하류계층의 삶의 내막을 우회적으로 드러내어 국가 지도자들에게 알려져 삶의 개선을 도모하고자 하려는 의도도 내포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

 

 위장 이혼이 진짜 이혼으로 탄로나면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도도하게 전개된다.주인공은 리설련(리쉐롄)이라는 여성과 남편 진옥하(진위허)가 이야기의 단초를 제공한다.중국의 인구 증가 억제를 위해 1가구 1자녀 정책을 줄곧 시행해 왔다.근자에는 1가구 2자녀도 제한적으로 수용한다는 소식도 들었다.1가구 1자녀 정책을 어기면 당연 당사자에겐 불이익이 떨어지게 마련이다.리설련은 어찌하다 둘째를 갖게 되면서 위장 이혼을 하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법적으로는 진짜 이혼이 성립되어 소송에 들어가기로 작정한다.이혼이 가짜라는 것을 증명하고 남편 진옥하에게 혼인을 인정받은 후 다시 이혼을 하려는 의도이다.

 

 리설련은 소송에서 진짜 이혼으로 판결을 받았지만 낙심하지 않고 자신이 겪고 있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중국 최고 인민회의가 열리는 베이징을 향해 달린다.그녀는 사회 질서 교란죄로 유치장에 들어갔지만 고집불통이다.리설련이 법을 잘 몰라 이루어진 자작극으로 보여지는데,그녀는 법원 위원,판사,법원장,남편 진옥하 그리고 자신까지 고소한다는 취지로 베이징을 향한다.그녀가 하기로 마음 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성이 차는 듯하다.이만한 배짱이면 세상 어떤 일이든 못할 게 뭐가 있을까.학창 시절 알았던 친구 조대두를 만나 숙식을 해결하고 인민 대회당에도 미꾸라지처럼 요리 조리 헤쳐 나가다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만다.일개 인민이 인민 대회당까지 난입하게 만들었던 관련자들 이를테면 시장,현장(縣長),법원장,법원 자문위원,법원 판사 등이 줄줄이 면직되고 말았다.이것이 이야기의 1부다.

 

 2부는 그 해프닝이 있고난 뒤 20년 후이다.리설련도 어느덧 중년의 나이(49세)이고 큰 아이도 장정이 되어 결혼할 나이이다.리설련이 인민 대회당에 난입하고 제재를 받아 고향으로 되돌아 와서 착실하게 살았냐 하면 그건 아니다.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 즉 진짜 이혼을 가짜 이혼으로 되돌려 놓으려고 계속 고소를 해왔다.그런데 리설련을 좋아하는 조대두라는 남자가 있었다.그는 리설련이 고발을 그만 두도록 공무원과 짜고 일을 벌인다.그녀는 이를 눈치채고 조대두와 결별하고 다시 베이징 인민 대회당을 향해 달린다.이번에는 인민 대회당까지 가지를 못하고 중도에서 병이 나고 병원비를 절친에게 충당받고 귀가한다.자신이 고이 기르던 딸과 소의 죽음을 통해 느낀 바가 있었는지 고소 사건을 중단한다.

 

 1가구 1자녀 정책을 지키지 못해 위장 이혼을 했던 리설련은 참으로 어이없는 인생을 살아왔다.정부의 기강을 흐리면서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려했던 드센 여자임에 틀림없다.황당하고 뻔뻔스러웠던 소송극이 무위(無爲)로 끝나고 만다.그녀에겐 회한만 남았을 것이다.이야기는 허무맹랑한 듯 보이지만 중국 인민들의 온기 섞인 애정과 우의가 잘 드러나 있다.리설련에겐 한 마디 해주고 싶다."해야 할 것과 그만 두어야 할 것을 제 때 가려서 하는게 삶의 지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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