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에 피어난 꿈 - 전주 한지 이야기 한국의 재발견 1
한영미 지음, 강화경 그림 / 개암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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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지로 만들어진 벽지,창호지를 사러 시내에 갔던 시절이 엊그제 같다.벽지,창호지는 고급벽지,우드타일 & 원목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이는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다 보니 소비자의 취향 및 선호도도 자연스레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오늘날 벽지,바닥재가 고급화되고 최신설비에 의해 자동생산되면서 빠른 것을 요구하는 소비자의 바램과 판매자의 신속한 서비스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격세지감을 느끼지만 한지와 오늘날의 벽지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나는 어린 시절 산골 마을에서 자라온 것이 정서적,심리적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한지의 원료인 닥나무는 녹음방초의 여름날 수수와 조가 심어진 밭 가장자리에 일렬로 죽 늘어져 성장해 나가고,늦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잎사귀는 떡갈나무 잎사귀마냥 누렇게 물들어 가고 줄기는 녹색에서 짙은 갈색으로 숙성한다.가을날 지천에 깔린 닥나무는 한국 전통 한지의 원료가 되는데 손길이 많이 가는 것이 단점이지만,한지를 만들기 위한 농부,업자들은 노력과 정성을 아름다운 체념으로 삼고 기다림과 인내를 감수했다.

 

 한지와 관련하여 에피소드를 술회하려고 한다.돌아가신 선친은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생존해 계시는 어머니와 함께 부창부수가 되어 이 고을 저 고을을 다니면서 육체노동을 마다하지 않으셨다.비록 밥보다는 술을 너무 좋아한 점이 흠이지만 지나온 시간을 회고하면 아버지 얼굴 보기도 아까울 정도로 아버지의 노고는 숙연해지곤 한다.아버지께서는 닥나무를 농부들에게 싸게 매입하여 한지업자에게 팔아 넘기곤 했다.농부들이 잘라 묶어 갖어 온 닥나무를 커다란 가마에 물을 붇고 닥나무를 떡시루에 떡을 앉히는 것처럼 차곡차곡 채운 다음 밤새도록 불을 지폈다.쪄낸 닥껍질을 말랑말랑하여 벗기기도 수월하였다.닥은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기까지 셀 수 없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벗긴 닥껍질은 다시 물에 불려 닥칼로 일일이 벗겨내어 이를 건조시킨 후 닥나무 뿌리에서 나오는 황촉규와 혼합하여 한지공장에서 수공업으로 한지를 만들어 낸다.나는 닥나무를 찌고 닥껍질을 벗기는 작업까지는 직접 경험을 했다.

 

 전통 한지를 잘 보존하고 있는 전주 한지 이야기는 내 고향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는 것 같아 향수와 추억이 다시 돋아나게 한다.안영미 작가의 고향이 전주 쪽인지는 모르지만 전주말을 맛깔스럽게 재현하고 있으며,이야기의 배경이 전주 흑석골이다.지금은 흑석동으로서 이곳은 제 작은 아버지께서 신혼시절 거주했던 곳이고 흑석동 근처에는 공수내 다리가 있었다.친근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또한 닥껍질을 건조시키는 곳이 고덕산 계곡 자락은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고덕산이 그 부근에서는 최고봉이며 그 주위에는 남고산성 등 문화유적도 많은 곳이기도 하다.

 

 대대로 닥나무를 찌고 한지를 만들어 가계를 이어 오는 지호네 집안의 얘기를 잘 들려 주고 있는데,우선 한지를 만들기 전에 한지 산신제를 지내는 의식부터 시작된다.지호는 초등학생으로서 할아버지가 닥나무를 찌고 껍질을 벗기고 말리며 잿물 및 황촉규에 닥껍질을 담그는 장면과 흑피,백피에 이르는 과정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내면서 친구들에게 널리 알린다.또한 조선왕조실록을 재현할 한지 만들기 대회라 지호 할아버지는 보통 때보다는 더 신경이 쓰이고 정성을 기울이는데,이웃 누군가가 닥껍질에 약품을 섞는 바람에 할아버지는 마음의 병이 나고 만다.'이웃이 돈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딱 떠올랐다.이에 지호 아버지가 할아버지 대신 한지를 만들게 되고,부족한 일손은 이웃들이 와서 십시일반으로 거들어 주면서 지호네는 조선왕조실록 한지 만들기 대회에서 일등을 거머쥐게 된다.

 

 전주 한옥마을에 가면 전통한지 체험관이 있다.그곳에는 한지로 만든 다양한 제품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어린이들을 위해 한지로 제품 만들기 체험도 있다.한지는 수공예성,장기 보존성,습기 흡수성 및 통기성이 좋다.또한 한지로 만든 제품은 동양적 특성이 돋보이는 특색도 있다.현대화에 밀려 차츰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골동품이 될 수도 있는 한지는 비록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지만 한국의 전통과 가치를 되찾고 세세손손 보존해 나갈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는 것을 새삼 일깨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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