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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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일본 교토는 해외체험 중 처녀여행지이다.꼭 교토를 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일본인 친구의 초청방문에 의해 일본 교토에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1990년대의 방문이니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그런데 교토에 갔던 시기가 한여름날이었기에 무덥고 습한 날이 계속되면서 처음 교토를 밟았던 기분이 화롯가에 놓인 엿이 녹는 것과 같이 힘없이 풀리고 말았다.교토는 지형적으로 분지(盆地)여서 여름엔 한증막과 같이 무덥고 겨울엔 맹추위가 계속되는 곳이다.형식적으로는 일본인 친구의 초청방문이지만 실제로는 호텔에서 그릇 닦기,호텔 옥상의 비어 가든에서 요리를 직접 만들면서 비어 가든을 찾아 동반자와 주거니 받거니 마시는 맥주와 (비록 프랜차이즈 요리이지만) 내가 만든 요리를 정겹게 먹는 모습을 멀찌감치서 보니 뜨거운 열기가 시원한 청량감으로 바뀌기도 했다.

 

 일본 교토는 헤이안시대(794∼1185년)의 도읍지로서 수많은 문물이 산재되어 있는 곳이다.문화재를 애지중지하는 일본답게 교토를 비롯하여 나라,가마쿠라 등지는 건축과 조각물이 몇 백년의 풍상과 함께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그러고 보니 나는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주는 교토,나라,가마쿠라를 찾아 일본 문화를 직접 눈과 마음으로 음미할 수 있어 다행이다.1990년에는 오사카 신국제공항이 생기기 전이기에 오사카 근처의 이타미 국제공항에서 내려 출국심사를 마치고 나를 맞이하러 온 일본인 친구와 오사카 위성도시 미노에서 몇 일 체류한 다음 아르바이트처인 교토 모호텔로 향했다.일본어를 할 줄 알기에 가는 방법과 연락처를 건네 받은 후 교토행 전차를 타고 교토에서 내려 다시 데마치야나기역행 전철을 갈아타서 데마치야나기역에서 내려 호텔로 향했다.풍경과 건물에서 다소 이국적인 모습이 군데군데 나타났다.시모가모신사가 보이더니 일장기가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에 '이곳이 바로 일본이구나'하는 생각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교토는 시가지가 바둑판 모양과 비슷하다.거리와 거리사이가 잘 정렬되어 있고 가는 곳마다 신사와 사찰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교토는 일본 5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고층건물이 많지 않다.2,3층 높이의 고만고만한 주택이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눈에 띄이는 건물은 행정타운과 같은 공공장소이고 뾰족하게 솟은 건물들은 거의가 사찰 내지 신사였다.내가 교토에 있으면서 찾아 간 곳은 기요미즈사,킨가쿠사,류안사,옌략쿠사,아라시야마(도케스교)와 시죠거리,교토탑을 들렀다.옛스러운 건물들과 교토 특유의 방언은 일본 속의 색다른 일본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간무(桓武)천황 의해 건립된 교토는 가마쿠라로 도읍지가 옮겨가기까지 역사,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다.당시 8,9세기는 불교가 교토에 발화를 하면서 천태종과 진언종으로 나뉘게 된다.사이쵸의 천태종과 고보대사의 진언종은 각각 옌략쿠사와 공고부사를 세웠다.유홍준저자의 이 글을 읽고 나서 이제야 옌략쿠지를 세운 분이 사이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옌략쿠지를 가는 길은 로프웨이를 타고 산자락 히노키가 즐비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오솔길 양쪽에는 아기보살과 같은 사리탑이 무심하면서도 을씨년한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했다.옌략쿠사 근처에는 근본중당이 있는데 일본 원인스님과 장보고와의 인연을 기리는 의미에서 장보고 기념탑이 있다.교토는 동서북이 산자락으로 둘러 싸인 곳이며,남쪽은 완만한 구릉이 펼쳐지면서 남쪽으로 가다 보면 아스카시대의 도읍지 나라가 나온다.유홍준저자는 복잡다단한 교토의 유적을 다섯 갈래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도읍지가 되기 전의 유적지 답사,헤이안시대의 개막과 함께 창건된 옌략쿠사 답사,교토 남쪽의 뵤도인 답사,기요미즈사 답사,끝으로 가마쿠라시대 창건한 사찰 답사로 꾸며져 있다.특별해서 놀라운 점은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고류사는 신라계 도래인 하타씨가 세우고,야사카 신사 및 호칸사의 오중탑은 고구려계 도래인이 세웠으며,백제계 도래인 후손인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는 기요미즈사를 세웠다는 것이다.어찌되었든 고대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교코의 빛나는 유적을 세웠다는 점에서 자긍심을 갖어도 좋을 것이다.저자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다카야마사인데 그곳은 첩첩산중에 있는 사찰이다.그곳에는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의 초상이 소장되어 있어 고대 한국과 일본간에는 종교와 문물,관계가 빈번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각 시대는 매 순간 개인의 삶이 있었고,집단적 문화가 있었다.어느 시대든 정치.경제,사회적 모순을 안고 있다.현재도 마찬가지다.그 과정에서 창조된 유물.유적들은 이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이런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 문화사다. -P299

 

 아스카,헤이안,그리고 무사시대를 맞이했던 가마쿠라시대의 유적까지 생생한 현장감과 살아 있는 일본 역사와 문화의 정수를 대면하고 있는 듯 하다.신비의 베일에 가려진 육바라밀사는 12년에 한 번 꼴로 공개를 하고,삼십삼간당은 천수관음상이 웅장하고 도도하게 도열해 있어 관람객들에게 사열을 받고 있는 듯 장엄하기 이를 데 없다.삼십삼간당은 길이가 118미터에 달하고 있어 광대함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이다.또 하나 신안 해저에서 발굴한 유물과 가마쿠라시대 세워진 도호쿠사와의 인연은 참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교토시를 개발하느냐 보존하느냐를 놓고 시민과 갈등하던 일본정부는 밀려 오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한 방편으로 신교토역과 교토탑을 세우고 나머지는 옛모습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고 한다.오래되어 낡은 문화재를 수리하고 보존해 가려는 일본의 문화정책은 개발위주의 한국정부와 극대조가 된다.이번 교토 답사기는 교토 유적을 중심으로 배열이 되었다고 하며,근간 교토 명소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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