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형제도 어떻게 생각합니까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사형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는 나라도 있고 이미 폐지한 나라도 있다.한국은 후자의 경우로서 1997년 12월 30일부로 사형선고는 있되 사형집행은 하지 않고 있는 나라이다.사형제도를 존속시키느냐 폐지하느냐는 해당 국가의 사회제도 및 여론을 바탕으로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사형제도가 반영되는 것 같다.그런데 사형집행이 폐지되다보니 이를 악용하는 고지능범들이 증가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손실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사형제도 폐지의 취지와는 크게 모순되는 것으로 보인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작품은 언제 읽어도 숨을 죽이게 만든다.긴박감이 넘치는 플롯과 잘 짜여진 그물망과 같은 사건의 연결성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브랜드가 아닐까 한다.그래서 그의 작품은 사랑하는 마니아층이 저변에 확산되고 있다고 생각한다.특히 개인주의가 사회에 팽배해지면서 오로지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현대인의 심상을 사회적인 문제로 이슈화하면서 함께 생각하고 풀어가자는 취지가 강하기에 공유와 공감대가 클 수밖에 없다.일본에서는 3면기사라고 하여 강도,살인사건을 취급하는데 사건.사고가 터지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기자,검.경의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직업정신은 한국의 모습과 크게 차이가 난다.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 상부,여론의 추이에 따라 냄비의 거품이 부글부글 끌어 오르기도 하고 쉽게 거품이 힘없이 사그라들기도 한다.

 

 《공허한 십자가》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도 있고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할 수도 있는 관념인데 이 글에서는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다.어떠한 사유가 되었든 사람을 죽이고 죄값을 치뤄야 한다.세 건의 살인사건 놓고 캐릭터들이 엮어 가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사형폐지는 인권과 갱생을 위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만 사안의 경중에 따라서는 영구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마땅한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사건.사고는 우연찮게 발생할 수도 있지만 살의(殺意)가 다분한 의도적인 경우도 많다.가해자는 법의 심판에 따라 형량이 정해질 것이다.유족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기미가 없는 파렴치하고 무도(無道)한 죄인에게는 형량을 극대화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닐까 한다.구체적인 죄형은 알 수가 없지만 일반적인 죄수들은 수형생활을 통해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들이 석방이 된다손치더라도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시선과 수용은 싸늘하기만 하다.이러한 사회적 공기(空氣)로 말미암아 재범,재재범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나카하라(中原)와 사요코(小夜子) 사이에 낳은 딸이 강도에 의해 목졸려 살해되면서 시작된다.범인은 강도치사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한 전과가 있는 히루가와(蛭川),그는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가정결핍이 컸던 만큼 성장 과정상 심리적 내면이 원만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그는 재판에서 상대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우발적으로 죽였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우리말에 참을 인(忍)자 섹개가 모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는데 그는 참을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히루가와는 사형 판결을 받게 된다.이를 계기로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상호 합의에 의해 서로 갈 길로 가게 된다.그리고 딸의 살해사건이 있은 후 8년이 지나 사요코가 사쿠조(作造)라는 남자 노인에 의해 자살(刺殺)을 당하게 된다.노파는 왜 사요코를 등을 무참히 찌르고 죽였을까.이 실타래는 글이 중후반을 넘어 가면서 흐렸던 피사체가 밝은 피사체로 변해가는 것과 흡사하게 다가온다.이것이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문체의 브랜드이기도 하다.

 

 나카하라는 사요코와 헤어진 후 숙부의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이어 받고 그 일에 전념을 하게 된다.그런데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그곳에서 사요코의 행적을 알게 된다.대학 동창 치즈코(千鶴子)는 잡지사 편집장으로 있고 사요코는 기사를 취재하는 기자이다.그녀의 전 남편 나카하라는 사요코가 쓴 딸의 죽음과 관련한 『사형 폐지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라는 글을 읽게 된다.

 

 "한 아이가 있다.그 아이를 사형 폐지론 찬성자로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사람을 죽이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사형이라는 제도는 국가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하지만 국가를 이끌어가는 것은 사람이다.즉 사형 제도는 모순되어 있다. ―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된다.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는 납득할 것이다.나도 그것을 납득할 수 있는 아이로 있고 싶었다." -P183∼P184

 

 "피해자 가족인 유족들은 단순히 복수(復讐)을 위해 범인의 사형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가족은 살해당한 가족 구성원이,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뎌야 하는지......,범인이 죽는다고 해서 피해자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그렇다면 유족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손에 넣으면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풀 수 있는가? 사형을 원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유족의 마음을 풀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사형을 폐지한다면,그렇다면 그 대신 유족에게 무엇을 줄 것인지 묻고 싶다." -P188

 

 흔히 '죽음으로 속죄한다'는 말을 하는데,유족의 입장에서 보면 범인의 죽음은 '속죄'도 '보상'도 아니다.그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단순한 통과점(通過點)에 불과하다.그곳을 지났다고 어디로 가야 행복해질지는 여전히 모르기 때문이다.그 통과점마저 빼앗기면 유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형 폐지란 바로 그런 것이다." -P190

 

 

 

 

 사요코의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왔던 지츠코,사오리를 알게 된 나카하라는 사요코가 쓴 '사형 폐지론'과 관련한 그녀의 견해를 알게 된다.그녀의 딸을 죽인 히루가와는 결국 사형 집행을 맞게 된다.그런데 살인 사건은 또 하나 남아 있다.사오리의 어릴적 남친 후미야는 사요코의 딸이 살해되던 해 10대 청소년으로서 성관계를 맺고 사오리는 그만 임신을 하게 되는데 만삭이 되어 갓 태어난 갓난아이를 두려움에과 혼란에 휩싸인 채 산 속에 생매장하게 된다.인과응보일까.사오리는 그후 내내 삶이 제대로 굴러가지를 않는다.소아과 의사로 인간성 좋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후미야는 아내 하나에를 데려와 살게 되지만 하나에에게도 사연이 안타깝기만 하다.또한 장인되는 사람이 사요코를 죽인 장본인(사쿠조)인데 사요코 생전 사오리와 후미야 사이에 낳은 아이를 생매장한 사실을 밝힌다. 사요코가 후미야의 전력을 흠집내려 하는 것을 듣던 후미야의 장인 사쿠조는 사요코를 뒤따라가다 자살(刺殺)시킨다.사람구실을 못하던 장인을 후미야는 생활비를 꼬박꼬박 드리면서 효를 다하고 아내 하나에에게도 각별히 잘 해 준다.21년 전 청소년기에 아이를 낳아 바로 생매장한 속죄의 의미로 후미야는 인생을 더욱 알차게 살아가려 한다.

 

 '묻지마 살인 사건'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다.살인 사건의 행태도 잔인의 극치이다.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하기만 하다.인두껍을 쓰고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혀가 저절로 내두르게 된다.그런데 사법계의 판결 잣대로 부조리한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작가의 말대로 그들은 죄를 짓고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삶의 운명이고 삶의 통과점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끝나는 걸까.유족은 사랑하는,둘도 없는 가족이 누군가에 의해 처참하게 억울하게 죽음을 당했는데 살인자를 형식적으로만 사형 선고를 내리고 사형 집행을 하지 않을 경우,범죄자들이 죄값을 치르고 사회에 나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또한 살인자를 사형 집행하여 사회에 본때를 보이고 환기시킴으로써 살인 사건을 감소할 수 있을까.나는 근자 치가 떨리고 공분이 일어나는 살인 사건(사회 안전망의 어수룩함으로 인해)이 너무도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사회 정의와 상식이라는 차원에서 법이 물렁물렁하게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는 공허한 십자가에 놓인 살인자들의 내면 세계에 대한 비판과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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