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두리 없는 거울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박현미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옛날부터 땅거미가 질 때 귀신과 만난다고들 하잖아요.귀신을 보는 때는 한밤중이 아니라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 저녁과 밤의 경계에요." -P37

 

어린시절 뒤에서 누군가 나를 쫓아 달려오는 귀신이나 악몽을 많이 겪지는 않았다.무서움을 타는 것도 부모의 기지를 닮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무서움을 많이 타셨다고 한다.발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기 싫을 때 또는 가위에 눌려 꼼짝을 할 수 없을 때가 가끔 있었다.시골의 겨울은 찬공기와 함께 맑게 시리도록 창공에 떠있는 달은 대지를 비추기는 하지만 낮만큼 밝지는 않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한 달밤엔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정도로 달밤의 정취는 고요한 만큼 소리없이 누군가 내 뒤를 미행하는 것만 같았다.안채와 측간이 떨어져 있는 만큼 소변은 오강이으로 해결하지만 대변은 방문을 열고 측간까지 가야 하기에 급한 경우가 아니면 참다가 날이 새면 가곤 했다.다급해진 경우 용기를 내어 측간에 가곤 했는데 그것도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를 믿고 갔던 것이다.볼 일을 마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후다닥 달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잠을 청하기도 했다.그런데 이러한 무서움증이 어린시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할아버지,할머니 등 식구가 죽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측간이나 화장실을 갈 때에는 으례 대문간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돌아가신 어르신이 귀신이 되어 대문간을 열고 뚜벅뚜벅 들어오지는 않나 하고 마음이 쪼그라들곤했다.아마 나와 오랫동안 정을 나누면서 한지붕 아래에서 살았던 기억과 추억이 마음 속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당연 대문간을 바라보는 습관과 산사람이 아닌 죽은 귀신으로 나를 덮친다고 생각하니 무서움증,전율감이 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창시절 워낙 책과는 담을 쌓았던 만큼 독서이력도 일천하기만 하다.아니 거의 읽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만시지탄이라고 했던가.늦깍이로 책을 접하게 되면서 다양한 장르를 누비는 셈인데 학창시절엔 변변한 도서관도 없었고 책을 사야 할 경제적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던 것도 환경적 이유가 될 것이다.다만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전과 내지 문제집을 구입하여 시험에 나올 부분은 연필,색연필로 밑줄 짝 그으면서 핵심 부분을 달달달 외우고 시험에 임했다.주지하다시피 논술도 아닌 사지 선다형인 객관식이 대부분인데 교사에 따라서는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에 대해 힌트를 바겐세일과 같이 선심을 쓰기도 했다.아무튼 학창시절 괴담,추리,스릴과 같은 무서움을 유발하는 책을 많이 접하지를 못해서인지 어른이 되어 그러한 장르를 접하고서도 감정과 정서가 무디어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주 제목 《테두리 없는 거울》을 포함하여 다섯 편의 소설집 이 글은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어린시절 신사(神社) 주위에서 친구들과 놀다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 들어가 마음으로 겪었던 갑작스런 당황과 무서움증에 사로 잡혔던 경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글이다.사람은 '어떠한 징조에 사로잡힌다'는 말이 있듯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리를 떠나 전해 내려오는 전설과 민담에 바탕을 둔 괴담은 대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면서 하나의 괴담의 틀을 이루고 일반인들의 내면에 깊게 천착하게 된다.'삼인성호'라는 성어(成語)가 있다.없는 것도 여러 사람이 모여 작당을 꾸미게 되면 뭔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곧이 곧대로 믿게 된다는 것이다.

 

 학교의 계단에 산다는 하나코의 이야기(일곱 가지 불가사의 이야기)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야 저주와 형벌이 오지 않는다는 계단의 하나코,한 사람의 죽음의 원인을 놓고 저주냐 분노냐로 설왕설래하는 그네를 타는 다리,죽었다던 소녀가 개집에서 발견되면서 벽 장,세면대 아래에서 시체가 나귕구는 소름 끼치는 섬뜩한 이야기,거울 속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테두리 없는 거울,거울 속의 자신의 미래가 현실에 존재하는 자신에게 피범벅인 손을 내밀고 거울에 비친 미래를 삭제하려는 이야기,누군가를 마음 속에 데려와 분신으로 삼지만 정작 눈에는 보이지 않는 친구 이야기 등이 (사람마다 경험의 차이는 있겠지만) 괴기스러운 공포증을 한 두번쯤은 겪었으리라 생각한다.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순서별로 도시 전설,분신사바(귀신을 불러내는 놀이),주문,점(占),비가시적인 친구로 정리할 수가 있다.과연 인간의 내면에는 유령,정령,귀신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는 걸까.특히 생각하기 싫은 악몽이라고 꾸고 나면 몸에 식은땀이 흥건히 배인다.사람은 독한 생물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나약하기 그지 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번데기가 껍질을 벗고 성충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리듯 무서움증 마음먹기에 따라 삶의 통과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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