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애사 대한민국 스토리DNA 1
이광수 지음, 이정서 편역 / 새움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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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면적으론 정치 민주화가 진척되었다고는 하나 작금의 정치 행태를 들여다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한국 현대 정치사를 돌이켜 보면 정권욕에 혈안이 되어 야욕을 성취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행사했다.그것도 군부라는 총탄을 이용한 활극이었고 군부 정치라는 위세에 눌려 수많은 민주 인사,지식인들이 고통과 희생을 치러내야만 했다.이 연장선상에서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노라면 정권욕에 눈이 멀어 방해세력들은 유배,주살,사사,척살이라는 방법으로 제거했던 이가 있었다.바로 조선 제 7대 세조이다.그는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453년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이 일어난 해로서 수양대군이 상감이면서 어린 조카인 단종(端宗)을 내려 앉히고 자신이 왕위에 앉으려는 계략을 세우면서 착착 계략을 하나 하나 실행해 나갔다.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로서 왕이 될만한 자질이 부족하여 상왕 및 형제들로부터 일찌감치 도외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짧은 간격으로 세종과 문종이 서거하자 수양대군은 수하이면서 책사인 권람과 한명회와 자주 회합하여 정적이 될 만한 세력들을 제거해 나갈 것인가를 모의한다.제거 대상은 칠삭둥이 한명회가 살생부를 만들어 수양대군에게 건의하면 즉결 처분(척살)하기도 하고 주살,유배,사사를 내리기도 한다.

 

 수양대군은 먼저 정적 1호로 꼽은 절제 김종서,황보인 등을 척살 제거하기 시작한다.살생부 명단은 한명회 짜면서 정인지,신숙주 등은 수양대군에게 향후 정사의 방향에 대해 멘토 역할을 한다.수양대군에게는 일종의 무력으로 권력을 잡기는 하지만 자신의 혈육인 동생 다섯 명과 장인(송현수)를 사사,능지처참,주살(誅殺)이라는 방법으로 죽음으로 몰고 간다.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게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이렇게 수양대군의 지시에 의해 행동으로 옮겼던 이들은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인정받아 승승장구한 반면 단종 편에 있었던 세력들은 추풍낙엽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이 지근거리에 있는 숙부(안평대군) 및 매부(영양위),장인(송현수) 등이 정적으로 몰려 제거되자 단종 자신도 스스로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선위하게 된다.수양대군은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지만 거처는 창덕궁에서 지내도록 배려하지만,신숙주의 건의에 의해 노산군을 정치 권력에서 거리가 먼 강원 영월 청령포로 유배 보낸다.한편 상왕 단종 복위를 두 차례나 시도하자 실패로 돌아간 금성대군은 관노의 고변에 의해 사사(賜死)된다.성삼문도 단종 복위를 협의하려다 금상(세조)에게 친국 당하면서 처형된다.이를 계기로 유배지에 있던 단종은 세조가 보낸 공생(貢生)이 옭아맨 줄에 의해 절명(1457년)하고 만다.단종의 시신은 동강에 던져졌지만 영월 호장 엄흥도가 건져 평토장을 했다고 한다.아래 시귀는 단종을 유배지로 호송하던 작자 왕방현이 단종을 유배지에 남겨 놓고 떠나는 애닲은 마음을 싣고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며 밤길 예노매라   -P510 

 

 춘원 이광수 작가에 의해 1928년 쓰여진 《단종애사》는 예스럽고 한문투인 어투를 현대문에 맞게 편역한 작품이다.문종의 서거 직전,단종의 왕위 계승,수양대군의 정적 제거 및 왕위 찬탈 그리고 단종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세세하고 생생한 현장감을 띄우고 있어 (읽는 동안) 긴장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새삼 느끼는 바이지만 정치 권력은 냉혹하고 매정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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